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균열
팀이 무너지는 소리는 크지 않다. 발소리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다.
☆☆
서은아의 세계. 이준이 모르는 세계.
연습실 거울 앞에 세 사람이 섰다. 서은아. 유리아. 하은. 다섯이던 자리에 셋. 거울에 비친 빈 공간이 떠난 두 사람의 자리를 보여준다. 왼쪽 끝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 소희의 자리와 민서의 자리. 거울은 빈 자리를 채워주지 않았다.
마지막 앨범 '별의 궤도'. 안무 리허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연습실에 붙어 있었다.
연습실 바닥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5인 포메이션의 위치 표시. 빨간 테이프. 걸레질에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3인으로 바뀐 뒤에도 떼지 않았다. 누구도 떼자고 말하지 않았다. 떼면 인정하는 것이니까.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음악이 시작됐다. 스피커에서 전주가 흘러나왔다. 피아노 네 마디. 이 전주를 들을 때마다 서은아의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7년간 수백 번 들은 전주. 서은아가 센터에 섰다. 유리아가 왼쪽. 하은이 오른쪽. 다섯 명 포메이션을 세 명으로 재구성했다. 안무감독이 새로 짠 동선. 빈 자리를 채우려면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더 넓게 벌려야 하고, 더 빨리 돌아야 하고, 더 크게 벌어져야 한다.
1절. 동작이 맞았다. 7년의 근육 기억이 몸을 움직였다. 감정과 별개로. 팔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은 신경이 아니라 반복이 시키는 일이다. 서은아의 운동화가 바닥을 밀었다. 마찰음이 거울에 반사되어 돌아왔다. 거울 속에서 세 사람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7년의 시간이 만든 정밀함이었다.
2절. 유리아가 동작을 틀렸다. 왼팔이 올라가야 할 타이밍에 오른팔이 올라갔다. 거울 속에서 세 사람의 동작이 어긋났다. 유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틀린 채로 계속 춤을 췄다. 예전이었으면 멈추고 "언니, 다시"라고 했을 것이다. 서은아가 다가가려 했다. 연습실에서 늘 그래왔듯이. 유리아의 어깨를 잡고 박자를 맞추던 것처럼.
유리아가 먼저 돌아섰다.
"혼자 할 수 있어."
"유리아 ─"
"괜찮다고 했잖아."
유리아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것이 더 아팠다. 떨리면 감정이 있는 것이고, 떨리지 않으면 결정이 끝난 것이다. 서은아는 그 차이를 알았다.
유리아가 구석으로 갔다. 물병 뚜껑을 열었다. 세 사람밖에 없는 연습실에서 뚜껑 여는 소리가 울렸다. 뚜껑 돌리는 소리. 물 넘기는 소리. 뚜껑 닫는 소리. 세 개의 소리가 순서대로 연습실을 채웠다.
서은아는 센터에 서 있었다. 가장 많이 보이는 자리. 가장 외로운 자리. 거울 속의 서은아가 서은아를 보고 있었다. 땀이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닦지 않았다. 소희 언니가 있었다면 수건을 던져줬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하은이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운동화 바닥이 연습실 마루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언니, 유리아 언니 연습 끝나고 혼자 있었어요."
"알아."
"눈이 빨갰어요."
"...알아."
"언니들 다 아픈 거 알아요."
서은아가 하은을 봤다. 스물한 살의 눈이 붉었다.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법을 서은아에게 배운 아이. 서은아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서은아를 보면서 배운 것이다. 그것이 더 미안했다.
"근데 저도 아파요."
서은아는 하은의 어깨를 잡았다. 작은 어깨. 스물한 살의 어깨에 실린 무게가 서은아의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울지 않으면서 떨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더 아파요."
서은아는 손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하은이 무너질 것 같았다. 놓지 않으면 서은아가 무너질 것 같았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기 전에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센터의 역할이다. 소희 언니도 이 연습실에 서 있었다. 같은 거울 앞에. 같은 테이프 위에. 그때는 다섯이었다.
연습이 끝났다. 연습실 시계가 오후 6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3시간. 세 사람이 함께 춘 마지막 리허설이 3시간이었다. 유리아가 먼저 나갔다. 가방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평소의 유리아라면 묶고 나갔을 것이다. 문이 닫혔다. 하은도 나갔다. "언니, 먼저 갈게요." 작은 목소리. 돌아보면서. 유리아는 돌아보지 않았고 하은은 돌아보았다. 문이 다시 닫혔다.
서은아 혼자 연습실에 남았다. 에어컨이 꺼져 있었다. 땀이 식으면서 등이 차가워졌다. 연습실의 공기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섰다. 스피커를 껐다. 반주 없이. 노래를 불렀다. '별의 궤도'. 카메라 없는 연습실에서. 관객 없는 무대에서. 다섯 명의 하모니가 있어야 할 곳에 한 사람의 목소리만.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고, 브릿지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하모니 파트가 비어 있었다.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주파수가 연습실의 빈 공간에 울렸다.
목소리가 복도로 새어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서은아는 그것을 몰랐다.
☆
복도에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터틀넥. 차콜 코트.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복도의 형광등이 코트 위에 차가운 빛을 깔았다.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노래와 복도의 정적이 문틈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도윤이 옆에서 속삭였다.
"형, 여기 왜 ─"
도윤이 말을 멈췄다. 이준의 표정을 봤다. 7년 동안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통제도 아니고 계산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멈춰 있는 표정. 눈이 문틈을 향하고 있었다.
이준은 복도에서 들었다. 빈 연습실에서 나오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블랙박스에서 소희가 부르던 콧노래와 같은 멜로디. 같은 노래. 다른 목소리. 소희의 허밍은 공포를 누르는 노래였다. 서은아의 노래는 빈 자리를 채우려는 노래였다. 같은 멜로디가 다른 감정을 싣고 있었고, 이준은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13화의 블랙박스 허밍과 지금의 노래를 겹쳐서 들었다. 두 노래 사이에 소희와 서은아가 있었다.
브릿지에서 서은아의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들었다. 혼자서 부르는 하모니. 채워지지 않는 주파수. 그 빈 공간이 복도까지 나와서 이준의 코트 사이로 스며들었다.
노래가 끝났다. 마지막 음이 연습실 벽에 부딪혔다가 사라졌다.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복도도 조용해졌다.
이준이 돌아섰다. 복도를 걸어 나갔다. 도윤이 따라왔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복도에 울렸다.
차에 타고서야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네."
"왜 대답이 그래."
"거짓말인 거 아니까요."
이준은 도윤을 봤다. 도윤이 룸미러 너머로 이준을 봤다. 7년의 거리가 0미터가 된 순간.
"맞아. 거짓말이야."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도윤이 시동을 걸었다. 더 묻지 않았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연습실이 있는 건물이 룸미러에서 작아졌다. 이준은 룸미러를 보지 않았다. 돌아서면 보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서은아의 노래는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돌아서도 들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