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다시, 105구
내 팔이 먼저 부러졌고, 그다음 인생이 부러졌다.
나는 105구에서 멈췄어야 했다.
150번째.
번호를 세는 버릇은 고1 때부터였다. 100구가 넘으면 손끝 감각이 달라진다. 140구를 넘기면 팔꿈치 안쪽 인대가 타이밍 벨트처럼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UCL — 팔꿈치를 붙들고 있는 인대다. 한번 끊어지면 1년 넘게 팔을 못 쓴다.
148번째에서 손끝 감각이 사라졌다. 149번째에서 포수가 미트를 흔들었다.
150번째.
릴리스 직전에 알았다. 팔꿈치 안쪽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감각. 고무줄이 아니었다. 철사였다. 공은 나갔다. 미트 소리가 들렸다. 스트라이크.
관중이 함성을 질렀다. 완투승. 결승전 우승.
나는 마운드 위에서 팔을 내렸다. 내리는 게 아니라 떨어졌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남의 것이었다.
감독이 달려왔다. 뭐라고 했다. 듣지 못했다. 누군가 내 등을 쳤다. 아프지 않았다. 팔꿈치만 아팠다. 아니, 팔꿈치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게 2012년 여름이었다.
고3이었다. 전국대회 결승전이었다. 완투승이었다.
그리고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 공이었다.
UCL 파열. 토미 존 수술 — 끊어진 인대를 다른 힘줄로 교체하는 수술이다. 재활 14개월. 복귀 후 구속 137. 드래프트 6라운드. 2군 3년. 1군 등판 0회. 방출.
방출 통보를 받던 날, 단장은 서류를 밀며 말했다.
구단 사정상 재계약이 어렵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테이블 위에 계약 해지 서류가 있었다. 나는 서명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3년 동안 예고된 결말이었다.
그 뒤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하나.
팔꿈치가 끊어지기 전, 감독이 뭐라고 했는지.
계속 가. 이기고 있어. 넌 던지기만 하면 돼.
105구째였다. 내가 불펜에 전화해달라고 했을 때.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는 45구를 더 던졌다.
*
천장이었다.
전광판이 아니었다. 조명탑이 아니었다. 형광등이었다. 길쭉한 형광등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고, 한쪽이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왼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감각이 돌아왔다. 차갑고 단단한 합판. 손가락에 힘을 줬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다섯 개 전부.
오른손으로 팔꿈치 안쪽을 눌렀다.
통증이 없었다.
팔꿈치에 통증이 없다.
그 사실 하나가 모든 걸 바꾸는 데 10초면 충분했다.
주변을 봤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졸고 있는 애. 칠판에는 '금요일 청소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책상 왼쪽 상단에 매직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강시우 1-3'
1학년 3반.
고1.
심장 박동수가 올라갔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조절했다. 4초 들이마시고, 7초 내쉬었다. 28살의 습관이 16살의 몸에서 작동했다.
다시 팔꿈치를 눌렀다. 통증이 없었다. 손목을 돌렸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감각이 전부 살아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니다.
꿈에서는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니다. 재활 시절 확인한 사실이다.
지금은 다섯 개다.
칠판 옆 게시판에 달력이 있었다.
2009년 3월.
고등학교 1학년. 나는 아직 단 한 구도 던지지 않은 상태다.
*
창문 밖에서 금속 배트 소리가 들렸다.
깡, 깡, 깡.
일정한 간격. 티 배팅이었다. 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배트 스피드가 일정하고 런치 앵글이 고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갔다.
운동장 한쪽에 야구부 연습장이 보였다. 배팅케이지 두 개. 불펜 마운드 하나. 투구 연습을 하는 투수가 한 명 보였다. 하체가 먼저 열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오버스트라이드.
저 폼이면 팔꿈치에 부하가 걸린다.
습관적으로 분석이 시작됐다.
저 투수의 스트라이드가 신장의 85%를 넘고 있었다. 이상적인 스트라이드는 77~83%. 그 이상이면 팔꿈치 안쪽에 걸리는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2010년에야 국내에 소개된 연구 결과다.
2009년에는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그 사실이 위장 아래에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는데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학생 둘이 나를 봤다. 고개를 까딱했다. 나도 까딱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니폼에 새겨진 교명은 기억났다.
대성고.
내가 팔을 바친 학교.
발걸음이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연습장 뒤편 울타리까지 걸어갔다.
불펜에서 투구하던 투수가 멈췄다. 포수가 미트를 벗었다. 코치가 뭔가를 외쳤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투수는 팔이 끊어져도 던지는 거야. 정신력이 팔을 이긴다. 알겠나?"
울타리 안쪽, 불펜 옆에 서 있는 남자.
50대 초반. 운동복 위에 점퍼.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가 왼쪽보다 약간 내려가 있었다. 2cm쯤. 오래된 부상의 흔적이었다.
강문석.
감독.
3년 뒤, 나에게 150구를 던지게 할 사람.
위장이 비틀렸다.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이 하얗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12년 전의 내가 아니다.
감독의 말이 계속 들렸다.
"100구? 200구?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정신력이 중요한 거야. 야구는 근성이다, 근성."
아니요.
야구는 근성이 아닙니다.
야구는 숫자입니다.
UCL이 버틸 수 있는 단일 경기 투구 수는 105구. 130구를 넘기면 부상 확률이 3배. 150구를 넘기면 회복 불능. 내 팔꿈치가 증명한 데이터다.
저건 야구가 아니라 종교다.
이번에는 던지지 않는다.
울타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줬다. 철망이 손바닥을 눌렀다. 차가웠다. 감각이 선명했다. 살아 있었다.
*
그날 밤, 방 안에서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택시를 몰고 나가셨다. 밤 근무. 벽 너머로 야구 중계 소리가 들렸다.
오늘 130구를 넘겼는데도 구위가 살아 있습니다. 대단한 투혼이죠.
투혼. 130구.
저 투수의 팔꿈치가 몇 년을 버틸지 나는 안다.
이불 속에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천장을 향해 투구 동작을 했다. 공 없이. 소리 없이.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각도.
현관 밖에서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직 새벽 3시가 안 됐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손을. 제대로.
어릴 때 야구 가방을 들어주던 그 손. 회비 봉투를 내밀던 그 손. 레슨비 영수증 위에 사인하던 그 손.
얼마나 굳어 있었을까.
이번엔 그 손이 헛되지 않게 한다.
눈을 감았다.
105구에서 멈췄다면.
아니, 애초에 누가 멈춰줬어야 했다.
이번엔 내가 멈춘다.
이번 생은, 내가 계산한다.
내일, 야구부 장비 창고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