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피치 터널
사람은 숫자보다 빨리 퍼진다.
랩소도 수치가 불펜에서 나온 건 사흘 전이었다. 헛스윙이 나온 건 이틀 전. 오늘 라커룸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말소리가 달라진 것이다. 내가 들어서면 짧아졌다. 들어서기 전에는 길었다.
라커룸은 불펜보다 좁았다.
*
착장을 하는데 바로 옆 칸에서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낮추지 않은 목소리였다.
"기계로 공 던진대. 신입이."
"랩소도 쓴다고 다 잘 던지냐."
"감독님 야구 무시하는 거 아니야?"
신발 끈을 묶었다. 왼쪽 먼저. 오른쪽 다음. 반응하지 않는다.
칸막이 너머로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때 문이 열렸다.
*
박건우였다.
11번. 새 스파이크. 사물함을 열면서 내 쪽을 봤다. 1초.
"어제 슬라이더 던지는 거 봤다."
"네."
"이민호가 헛스윙했던데."
"네."
건우가 글러브를 집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데이터로 프로 가?"
이 팀에서 프로 가는 방법은 하나다, 라는 선언. 구속. 근성. 감독이 인정하는 방식.
대답하지 않았다.
"140짜리 피치 터널이면, 상대 타자들 다 웃겠다."
틀렸다. 어제 이민호가 증명했다. 예측이 틀리면 배트 스피드는 의미가 없다.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진다.
"조건이 있어요."
건우가 글러브를 끼다가 멈췄다.
"건우 선배가 공개 불펜에서 저한테 이기면, 제 방식이 틀렸다고 인정하겠습니다."
라커룸이 조용해졌다.
건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네. 그럼 때리면 되겠네."
"네. 때려야 이기는 겁니다."
건우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편이 나뉘는 순간은 이런 식이다. 누가 선언하는 게 아니라, 누가 먼저 시선을 피우느냐로 나뉜다.
*
오전 훈련 중간. 감독이 나를 불렀다.
"라커룸에서 건우한테 뭐라고 했냐."
"공개 불펜에서 대결하자고 했습니다."
감독이 나를 봤다. 표정이 없었다. 표정이 없다는 건 계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건우가 선배야."
"알고 있습니다."
"팀 안에서 서열을 흔드는 행동이다."
"서열을 흔든 게 아니라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제 방식이 틀리면 인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감독이 잠깐 말이 없었다. 두 선수를 맞붙이고, 그 결과로 자기 권위를 강화한다. 이기는 쪽이 감독의 방식을 입증하는 구조. 그 구조에 들어간다. 일부러.
"네 방식이 통한다면, 건우도 이겨봐."
"불펜 대결. 내일 오후 훈련. 타자는 내가 지정한다."
"알겠습니다."
감독이 돌아섰다. 한마디를 더했다.
"건우가 이기면, 네 랩소도 방식은 끝난다. 알지?"
"알고 있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내일. 불펜 대결. 건우의 최고 구속 148. 나의 최고 구속 142. 구속으로는 진다. 알고 있다. 그래서 구속으로 싸우지 않는다.
*
오후 훈련 후, 철수를 찾았다.
불펜 뒤편 담벼락 쪽에 혼자 있었다. 미트를 뒤집어 안쪽을 닦고 있었다.
"내일 대결 알아요?"
철수가 미트를 닦으면서 말했다.
"알아."
"포수로 들어와 줄 수 있어요?"
철수가 손을 멈췄다.
"내가 들어가면 나도 찍혀."
맞다. 1학년이 2학년 라인에 찍히면 3년이 힘들다.
"알고 있어요. 그냥 부탁이에요."
철수가 미트를 다시 닦기 시작했다. 세 번. 네 번. 천천히.
"내일 몇 구 던질 거야."
"10구."
"그게 다야?"
"다입니다."
철수가 미트를 가방에 넣었다.
"알았어."
그게 전부였다.
*
밤에 노트를 폈다.
내일 상대 타자 분석. 감독이 지정한다고 했다. 누가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팀에서 건우의 대결 상대가 된다는 건, 배팅 연습에서 공을 잘 치는 선수다. 2학년 중상위권.
분석 없이도 패턴은 있다. 처음 보는 타자에겐 포심으로 시작한다. 두 번째 공에서 슬라이더. 세 번째 공에서 체인지업.
문제는 건우의 구속이다. 145. 감독이 그 구속만 보고 기준을 잡을 것이다. 142는 그것보다 3km 느리다.
느려도 이기는 법이 있다.
회전 효율. 초반 궤적. 예측 파괴.
타자가 배트를 결정하는 0.1초 안에 무슨 공인지 다르게 보이면, 구속은 숫자가 된다. 숫자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판단은 이길 수 있다.
내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감독은 이미 결정해 두고 있었다. 통제는 결과 이후에 하는 게 아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판을 짜는 것이다.
나는 그 판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판의 방향을 바꾼다.
12년치 데이터는 12년 앞을 보는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