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숫자가 말하는 것
열람실. 오전 9시 정각.
세 번째 캐비넷이 열려 있었다. 어제 한서진이 승인한 서류 묶음이었다. 서아는 첫 번째 파일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종이에서 올라오는 오래된 잉크 냄새가 열람실의 차가운 공기와 섞이면서, 법무사 사무실의 서류 보관실을 떠올리게 했다.
KC-ORIGIN-001에서 파생된 열 개의 조각이 각각 독립된 양도서를 가지고 있었다. 양도일, 양수인 코드, 양도 조건. 서아는 노트북을 열고 아버지 장부 사진을 띄웠다. 대조를 시작했다. 오른손 검지가 종이 위를 따라가고, 왼손이 노트북 화면을 스크롤했다.
첫 번째 조각. 양도일 2015년 11월 3일. 장부에 같은 날짜가 있었고 금액도 일치했다. 수첩에 체크 표시를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전부 일치했다. 일곱 건이 연속으로 맞아떨어지자 서아의 등이 의자에서 떨어졌다. 앞으로 기울었다. 패턴이 잡히기 시작하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습관이었다.
여덟 번째 조각에서 흐름이 끊겼다. 양도일 2016년 1월 17일이었다. 장부를 훑었다. 해당 날짜가 없었다.
은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 울리고 받았다.
"대조 끝났어."
"빨랐다. 결과는?"
"열 건 중 일곱 건 일치. 두 건은 공식 기록에서 삭제된 거래야. 한 건은 아버지 장부에 아예 없어."
"삭제된 두 건은 누가 지웠는지 흔적이 있어?"
"양도 기록 자체는 있는데, 장부 쪽에만 빈 칸이야. 양도서에는 날짜가 찍혀 있고, 장부에는 해당 날짜 자체가 빠져 있어."
"양도서와 장부를 동시에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네."
"맞아. 한쪽만 지운 거니까. 서로 다른 손이야."
"없는 한 건은? 아버지가 모르는 거래라는 거잖아."
"양수인 코드가 JM-042야."
은솔이 0.5초 침묵했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JM은 우리 데이터베이스에 아직 없어. 등기부 검색해볼게."
"고마워. 하나 더 있어."
서아는 서류 묶음의 마지막 장을 뒤집었다. 뒷면을 확인하는 습관이었다. 연필 자국이 있었다. 지운 흔적이었다. 스탠드의 각도를 바꿔 빛을 비스듬히 비추자, 종이 위의 압흔이 드러났다.
한 글자가 보였다. 朱.
"서류 뒷면에서 한자 하나 나왔어. 朱. 연필로 쓰고 지운 자국이야."
"원본 확보 가능해?"
"불가. 여기서 반출은 안 돼."
"사진이라도 보내."
"보낼게. 빛의 각도별로 세 장 찍었어."
"법적 증거력은 없지만 방향은 잡혔어."
"은솔아."
"응."
"이 서류에 메모를 남기고 지운 사람이 있다는 거야. 이 열람실에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야."
은솔이 2초간 침묵했다.
"네가 보고 있는 걸 다른 사람도 봤다는 거네."
"봤거나, 만들었거나."
"서아야. 조심해."
"조심하고 있어."
통화를 끊고 사진을 전송했다. 서류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법무사 사무실의 규칙이었다.
열람실을 나오려는데 네 번째 캐비넷이 눈에 들어왔다. 잠겨 있었다. 라벨이 세 번째와 달랐다. '접근 제한'.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고문 승인 필요.'
한서진이 아니었다. 고문의 서명이 있어야 열리는 캐비넷이었다. 서아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없는 서류가 팔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수첩에 적었다. '朱 — JM-042 — 고문 승인.' 세 단어를 선으로 이었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연결이었지만, 선은 그어졌다.
복도로 나왔다. 뒤에서 카드키 잠금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 들어온 시간, 나온 시간, 머문 시간이 전부 기록되고 있었다. 서아는 그걸 알면서 걸었다. 기록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기록 안에서 뭘 찾았는지는 서아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