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벽 너머의 소리
새벽 1시 12분.
서아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네가 한 말을 기억해?' 한서진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억하려 할수록 멀어졌다. 병원 복도의 형광등만 깜빡일 뿐, 그 뒤가 잡히지 않았다.
서아는 눈을 떴다. 일어났다. 운동화를 신었다. 뛰어야 할 때 뛸 수 있도록. 첫날부터 이어온 습관이었다.
302호 문을 열었다. 복도가 어두웠다. 비상등만 켜져 있었다. 마지막 순찰이 47분 전에 지나갔다. 다음 순찰까지 44분.
복도 끝. 번호 없는 잠긴 문. 지문 인식기가 문 옆에 있었다. 서아는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들렸다. 낮은 웅웅거림이었다. 일정한 주파수. 서버 팬이 돌아가는 소리. 이 문 뒤에 기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바닥을 봤다. 문이 열리는 반경 안에 먼지 패턴이 달랐다. 부채꼴 모양으로 밀려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열리는 문이었다. 지문 인식기를 만지지 않았다. 인증 실패도 기록이었다. 40초. 충분했다. 돌아갔다.
낮에 오민재에게 물었다.
"건물 서버 관리 담당이 누구입니까."
오민재의 답이 0.5초 늦었다. 평소 0.2초 이내였다. 0.3초의 차이.
"건물 관리에 관한 질문은 이선복 의전팀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서버 관리는 건물 관리가 아니었다. 관할을 바꿔 넘긴 것이었다.
오후에 이선복에게 물었다.
"동관 3층 복도 끝에 번호 없는 문이 있던데, 거기가 어디인가요."
"동관 관리 구역입니다."
"관리 구역이면 청소 담당도 출입하는 곳입니까."
"관리 구역의 출입 권한은 별도입니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지만, 서아가 302호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이선복의 사무실 방향으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밤. 302호. 서아는 수첩을 펼쳤다. 순찰 주기를 적은 페이지를 찾았다. '47분'이라고 적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서아의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다른 기록은 전부 그대로였다. '47분'만 사라져 있었다.
종이 표면이 깨끗했다. 지우개 자국이 아니었다. 페이지를 빛에 비추어 봤다. 다른 페이지와 두께가 미세하게 달랐다. 종이 자체가 교체된 것이었다. 서아의 필체를 복제해 옮겨 적은 것이었다.
정교했다. 하지만 서아는 자기 글씨의 차이를 알았다. 'ㅅ'의 꼭짓점 각도가 2도 달랐고, 필압이 미세하게 약했다. 서아의 손이 아니라 서아의 글씨를 흉내 낸 손이었다.
"이 집에서 안전한 곳은 없구나."
수첩에 순찰 주기를 다시 적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넣었다. 47분. 종이에 적으면 사라지지만 머릿속에서는 지울 수 없었다.
서아는 눈을 감았다. 경고를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멈추거나 방법을 바꾸거나. 서아는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