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장부 밖의 전쟁
소금에 이어 직물 가격이 올랐다. 그다음은 철. 그다음은 약초.
남부에서 올라오는 모든 물자의 가격이 일제히 치솟았다. 하나둘이 아니다. 전부. 소금만 끊었을 때는 우연일 수 있었지만, 직물과 철과 약초까지 동시에 오른 것은 선전포고.
에스텔라가 양피지 위에 가격 추이를 정리했다. 세로축에 가격, 가로축에 날짜. 잉크로 점을 찍고 선으로 이었다. 곡선이 전부 같은 시점에서 꺾여 올라가고 있었다. 아드리안이 처음 영지를 방문한 날을 기점으로.
「봉쇄가 아닙니다. 고사입니다.」
카일과 토마스가 탁자 맞은편에 서 있었다. 에스텔라는 토마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새벽에 본 것을 꺼내기엔 아직 이르다. 패를 보여주는 것은 한 번이어야 한다.
「천천히 말려 죽이는 겁니다. 칼을 쓰면 황실이 개입하지만, 가격을 올리는 건 시장의 원리라고 변명할 수 있으니까요.」
카일이 물었다.
「막을 수 있습니까.」
「밖에서 사오는 걸 막을 순 없어요. 하지만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건 안에서 만들면 됩니다.」
양피지에 목록을 적었다. 직물은 양을 기르면 된다. 철은 영지 북쪽 늪지에서 사철을 걸러낼 수 있다. 약초는 심으면 된다.
「하지만 전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양이 자라려면 계절, 사철은 제련 기술, 약초는 두 달.」
에스텔라가 깃펜을 멈추고 목록을 다시 보았다.
「소금만이 자급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소금이 없으면 나머지도 의미가 없어요. 식량이 썩으니까.」
카일이 지도를 펼쳤다.
「동부 우회로는요? 지난번에 점선을 그으셨잖습니까.」
에스텔라가 고개를 저었다.
「시도했습니다. 어제 토마스를 통해 동부 곡창지대의 상인 두 곳에 연락을 넣었는데, 오늘 아침 답이 왔어요.」
양피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짧은 회신 두 장.
「둘 다 거절. 대공의 통보가 동부에까지 미쳤습니다. 카르테시아와 거래하는 상단은 백반 공급에서 제외한다는 조건이 남부만이 아니라 동부에도 걸린 거예요.」
카일의 주먹이 쥐어졌다.
「사방을 막은 겁니까.」
「네. 점선을 실선으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길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길 위에 대공의 이름이 깔려 있는 거예요.」
처음이었다. 에스텔라가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 사형대에서도, 모르간 앞에서도, 아드리안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답을 만들어냈다. 장부를 열면 숫자가 말해주었다. 시스템을 세우면 문제가 풀렸다.
하지만 지금은 시스템 밖에서 공격하고 있다. 장부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하니까 막히는 것.
영지민의 동요가 시작되었다.
장시에서 물건 값이 오르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시범 영지가 뭐가 좋으냐! 물건도 못 사는데!」
「대공 영지에서는 소금이 넘친다더라!」
이전에 대공 쪽으로 떠난 가구들의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사실인지 과장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옆집의 밥상은 항상 풍성해 보이는 법이다.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장시 구석에 다시 보였다. 밀정. 대공의 눈. 에스텔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 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밀정이 입꼬리를 올렸다. 조소.
카일이 밀정을 보고 다가오려 했다. 에스텔라가 팔을 잡았다. 팔뚝이 돌처럼 단단했다.
「놔두세요.」
「저자가 정보를 빼돌리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눈을 막으면 대공이 다른 눈을 보냅니다. 모르는 눈보다 아는 눈이 낫습니다.」
카일의 팔에서 힘이 풀렸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참은 것이다.
같은 시각, 제국 남부. 대공 레오폴트의 서재.
보좌관이 보고를 올렸다.
「카르테시아 동부 우회 시도가 실패했습니다. 동부 상단 두 곳이 각하의 조건대로 거절했습니다.」
레오폴트가 벽난로 앞에 서 있었다. 불빛이 깊은 주름을 비추었다. 나이가 아니라 계산이 새긴 주름.
「예상대로군.」
보좌관이 이어서 말했다.
「다만, 영지 내부에서 방앗간을 개량하고 사용료를 내렸다고 합니다. 인근 마을에서 밀을 가져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요.」
레오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용료를 내렸다고? 영주가?」
「네. 24분의 1로.」
「……독점을 쥐고 있으면서 사용료를 내리는 영주는 처음이군.」
침묵이 흘렀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재미있는 여자야.」
레오폴트가 벽난로를 등졌다.
「재미있으니까 더 빨리 끝내야 한다. 경제로 안 되면 정치로 꺾어라. 명사회의 안건을 올려.」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시범 영지 지정의 부당성에 관한 심의 요청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셀레네에게 연락해라.」
보좌관의 눈이 커졌다.
「성녀 셀레네 말씀이십니까?」
「숫자로 오면 숫자로 막겠지. 그러면 숫자 밖의 것을 보내면 된다.」
서재 문이 닫혔다.
카르테시아 영지. 밤이 깊었다.
에스텔라가 장부를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숫자가 답을 주지 않았다.
시스템은 세웠다. 복식부기도, 직무 분리도, 배급 장부도, 바날리테 개혁도. 그런데 시스템 밖에서 공격하고 있다.
깃펜을 놓았다. 손가락에 잉크가 말라붙어 있었다.
문 앞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들어와도 됩니다, 기사단장님.」
문이 열렸다. 카일이 서 있었다. 갑옷을 벗은 채. 맨옷 차림에 검만 차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 갑옷 없는 카일은 조금 더 사람처럼 보였다. 상처가 더 많이 보였고, 어깨가 더 넓어 보였고, 눈 밑의 그림자가 더 짙었다.
「잠을 자십시오.」
「자면 해결됩니까?」
「안 자면 쓰러집니다. 쓰러지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에스텔라가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이 남자의 눈 밑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기사단장님도 안 주무셨잖아요.」
카일이 말을 삼켰다. 시선을 돌렸다. 창밖을 보았다.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내일도 싸워야 하니까. 오늘은 쉬십시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 문 앞에서 멈췄다.
에스텔라의 눈이 뜨거워졌다.
이 사람은 비용도 이익도 아닌, 걱정이라는 감정을 주고 있어. 장부에 적히지 않는 항목을.
빵 한 조각이 접시 위에 그대로 있었다.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먹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저 빵을 가져다준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숫자가 답을 줬다. 지금은 아니다.
눈가를 손등으로 눌렀다. 잉크 자국이 볼에 묻었다. 울지 않았다. 에스텔라 폰 카르테시아는 울지 않는다. 하지만 눈이 뜨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새벽, 아드리안의 긴급 서한이 도착했다.
「대공이 남부 상단 연합에 공식 서한을 보냈습니다. 카르테시아와 거래하는 상단은 백반 공급에서 제외한다. ——시간이 없습니다.」
에스텔라가 서한을 접었다.
대공은 자기 백반 독점을 무기로 상단들을 협박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백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직 모른다.
서한을 불꽃 위에 올렸다. 종이가 타들어 갔다. 재가 바닥에 떨어졌다.
카일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기사단장님. 아침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에스텔라가 문을 열었다. 밤새 서 있어서 눈 밑의 그림자가 더 짙어져 있었지만, 시선은 흐려지지 않았다.
「대공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제로 안 되면 정치로 올 겁니다.」
카일이 대답했다. 짧게.
「검을 닦아 두겠습니다.」
밖에서 닭이 울었다. 방앗간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싸울 수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