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지 마."
바르가스의 목소리는 낮았다. 낮되 무거웠다. 거인이 지면에 말뚝을 박는 것처럼.
시안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통곡의 골짜기 입구는 지도상 표기보다 좁았다. 양쪽 절벽이 기묘하게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안개가 새어 나왔다. 보통의 안개가 아니었다. 망각의 안개와는 다른 무게가 있었다. 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피부에서 막히는 것처럼 눌렸다. 썩은 피 냄새가 그 속에 짙게 배어 있었다.
시안은 나침반 로드스톤을 꺼냈다. 바늘이 정북을 가리키지 않았다. 두 방향 사이에서 흔들리다 결국 골짜기 안쪽으로 기울어졌다.
"시안."
"들려."
"그러면 멈춰."
시안은 그제야 뒤를 돌았다. 바르가스가 세 걸음 뒤에 서 있었다. 방패를 등에 메지 않고 손에 쥐고 있었다. 전투 자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경고였다.
"이 땅 알아?" 바르가스가 물었다.
"통곡의 골짜기. 200년 전 망령의 대폭동 때 핵심 전장. 잔상 현상으로 현재도 지형 뒤틀림 진행 중. 의회가 봉인했으나 최근 봉인 훼손 정황 확인." 시안은 로드스톤 바늘을 눈으로 훑으며 답했다. "더 필요해?"
"그 땅 안에 내 전우들이 묻혀 있어."
시안은 손을 내렸다.
"여기서 죽은 병사들의 수." 바르가스의 턱이 짧게 당겨졌다. "나는 기억하고 있어. 이름 하나하나 다. 그 미련이 얼마나 짙은지도."
"그래서 막는 거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거야."
시안은 입 안쪽을 혀로 눌렀다. 바르가스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래된 거리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었다. 가까이 오는 것을 이미 수백 번 허락하지 않기로 결심한 눈.
"나는 건드리러 가는 게 아니야."
"네가 가는 방식이 다 그래 보여."
그 말이 짧게 박혔다. 시안은 반박하지 않았다.
"영혼의 파장이 올라오고 있어." 시안이 로드스톤을 앞으로 내밀었다. "바늘 봐. 여기가 아니라 안쪽에서 무언가가 치솟고 있다는 거야. 저절로 생긴 게 아니야. 누군가 골짜기를 열었고, 그 파장이 밖으로 새고 있어."
"알아."
"알면서 막아?"
"알기 때문에 막는 거야." 바르가스가 한 발 앞으로 옮겼다. "이미 파장이 불안정해. 무리하게 진입하면 지형이 굴절된다. 뫼비우스 지형에 갇히면 정화의 등불 없이는 못 나와."
시안은 외투 안을 더듬었다. 손가락이 작은 유리 용기에 닿았다. 안에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있어."
바르가스의 눈썹이 약간 움직였다.
"어디서 구했어."
"레나한테."
"그 여자가 팔았을 리 없어. 정화의 등불은 의회 관리 품목이야."
"정식 경로가 아니면 어디서 나왔겠어." 시안이 유리 용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어쨌든 있어. 가겠다는 거야."
"혼자는 안 돼."
"따라올 거야?"
바르가스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패를 등에 묶기 시작했다. 끈이 조여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시안은 돌아서서 골짜기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개가 발목을 붙드는 것처럼 두터웠다. 두 걸음을 내딛자 뒤편 입구가 흐릿해졌다. 잔상 현상이 이미 시작된 구간이었다. 시안은 로드스톤을 앞으로 들고 바늘의 기울기를 확인했다. 골짜기 안에서 바늘은 다르게 움직였다. 입구에서보다 더 빠르게. 더 불규칙하게.
"발 밑." 바르가스가 등 뒤에서 낮게 말했다.
시안이 시선을 낮추자 발아래가 늪이었다. 단단해 보였던 지면이 발에 압력을 주자 스펀지처럼 꺼졌다. 진흙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이 구간은 미련 밀도가 높아." 바르가스가 시안 옆에 붙어 걸었다. 그의 발은 훨씬 깊이 빠졌다. 그런데도 걸음 속도는 변하지 않았다. "체중 분산해서 걸어."
"알아서 해."
"체중 분산 못 하면 빠져."
"……알겠어."
안개 속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바람이 좁은 통로를 지나는 것처럼 얇게 울렸는데, 그 속에 음절의 윤곽 같은 것이 어렴풋이 섞여 있었다. 시안은 로드스톤 바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공명 현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안은 외투 소매 안쪽으로 오른손을 밀어 넣어 왼쪽 팔뚝을 찾았다. 손가락으로 살을 짓눌렀다. 통증이 깔끔하게 박혔다. 목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저기."
바르가스가 한쪽을 가리켰다. 늪 가운데에 무언가 솟아 있었다. 처음에는 바위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형태가 달라졌다. 반쯤 잠긴 갑옷 조각. 그 위로 녹색의 이끼가 덮여 있었고, 이끼 아래로 희미한 발광이 새어 나왔다.
메모리아였다.
"전장에서 죽은 병사가 남긴 거야?" 시안이 물었다.
바르가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갑옷 조각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이 방패 끈 쪽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이름 알아?"
"……리엔."
낮고 갈라진 발음이었다.
"5중대 기수. 내가 직접 이름 불러서 전선에 세운 애야."
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드스톤 바늘이 갑옷 조각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파장의 진원지가 맞았다.
"미련 내용 알아?"
"몰라도 돼."
"알아야 해결해."
바르가스가 시안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이 처음으로 직접 시안을 눌렀다.
"죽은 자의 미련은 안식이 필요할 뿐이야. 도구로 쓰일 물건이 아니야."
시안은 그 눈을 받아냈다.
"나는 도구로 쓰려는 게 아니야."
"네가 쥔 그 로드스톤이 리엔의 파장을 추적하는 데 쓰이고 있잖아."
"파장을 추적해야 미련의 내용을 파악하고, 파악해야 해결이 돼. 그게 일이야."
"일." 바르가스가 그 단어를 씹듯 되뇌었다. "그 애한테는 일이 아니었어."
시안은 로드스톤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바르가스. 나는 여기 있는 영혼들을 착취하러 온 게 아니야. 골짜기가 열려 있어. 미련이 불안정하게 새고 있어. 이 상태가 유지되면 잔상 현상이 골짜기 밖으로 번져. 그러면 리엔 포함해서 여기 묻힌 애들 전부 뒤틀린 공간 안에서 갇혀. 영원히."
바르가스의 입이 닫혔다.
"그게 네 전우들이 원하는 거야?"
긴 침묵이었다. 안개 속 소리가 다시 울렸다. 바르가스는 앞을 보다가 늪을 보다가 갑옷 조각을 보았다.
그리고 옆으로 비켰다.
시안이 다가갔다. 갑옷 조각 위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뻗으려 하는 순간, 로드스톤 바늘이 격렬하게 회전했다. 바늘이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짧게 흔들리다 고정되었다.
시안이 뒤를 돌았다.
바르가스가 코트 안에서 로드스톤을 꺼내 들고 있었다. 바르가스의 로드스톤이었다. 고장 난 것이라고 했다. 바늘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바늘이 있었다. 부러진 것도 아니었다. 두 개였다. 하나는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별개로 움직이며 아무 방향도 가리키지 않고 공중에서 떨고 있었다.
"그거."
"부러진 거야." 바르가스가 빠르게 집어넣었다.
"두 개야."
"제조 불량이야."
"로드스톤에 바늘이 두 개면 제조 불량이 아니잖아. 그건 추적형이야. 특정 파장에 묶어서 쓰는 군용." 시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바르가스. 너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골짜기가 열린 거."
바르가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골짜기를 연 게 누군지도?"
늪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엔 하나였다. 이어서 둘. 셋. 진흙 표면이 부풀어 올랐다. 거품처럼 올라왔다가 터지는 게 아니었다. 굳은 형태로 솟아올랐다. 손이 먼저였다. 팔이 뒤따랐다. 안개 속에서 형체가 잡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망령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시안이 빠르게 숫자를 셌다. 여덟. 열. 더 솟아올랐다. 늪 곳곳에서 동시에. 그들은 서 있지 않았다. 시안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간격을 좁혔다. 뒤쪽에서도 올라왔다.
포위였다.
바르가스가 방패를 내리며 시안 앞으로 쳤다.
시안은 외투 소매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오른손 손가락이 왼쪽 팔뚝의 살을 잡았다. 공명 현상이 급격히 치솟고 있었다. 수십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뇌 뒤편이 뜨거워졌다. 시안은 손가락으로 살을 쥐어뜯었다.
통증이 날카롭게 박혔다.
목소리가 한 겹 물러났다. 한 겹뿐이었다. 망령들이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늪을 통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몇 개나 버텨?" 바르가스가 방패를 단단히 잡으며 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시안이 이를 악물었다. "네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이건 함정이야.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린 거잖아."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망령 하나가 방패에 부딪혔다. 둔탁한 충격음이 늪 위로 퍼졌다. 바르가스가 버텼다. 그러나 늪 속에서 발이 조금 밀렸다.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 해."
"시안." 바르가스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가 아니었다. 다른 무게였다. "정화의 등불. 지금 써."
시안의 손이 멈췄다.
망령 열다섯 이상. 미련 밀도 높음. 공명 현상 진행 중. 정화의 등불 사용 가능. 하지만 범위가 좁아. 전부를 커버하지 못한다. 바르가스 방패 방어 유효 시간 미확인. 로드스톤 파장 추적 중단됨.
그리고 바르가스가 고장 났다고 한 로드스톤. 두 개의 바늘. 군용 추적형. 특정 파장에 묶어 쓰는 것.
어떤 파장에.
시안의 손가락이 팔뚝을 놓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늪 너머, 안개 안쪽 가장 깊은 곳.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데 그쪽에서 무언가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공명 현상이 아니었다.
시선이었다.
"바르가스." 시안이 낮게 불렀다. "여기 묻힌 거 리엔 혼자가 아니야."
바르가스의 등이 굳었다.
"골짜기를 연 게 누군지 알아. 아직 안에 있어." 시안은 눈을 좁혔다. "그리고 그게 인간인지 확신 못 하겠어."
두 번째 방패 충격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바르가스의 발이 더 깊이 밀렸다.
바르가스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