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먼지가 앉는 자리
본관 18층. 서아가 처음 올라가는 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공기가 달랐다. 카펫이 더 두꺼워서 발이 반 센티미터 빠졌다. 낡은 나무와 가죽이 섞인 향이 코를 먼저 찔렀다. 12층이 한서진의 시대라면 18층은 그 이전의 시대였다. 돈의 나이가 다른 층이었다. 벽을 감싼 목재 패널이 12층의 유리와 강철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만들고 있었다.
이선복이 앞에서 걸으며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18층은 회장님 전용 공간입니다. 복도에서는 대화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입장 후 인사 절차가 있습니까."
"별도 절차는 없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회장님과 단독 면담입니까."
"비서실장이 배석합니다."
서아의 운동화가 카펫에 묻혔다. 발소리가 나지 않는 건 12층과 같았지만 이유가 달랐다. 12층은 효율을 위한 무음이었고, 18층은 위엄을 위한 무음이었다.
복도 끝에 문이 하나 있었다. 이선복이 문 앞에서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서아에게가 아니라 문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문을 열었다. 서아가 들어갔다.
방이 넓었다. 책장이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책이 아니라 서류 바인더가 꽂혀 있었다. 바인더의 등에 적힌 연도가 1988, 1992, 1998이었다. 한성회의 역사가 수십 년치로 이 벽에 정리돼 있었다. 법무사 사무실의 기록 보관실보다 양이 많았고 분류가 더 정밀했다.
한도윤이 책상 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서아가 들어와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한서진도 같은 행동을 했었지만 본질이 달랐다. 한서진은 서아가 들어온 것을 알면서 무시한 것이었고, 한도윤은 서아가 시야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서류가 더 중요한 게 아니라 서아가 풍경의 일부인 것이었다.
오민재가 짧은 기침을 한 번 했다. 한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서아를 봤다.
시선이 발끝에서 시작했다. 운동화를 봤다. 한성회 직원들의 검은 구두와는 다른 신발이었다. 시선이 바지를 지나 셔츠를 지나 얼굴에 닿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한서진은 얼굴에서 시작했고, 한도윤은 발끝에서 시작했다. 사람의 값을 재는 순서가 달랐다. 한서진은 사람을 봤고 한도윤은 물건을 봤다.
서아는 서 있었다. 의자가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상 앞에 방문자용 의자가 없었다. 이 방에 오는 사람 중 서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서야 하는 것이었다.
"네 아버지 윤태국. 빚이 얼마인지 아느냐."
한도윤의 목소리는 한서진과 닮아 있었다. 낮고 깊고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한서진의 목소리에는 의도가 있었고 한도윤의 목소리에는 관성이 있었다. 이런 질문을 수천 번 해본 사람의 관성이었다.
"23억 7천만 원입니다."
"떨리지 않는구나."
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도윤이 서아의 손을 봤다. 떨리지 않는 손이었다.
"누구 돈이지."
"채권 조각으로 분할 양도된 상태라 원채권자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인이 안 된 거야, 안 하는 거야."
"확인 중입니다."
"열흘이면 코드 정도는 읽었을 텐데."
서아가 0.3초 멈추었다. 열흘. 한도윤이 서아가 열람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열람 기록이 비서실을 통해 회장에게도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코드 체계는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이 집에 왜 들어왔느냐."
"계약 조건이었습니다."
"계약이 아니라 이유를 물었다."
서아가 0.5초 멈추었다. 계약은 형식이었고,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한도윤은 형식 뒤의 것을 보는 사람이었다. 한서진이 서류의 허점을 찾는다면, 한도윤은 사람의 허점을 찾았다.
"아버지의 채무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채무를 갚으려고?"
"구조를 파악하려는 겁니다. 갚는 건 그 다음입니다."
"순서를 따지는구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배운 겁니다."
한도윤의 눈이 서아에 1초 머물렀다. 법무사 사무실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것인지, 서아의 태도에 반응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도윤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서아를 정면으로 봤다. 한서진과 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었지만 온도가 달랐다. 한서진의 눈에는 온도가 없었다. 한도윤의 눈에는 있었다. 영하의 온도. 겨울 새벽 대리석 바닥 같은 시선이었다.
"먼지는 가구 위에 앉지. 의자에 앉지 않아."
서아의 등이 곧아졌다. 먼지. 한도윤이 서아를 사람이 아니라 계층으로 불렀다. 서아의 이름이 아니라 위치를 불렀다.
한도윤이 일어섰다. 서아보다 반 뼘 작은 키였지만, 방의 주인은 키로 결정되지 않았다. 서아 옆을 지나갔다. 어깨가 스치지 않았다. 반 걸음의 간격이었다. 스치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스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믿지 마라. 서명만 믿어라."
한도윤이 방을 나갔다. 서아만 남았다.
서아는 3초를 세었다. 숨을 고르는 3초였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채권자가 나간 뒤 혼자 남았을 때 세던 시간이었다. 3초면 얼굴을 되돌릴 수 있었다.
"나가겠습니다."
이선복이 앞에서 걸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아는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채무 확인서를 받았을 때도, 한서진 앞에서도 떨리지 않았던 손이었다. 한도윤의 '먼지'라는 한마디가 병원의 23억보다 무거웠다. 숫자는 갚을 수 있었다. 이름은 지울 수 없었다.
수첩을 꺼냈다. 펜을 잡았다. 글씨가 흔들렸다. 서아는 멈추지 않고 적었다.
'한도윤 — 서아를 먼지로 봄. 서진과 다른 태도. 서진은 서아를 샀고, 한도윤은 서아를 쓸었다.'
마지막 문장의 획이 종이를 파고들었다. 펜을 쥔 검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아는 그 힘을 알아차리고 의도적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감정이 손에 들어가면 글씨가 흔들리고, 글씨가 흔들리면 기록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302호에 돌아왔다. 풀지 않은 가방이 침대 옆에 있었다. 지퍼가 잠겨 있었다. 풀면 사는 것이고, 풀지 않으면 머무는 것이었다. 서아는 머무는 쪽이었다.
창밖으로 정원이 보였다. 나무가 정돈돼 있었고 잔디가 짧았다.
먼지는 가구 위에 앉지. 의자에 앉지 않아.
서아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자기 방의 자기 의자에. 먼지가 앉을 수 없다고 한 자리에 앉았다. 그것만이 지금 서아가 할 수 있는 반박이었다. 작았지만, 서아는 그 작음을 알면서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