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급식실에서 빈자리
4월 14일 화요일, 점심시간.
급식실이 시끄러웠다.
오늘 메뉴는 카레였다. 향이 강했다. 2층 복도에서부터 냄새가 올라왔다. 노란 향신료와 기름이 섞인 학교 급식 카레 특유의 냄새였다. 복도 끝에서부터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이들이 쟁반을 들고 느릿느릿 앞으로 갔다.
쟁반을 들고 줄에 섰다. 카레를 받으면서 밥 위에 소스가 올라가는 걸 봤다. 노란 소스 안에 감자와 당근이 보였다. 감자가 무른 날이었다. 숟가락으로 누르면 으깨질 정도로. 국은 미역국이었다. 김이 올라왔다.
'맛은 보통이다.'
"오늘 카레다." 박지훈이 뒤에서 말했다.
"응."
"카레 좋아해?"
"보통."
"보통이면 싫어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보통이야. 안 싫어하는데 안 좋아하는 거."
"그게 보통이 아니라 관심 없는 거잖아."
"카레에 관심이 필요해?"
"필요하지. 음식은 관심이 전부야. 관심 있으면 맛있어지고, 없으면 급식이 되는 거야."
"원래 급식인데."
"그래도."
쟁반을 들고 급식실 안을 훑었다.
박지훈이 왼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손을 흔들었다. 그쪽으로 가면 됐다. 늘 앉는 자리. 창가 쪽, 세 번째 테이블.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였다.
걸음이 멈췄다.
오른쪽 구석이었다. 강수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늘 앉는 자리. 창에서 가장 먼 구석. 주변에 빈 공간이 있었다. 한 자리가 아니라 두 자리 폭으로 비어 있었다.
'저 사람은.'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 강수현의 쟁반 위에 카레가 있었다. 숟가락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혼자 먹기 시작하기 전의 정지. 머리가 살짝 숙여져 있었다. 주변을 보지 않는 각도.
생각하기 전에 발이 움직였다.
박지훈이 손을 흔들고 있는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급식실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발밑에 급식실 바닥 타일이 규칙적으로 지나갔다.
강수현 앞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쟁반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가 났다.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의자 다리가 급식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저 사람은.'
주변 테이블에서 숟가락이 멈추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렸다. 파도처럼. 가까운 테이블에서 먼 테이블로.
강수현의 숟가락이 멈췄다. 아직 들지도 않은 숟가락이었다. 윤시하를 봤다. 가늘게 뜬 눈이 잠깐 넓어졌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놀란 것이 돌아오는 데 0.5초. 빠른 회복이었다. 그런데 눈 아래 근육이 살짝 풀려 있었다.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부분.
"왜 여기야."
"여기 비었으니까."
"다른 데도 비어 있잖아."
"여기가 더 비었으니까."
"그게 무슨 논리야."
"논리는 아닌데. 앉고 싶었으니까."
"앉고 싶으면 앉는 거야?"
"아니면 뭐, 허락 받아야 해?"
"아니."
"그럼 됐잖아."
강수현이 윤시하를 1초 더 봤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절이 아니었다.
윤시하도 먹기 시작했다.
카레를 한 숟가락 떴다. 달콤하고 약간 매콤한 학교 급식 카레의 맛이었다. 감자가 입 안에서 으깨졌다. 숟가락이 식판에 닿는 소리. 국을 마시는 소리. 미역국이 짭짤했다. 대화가 없었다. 없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침묵이었다. 같이 있는데 말이 없어도 괜찮은 시간. 급식실의 소음이 두 사람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저 사람은.'
다른 테이블의 웃음소리,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소음 안의 고요.
"카레 맛있어?"
"보통."
"보통이면 맛있는 거야, 여기서는."
"기준이 낮네."
"급식인데 뭘."
"그럼 뭐가 맛있어? 여기서."
"돈까스 나오는 날. 그날만 기대해."
"돈까스 좋아하는 거야?"
"좋아한다기보단 덜 실망하는 거지."
강수현이 콧바람을 내뱉었다. 웃은 건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았다. 입꼬리가 살짝 움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숟가락이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걸 보면 불편한 건 아니었다.
"카레 감자 무른 거 괜찮아?"
"싫어해?"
"아니. 물어보는 거야."
"무른 게 나아. 씹는 게 귀찮으니까."
"게으른 거 아니야?"
"효율적인 거야."
"효율적으로 급식 먹는 사람 처음 봐."
"많은 걸 처음 보네."
급식실 전체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소음이 한 박자 줄었다. 윤시하가 강수현 옆에 앉는 걸 본 아이들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자기 밥을 먹었다. 소음이 돌아왔다. 숟가락 소리, 의자 소리, 웃음 소리.
돌아왔지만 뭔가가 달라진 건 분명했다. 교실의 빈 자리 같은 것이 급식실에서도 있었는데, 지금 채워졌다. 비어 있어야 하는 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대각선 테이블이 보였다.
'저 사람은.'
김하늘이 이수빈과 함께 앉아 있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수현과 윤시하가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수빈이 김하늘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면서 물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읽혔다.
"괜찮아?"
"괜찮아."
김하늘의 미소가 없는 얼굴이 한 박자 들어왔다가 나갔다. 입술이 일자로 됐다가 다시 곡선이 됐다. 그 전환이 매끄러웠다. 연습된 전환이었다. 그리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윤시하는 그걸 봤다.
강수현은 보지 않았다. 카레 위에 숟가락이 움직이는 것만 보고 있었다.
"급식 줄에서 봤는데."
강수현이 말했다. 카레를 먹으면서. 숟가락을 멈추지 않고.
"뭘."
"사람들이 비켜나는 거. 나 지나갈 때."
"알고 있었어?"
"모를 리가 없잖아." 강수현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식판 위에 가볍게 놓았다. "근데 상관없어."
"상관없어?"
"익숙하니까."
"익숙하면 괜찮은 거야?"
"괜찮은 건 아닌데 신경 쓸 에너지가 없어."
익숙하다는 말도, 에너지가 없다는 말도 걸렸다. 그걸 더 묻지는 않았다. 지금 여기서 물으면 강수현이 일어날 듯싶었다. 급식실이었다.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밥을 다 먹었다. 강수현이 먼저 일어섰다. 쟁반을 들고 반납구로 갔다. 줄에 서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걸음이 평소와 같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윤시하도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급식실을 나오면서 복도를 걸었다. 계단 쪽으로 가는데 앞에 장면 하나가 보였다.
'저 사람은.'
최민재가 담임 백선영 선생님 앞에 서 있었다. 복도 구석, 교무실 근처였다. 거리가 있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최민재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보고서 형식처럼 보였다. 백선영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지훈이 옆에 왔다.
"봤어?"
"최민재?"
"응. 담임한테 뭔가 보고하고 있어."
"두고 보자."
"야, 아까 급식실에서 수현이 옆에 앉은 거."
"응."
"대단하다."
"비어 있으니까 앉은 거야."
"그걸 급식실 전체가 봤어."
"보면 어때."
"선언이야 그건. 너 그거 알지?"
"선언이 아니라 점심이야."
"점심치고 무거운 점심이었어."
오후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었다.
교문을 나오면서 언덕을 봤다. 달빛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오늘은 들르지 않았다. 매일 가면 그것도 패턴이 되니까. 패턴이 되면 의무가 되고, 의무가 되면 편의점이 편의점이 아니게 된다.
언덕 아래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4월 중순의 바람이었다. 3월보다 확실히 따뜻했다. 학원가 골목에서 붕어빵 냄새가 올라왔다.
4월에 붕어빵을 파는 건 이 동네뿐일 것 같았다. 할머니가 화덕 앞에 앉아서 반죽을 넣고 있었다.
'여기가 편하다.'
연서동이 저녁으로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