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델의 손가락이 연우의 손등을 강하게 짓눌렀다. 서늘한 감촉이 피부를 타고 올라와 척추 끝까지 스며들었다. 의회장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정지했다. 귀족들의 시선이 연우의 드러난 맨손과 카이델의 얼굴을 번갈아 훑었다. 벨로스 공작의 눈썹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침묵을 깬 것은 카이델의 낮은 웃음소리였다.
이 자는 나의 숨겨진 쌍둥이 형제다.
카이델의 목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났다. 연우는 숨을 멈췄다. 폐부 깊숙한 곳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허공을 부유하던 공작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카이델은 품 안에서 낡은 양피지 뭉치를 꺼내 바닥으로 던졌다. 붉은 인장이 찍힌 문서는 황실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기묘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조작된 족보가 대리석 바닥을 구르며 귀족들의 발치에 멈췄다. 벨로스 공작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카이델의 눈동자에 서린 서슬 퍼런 안광이 그의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황제는 연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혈통의 증명보다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나.
카이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연우는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입안 가득 퍼졌다. 의회는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했다. 당황한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벨로스 공작은 바닥에 떨어진 문서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정회를 선포한다.
카이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연우를 짐짝처럼 끌고 의회장을 빠져나갔다. 화려한 복도를 지날 때마다 시종들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연우의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환영의 장갑이 사라진 손등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타는 듯한 작열감을 내뱉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점점 차갑고 습해졌다.
수도 아스테리아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 태양의 빛이 단 한 조각도 닿지 않는 지하 감옥의 문이 열렸다. 쇠사슬이 부딪히는 불쾌한 금속음이 고막을 찔렀다. 연우의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거칠게 두드렸다. 카이델은 연우를 차가운 벽으로 밀어붙였다.
똑똑히 봐라. 네가 아끼던 것이 어떤 몰골인지.
카이델이 가리킨 곳에는 시안이 매달려 있었다. 가죽 끈에 묶인 그의 양팔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잿빛 하수구에서 함께 생존을 속삭이던 조력자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바닥에는 검붉은 핏방울이 일정하게 떨어지며 고요를 깨뜨렸다.
연우의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은 연우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비명을 억누르느라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시안의 감긴 눈꺼풀 아래로 희미한 경련이 일었다. 그는 살아있었으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잠겨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저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연우는 카이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턱 끝에 맺혔다. 카이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그는 연우의 턱을 잡아 강제로 들어 올렸다. 시선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카이델의 손가락이 연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비천한 놈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군.
카이델의 목소리에 섞인 질투가 독기처럼 번졌다. 그는 벽에 걸린 가죽 채찍을 집어 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찰음이 들렸다. 시안의 등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연우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피의 계약으로 이어진 통증이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다.
카이델이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연우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공유된 고통은 실재하는 칼날이 되어 연우의 신경계를 유린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카이델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연우를 내려다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울어야 할 대상은 저 비천한 놈이 아니라, 너와 고통을 나누는 나여야 한다.
연우는 바닥을 긁으며 시안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카이델의 구둣발이 연우의 손등을 짓이겼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고요한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연우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시안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 그가 내뱉는 거친 호흡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시안은 죽는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카이델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연우의 자아를 완전히 파괴하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꼭두각시로 만들 작정이었다. 연우는 떨리는 팔로 몸을 일으켜 카이델의 발밑으로 기어갔다. 자존감 따위는 이미 하수구의 오물보다 못한 것이 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전부 할 테니, 제발 멈춰주십시오.
연우의 목소리가 젖은 모래처럼 갈라졌다. 카이델은 채찍을 든 손을 멈췄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감옥 안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연우는 바닥에 이마를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생명력이 환영의 장갑 없이도 조금씩 깎여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카이델은 채찍을 바닥에 던지고 연우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강제로 시선을 맞추게 한 그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소유욕이 넘실거렸다. 연우의 시야에 카이델의 매끄러운 구두가 들어왔다. 그 위에는 시안의 피와 연우의 눈물이 뒤섞여 얼룩져 있었다.
증명해 봐라. 네가 누구의 것인지.
연우는 눈을 감았다. 여동생 연희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스쳤다. 잿빛 하수구의 차가운 습기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지옥의 주인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했다.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카이델의 발등에 입술을 맞추었다.
전하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당신의 그림자로 살겠습니다.
차가운 가죽의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한 복종의 맹세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고 카이델이라는 거대한 어둠 속에 침잠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카이델의 손이 연우의 뒷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다루는 듯한 섬뜩한 손길이었다.
카이델은 낮게 웅얼거리며 만족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그는 시안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시안의 몸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연우는 안도감에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카이델의 속삭임은 연우의 심장을 얼음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다.
좋다. 저놈의 목숨은 살려주지.
카이델은 연우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밀착시켰다. 뜨거운 숨결이 소름 끼치게 번졌다. 그는 연우의 주머니 속에 있던 낡은 리본을 꺼내 흔들었다. 연희의 유일한 유품이자, 연우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카이델의 비릿한 미소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대신 네 여동생은 왕궁 지하 별궁에 가두도록 하겠다.
연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카이델은 연우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문밖으로 걸어 나가며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뱉었다.
지금 즉시 아이를 데려와라. 내 대역의 '진짜' 가족을 모시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