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가면이 얼굴을 조였다. 습기 찬 숨결이 코끝에 맺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웅성거리는 소음이 고막을 어지럽게 파고들었다. 이곳은 제국의 화려한 심장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황금 시장의 외곽이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공기는 눈에 띄게 탁해졌다. 폐부 깊숙이 박히는 공기는 비릿한 금속 향과 썩은 물비린내를 머금고 있었다. 연우는 망토 자락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밑의 진흙이 질척이며 신발 끝을 붙잡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목덜미의 잔털이 곤두섰다. 누군가 보고 있었다. 왕궁의 청명한 공기에 익숙해진 신체는 낮은 지대의 독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환영의 장갑을 낀 왼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장갑은 주인의 생명력을 먹어 치우며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연우는 장갑을 숨기기 위해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었다.
"이쪽이야. 서둘러."
골목 그림자 사이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시안이었다. 그는 평소의 가벼운 태도를 버린 채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의 손에는 때 묻은 가죽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연우는 그가 가리키는 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벽면의 이끼가 망토에 묻어 축축한 감촉을 남겼다.
"약은 구했어?"
연우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시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 안에서 유리병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났다. 잿빛 하수구에 홀로 남겨진 여동생을 위한 약이었다. 고도가 낮은 구역에서 발생하는 폐 질환은 오직 상층부의 깨끗한 에테르가 섞인 약물로만 다스릴 수 있었다. 연우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공작의 눈들이 사방에 깔렸어. 은빛 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시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는 연우의 어깨를 꽉 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그의 온기가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연우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주머니 속의 약병을 어루만졌다. 차가운 유리 표면이 손끝에 닿자 비로소 심연 같은 불안이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 중앙 광장에서 거친 비명과 함께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들이 평민의 머리채를 휘잡고 있었다. 기사의 손에는 붉게 달구어진 인장이 들려 있었다. 고도 인장이 없는 자들을 색출하는 정기 단속이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번 달 세금은 반드시 내겠습니다!"
바닥을 기는 남자의 절규가 공중을 찢었다. 기사는 대답 대신 남자의 가슴팍을 군화로 짓이겼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골목 안쪽까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연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주머니를 쥐고 있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만둬."
연우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시안이 급히 그의 팔을 낚아챘다. 그의 손가락이 연우의 살점을 파고들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미쳤어? 지금 나서면 우린 끝이야."
시안의 억눌린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연우의 시야 속에서 기사는 남자의 이마에 인장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살이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연우의 위장이 뒤틀렸다.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왕의 대역으로 살며 보아온 고결한 예법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이었다.
"저 사람은 죄가 없어.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연우의 목동자가 붉게 충혈되었다. 손바닥을 누르는 손톱 끝이 살을 파고들었다. 뜨거운 액체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체적 고통보다 더한 혐오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카이델의 서늘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왕좌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 비참한 풍경들이 이제는 연우의 현실을 옥죄고 있었다.
"제발 정신 차려, 여기서 잡히면 네 동생은커녕 우리 둘 다 목이 날아간다고!"
시안이 연우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얼얼한 통증과 함께 차가운 이성이 돌아왔다. 연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응시했다. 시안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이곳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그때 건너편 지붕 위에서 금속성의 번뜩임이 포착되었다. 은빛 매의 정찰병이었다. 그들은 이미 연우의 위치를 특정하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시안은 연우의 손목을 잡아채고 반대편 지하 통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렸다. 추격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연우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어두운 통로를 질주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낮은 고도의 독기가 폐를 긁어내리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환영의 장갑이 에테르를 강제로 끌어다 쓰며 연우의 생명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쪽이야, 더 빨리!"
시안은 복잡한 하수도 미로를 숙달된 솜씨로 빠져나갔다. 그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어둠 속으로 은밀한 수신호를 보냈다. 연우는 그 손짓의 의미를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발목까지 차오른 더러운 물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거대한 수문 앞에 다다랐을 때, 머리 위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은빛 망토를 두른 조직원들이 소리 없이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들의 검은 독니처럼 차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상대는 전문적으로 훈련된 암살자들이었다.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 다니는군."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가슴에는 벨로스 공작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연우는 뒷걸음질 치다 벽면에 등을 부딪혔다. 막다른 길이었다. 시안은 연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단검을 뽑아 들었다.
난전이 벌어졌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좁은 하수도 안에서 기괴하게 증폭되었다. 연우는 날아오는 검격을 피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망토 자락이 구조물에 걸려 찢어졌다. 품 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져 바닥의 오수 위로 굴러갔다.
연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비상용으로 챙겨두었던 여분의 환영의 장갑이었다. 그 위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황실의 문장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조직원 중 한 명이 재빨리 손을 뻗어 장갑을 낚아챘다. 그는 손바닥 위에 놓인 장갑의 문장을 확인하고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연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사냥감을 확실히 포착한 포식자의 표정이었다.
"황실의 물건을 평민이 지니고 있다니."
사내의 목소리에 확신이 서렸다. 그는 장갑을 높이 들어 올리며 연우의 가면 너머를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연우는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비밀의 장막이 찢겨나가는 소리였다. 사내가 검 끝을 연우의 목 근처로 겨누며 한 걸음 다가왔다.
"네놈의 진짜 얼굴을 확인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