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균열
밝은 방은, 숨길 게 없었다.
KCA 중앙 안정화 테스트실. 천장 조명이 균일하게 내려왔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밝기였다. 사람의 표정이 숨을 수 없는 밝기. 하얀 벽, 하얀 천장, 하얀 바닥. 그 한가운데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마주 보는 방향이 아니라 나란히. 강진과 도하가 각자의 테이블에 앉았다.
강진의 관자놀이에 얇은 패치가 붙어 있었다. 뇌파 측정용. 도하의 손목에는 센서 밴드가 채워졌다. 파동 측정용. 직원이 밴드를 조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숫자를 보고 있었다. 사람을 보지 않았다.
도하는 밴드가 조여지는 것을 느꼈다. 손목이 좁아졌다. 억제 밴드. 5화의 기억이 스쳤다. 어린 강진의 손목. 차가운 금속. 도하는 그 연결을 즉시 잘랐다. 지금은 아니었다.
맞은편 벽에 오라클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대기 상태. 검은 화면. 곧 숫자가 뜰 것이었다.
백서윤이 방 한쪽에 서 있었다.
도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서른 초중반. 흰 재킷. KCA 평가관 배지. 시선이 도하에게 왔다가 강진에게 갔다. 멈추었다. 강진에게서 더 오래 머물렀다.
"시작하겠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오라클 스크린이 켜졌다.
MATCHING RATE: 0.00%
숫자가 먼저 떴다. 측정도 하기 전에. 기존 판정값이 기본값으로 불러와진 것이었다. 직원들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정상이라고 알고 있었다.
강진이 그 숫자를 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도하는 강진의 턱을 보았다. 저주파 비접촉 감지. 오늘 아침부터 두통약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공개 테스트에 맨몸으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확인하려고.
"이도하 씨, 가이딩을 시작해주세요."
도하는 강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주 앉았다. 강진이 손바닥을 위로 뒤집었다. 테이블 위에. 언제나 같은 동작. 말 대신 손이 먼저인 사람.
도하가 손을 얹었다.
파동을 열었다. 저주파. 강진의 방어기제가 열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열 번째였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 파동이 안전하다는 것을. 뚫으려는 것이 아니라 스미는 것이라는 것을.
강진의 어깨가 내려갔다.
실시간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생체 모니터 화면에서. 심박수가 내려갔다. 87에서 82로. 78로. 감각 부하 지수가 한 단계 내려갔다. 직원들이 화면을 보았다. 시선이 흔들렸다. 숫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0% 판정 대상에서.
백서윤이 앞으로 걸어왔다.
도하 옆에 섰다. 도하의 손과 강진의 손이 맞닿은 곳을 보았다. 시선이 거기서 멈추었다.
강진이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말했다.
"뒤로 물러서세요."
"평가관으로서 근거리 확인이 필요합니다."
"한 번만 말합니다."
백서윤이 반 보 물러섰다. 강진의 목소리가 낮고 평평했을 뿐인데. 공기가 바뀌었다.
감각 부하 지수가 정상 범위 하단까지 내려왔다. 심박수 72. 생체 모니터의 수치들이 처음으로 전부 녹색 영역에 들어와 있었다. 직원 한 명이 다른 직원에게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보였다.
어떻게.
그때였다.
오라클 스크린 오른쪽 하단 구석에서 빨간 문자열이 한 줄 깜빡였다.
LOG ERROR: CHECKSUM MISMATCH --- SEQUENCE 0047
깜빡이고 사라졌다.
도하는 그것을 보았다. 스크린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생체 모니터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강진은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도하만 보았다.
LOG ERROR.
CHECKSUM MISMATCH.
그리고 그 뒤에, 빨간 글자가 한 번 더 깜빡이기 직전, 도하는 한 단어를 읽었다.
MANUAL.
화면이 닫혔다. 누군가가 콘솔에서 무언가를 눌렀다. 직원들 중 한 명이 콘솔 방향에서 돌아서고 있었다. 손이 콘솔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도하는 그 손을 보았다.
닫히는 화면에, 사람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0%입니다. 변함없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오라클 스크린에는 다시 숫자가 고요하게 떠 있었다.
MATCHING RATE: 0.00%
강진이 눈을 떴다.
도하의 손이 강진의 손 위에 있었다. 생체 모니터의 모든 수치가 녹색이었다. 감각 부하 지수 정상. 심박수 72. 두통 수치 감지 불가. 그런데 오라클은 0%였다.
"그럼 지금 이건 뭐지."
강진이 말했다. 낮게. 직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직원이 화면을 보았다.
"오라클 판정 기준상 이 결과는—"
"묻는 거야. 내 신경계가 지금 안정됐는데, 화면은 왜 0%냐고."
침묵이었다.
백서윤이 앞으로 나왔다.
"오라클의 판정은 실시간 수치가 아니라 누적 공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니다. 일시적인 안정화와 실질적인 매칭률은 다른 개념이에요."
도하는 그 설명을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교본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방금 화면에서 깜빡였다. CHECKSUM MISMATCH. MANUAL. 오라클의 판정값이 수동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단어는 말하고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도하가 말했다. 강진을 보지 않은 채로.
강진이 도하를 보았다. 이해했다는 말이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사람은 알고 있었다.
도하는 손을 뗐다. 센서 밴드가 채워진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밴드가 오늘 측정한 수치들을 전부 수집했다. 파동 출력, 주파수 대역, 안정화 속도. 그 데이터들이 지금 KCA 서버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오라클은 0%를 유지했다.
테스트실을 나오는 복도였다. 강진이 도하 옆을 걸었다. 같은 방향. 직원들이 앞에 있었다. 백서윤이 뒤에 있었다.
강진이 낮게 말했다. 직원들에게 들리지 않을 거리로.
"봤어?"
도하는 정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MANUAL."
한 단어였다. 도하가 확인해준 것이었다.
강진이 더 말하지 않았다. 복도를 걸었다. 도하도 걸었다.
그리고 도하는 복도 끝, 서버실이라고 표시된 문 쪽으로 누군가가 빠르게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흰 가운. 뒷모습.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발소리가 급했다. 서두르는 발소리였다.
도하는 그 뒷모습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손끝의 파동이 흔들렸다. 저주파가 흔들릴 때는 감정이 흔들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