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연회장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토벌대의 성광 공격이 남긴 흔적이다. 벨리알이 기동을 멈춘 골렘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설계도를 펼치는 순간, 그 구멍 사이로 빛줄기 하나가 쏟아졌다. 감시 마법이었다. 성광의 잔류 에너지가 응축된 탐지구가 천장 틈새를 비집고 내려와 연회장 바닥을 훑었다. 벨리알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왼손을 뻗어 골렘의 어깨판을 두드렸다. 골렘의 팔이 느릿하게 들려 탐지구를 움켜쥐었고, 빛이 금속 손가락 사이에서 짓눌려 꺼졌다.
잔당이다. 토벌대 본대는 전멸했으나, 후방에 남은 지원조가 아직 칼데라 외곽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벨리알은 부서진 탐지구의 파편을 골렘 아래로 털어내고 다시 설계도에 눈을 박았다. 피가 스며든 양피지 위로 새 선이 그어진다.
잿빛 먼지가 아직 공기 중에 떠다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거친 입자가 폐를 긁었다. 연회장 바닥에 흩어진 것들—갑옷 파편, 부서진 마력석 조각, 누군가의 칼자루. 벨리알의 시선은 그것들을 훑고도 멈추지 않았다.
설계도 위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인다. 동쪽 회랑의 3번 지지대가 무너졌다. 서쪽 복도의 회전형 칼날 트랩은 구동축이 휘었다. 연회장 중앙의 대리석 조각상은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고, 그 안에 내장되어 있던 독가스 분사 기관이 바닥에 드러나 있었다.
"가동률 47퍼센트."
벨리알이 중얼거렸다. 혀끝에 쇳내가 감겼다. 골렘의 어깨 표면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허벅지를 달궜지만,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주군."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린이었다. 전투 중 찢어진 외투의 소맷자락을 허리춤에 돌돌 감아 묶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금이 간 성물—선대 마왕을 찔렀던 무기의 파편이 달린 목걸이—을 들고 있다. 전투 와중에 떨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이걸 쓸 수 있겠습니까?"
에린이 성물을 골렘의 발 앞에 놓았다. 벨리알은 설계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쇄골 아래 찰과상은?"
"피부가 좀 벗겨졌을 뿐입니다."
"함정 12구역의 재장전 상태는."
에린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손이 성물에서 떨어지더니 허리의 단검집 위를 한 번 두드렸다. 습관이었다. 판단을 내리기 전의.
"12구역은 제가 직접 확인하고 왔습니다. 재장전 불가. 구동부 자체가 녹았습니다."
"원인."
"성광 탄환의 잔류 에너지가 룬 회로를 태웠습니다. 교체가 아니라 전면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벨리알의 손이 멈췄다. 설계도를 접어 품에 넣고 골렘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착지할 때 바닥의 갑옷 파편이 발밑에서 찌그러졌다. 소리가 텅 빈 연회장에 길게 울렸다.
성물을 집어 들었다. 금이 간 표면 사이로 희미한 빛이 맥박처럼 명멸했다. 지맥 안정기의 파동과 공명하는 성질. 그 현상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벨리알의 엄지가 균열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작업실로 가져간다."
에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바닥의 잔해를 발끝으로 밀어내며 연회장을 가로지르는 동작에는 전투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 무너진 의자를 넘어가면서 무릎을 꺾는 각도, 시선이 천장의 구멍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속도. 관찰자의 눈이 아니었다. 이 공간이 다시 공격받을 경우를 계산하는 자의 시선이었다.
벨리알은 그 뒷모습을 따라 걸으며 성물의 무게를 손바닥에 느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아버지를 찔렀던 것의 파편치고는.
작업실은 아르스 마그나의 서쪽 탑 지하 2층에 있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지맥 안정기의 저음이 벽과 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발바닥의 미세한 진동. 그 떨림이 오늘따라 조금 더 강했다. 벨리알은 알아차렸으나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작업실 문을 열자 기름과 금속, 오래된 양피지의 냄새가 섞여 나왔다. 벽면 가득 걸린 설계도들 사이로 촛불 세 개가 타고 있었다. 누군가가 미리 켜둔 것이다. 에린의 시선이 촛불 위를 스쳤지만 아무 말 없이 문가에 섰다.
벨리알이 작업대 위에 성물을 올려놓았다. 서랍에서 정밀 공구 세트를 꺼냈다. 0.1밀리미터 단위의 마력 각인용 조각칼, 미스릴 접합 인두, 진동 확대경. 손끝에 익은 도구들이 나란히 정렬되었다.
성물의 금이 간 표면을 확대경 아래로 가져갔다. 균열은 세 갈래. 가장 깊은 것이 핵심부까지 닿아 있었다. 접합만으로는 안 됐다. 균열 사이에 새 회로를 심어야 했다.
"들어와도 됩니까."
에린의 목소리가 문가에서 왔다. 벨리알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의자는 왼쪽."
에린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 의자를 끌어 작업대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돌바닥 위에서 짧게 긁혔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작업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벨리알의 조각칼이 성물의 균열선을 따라 움직였다. 미세한 금속 가루가 확대경 렌즈 위에 떨어졌다. 촛불 하나가 흔들렸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바람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조각칼이 긁는 소리만 작업실을 채웠다. 에린은 벽에 걸린 설계도 하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연회장 설계도였다. 오늘 부서진 바로 그곳의.
"이 설계도."
에린이 말했다.
"인간의 글자가 있습니다."
벨리알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조각칼의 각도를 0.2도 틀었다.
"주석이다. 인간 건축 양식을 참고했을 때 남긴 것."
"마족 문자가 아니라 인간 공용어로 쓴 이유가 있습니까."
그 질문에 벨리알의 손끝이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으나, 에린의 눈이 그것을 잡아냈다.
"어릴 때 배운 것이 먼저 나온다."
벨리알이 말했다. 확대경 너머로 그의 눈이 성물의 균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성이 처음 무너졌을 때, 나는 일곱이었다. 마왕성 설계도라는 것을 처음 본 것도 그때다."
조각칼을 내려놓았다. 미스릴 접합 인두를 집어 들고 끝에 작은 불꽃을 점화했다. 푸른빛이 손등을 비췄다.
"아버지는 전투형 마왕이었다. 성에는 함정이 없었다. 벽이 두꺼웠고, 문이 단단했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접합 인두의 끝이 균열선에 닿았다. 미스릴이 녹으며 머리카락보다 가는 은색 실이 금 사이로 스며들었다. 금속이 녹는 냄새가 작업실에 번졌다. 달콤하면서도 매캐한.
"용사가 왔을 때, 두꺼운 벽은 세 번의 검격으로 무너졌다. 단단한 문은 발길질 한 번에 부서졌다. 아버지는 성의 중심에서 싸웠고, 졌다."
에린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가늘어져 있었다.
"무너진 성 한가운데 서 있었다. 돌가루가 비처럼 내렸다. 발밑에 아버지의 왕관 조각이 있었는데, 그걸 줍지 못했다. 손이 떨려서."
벨리알의 목소리에는 감정의 파동이 없었다. 인두를 든 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균열선 위에 미스릴을 얹는 속도만 평소보다 느렸다. 하나하나의 선을 긋는 것이 어떤 의식인 것처럼.
"그때 결심했다. 힘으로 지킬 수 없다면 구조로 지키겠다고. 벽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무기로 만들겠다고.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집을."
인두를 내려놓았다. 성물의 첫 번째 균열이 은색 선으로 봉합되어 있었다. 금이 간 자리에 새로운 무늬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집."
에린이 한 단어를 반복했다. 그녀의 시선이 성물 위의 은색 선을 따라갔다.
"성이 아니라,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벨리알이 확대경의 초점을 두 번째 균열로 옮겼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에린은 이미 들은 것을 들었다.
뚫린 천장 너머 마계의 달빛이 작업실 높은 환기구를 통해 비스듬히 떨어졌다. 촛불의 주황빛과 달빛의 푸른빛이 작업대 위에서 섞여 성물의 표면에 이상한 색채를 만들었다. 에린의 얼굴 절반이 그 빛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당신의 성은 무덤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었군요."
에린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돌벽에 부딪힌 잔향이 짧게 울렸다.
벨리알의 손가락이 조각칼 위에 얹혀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촛불이 다시 흔들렸고, 그림자가 벽의 설계도들 위를 지나갔다.
"기록이라."
낮게 되뇐 뒤, 그는 다시 인두를 들었다. 두 번째 균열에 불꽃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속도가 달랐다. 느리고 조심스럽던 동작이 정확하고 단호해졌다. 미스릴 선이 균열을 메우는 소리가 가늘게 울렸다.
에린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작업대 옆으로 다가가 성물의 세 번째 균열—가장 깊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핵심부까지 닿은 균열입니다. 이대로 접합하면 내부 공명이 왜곡될 겁니다."
벨리알의 눈이 에린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성물의 핵심부에서 방출되는 파동이 균열을 통해 새어나오고 있었고, 단순 접합은 그 파동 경로를 막아 폭주를 유발할 수 있었다.
"제안이 있습니까."
"균열을 메우지 말고 새 경로로 쓰세요. 파동이 흐를 수 있는 홈을 깎아 넣으면 오히려 출력이 안정됩니다."
벨리알이 인두를 내려놓았다. 확대경 너머가 아닌 맨눈으로 에린을 올려다보았다. 촛불 빛이 그의 홍채에 작은 점을 찍었다.
"성물 내부 구조를 어디서 배웠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질문이 아니라 추궁이었다. 에린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조사관 교육 과정에 성물 취급 항목이 있습니다."
"취급 항목에 파동 경로 설계까지 포함되어 있나."
침묵이 내려앉았다. 촛불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작업실을 채웠다. 에린의 시선이 벨리알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되,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벨리알의 엄지가 조각칼 등을 천천히 쓸었다. 에린의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성물이 전투 중에 떨어졌다는 것, 그것을 자신에게 가져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부 구조까지 읽어내고 있다는 것. 하나하나는 설명이 되었다. 전부 합치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네 손에서 성물이 반응하지 않았다."
벨리알이 말했다. 에린의 눈꺼풀이 한 번 떨렸다.
"보통 인간이 성물을 맨손으로 잡으면 가호의 잔향이 피부에 남는다. 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에린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제가 드린 제안이 틀렸습니까."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 벨리알은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조각칼을 집어 들었다. 지금은 성물의 수복이 먼저였다. 에린의 정체는 성물이 완성된 뒤에 파헤쳐도 늦지 않았다.
대답 대신 에린은 공구함에서 0.05밀리미터 정밀 조각칼을 꺼내 벨리알 앞에 놓았다. 벨리알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도구의 무게가 손에 익었다.
세 번째 균열을 메우는 대신 균열의 양옆에 머리카락 두께의 홈을 파기 시작했다. 파동의 유로. 에린이 성물을 양손으로 고정해 주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금속을 통해 벨리알의 조각칼까지 닿았다.
작업은 오래 걸렸다. 촛불 하나가 다 타서 꺼졌다. 남은 두 개의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작업대 위의 그림자가 숨을 쉬듯 움직였다. 지맥 안정기의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계속 올라왔다. 평소보다 강한 진동. 벨리알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으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홈이 완성되었을 때, 성물이 반응했다. 균열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은색 접합선과 새로 깎인 유로를 따라 빛의 맥이 뛰었다. 지맥 안정기의 파동과 공명하는 그 빛이 작업실 벽면의 설계도들을 한순간 환하게 비췄다.
에린의 손이 성물에서 떨어졌다. 그녀가 벽을 돌아보았다.
설계도들 사이, 양피지 여백에 적힌 글씨들이 빛에 드러나 있었다. 인간 공용어도 마족 문자도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수십 개의 이름이 각기 다른 설계도의 빈자리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에린의 발이 멈췄다.
가장 오래된 설계도—아르스 마그나 초기 설계안—의 하단 여백에는 이름 세 개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잉크가 바래서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성물의 빛이 그것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에린의 입술이 그 이름들을 소리 없이 읽었다.
"이것은…"
벨리알이 조각칼을 작업대에 내려놓았다. 금속이 나무에 닿는 건조한 소리.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검은 금속에 붉은 룬이 새겨진 손바닥보다 작은 열쇠. 지하 동력실의 것이었다.
에린에게 내밀었다.
"수복 작업을 계속하려면 동력실의 출력을 올려야 한다."
에린의 시선이 열쇠와 벽의 이름들 사이를 오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열쇠를 받아 쥐었다. 금속의 차가움이 손바닥에 닿았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맥박치듯 미세하게 떨렸다.
"동력실 지하에 무엇이 있습니까."
벨리알이 촛불을 하나 더 켰다. 새 불꽃이 작업실을 밝혔다. 그의 얼굴에서 그림자가 걷혔고, 눈 아래의 어두운 그늘이 드러났다. 며칠째 잠을 자지 않은 흔적이었다.
"내가 이 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에린의 손에서 열쇠의 떨림이 강해졌다. 지맥 안정기의 진동과 같은 주파수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열쇠의 룬 위에 고정되었고, 룬의 붉은빛이 벨리알의 손등에도 같은 색으로 비치고 있었다.
피부 아래로 같은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에린이 열쇠를 쥔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열쇠를 돌리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깁니까."
벨리알은 작업대 위의 성물을 집어 에린의 빈손에 올려놓았다.
"동력실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