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절차라는 벽
본관 1층 로비. 오전 10시.
서아가 열람실로 향하는데 이선복이 막았다.
"마상구 고문께서 뵙겠다고 합니다."
서아가 멈추었다. 어제 복도에서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선 남자였다.
"장소가 어디입니까."
"본관 5층 접견실입니다."
5층. 18층이 아니었다. 한도윤의 층이 아니라 중간층이었다. 서아는 그 위치의 의미를 재었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중간에서 재는 사람.
접견실은 작았다. 소파 두 개, 테이블 하나, 창문 하나. 남향이라 오전 햇빛이 소파 팔걸이 위에 사선을 그리고 있었다. 마상구가 먼저 앉아 있었다.
"앉아."
같은 단어였다. 한도윤도 쓸 수 있는 단어였지만, 마상구는 의자를 가리켰다. 앉히는 것이었다. 한도윤은 앉히지 않았다. 그 차이가 컸다.
서아가 앉았다. 소파 끝에, 등을 붙이지 않았다.
"차를 들겠나."
"감사합니다."
마상구가 먼저 잔을 들었다. 보리차였다. 잔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아는 마상구가 마신 뒤에야 잔을 들었다.
마상구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서아가 규칙을 배웠다는 걸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이 집에 있으려면 절차를 지켜라."
마상구의 목소리는 한도윤과 달랐다. 한도윤은 선언했고, 마상구는 안내했다. 하지만 안내의 뒤에 경고가 있었다.
"절차를 지키면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못해."
서아는 그 문장의 무게를 쟀다. 보호가 아니라 체계 안에 넣는 말이었다.
"안 지키면 내가 건드린다."
"명심하겠습니다."
"싫어도 절차는 지켜. 그게 오래 간다."
마상구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화가 끝난 것이었다. 3분도 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전한 것은 명확했다. 규칙 안에 있어라. 그러면 살려두겠다.
접견실을 나왔다.
오후에 네 번째 캐비넷 열람을 신청했다. 오민재가 서류를 가져왔다.
"고문 승인이 필요합니다. 승인권자는 마상구 고문이십니다."
"승인 요청서를 작성하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목적란에 구체적으로 기재하실수록 승인이 빠릅니다."
서아는 승인 요청서를 작성했다. 목적란에 적었다. '아버지 채무 관련 원채권자 추적.' 거짓은 아니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저녁. 동관 복도에서 한서진과 마주쳤다. 식당이 아니라 복도였다.
"마상구 고문이 뭐라고 했어."
"절차를 지키라고 하셨어요."
한서진이 서아를 봤다. 시선의 각도가 바뀌었다.
"그 사람이 절차를 말했으면, 너를 아직 안 잘랐다는 뜻이야."
서아는 그 문장을 분해했다. '아직'이라는 시간의 단어. 지금은 안 잘랐지만 앞으로는 모른다는 것. 마상구의 부드러움이 칼집이라는 것을 한서진이 알려준 것이었다.
"고마워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는 안 하겠습니다."
한서진의 입이 0.3초 멈추었다. 서아는 돌아서서 302호로 걸었다. 등 뒤에서 한서진의 발소리가 반대 방향으로 멀어졌다.
수첩에 적었다.
'마상구: 절차를 지키면 보호, 안 지키면 자른다. 한서진: 아직 안 잘랐다는 뜻. → 마상구의 안내 = 유예.'
그 아래에 한 줄 더.
'네 번째 캐비넷 결재선 = 마상구. 정보에 접근하려면 마상구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서아는 수첩을 닫았다. 이 집의 벽은 콘크리트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