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서 석분이 쏟아졌다.
벨리알은 제어판 위에 펼쳐둔 설계도를 반사적으로 끌어안았다. 두 번째 충격파가 바닥을 타고 올라왔고, 발바닥을 통해 뼈까지 울림이 전해졌다. 세 번째는 소리보다 먼저 왔다. 아르스 마그나의 동쪽 외벽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라는 표현이 비유가 아니다. 마도 공학으로 직조한 룬 결합체가 과부하에 걸리면 유리창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뿜는다. 고음이 겹겹이 쌓여 귀 안쪽을 파고드는 진동. 인간의 귀에는 새의 울음처럼 들린다지만, 마족의 청각에는 뼈를 긁는 비명 그 자체였다.
벨리알은 설계도를 가슴에 품은 채 제어실 중앙의 수정 패널로 다가갔다. 손가락 끝이 패널 표면에 닿자 차가운 마력의 맥동이 손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모니터링 룬 여섯 개 중 둘이 이미 깨져 있었다. 에린의 성광 탄환에 맞아 금이 간 것들이다. 나머지 넷으로 성 전체의 상황을 읽어야 했다.
"동쪽 외벽 3구역, 룬 결합률 41퍼센트."
그가 중얼거렸다. 혀끝에 쓴맛이 번졌다. 41이라는 숫자는 붕괴 임계점인 35를 겨우 6 넘긴 것이다. 한 발 더 맞으면 벽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네 번째 포격이 왔다.
이번에는 소리가 먼저였다. 둔탁하고 무거운 것이 돌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 수정 패널 위로 동쪽 외벽의 룬 결합률이 36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벨리알의 왼손이 패널 위를 미끄러졌다. 손가락 다섯 개가 각기 다른 룬 회로를 동시에 건드렸고, 흑요석 협곡 방면의 방어 마력을 동쪽으로 재분배하는 명령이 실행됐다. 단 3초. 결합률이 38로 올라갔다.
"에린."
그가 지하를 향해 말했다. 제어실 바닥에 새겨진 통신 룬이 희미하게 빛났다.
"올라오지 마. 작업실에서 나오면 안 돼."
대답이 없었다. 다섯 번째 포격이 성을 흔들었고, 천장의 조명 결정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서 산산조각 났다. 유리 파편이 벨리알의 장화에 부딪혀 가벼운 소리를 냈다.
통신 룬을 통해 에린의 숨소리가 올라왔다.
"벨리알, 바깥에 몇 명이야?"
"모른다. 중요하지 않아."
"중요하지 않다니—"
"침묵의 연회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벨리알은 패널에서 손을 떼고 제어실 북쪽 벽에 걸린 도면을 올려다보았다. 침묵의 연회장. 아르스 마그나의 심장부에 위치한 대형 홀이다. 설계상 이 공간은 침입자를 유인하는 미끼이자 성 전체 함정 시스템의 중추 신경이 되어야 했다. 바닥 타일 하나하나에 감압식 기폭 룬이 새겨져 있고, 천장의 샹들리에 아홉 개는 각각 독립된 살상 기구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문제는 아홉 번째 샹들리에의 룬 각인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포격. 이번에는 외벽이 아니라 정문 방면이었다.
"들어온다."
벨리알의 목소리에는 억양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설계도를 제어실 서랍에 밀어넣고, 제어판 중앙의 붉은 수정구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수정구 안에서 뜨거운 맥동이 피부를 데였다. 성 전체의 함정을 수동 제어하는 핵심 장치. 이것을 쥐고 있는 한 아르스 마그나는 그의 손끝에서 숨 쉰다.
정문이 뚫렸다.
모니터링 룬을 통해 입구 회랑의 상황이 읽혔다. 일곱. 아니, 여덟 명의 마력 반응. 그중 셋은 4서클 이상의 밀도를 가진 강한 반응이었고, 하나는 벨리알의 손바닥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로 짙었다.
"용사 협회 정예반인가."
벨리알은 수정구를 쥔 채 손가락을 비틀었다. 입구 회랑의 1차 방어선이 가동됐다. 바닥 타일이 어긋나며 아래에서 흑요석 가시가 솟아오르는 구조. 단순하지만 확실한 진입 지연 장치다.
비명이 하나 들렸다. 모니터링 룬에 잡힌 마력 반응이 여덟에서 일곱으로 줄었다.
"촌스럽군."
벨리알은 제 입에서 나온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흑요석 가시는 아르스 마그나 건설 초기에 급하게 설치한 것이다. 예술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잡한 함정. 장인의 밤 축제에 내놓았다면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벨리알은 수정구를 통해 침묵의 연회장 방면의 함정 회로를 점검했다. 여덟 개의 샹들리에가 정상 가동 중이었다. 바닥 감압 타일 중 78퍼센트가 활성 상태. 나머지 22퍼센트는 아홉 번째 샹들리에의 미완성 구역이다. 그 구역을 밟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함정의 사각지대.
침입자들이 회랑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마력 반응이 연회장 방면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벨리알의 유도 설계대로였다. 입구 회랑의 벽면 조각들이 은밀하게 빛의 방향을 바꿔 침입자들의 시선을 연회장 입구로 이끈다. 인간의 무의식은 빛을 따르게 되어 있다.
첫 번째 침입자가 연회장에 발을 들였다.
벨리알의 엄지가 수정구 표면의 미세한 홈을 눌렀다. 바닥 셋째 줄, 일곱 번째 타일. 감압식 기폭 룬이 작동하며 타일 아래에서 투명한 가스가 분출됐다. 레테아 강 하류에서 증류한 망각의 안개다. 들이마시면 5초 안에 방향 감각이 사라진다.
침입자가 비틀거렸다. 두 번째가 뛰어들었다. 세 번째가 뒤를 이었다.
벨리알은 기다렸다. 손가락은 수정구 위에서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다. 넷. 다섯. 여섯 명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의 검지가 두 번째 홈을 눌렀다.
천장에서 세 번째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2톤짜리 흑철과 수정의 덩어리가 회전하며 낙하했다. 샹들리에의 팔 여덟 개가 펼쳐지며 각각의 끝에서 룬이 새겨진 날이 튀어나왔다. 파멸의 왈츠. 회전형 칼날 트랩의 변형이되 벨리알이 설계한 버전은 낙하 궤적 자체가 나선형을 그리도록 중력 룬이 각인되어 있다.
피가 뿌려졌다. 모니터링 룬의 마력 반응이 일곱에서 넷으로 줄었다.
벨리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남은 넷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 가장 짙은 마력 반응을 가진 자가 연회장 중앙에 서 있었다. 망각의 안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고위 가호 보유자.
"흥미롭군."
그 자가 입을 열었다. 통신 룬이 아니라 성 내부의 음향 구조가 그 목소리를 제어실까지 전달했다. 연회장의 돔형 천장은 소리를 모아 중심으로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벨리알이 의도한 구조였다. 침입자의 대화를 도청하기 위해.
"마왕의 잔당 치고는 재주가 있어."
낮고 두꺼운 목소리였다. 벨리알의 손가락이 수정구 위에서 멈췄다.
"대심판관 직인의 마력 파장이다."
그가 속삭였다. 성황청 일루미나의 대심판관. 용사 협회의 실질적 수장.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직위만으로 충분했다.
대심판관이 손을 들었다. 모니터링 룬이 포착한 것은 빛이었다. 성스러운 가호의 빛이 연회장 바닥을 휩쓸며 감압 타일의 룬을 하나씩 태워 나갔다. 벨리알의 손바닥에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함정 회로가 끊기는 감각.
"네 아비도 이런 장난을 좋아했지."
대심판관의 목소리가 돔을 타고 울렸다.
벨리알의 호흡이 한 박자 늦었다.
"선대 마왕. 그 위대한 자가 최후에 뭘 남겼는지 아나? 아무것도."
대심판관의 발이 연회장 중앙의 대리석 조각상 앞에 멈췄다. 선대 마왕의 흉상이다. 벨리알이 아르스 마그나를 건설하며 가장 먼저 만든 작품.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에 의존해 깎은 것이라 완벽하지 않았지만, 광대뼈의 각도와 턱선의 곡률에 사흘을 들인 것이었다.
대심판관의 가호가 빛났다. 성광이 흉상을 감쌌다.
"내가 직접 목을 쳤다. 네 아비의 목을."
대리석이 갈라졌다. 흉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둘로 쪼개졌다.
벨리알의 손이 떨렸다.
수정구 위에 올린 손가락 열 개가 모두 떨리고 있었다. 관절이 하얗게 변할 만큼 힘이 들어갔고, 수정구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갔다. 이빨 사이로 빠져나가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목 뒤의 근육이 돌처럼 굳었고, 관자놀이를 따라 핏줄이 부풀어 올랐다.
연회장 함정의 안전 제한을 해제하는 것은 세 번째 홈을 누르면 된다. 모든 샹들리에를 동시에 낙하시키고, 바닥 타일 전체를 기폭하고, 벽면의 가스 분출구를 최대 출력으로 여는 것. 성의 심장부가 자폭에 가까운 과부하를 일으킨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
손가락이 세 번째 홈 위로 미끄러졌다.
바닥의 통신 룬이 떨렸다.
에린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지하 작업실에서 여러 겹의 돌과 마법진을 뚫고 올라온 그 목소리는 잡음에 섞여 반쯤 깨져 있었다. 말은 또렷했다.
"벨리알. 숨 쉬어."
손가락이 멈췄다.
"네 손이 떨리는 게 여기까지 느껴져. 지맥 안정기가 흔들리고 있어."
벨리알은 수정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손끝의 떨림이 수정구를 타고 성 전체의 마력 회로에 잡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에린은 그 진동을 지하에서 읽은 것이다. 지맥 안정기와 공명하는 성물을 지닌 에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벨리알의 입술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에린의 숨소리가 룬을 통해 전해졌다. 규칙적이고 고른 호흡이었다. 지하 작업실의 냉기가 배어든 듯 차갑고 맑은 공기의 떨림이 룬 결정을 통해 벨리알의 발끝까지 올라왔다. 설계도 여백에 적어둔 이름들이 떠올랐다. 죽은 부하들. 벽돌 하나를 나르다 용사의 화살에 맞은 하급 마족, 흑요석 협곡에서 바람에 떨어진 골렘 운용사. 그 이름들 사이에 아직 에린의 이름은 없었다.
"… 알았다."
벨리알의 손가락이 세 번째 홈에서 물러났다.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수정구에 난 금이 마력의 흐름을 타고 희미하게 빛났다가 사그라졌다. 목 뒤의 근육이 조금씩 풀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관자놀이의 열기가 식어갔다.
벨리알은 눈을 감았다. 3초. 다시 떴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 대신 차가운 계산이 돌아와 있었다.
"에린. 작업실 동쪽 선반 세 번째 칸에 미완성 룬 각인용 정이 있다. 아홉 번째 샹들리에의 마지막 문양은 '역선회 나선 12각'이다. 각인할 수 있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설계도가 없어도?"
"네 손이 기억할 거다. 내 설계도에 주석을 달 수 있었던 손이라면."
에린의 대답 대신 무언가를 집어 드는 소리가 룬을 통해 전해졌다. 금속과 돌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 에린이 각인용 정을 찾은 것이다.
벨리알은 수정구에서 한 손을 떼어 제어판 측면의 보조 회로를 열었다. 지하 작업실에서 연회장까지의 마력 통로를 개방하는 조작이었다. 에린이 아홉 번째 샹들리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예술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가장 조잡한 죽음을 선사해주마."
벨리알이 말했다. 통신 룬을 통해서가 아니라 연회장의 돔형 천장이 그 목소리를 증폭시켜 아래로 쏟아 부었다. 대심판관의 귀에 닿도록.
그의 손이 수정구를 비틀었다.
연회장의 나머지 일곱 개 샹들리에가 동시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낙하가 아니었다. 각각의 샹들리에에서 룬이 새겨진 수정 조각들이 사방으로 발사됐다. 벽면의 대리석 조각상들이 입을 벌리며 독무를 뿜었다. 바닥 타일이 체스판처럼 교대로 함몰되며 아래에서 흑요석 기둥이 솟아올랐다.
대심판관의 가호가 빛났다. 수정 조각이 그의 몸 앞에서 튕겨 나갔다. 독무는 환경적 요인이다. 가호가 걸러내지 못한다.
대심판관이 기침했다.
"아직도 장난이냐."
그가 성광을 폭발시켰다. 벽면의 조각상 세 개가 한꺼번에 부서졌다. 그중 하나는 벨리알이 망각의 강 레테아의 물결 패턴을 참고해 깎은 여인상이었다. 레테아의 파도가 치마폭이 되도록 설계한 것. 제작에 열이틀이 걸렸다.
여인상의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벨리알의 눈동자가 변했다.
제어실의 조명이 붉게 물들었다. 벨리알이 수정구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과부하 모드를 활성화한 것이다. 수정구의 금이 벌어지며 그의 손바닥을 찢었다. 뜨거운 것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와 마력이 뒤섞여 수정구 안으로 스며들었고, 성 전체가 경련하듯 흔들렸다.
연회장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타일이 아니라 바닥 자체가. 대리석과 흑요석이 뒤섞인 지반이 포효하듯 쪼개지며 아래에서 거대한 것이 올라왔다. 쿠르르르. 지반을 뚫는 진동이 연회장 벽면의 남은 조각상들을 흔들었다. 골렘 채굴단이었다. 마계 심층부에서 광석을 캐내던 여섯 기의 전투형 골렘이 방어 모드로 전환되어 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흑요석 장갑판이 몸통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고, 관절마다 새겨진 마력 회로가 용암처럼 붉은 빛을 내뿜었다. 어깨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가 망각의 안개를 갈라놓으며 연회장의 공기를 일그러뜨렸다.
각 골렘의 눈구멍에서 핏빛 마력광이 쏟아졌다. 벨리알의 피가 수정구를 통해 골렘의 핵에 직접 명령을 새긴 것이다.
대심판관이 처음으로 뒤로 물러섰다.
벨리알의 입에서 피가 섞인 숨이 새어나왔다. 그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제어실의 벽이 갈라지고, 천장의 룬이 과부하로 하나씩 터지며 불꽃을 뿌렸다. 아르스 마그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살육 기관으로 깨어나고 있었다.
여섯 기의 골렘이 대심판관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