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반발
사람은 숫자보다 빨리 퍼진다.
랩소도 수치가 불펜에서 나온 건 사흘 전이었다. 헛스윙이 나온 건 이틀 전. 오늘 라커룸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내가 들어서면 말소리가 짧아졌다. 들어서기 전에는 길었다. 그 차이가 체감 온도처럼 느껴졌다.
라커룸은 불펜보다 좁았다.
*
착장을 하는데 옆 칸에서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낮추지 않은 목소리였다.
"기계로 공 던진대."
"랩소도 쓴다고 다 잘 던지냐."
"감독님 야구 무시하는 거 아니야?"
무시. 내가 말한 건 하나다. 회전 효율이 98%라는 것. 그게 무시로 읽히는 야구가 이 팀의 문화다.
신발 끈을 묶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는 평소와 같았다. 반응하지 않는다.
*
문이 열렸다. 박건우였다.
11번. 새 스파이크. 글러브도 새것이었다. 사물함을 열면서 내 쪽을 봤다. 1초.
"어제 슬라이더 던지는 거 봤다."
"네."
"이민호가 헛스윙했던데."
"네."
건우가 글러브를 집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데이터로 프로 가?"
선언이었다. 이 팀에서 프로 가는 방법은 하나다. 구속. 근성. 감독이 인정하는 방식. 대답하지 않았다.
건우가 계속 말했다.
"140짜리 피치 터널이면, 상대 타자들 다 웃겠다."
틀렸다. 어제 이민호가 증명했다. 배트 스피드로 커버하려면 공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예측이 틀리면 배트 스피드는 의미가 없다.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진다.
"조건이 있어요."
건우가 글러브를 끼다가 멈췄다.
"건우 선배가 공개 불펜에서 저한테 이기면, 그때 제 방식이 틀렸다고 인정하겠습니다."
라커룸이 조용해졌다.
구석에서 유니폼 단추를 잠그던 2학년이 손을 멈췄다. 코너 쪽에 있던 신입생 두 명이 이쪽을 봤다.
건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네. 그럼 때리면 되겠네."
"네. 때려야 이기는 겁니다."
건우가 나를 한 번 더 봤다. 측정하는 눈이었다. 그리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편이 나뉘는 순간은 이런 식이다. 선언이 아니라, 누가 먼저 시선을 피우느냐로 나뉜다.
*
오전 훈련 중간. 감독이 나를 불렀다.
"라커룸에서 건우한테 뭐라고 했냐."
"공개 불펜에서 대결하자고 했습니다."
감독이 나를 봤다. 표정이 없었다. 표정이 없다는 건 계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건우가 선배야."
"알고 있습니다."
"팀 안에서 서열을 흔드는 행동이다."
"서열을 흔든 게 아니라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제 방식이 틀리면 인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감독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계산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선수를 맞붙이고, 결과로 자기 권위를 강화한다. 이기는 쪽이 감독의 방식을 입증하는 구조. 그 구조에 들어간다. 일부러.
"네 방식이 통한다면, 건우도 이겨봐."
"불펜 대결. 내일 오후 훈련. 타자는 내가 지정한다."
"알겠습니다."
감독이 돌아섰다. 걸어가다가, 한마디를 더했다.
"건우가 이기면, 네 랩소도 방식은 끝난다. 알지?"
"알고 있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내일. 불펜 대결.
건우의 최고 구속 148. 나의 최고 구속 142. 구속으로는 진다. 알고 있다. 그래서 구속으로 싸우지 않는다.
*
오후 훈련 후, 철수를 찾았다.
불펜 뒤편 담벼락 쪽에 혼자 있었다. 미트를 뒤집어 안쪽을 닦고 있었다.
"내일 대결 알아요?"
"알아."
"포수로 들어와 줄 수 있어요?"
철수가 손을 멈췄다.
"내가 들어가면 나도 찍혀."
맞다. 1학년이 2학년 라인에 찍히면 3년이 힘들다.
"알고 있어요. 그냥 부탁이에요."
철수가 미트를 다시 닦기 시작했다. 세 번. 네 번. 천천히.
"들어갈게."
그게 전부였다. 조건도 없고 이유도 없었다. 들어간다. 그게 다.
철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