가슴께를 짓누르는 감각에 눈꺼풀이 떨렸다. 공기는 희박하고 비릿한 금속취가 코끝을 찔렀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지며 천장의 화려한 금실 장식이 일렁였다. 고도가 높은 왕궁 특유의 서늘함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하며 시트의 감촉을 훑었다.
옆구리에서부터 타오르는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독기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장기를 갉아먹는 감각이 선명했다. 목구멍 안쪽이 바짝 말라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거친 숨을 내뱉을 때마다 폐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뒤따랐다.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한 방울 떨어져 하얀 침구를 적셨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손길이 이마에 닿았다. 서늘한 체온이 닿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카이델의 그림자가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으며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심해처럼 가라앉아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단지 그가 숨을 들이켤 때마다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피의 계약은 잔혹할 정도로 성실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연우의 갈비뼈 아래가 뒤틀릴 때마다 카이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억눌린 신음소리를 냈다. 고통의 절반을 공유하는 남자는 오히려 그 고통을 즐기는 듯했다. 카이델의 입가에 기괴한 호선이 그려지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죽음의 문턱까지 나를 끌고 갈 작정인가.
카이델의 목소리가 귓가를 낮게 울리며 파고들었다. 그는 연우의 가슴 위에 투박하고 커다란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통해 뜨겁고 날카로운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민의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순도의 에테르였다. 비어 있는 혈관에 강제로 주입되는 힘은 치료가 아닌 고문에 가까웠다.
신음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카이델이 연우의 입을 막았다. 에테르가 독기와 충돌하며 몸 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연우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며 침대 기둥을 붙잡았다. 환영의 장갑이 끼워진 손등에 실금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생명력을 제물로 삼는 마법 도구가 비명을 지르며 빛을 내뿜었다.
카이델의 안색도 실시간으로 창백하게 변해 갔다. 그는 자신의 에테르를 쏟아부으며 연우의 통증을 고스란히 나누어 가졌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연우의 뺨 위로 툭 떨어졌다. 고통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위태롭고 아름다웠다. 카이델은 고통을 견디듯 연우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어 당겼다.
이토록 떨면서도 누구를 생각하는 거지.
연우의 의식은 이미 잿빛 하수구의 진흙탕 속에 잠겨 있었다. 눈먼 여동생의 가녀린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오빠라고 부르며 매달리던 작은 손의 온기가 그리워 손을 뻗었다. 입술이 달싹이며 소리 없는 이름을 내뱉으려 애썼다. 여동생의 낡은 리본이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던 잔상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카이델의 눈동자에 서늘한 광기가 어리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연우의 기도가 압박당하며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연우가 다른 이를 그리워하는 꼴을 단 한 순간도 참지 못했다. 질투는 에테르보다 더 뜨겁게 카이델의 내면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는 연우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게 속삭였다.
네 여동생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비로소 내 고통만을 온전히 바라보겠느냐.
연우는 본능적으로 카이델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살려달라는 애원도, 그만두라는 항변도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단지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 애썼다. 카이델은 그 처절한 저항이 마음에 든 듯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손을 떼자마자 연우는 끊어질 듯한 기침을 토해내며 몸을 말았다.
침소의 무거운 공기가 갑자기 진동하며 정적이 깨졌다. 창문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침입해 바닥을 굴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망설임 없이 벽면에 숨겨진 비밀 수납장을 향했다. 그곳에는 연우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가짜 고도 인장이 들어 있었다. 동생을 데려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든 서류함이 열렸다.
사내의 손에 들린 벨로스 가문의 문장이 달빛 아래서 번뜩였다. 그는 서신을 품 안에 갈무리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사내의 품속에 있던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공작 가문의 기사단만이 패용하는 문장의 일부였다. 금속음이 적막한 방 안을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다.
카이델은 침입자를 쫓으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제 아래에서 숨을 몰아쉬는 대역에게만 고정되었다. 도망친 자객보다 눈앞의 먹잇감이 내지르는 신음이 더 중요했다. 카이델은 연우의 뺨을 감싸 쥐고 강제로 고개를 들어 올리게 했다. 공포와 절망이 뒤섞인 연우의 눈동자가 그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는 연우의 떨리는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거칠게 포개었다. 숨결을 빼앗는 행위는 입맞춤이라기보다 낙인을 찍는 과정에 가까웠다. 연우의 마른 입술 사이로 카이델의 타액과 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가슴의 낙인이 고동치며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카이델은 연우의 뒷머리를 휘감아 쥐며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무데도 가지 못해.
카이델의 낮은 읊조림이 연우의 입안으로 흩어졌다. 연우는 바닥에 떨어진 문장 조각을 바라보며 힘없이 손을 늘어뜨렸다. 모든 것이 벨로스 공작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자신을 짓누르는 이 남자의 집착은 그보다 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연우의 의식은 차가운 침묵 속으로 서서히 침잠해 들어갔다.
카이델은 정신을 잃어가는 연우의 목덜미를 핥아 올리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자객이 빠져나간 창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추격의 의지 대신 비릿한 승리감만이 가득했다. 그는 연우의 귓가에 다시 한번 자신의 소유권을 선포하듯 이를 세워 살점을 깨물었다.
내 허락 없이는 죽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카이델은 연우의 몸을 완전히 덮어 누르며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낙인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붉게 타오르던 문양이 서서히 잦아들며 연우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불규칙한 숨소리와 바닥에 떨어진 차가운 금속 조각만이 남았다. 카이델은 만족스러운 듯 연우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연우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서 자신의 손과 맞잡았다. 힘없이 늘어진 연우의 손등 위로 카이델의 긴 손가락이 얽혀 들어갔다. 벨로스 공작의 도발은 시작되었으나, 카이델에게는 오직 품 안의 온기가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는 연우의 귓가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으며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이제 넌 평생 내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