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위로 뜨거운 인두가 스치는 감각이 일었다. 얇은 침적삼 너머로 붉은 얼룩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악취가 코끝을 지독하게 찔렀다.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었다. 전장에서 누군가 황제의 어깨를 벤 것이 분명했다. 피의 계약은 비정했다. 주인은 멀쩡했으나 대역의 살점은 속절없이 갈라졌다. 연우는 떨리는 손으로 왼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울컥하며 뜨거운 액체가 배어 나왔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이 저릿했다. 잿빛 하수구의 탁한 공기에 익숙해진 폐였다. 수도 아스테리아의 청명한 공기는 오히려 독이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생명력이 샘솟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빈민가 출신인 연우에게 이곳은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상처 부위가 욱신거리며 심장 박동에 맞춰 요동쳤다.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탁자 위에 놓인 구급 상자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유리병을 건드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병이 박살 났다. 투명한 약수가 카펫 위로 속절없이 스며들었다. 연우는 바닥을 기어 상처를 가릴 천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울렸다. 규칙적이고도 위압적인 소리였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방 안으로 쏟아졌다. 카이델이었다. 전장에서 막 돌아온 그는 갑옷조차 벗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어깨에는 흙먼지만 묻어 있었다. 상처 하나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금속 장견이었다. 반면 연우의 어깨는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주인 대신 찢겨 나간 살점이 비참하게 일어났다.
카이델의 시선이 연우의 짓물러진 어깨에 머물렀다. 그의 입가에 기묘한 비틀림이 생겼다. 즐거움인지 혹은 혐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가 성큼 다가와 연우의 손목을 낚아채듯 들어 올렸다. 쇳덩이 같은 손아귀가 뼈를 으스러뜨릴 듯 압박했다. 연우는 신음조차 내뱉지 못한 채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푹신한 침구 위로 붉은 혈흔이 꽃처럼 피어났다. 카이델이 그 위로 몸을 겹쳐 오며 연우의 턱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눈동자가 연우의 눈 속을 파고들 기세로 번뜩였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비릿한 쇠 냄새가 흘러나왔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손톱 정월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눌렀다. 살을 파고드는 통증으로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
"천한 몸뚱이가 제법 제 몫을 하는군."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전을 서늘하게 긁었다. 연우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남자의 형체는 선명했다. 어깨의 통증이 심장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연우는 이를 악물며 카이델의 단단한 팔뚝을 마주 잡았다. 손톱이 그의 가죽 장갑 위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당신이 아플 때마다 내 몸이 찢어지니 말입니다."
연우가 밭은 숨을 내뱉으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핏기가 가셨다.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저를 고통스럽게 하세요."
카이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연우의 멱살을 잡아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잿빛 하수구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카이델은 연우의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연우는 눈을 피하지 않고 버텼다.
여기서 밀려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동생 연희에게 전해줄 약을 구할 수 없었다. 고도 인장이 없는 하층민에게 왕궁의 약은 생명줄이었다. 연우의 시선이 침상 머리맡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주인 없는 낡은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동생이 아끼던 것과 소름 끼치도록 닮은 모양새였다.
연우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환영의 장갑은 이미 사용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손등을 타고 흐르는 검은 줄기가 생명력을 갉아먹었다. 에테르를 쓰지 못하는 공허의 신체가 한계를 호소했다. 카이델은 연우의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연우의 상처 입은 어깨 위로 큰 손을 올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상처 주위를 느리게 훑었다. 연우는 몸을 움츠렸으나 카이델의 악력은 완강했다. 찢어진 옷감 사이로 드러난 살점이 공기에 닿아 시렸다. 카이델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숨결이 상처 부위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포와는 다른 기묘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약값이 필요해서 이런 연극을 하는 건가."
카이델의 냉소 섞인 물음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연우는 대답 대신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비릿한 혈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감각을 일깨웠다. 7대 가문인 벨로스 공작이 이 정체를 알면 끝이었다. 시안이 보냈던 차가운 시선이 갑자기 뇌리를 스쳤다. 믿었던 조력자의 배신은 상처보다 더 아프게 박혔다.
제국 테라노스의 법은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대역이 정체를 들키는 순간 즉시 참수형이었다. 연우는 자신의 목숨보다 동생의 안위가 먼저였다. 카이델이 연우의 옷매무새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드러난 어깨의 상처는 더욱 처참한 몰골을 드러냈다. 피가 엉겨 붙어 옷감과 살점이 구별되지 않았다.
카이델의 혀가 핏방울이 맺힌 상처 위를 느리게 핥아 올렸다. 연우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자극이 전신을 강타했다. 근육이 경련하듯 떨리며 젖은 시트를 움켜쥐었다. 카이델은 연우의 고통을 음미하듯 더욱 깊게 상처를 유린했다. 타액과 피가 섞여 묘한 빛을 내며 흘러내렸다.
연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베개 속으로 스며드는 온기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카이델은 멈추지 않고 목덜미까지 입술을 옮겼다. 뜨거운 숨을 내뱉을 때마다 목줄기가 파르르 떨렸다. 카이델의 손이 연우의 머리카락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는 연우의 귀에 입술을 바짝 밀착시켰다.
맹수의 가르릉거리는 소리와 흡사한 낮은 울림이었다. 연우는 숨을 멈춘 채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심장 박동이 귀를 울릴 정도로 빨라졌다. 카이델은 연우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연우의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연희라고 했던가."
카이델의 입술이 연우의 귓가를 스치며 잔인한 미소를 그렸다. 연우의 동공이 갈 길을 잃고 잘게 흔들렸다.
"네 동생 말이야."
카이델은 연우의 품 안에서 여동생의 낡은 리본을 꺼내 보였다. 연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걸 찾으러 온 쥐새끼가 누구였을 것 같나?"
카이델이 리본을 바닥으로 던지며 연우의 목을 강하게 눌렀다. 문밖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짧게 끊어졌다.
"시안을 들여보내라."
카이델의 명령에 문이 열리고 피 칠갑이 된 시안이 끌려 들어왔다. 연우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시안은 초점 없는 눈으로 연우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전부 네가 시킨 일이라고 하더군."
카이델이 연우의 뺨을 가볍게 치며 시안의 목에 칼을 겨눴다. 연우는 바닥을 긁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연우의 목소리가 갈라진 틈새로 비어져 나왔다. 카이델은 만족스러운 듯 시안의 목줄기를 깊게 그었다. 붉은 선혈이 연우의 얼굴 위로 뜨겁게 튀어 올랐다.
"다음은 네 동생 차례인가?"
카이델이 피 묻은 칼날을 연우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연우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말해봐, 연우야."
카이델이 처음으로 그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연우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 속에서 그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내가 그 아이를 어떻게 죽여주길 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