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거리
공명(Resonance)의 시대
수요일이었다. 정기 가이딩 두 번째 날.
도하는 가이딩을 마치고 손을 뗐다. 30분. 정확히. 1초도 넘기지 않았다.
"끝났습니다."
강진의 미간이 풀려 있었다. 심박수 70. 감각 부하 지수 정상. 생체 모니터의 숫자가 안정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오른쪽 상단에 붉은 알림이 하나 더 떴다.
[비승인 가이딩 기록 — 자동 전송 완료]
2건.
도하는 일어섰다. 가이딩 공간을 나가려 했다.
"도하."
강진이 불렀다. 눈은 감고 있었다.
"네."
"아직 남아 있어."
도하가 멈추었다. '남아 있다'는 것이 파동의 잔여를 뜻하는 건지, 다른 것을 뜻하는 건지. 강진은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뭐가요."
"모르겠어. 뭔가."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느끼는 '뭔가'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하의 저주파가 남긴 잔열일 수도 있었다. 사라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
"정기 시간은 끝났습니다."
"알아."
"다음은 금요일이에요."
강진이 눈을 떴다. 도하를 보았다. 도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한 걸음이면 나갈 수 있는 거리. 강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방 하나의 거리.
강진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도하가 나갔다.
도하는 전략을 세웠다.
주 3회. 월, 수, 금. 정기 가이딩만. 긴급 가이딩 요청은 받지 않는다. 정확히는, 요청이 오기 전에 차단한다. 강진의 두통 패턴을 파악하면 가능했다.
한 달을 함께 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강진의 두통은 패턴이 있었다. 아침에 약하고, 오후에 올라가고, 밤에 최고점을 찍었다. 가이딩 다음 날 아침이 가장 안정적이었고, 이틀째 오후부터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흘째가 한계였다.
도하는 그 한계점 직전에 움직였다.
가이딩이 아니었다. 접촉이 아니었다. 대신, 강진의 주변 환경을 조절했다. 아크의 간접등을 한 단계 낮추었다. 강진이 거실에 앉는 시간대에 맞춰 에어컨 온도를 0.5도 낮추었다. 소리를 줄였다. S급의 감각 과부하가 외부 자극에 비례한다면, 자극을 줄이면 한계점이 늦춰질 것이었다.
에덴 교본 제7장. 에스퍼 생활 환경 관리. E급 가이드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실무 영역이었다. 파동으로 닿을 수 없는 등급에게 허용된 것은 환경 조절뿐이었다. 도하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강진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한 번, 거실 간접등을 보며 물었다.
"등 바꿨어?"
"눈이 편하실 것 같아서요."
"…누가 시켰어?"
"아무도요. 교본에 있는 겁니다."
강진이 도하를 잠깐 보았다. 뭔가를 말하려다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목요일 저녁. 강진이 소파에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두통이 오고 있었다. 사흘째의 오후. 패턴대로. 도하는 부엌에서 물을 따르고 있었다. 컵 두 개. 한 잔을 강진 쪽 테이블에 놓았다.
강진이 컵을 보았다. 그리고 도하를 보았다.
"가이딩 해줘."
도하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내일 금요일이에요."
"지금 아파."
"내일이면 정기 스케줄입니다."
"…스케줄."
강진이 그 단어를 반복했다. 입에서 돌을 굴리듯.
"내 두통이 스케줄에 맞춰 오는 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왜."
도하는 컵을 내려놓았다.
"정기 외 가이딩은 비승인으로 기록됩니다."
강진의 손이 멈추었다. 관자놀이에서. 도하를 보았다.
"그게 문제야?"
"네."
"누구한테?"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진은 알고 있었다.
강진의 눈이 도하에게 고정되었다. 3초. 무언가를 읽는 시선.
"왜 피해."
"피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
"계약대로 하는 겁니다."
"계약이 네 두통을 대신 아파해주진 않을 텐데."
도하가 멈추었다. 네 두통. 이 사람은 지금 도하의 두통을 말하고 있었다. 가이딩 과사용 후에 오는 도하의 관자놀이 통증을. 강진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내가 정해."
강진이 도하를 보았다. 오래. 도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이니까. 주 3회. 계약서 제7조. 도하는 조항 안에 있었다. 조항 밖으로 나가면 기록이 쌓였다. 기록이 쌓이면 도하가 떠나야 했다.
도하는 그 마지막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강진이 양식을 또 찢을 것이었다. 찢어도 데이터는 남는다.
강진이 시선을 돌렸다.
"…그래."
두 글자. 낮은 목소리. 도하는 그 두 글자 안에 있는 것을 들었다. 납득이 아니었다. 참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참는 것에 익숙했다. 3년 동안 18명의 가이드 없이 두통을 참았다. 다만 그것이 이 사람을 좋은 곳으로 데려간 적은 없었다.
도하는 물컵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목요일 밤이었다.
도하는 교본을 읽고 있었다. 제7장. 에스퍼 생활 환경 관리. 이미 외운 내용이었지만,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할 일이 필요했다.
비승인 기록 2건. 이번 주 금요일에 3건. 다음 주 월요일에 4건. 수요일에 5건. 5건이면 위약금 산정 절차 개시. 2주가 채 남지 않았다.
도하는 교본을 덮었다. 천장을 보았다. 아크의 천장은 높았다. 에덴의 6인실보다 세 배. 이 넓이가 한 달 만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이상했다. 사람은 넓은 곳에 금방 익숙해지지만, 좁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오래 걸렸다.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실 쪽이었다. 발소리. 강진이 움직이고 있었다. 부엌에서 물을 따르는 소리. 서랍이 열리는 소리. 진통제 통이 테이블에 놓이는 소리. 뚜껑이 열리고 알약이 쏟아지는 소리.
도하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듣고 있었다. 진통제. 강진이 도하를 만나기 전 3년간 두통을 버틴 방법이었다. 가이딩 대신 화학물질로 신경을 눌렀다. 에스퍼의 진통제 의존은 감각 과부하를 일시적으로 억제할 뿐, 근본적 해소가 되지 않는다. 장기 복용 시 감각 둔화 및 폭주 역치 저하.
강진이 진통제를 먹고 있었다. 도하가 가이딩을 정기로만 제한했기 때문에.
도하는 옆으로 누웠다. 벽을 보았다. 벽 너머에 거실이 있었다. 거실 너머에 강진의 방이 있었다. 문 두 개와 벽 하나의 거리.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파동을 보내면 3초 만에 두통이 멈추는 거리. 하지만 가지 않았다. 가면 3건. 가면 기록. 가면 2주 뒤에 도하가 이 아크를 떠나야 했다.
떠나면 누가 이 사람의 두통을 멈추는가.
그 질문이 도하를 묶고 있었다. 가도 안 되고, 가지 않아도 안 되는 곳에.
새벽이었다.
도하가 깨었다. 소리가 아니었다. 기척이었다. 가이드의 감각은 에스퍼의 존재를 기척으로 인식했다. 에덴에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몸이 아는 것이었다. 파동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피부가 먼저 알았다.
문 밖에 사람이 서 있었다.
도하는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았다. 문 아래 틈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하지만 문 바로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소리가 멈춘 자리. 호흡이 가까운 자리.
강진이었다.
두통이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진통제가 듣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도하는 이불 속에서 손을 쥐었다. 파동이 흘렀다. 120Hz.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파동이 아주 미세하게 밖으로 새어나갔을 것이었다. 가이드의 파동은 의식하지 않아도 흘렀다. 그것이 문 너머의 사람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진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도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문 하나가 있었다. 나무. 5센티미터. 손을 뻗으면 닿는 두께. 하지만 그 5센티미터 안에 계약서 42쪽과 승인 양식과 비승인 기록 2건과 위약금 조항이 들어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1분인지 10분인지 몰랐다. 새벽의 시간은 늘어지는 법이었다.
발소리가 났다. 천천히. 멀어졌다. 강진의 방 쪽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도하는 눈을 감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이불 안인데도. 파동이 흐르고 있었다. 120Hz. 문 너머로 보내지 못한 파동이 손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물처럼.
에덴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닿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닿을 수 있는데 닿지 않는 것은, 달랐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금요일이 오면 3건이 된다. 다음 주면 4건. 그다음이면 5건.
5건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스템 안에서. 양식 안에서. 이 사람의 두통을 멈추면서, 이 자리를 잃지 않는 방법을.
도하는 그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새벽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창백한 빛. 에덴의 아침과 같은 색이었다. 빛이 방을 채우기 전의 시간. 아직 어둡고, 곧 밝아질 시간.
도하는 그 사이에 누워 있었다. 문 하나 너머에, 진통제를 삼킨 사람이 누워 있었다.
거리는 5센티미터였다.
그것이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