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의 회랑에 자욱하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으스러진 성검의 파편들이 바닥 위로 흩어져 있었다. 은빛이었을 금속은 이미 빛을 잃고, 대리석 타일 사이 홈에 끼어 둔탁한 잿빛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샹들리에의 잔해가 복도 중앙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아래 깔린 갑옷 조각들이 간간이 금속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올려보냈다.
벨리알 아르스 노바는 그 사이를 걸었다.
발밑에서 유리 가루가 부서지는 소리.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왼손에 쥔 얇은 측량봉을 벽면의 세 번째 홈에 밀어 넣으며 눈금을 읽었다. 측량봉이 홈 속에서 0.3밀리미터 더 들어갔다. 설계도에 명시된 깊이보다 미세하게 넓어진 것이다.
"3번 트리거 홈, 마모율 0.08퍼센트 초과."
벨리알의 중얼거림이 빈 복도에 울렸다. 그는 측량봉을 빼내 소매로 끝을 닦았고, 세 걸음 앞으로 이동해 네 번째 홈에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눈금이 정확히 설계치와 일치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회랑의 좌측 벽면을 따라 늘어선 부조는 대부분 온전했다. 용의 비늘 하나하나를 새겨 넣은 현무암 패널이 열두 장,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7번째 패널만 표면에 가느다란 균열이 생겨 있었는데, 벨리알은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손가락 끝으로 균열을 더듬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미세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내부 기압 유지 장치는 이상 없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은 회랑의 정중앙이었다. 샹들리에가 있던 자리. 천장에 박혀 있던 고정 볼트 네 개 중 하나가 아직 남아 있었고, 나머지 셋은 설계대로 분리되어 샹들리에와 함께 추락했다. 문제는 추락 각도였다.
벨리알은 품에서 접힌 양피지를 꺼냈다. 설계도면이었다.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여백에는 빽빽한 글씨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중 한 귀퉁이에 '카자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위로 얇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지운 것이 아니라 밑줄이었다.
양피지를 펼쳐 바닥에 놓고, 벨리알은 추락한 샹들리에의 잔해 위치를 눈으로 측정했다.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0.5도.
턱 근육이 단단하게 조여졌다.
"0.5도."
그 숫자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측량봉을 쥔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샹들리에의 추락 궤적은 설계상 정확히 수직이어야 했다. 침입자가 3번 트리거를 밟는 순간 고정 볼트 세 개가 동시에 분리되고, 2톤의 철과 수정 덩어리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 궤적이 0.5도 틀어졌다는 것은 고정 볼트의 분리 시차가 존재했다는 뜻이다.
좌측 볼트가 설계 허용치인 0.003초를 넘겨 빠졌다. 그 찰나의 지연이 샹들리에를 미세하게 좌로 기울게 했고, 타격 범위가 설계 반경에서 12센티미터 벗어났다. 이번 침입자가 한 뼘만 비껴 서 있었다면 목을 따지 못했을 오차였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다음에는 아닐 수 있다.
벨리알은 잔해 옆에 무릎을 꿇고 남아 있는 고정 볼트를 살폈다. 볼트 주변의 룬 각인이 미세하게 번져 있었다. 각인을 새긴 도구의 끝이 무뎌져 있었던 것이다. 그 무딘 끝이 만들어낸 0.2밀리미터의 각인 오차가 마력 전도율의 차이를 낳았고, 전도율의 차이가 분리 시차를 만들었으며, 최종적으로 0.5도의 추락 편향으로 이어졌다.
원인을 짚어낸 순간, 벨리알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그는 볼트를 품에 넣고 일어섰다. 양피지를 접어 다시 가슴팍에 밀어 넣으며 회랑 끝을 향해 걸었다. 발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울렸다.
회랑 끝의 아치형 출구를 지나자 좁은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계단 벽면의 인광석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 빛 아래서 웅크린 그림자가 하나 떨고 있었다.
하급 마족이었다.
뿔이 한쪽만 자란 어린 임프. 양손에 빗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자루를 잡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벨리알의 발소리가 들렸는지 고개를 들었다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몸이 한 번 크게 떨렸다.
"마, 마왕님. 3번 구역 청소를 하다가, 그, 저기, 7번 패널 뒤에서 소리가 나서…"
벨리알은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임프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눈동자에 인광석의 푸른빛이 고여 있었고, 그 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름."
"피, 피르입니다."
"피르. 7번 패널 뒤에서 소리가 났다고 했나."
"네. 바, 바람 같은…"
벨리알은 나머지 계단을 내려왔다. 피르 옆에 섰을 때, 임프의 머리가 그의 허리춤에도 닿지 않았다. 그는 품에서 접힌 양피지를 다시 꺼냈다. 펼쳐서 피르의 눈높이로 낮추었다.
"여기를 봐라."
손가락이 도면의 한 지점을 짚었다. 7번 패널 뒤편의 기압 조절관 도식이었다.
"이 관의 이음새가 세 곳이다. 네가 들은 소리는 두 번째 이음새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기압차로 인한 공명음이니 패널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피르의 어깨가 아직 잔뜩 올라가 있었다. 빗자루를 쥔 손가락에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벨리알은 양피지를 접지 않았다. 한 손으로 도면을 들고 있던 채 다른 손을 피르의 어깨 위에 올렸다. 가볍게 누르는 정도. 손바닥 아래로 임프의 뼈가 가늘게 느껴졌다.
"이음새 점검은 내가 한다. 네 몫이 아니야."
목소리의 온도가 달라져 있었다. 날이 서 있던 어조가 평평하게 눌려 있었고, 그 밑으로 무언가 낮은 것이 깔려 있었다. 피르는 고개를 들어 벨리알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변함없이 무심했지만 손은 피르의 어깨에서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청소는 4번 구역부터 해라. 3번은 잔해 정리가 끝난 뒤에."
"네, 네."
"그리고."
벨리알이 도면을 접으며 말했다.
"뿔이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 7번 패널 주변의 현무암 모서리가 날카롭다."
피르가 한 손으로 자신의 외뿔을 만졌다. 빗자루를 쥔 손의 힘이 조금 풀려 있었다. 벨리알은 이미 계단을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인광석의 푸른빛이 그의 등을 길게 늘여 계단 벽에 드리웠다.
피르가 빗자루를 가슴에 안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벨리알은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단 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양피지를 다시 꺼내 '카자르'라는 이름 옆에 '피르'라고 적었다. 글씨가 작았다. 여백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랑으로 돌아온 벨리알은 샹들리에 잔해 수거 작업에 들어갔다. 수정 조각들을 크기별로 분류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정이었다. 쓸 수 있는 것과 못 쓰는 것. 손바닥 위에 올린 수정 파편이 인광석 빛을 받아 푸르게 물들었다가 각도를 바꾸자 투명해졌다.
재사용이 가능하다.
미스릴 프레임은 대부분 찌그러져 있었지만 합금의 순도는 유지되고 있었다. 용해로에 넣으면 충분히 재단할 수 있는 상태. 벨리알은 프레임 조각들을 가죽 주머니에 담으며 무게를 가늠했다. 약 3킬로그램. 미궁 상회에 넘기면 중급 트리거 장치 열두 개 분량의 교환 가치가 있다.
샹들리에 잔해 너머에 용사들의 유품이 흩어져 있었다.
깨진 방패. 가죽 벨트에 매달린 물약 병 세 개. 그중 하나는 깨져서 내용물이 바닥에 스며들어 있었고, 나머지 둘은 온전했다. 벨리알은 물약 병을 들어 올려 빛에 비추었다. 투명한 액체 안에 금빛 입자가 유영하고 있었다. 상급 회복약. 성황청 직할 연금술사가 만든 것만이 이 특유의 금빛 부유물을 갖는다.
물약 병 옆에 접힌 양피지가 하나 더 있었다. 용사의 것이었다. 벨리알은 그것을 집어 들고 펼쳤다.
성황청의 특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쌍두 독수리가 성배를 감싸고 있는 문양. 일반 모험가에게 발급되는 토벌 허가증이 아니었다. 인장의 테두리에 은실로 수놓은 세 겹의 원은 '내부 지령서'를 뜻했다.
벨리알의 손가락이 은실 테두리를 훑었다.
내용은 간결했다. '아비스 칼데라 내부 지형 정밀 측량. 지맥 안정기 위치 특정. 회수 불가 시 파괴.'
지맥 안정기.
아르스 마그나의 심장이자 이 고요한 영지점을 유지하는 유일한 장치. 그것의 위치를 특정하라는 지령이 일개 모험가 파티에게 하달된 것이다. 성황청은 이곳을 단순한 마족 둥지가 아니라 전략적 목표물로 분류하고 있었다.
벨리알은 지령서를 접어 가슴팍에 넣었다. 양피지 두 장이 겹쳤다. 설계도와 지령서. 그 사이에 끼인 카자르와 피르의 이름이 양피지 너머로 비쳤다.
나머지 유품을 정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검 파편은 미스릴 함량이 높은 것만 추려 가죽 주머니에 넣었고, 갑옷 조각은 별도로 분류했다. 용사의 부츠에서 떨어진 버클 하나가 순은이었다. 미궁 상회가 좋아할 물건이었다.
모든 유품을 정리한 뒤, 벨리알은 회랑의 끝에 세워진 조각상 앞에 섰다.
부서져 있었다. 왼손의 검지와 중지가 꺾여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샹들리에가 추락할 때 파편이 튄 것이다. 조각상은 뱀의 몸에 인간의 상반신을 가진 라미아를 묘사한 것이었는데, 그 손가락의 각도는 복도 전체의 기류 흐름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에 새겨진 미세 룬이 공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밀어내어 독가스 트랩의 확산 패턴을 제어하는 구조였다.
벨리알은 떨어진 손가락 두 개를 주웠다. 바닥에 앉았다. 조각상의 손목 단면과 손가락의 절단면을 맞대보았다. 접합은 가능했다. 문제는 각도였다.
그는 품에서 작은 조각도를 꺼냈다. 칼날이 손톱보다 얇았다. 손가락 절단면의 미세한 요철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조각도가 돌을 깎을 때마다 가는 분말이 허공에 날렸고, 인광석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입자들이 그의 무릎 위로 내려앉았다.
검지를 손목에 붙였다. 각도를 잡고 1밀리미터 움직였다. 다시 떼어내고 절단면을 0.1밀리미터 더 깎았다. 붙였다. 기류가 흐르는 방향을 손등으로 확인했다. 미세하게 바람이 갈라지는 감촉이 피부 위를 스쳤다.
아직 아니다.
다시 떼어냈다. 조각도의 각도를 바꾸어 절단면의 좌측을 0.05밀리미터 깎았다. 돌가루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다시 붙였다. 바람이 손등 위를 지나갔다. 이번에는 갈라지지 않았다. 하나의 흐름으로 손가락 끝을 타고 넘어갔다.
벨리알의 등이 벽에 기대졌다. 조각도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돌가루가 쌓인 바지 위로 인광석 빛이 내려앉아 그의 손이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중지도 같은 방식으로 접합해야 했지만 잠시 그 자세로 머물렀다. 회랑에 바람이 흘렀다. 조각상의 복원된 검지 끝을 타고 넘어가는 기류가 그의 뺨을 스쳤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마계 특유의 것이었다.
중지의 접합에는 더 오래 걸렸다. 절단면이 불규칙했기 때문이다. 벨리알은 조각도를 세 번 바꿔 잡으며 각도를 조정했고, 일곱 번째 시도에서 기류가 설계치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손가락 끝의 룬 각인이 온전히 연결되자 조각상의 손에서 희미한 마력의 윙윙거림이 올라왔다.
"0.5도의 오차는 예술에 대한 모독이자, 다음 침입자를 향한 방종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었다. 벨리알은 일어서서 바지의 돌가루를 털었다. 조각도를 품에 넣고 유품이 담긴 가죽 주머니들을 어깨에 걸었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미스릴과 순은과 상급 회복약의 무게.
회랑을 빠져나와 중앙 홀로 향했다. 아르스 마그나의 중심부. 지맥 안정기가 바닥 아래에서 저주파 진동을 내보내고 있었고, 그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오늘은 진동의 주기가 평소보다 0.2초 길었다.
벨리알은 중앙 홀의 석제 탁자 위에 유품들을 내려놓았다. 가죽 주머니를 풀고 미스릴 파편들을 무게별로 나열했다. 영혼석 저울을 꺼내 하나씩 올렸다. 수치를 양피지 여백에 적어 나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미궁 상회와의 거래에 쓸 영혼석이었다. 주먹 크기의 암자색 결정. 안에서 응축된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희미한 빛을 냈다.
영혼석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순간, 결정 내부의 소용돌이가 한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공명음이 울렸다.
낮고 길게. 탁자의 표면을 타고 퍼져나간 진동이 미스릴 파편들을 떨리게 했다. 영혼석의 빛이 암자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변해갔다. 벨리알의 손이 영혼석 위에서 멈추었다. 공명의 방향이 있었다. 칼데라 외곽. 흑요석 협곡 너머.
누군가 응답하고 있었다.
벨리알은 영혼석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반대쪽 손으로 성황청의 지령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