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맥 안정기가 비명을 질렀다.
정확히 말하면, 제7동력로의 마력 순환 회로에서 공진 주파수가 허용치를 넘긴 것이다. 내 귓속에 박힌 건 금속이 찢기는 고음이었다. 이빨 안쪽까지 저려 오는 진동.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왼손을 뻗어 벽면의 모니터링 룬을 두드렸다.
숫자들이 떠올랐다.
부유 고도 1,240미터. 마력석 잔량 17.3%. 시간당 소모율 2.8%. 단순 계산으로도 여섯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상의를 걸치며 복도로 나섰다. 새벽의 아르스 마그나는 어둡지 않았다. 벽면의 부조에 새겨진 룬들이 짧은 간격으로 명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부하 경고. 한 번. 두 번. 세 번. 파도처럼 밀려오는 빛의 파동이 복도를 따라 흘러갔다.
왼쪽 어깨의 상처가 반응했다. 성검의 여파가 남긴 영구적 부상은 마력 변동에 민감하다. 재생과 괴사가 번갈아 일어나는 피부 아래서 파편이 신경줄을 긁어대는 듯한 금속성 통증이 울렸다. 쇠붙이가 뼈를 타고 미끄러지는 감각. 나는 이를 물고 걸음을 옮겼다.
중앙 동력실의 문을 열자 열기가 얼굴을 때렸다.
마력석 격납고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 나머지 절반도 광택을 잃은 채 둔탁한 회색빛으로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지맥 안정기의 핵심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천장에 부딪혀 물방울로 맺혔다가 떨어졌다. 뜨거운 물방울 하나가 목덜미에 닿았다.
"3시간 전부터 이 상태입니다."
동력실 관리를 맡은 하급 마족 리게르가 계기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손톱이 벗겨질 정도로 조절 밸브를 붙잡고 있었고, 뿔 사이의 이마에 기름때가 번져 있었다.
나는 격납고 앞에 서서 잔량 수치를 직접 확인했다. 손가락 끝으로 마력석 하나를 톡 건드리자 표면에 실금이 갈렸다. 이미 내부의 마력이 거의 추출된 빈 껍데기.
"부유 출력을 70%로 낮추면."
"성이 200미터 강하합니다." 리게르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대답했다. "칼데라 외곽의 흑요석 협곡 상단부와 같은 높이가 돼요. 협곡의 바람이 성벽을 직격합니다."
초속 30미터의 칼바람. 4서클 이하의 비행 마법을 찢어버리는 그 바람이 성 외벽의 함정 장식물들을 갈아낼 것이다. 나는 격납고 옆에 놓인 설계도 뭉치를 집어 들었다. 여백에 적힌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이엔. 무르. 아젤. 지난 전투에서 잃은 부하들. 잉크가 번져 흐릿해졌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그 이름들 위로 새로운 계산식을 적어 넣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고, 설계도를 뒤집었다.
"난민 수용 구역의 상황은."
"하층 거주구에 마족 430여 명입니다. 아이들이 서른두 명." 리게르가 밸브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내 앞에서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었다. "성의 그림자가 칼데라 아래 부락을 덮고 있는 동안은 마력 폭풍이 도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도가 내려가면…"
"그림자의 범위가 줄어든다."
"예. 외곽 부락 세 곳이 폭풍권에 노출됩니다."
나는 동력실 벽면에 기대었다. 등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성 전체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내가 설계한 지맥 안정기는 칼데라의 야생 마력을 정제하여 부유력으로 전환하는 장치였지만, 부유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력량은 정지 상태의 열두 배에 달한다. 계산은 완벽했다. 문제는 계산 밖에서 왔다.
성황청의 빛기둥 공격을 막아내느라 방어 결계에 쏟아부은 마력석. 에린의 성물이 추적 장치로 기능하는 동안 차폐에 소모한 추가 에너지. 대심판관과의 전투에서 손상된 순환 회로의 효율 저하. 세 가지가 겹치며 예비량을 모조리 삼켰다.
"리게르."
"예."
"너는 이 성이 떨어지면 어디로 가겠어?"
리게르의 뿔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답 대신 그는 조절 밸브를 다시 움켜잡았다.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놓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로 나서자 칼데라의 전경이 펼쳐졌다.
아르스 마그나의 그림자는 거대했다. 새벽빛이 성 뒤에서 비추며 암흑색 윤곽이 칼데라 바닥의 마족 부락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 안에서는 마력 폭풍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유일한 땅. 노약한 마족들이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림자의 경계선 바로 너머에서는 레테아 강의 물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기억과 마력을 갉아먹는 은빛 안개. 나는 주머니에서 각인 펜을 꺼내 테라스 난간에 기대며 허공에 수식을 그렸다.
12시간. 그게 한계였다.
"잠은 잤어?"
뒤에서 에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았다.
"잠은 구조적 결함이 없을 때 자는 거다."
에린이 테라스 난간까지 걸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성물이 들려 있었다. 표면의 빛은 여전히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있었고, 내가 급조한 차폐 포에 싸인 상태였다.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했다. 미세한 신호가 여전히 새어나가고 있었다.
"마력석 잔량 확인했어." 에린이 난간에 팔꿈치를 올렸다. "리게르한테 들었는데, 골렘 채굴단을 심층부로 보내면 마력석을 추가 확보할 수 있지 않아?"
"채굴단은 왕복에 사흘이 걸린다. 우리에겐 반나절도 없어."
에린의 손가락이 천에 싸인 성물 위에서 멈췄다. 잠시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내 성물. 이것도 마력원이야."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린의 눈동자에 새벽빛이 걸려 있었다.
"선대 마왕을 찌른 창의 파편이다. 성스러운 가호의 결정체를 지맥 안정기에 넣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알아." 에린이 천을 풀었다. 성물의 빛이 노출되자 테라스의 룬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공명. 이전에 처음 감지된 그 파동이 다시 울렸다. "이걸 안정기에 접속시키면 성황청 추적 신호도 증폭돼. 우리 위치가 마계 전역에 중계되는 거야."
"그건 안 된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침묵이 흘렀다. 칼데라 아래서 바람 소리가 올라왔다. 흑요석 협곡의 바람이 성 하부를 스치며 낮은 울음을 냈다. 각인 펜이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하나 있다."
에린이 몸을 세웠다.
"심연의 맥." 시선이 테라스 바닥을 관통하여 지하를 향했다. "이 성의 기단 아래, 칼데라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된 원시 마력 수맥이 있다. 아버지가 마왕성을 처음 세울 때 의도적으로 막아놓은 곳이야."
"의도적으로 막았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원시 마력은 정제되지 않았다. 지맥 안정기가 처리할 수 있는 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야생 에너지다." 왼쪽 어깨가 경련했다. "안정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성 전체의 룬 회로가 역류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자기 붕괴."
"그런데도 열겠다는 거야?"
대답 대신 각인 펜을 난간에 내려놓았다. 금속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건조하게 울렸다.
"건축은 생존을 담보할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칼데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점들. 마족 아이들이었다. "지금 이 성은 화려한 감옥일 뿐이다."
에린이 내 얼굴을 보았다. 새벽빛에 드러난 왼쪽 상반신의 경계선. 재생과 괴사가 반복되는 피부가 옷깃 사이로 보였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성물을 다시 천에 감쌌다.
"내가 안정기 출력을 모니터링할게." 에린이 말했다. "역류가 시작되면 내 성물로 과잉 마력을 흡수할 수 있어. 성물은 원래 마력을 봉인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거니까."
내 시선이 에린에게 머물렀다. 3초.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기단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성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었다.
벽면의 룬은 내가 새긴 것이 아니었다. 선대 마왕 벨제파르의 필치. 거칠고 힘 있는 각인이 벽돌 사이사이에 박혀 있었다. 손끝으로 아버지의 룬을 더듬었다. 차가운 돌의 감촉 너머로 잔존 마력이 희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에린이 뒤따라 내려오며 계단 벽의 균열을 확인했다. 그녀의 손이 돌 틈새에 끼인 광물 결정을 빼냈다. 검붉은 색. 영혼석의 변이체였다.
"이건… 순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심연의 맥에서 스며 나온 거다. 봉인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지."
계단이 끝났다. 거대한 봉인 문이 나타났다. 선대 마왕의 문장이 새겨진 흑철 대문. 높이 7미터. 표면에 박힌 봉인 룬들이 붉은빛으로 미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열기가 새어 나왔다. 숨구멍에서 나오는 짐승의 숨결 같은 뜨거운 공기.
주머니에서 설계도를 꺼냈다. 이번에는 뒤집지 않았다. 여백에 적힌 이름들 위로 시선을 한 번 스치고, 봉인 문의 구조를 읽기 시작했다.
"봉인 해체에 필요한 건 혈통 인증과 역위상 룬 세 개의 동시 해제다." 문 표면에 왼손을 올렸다. 재생과 괴사가 반복되는 손바닥에서 마왕의 혈통에 반응하는 봉인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에린, 네가 역위상 룬 세 개 중 좌측 두 개를 잡아. 내가 우측과 중앙을 동시에 처리한다."
에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 좌측으로 이동했다. 천에 싸인 성물을 허리춤에 고정하고 맨손으로 룬에 접촉했다. 룬이 그녀의 체온에 반응하여 색이 변했다. 붉은색에서 금색으로. 성스러운 가호의 잔향이 봉인의 신성 요소와 공명한 것이다.
"준비됐어."
오른손으로 중앙 룬을, 왼손으로 우측 룬을 동시에 눌렀다.
해제음이 울렸다. 뼈를 타고 전해지는 저주파 진동. 흑철 대문의 표면에서 봉인 문양들이 하나씩 소멸하며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에린이 좌측 룬 두 개를 역위상으로 회전시키자 문의 잠금 기구가 내부에서 풀리는 기계음이 연쇄적으로 울렸다.
문이 열렸다.
열기가 쏟아졌다. 머리카락이 뒤로 밀렸다. 에린이 팔로 얼굴을 가렸다. 문 너머의 공간은 동굴이 아니었다. 칼데라의 심장부로 이어지는 수직 갱도였다. 벽면이 붉은 마력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열기를 뿜어내는 원시 마력의 핏줄.
갱도의 가장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붉은 빛만이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깊이를 암시했다.
"지맥 안정기의 흡입 회로를 이쪽으로 연결한다." 각인 펜을 꺼내 갱도 입구의 바닥에 새로운 룬을 새기기 시작했다. 펜 끝이 돌에 닿을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유입량 조절 밸브를 3단계로 설정해서 과부하를 방지하고—"
바닥이 흔들렸다.
펜이 멈췄다. 에린이 벽을 짚었다. 진동은 아래에서 올라왔다. 심연의 맥이 봉인 해제에 반응한 것이다. 갱도 벽면의 붉은 맥동이 빨라졌다. 수축과 이완의 간격이 절반으로 줄었다.
"벨리알."
에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갱도가 아니라 우리가 내려온 계단 쪽이었다. 계단 벽면의 선대 마왕 룬들이 하나둘 붉게 물들고 있었다. 원시 마력이 봉인 해제와 동시에 역류하여 성의 하부 구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계단을 세 칸 뛰어올라 벽면에 손을 댔다. 룬의 온도를 확인했다. 뜨거웠다. 화상이 남을 정도로. 손을 떼지 않았다.
원시 마력이 안정기를 거치지 않고 성 내부로 직접 유입되고 있었다. 이건 계획에 없었다. 봉인이 풀리자 억눌려 있던 압력이 가장 약한 곳을 찾아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린, 성물을 꺼내."
에린이 천을 풀었다. 성물의 빛이 갱도 안에서 폭발적으로 증폭됐다. 원시 마력의 붉은빛과 성물의 금빛이 충돌하며 공기 중에 불꽃 같은 입자가 흩날렸다. 에린은 이를 악물고 성물을 벽면의 균열에 가져다 댔다. 성물이 과잉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금빛이 붉은색으로 오염되어 갔다.
"흡수 한계가 있어." 에린이 성물을 쥔 손이 떨렸다. 팔뚝의 힘줄이 도드라졌다. "전부는 못 막아."
계단을 다시 뛰어내려와 갱도 입구의 미완성 룬 위에 새로운 회로를 그렸다. 펜 끝이 돌 위를 미끄러지며 불꽃을 뿌렸다. 유입량 조절이 아니라 방향 전환. 원시 마력을 성 상부가 아닌 지맥 안정기의 보조 회로로 유도하는 우회로.
각인이 완성되는 데 47초가 걸렸다.
마지막 획을 긋는 순간, 룬이 활성화되며 갱도의 마력 흐름이 바뀌었다. 벽면의 붉은 맥동이 느려졌다. 에린이 성물을 벽에서 뗐다. 손바닥에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둘 다 숨을 몰아쉬었다.
갱도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일정한 리듬을 찾았다. 내가 새긴 우회 회로가 원시 마력을 안정기 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10%가량의 마력이 여전히 성 구조물을 타고 새어나가고 있었다.
에린이 화상 입은 손을 옷자락에 감으며 나를 보았다. 왼쪽 어깨에서 검은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재생과 괴사의 순환이 가속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각인 펜을 주머니에 넣었다.
"돌아간다. 안정기 출력을 직접 확인해야 해."
중앙 동력실에 도착했을 때, 리게르가 격납고 앞에 서서 계기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력석 잔량 계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17%에서 23%, 29%, 35%. 심연의 맥에서 유입된 원시 마력이 안정기를 통해 정제되며 격납고의 마력석을 충전하고 있었다.
"작동하고 있습니다." 리게르가 계기판을 두드렸다. 표정에 안도가 번졌다. "부유 출력도 정상 범위로 복귀—"
성 전체가 흔들렸다.
리게르가 바닥에 넘어졌다. 에린이 벽을 짚었다. 나만 두 발로 서 있었다. 시선이 동력실 벽면을 훑었다.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벽돌 사이의 접합부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균열이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 천장으로. 복도로. 성벽 곳곳으로 번져가는 붉은 실금.
원시 마력이 안정기의 정제 용량을 넘어서 성 구조물 자체에 스며들고 있었다. 우회 회로로 유도한 90%조차 안정기가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리게르가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 격납고의 비상 차단 레버를 잡았다. 나를 돌아보았다.
"차단하면 마력석 충전이 멈춘다." 내가 말했다. "부유 출력은 6시간 후 다시 바닥을 친다."
"차단하지 않으면 성벽이 갈라집니다."
붉은 균열이 동력실 천장을 가로질렀다. 돌가루가 떨어졌다. 에린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그녀가 털어냈다. 그리고 품에서 성물을 꺼냈다.
"벨리알. 성물을 안정기에 직접 접속시켜."
"성황청 추적 신호가 증폭된다고 했잖아."
"균열이 성 전체로 퍼지면 추적 따위는 의미가 없어." 에린이 성물을 내밀었다. 금빛 표면에 붉은 오염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이걸 여과 필터로 쓰는 거야. 성물은 마력을 정제하는 데 특화된 성유물이잖아. 안정기가 처리 못 하는 과잉분을 성물이 걸러내면 균열을 막을 수 있어."
시선이 성물과 안정기 사이를 오갔다.
3초.
성물을 받아 들었다.
안정기 핵심부의 접속 포트에 성물을 끼워 넣는 순간, 동력실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원시 마력의 붉은 흐름이 성물을 통과하며 정제된 청백색으로 변환되었다. 안정기의 과부하 경고음이 멈췄다. 벽면의 균열에서 새어 나오던 붉은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리게르가 계기판을 읽었다.
"마력석 잔량 41%, 안정 충전 중. 부유 출력 정상. 과부하 수치 허용 범위 내."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왼쪽 어깨의 검은 증기가 옅어졌다. 에린이 화상 입은 손을 내려놓으며 숨을 내쉬었다.
내 시선은 성벽에 남은 균열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붉은 빛은 사라졌으나 균열 자체는 닫히지 않았다. 돌 사이에 새겨진 붉은 선들이 마치 핏줄처럼 성 구조물에 영구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 균열들이 아주 느리게 벽면을 따라 위로 번지고 있었다.
에린이 안정기에 접속된 성물을 가리켰다. 성물 표면의 금빛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정제가 아니라 오염. 원시 마력이 성물 자체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벨리알." 에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거, 성물이 버티는 동안만 유효해. 성물이 완전히 오염되면—"
동력실 바닥에서 새로운 균열이 갈라졌다. 붉은 빛이 아니었다. 검은빛. 심연의 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정제도 봉인도 불가능한 것의 색이었다.
리게르가 뒤로 물러섰다.
나는 바닥의 검은 균열 앞에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