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의 공기가 무거웠다.
강화도로 향하는 국도는 가로등조차 드문드문 끊겼고, 헤드라이트가 훑고 지나가는 아스팔트 위로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하은은 조수석에 앉아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봤다.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USB가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세진이 목숨 걸고 빼낸 소울코인 거래 내역. 지난 삼 일간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졸리면 자도 돼."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말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턱 선이었고, 운전할 때 습관처럼 왼쪽 팔꿈치를 창틀에 걸치는 버릇까지 그대로였다.
K. 그가 자신을 부른 이름.
"안 졸려요."
하은은 창밖을 봤다. 민통선 검문소를 지난 건 이십 분 전이었다. K가 차 안에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군인들은 차량 번호만 확인한 뒤 곧바로 차단기를 올렸다. 삼십 초도 걸리지 않은 그 과정이 목 뒤를 서늘하게 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곧 알게 된다."
K의 대답은 늘 그런 식이었다. 질문을 받으면 반쯤만 열어 보이는.
차가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K의 옆얼굴이 계기판 불빛에 일렁였다. 관자놀이 위로 흰 머리카락이 서너 가닥 섞여 있었다. 하은의 시선이 거기에 머물렀다. 여덟 살 겨울, 아버지가 서재에서 논문을 쓰다 고개를 들었을 때 형광등 아래 유독 하얗게 빛나던 새치가 떠올랐다. 아빠 머리에 은색 실이 있어, 하고 손가락으로 집어 뽑으려 했더니 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숙여줬다. 뽑힌 머리카락을 창가에 비춰 보던 손끝의 감촉까지 선명했다. 하은이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빠가 맞다면."
입술이 먼저 움직이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알았다.
"왜 이제 나타난 거예요."
K가 핸들을 돌렸다.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이었다. 나뭇가지가 차 지붕을 긁는 소리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네가 준비될 때를 기다렸다."
"준비요?"
"네 눈이 완성될 때."
하은의 왼손이 귀 뒤로 올라갔다. 타투 위를 손가락 끝이 스쳤다. 지난번 벙커에서 푸르게 빛나던 그 자리. 지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피부 아래 뭔가가 잠들어 있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차가 멈췄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포대 진지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 벽면에 이끼가 두텁게 덮여 있었고, 입구 위에 녹슨 철판이 달려 있었는데 글씨는 이미 지워져 읽을 수 없었다.
K가 먼저 내렸다. 하은도 뒤따랐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풀 냄새와 바닷바람이 뒤섞인 강화도 특유의 냄새.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갯벌에 갔을 때 맡았던 것과 같았다.
"따라와."
K가 입구 옆 벽면에 손을 대자 콘크리트 틈새에서 파란 빛이 한 줄기 흘렀다. 생체 인식이었다. 벽이 안쪽으로 밀리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계단 벽면에는 형광등 대신 바닥에 매립된 청색 LED가 줄지어 빛나고 있었다.
하은이 첫 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발밑에서 미세한 떨림이 올라왔다. 지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가동되고 있었다. 열두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복도가 나타났고, 복도 끝에는 유리문이 있었다.
유리문 너머가 보이는 순간 하은의 발이 멈췄다.
실험실이었다. 그것만은 아니었다. 복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지하 공간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위층은 현대식 실험실—모니터와 서버 랙, 배양 캡슐이 줄지어 있었고, 아래층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제단이 놓인 고대의 의식 공간이었다. 두 층을 연결하는 수백 개의 광섬유 케이블 안에서 푸르거나 붉은 빛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혈관 속을 도는 피처럼.
"뭐예요, 이게."
"네 아버지의 작품이다."
K가 유리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체온과 정확히 같은 온도. 숨을 들이마시면 혀끝에 금속 맛이 미세하게 감돌았다.
"내 아버지가 이걸 만들었다고요?"
"서정환. 대한생명공학연구소 초대 연구실장."
K가 실험실 중앙의 콘솔 앞에 섰다.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리자 벽면 전체가 스크린으로 바뀌었다. 하은의 아버지 서정환의 젊은 시절 사진, 논문 목록, 연구 일지가 줄줄이 떠올랐다.
"아빠는 실종된 거였어요. 십오 년 전에."
"실종이 아니었다."
K가 돌아섰다. 그의 눈이 하은을 똑바로 봤다. 홍채에 박힌 갈색 점 하나까지 아버지와 동일했다.
"나는 이곳에 있었다. 처음부터 줄곧."
하은의 손이 주머니 안에서 USB를 움켜쥐었다. 금속 모서리가 손바닥에 박혔다.
"그럼 왜."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연락 한 번 없었어요. 엄마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K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콘솔을 조작해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영혼 전이 기술의 설계도. 그 위에 '프로젝트 라자로 — 1단계: 영혼 추출 및 보관'이라는 제목이 찍혀 있었다.
"내가 이 기술을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K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콘솔 불빛이 얼굴 아래쪽을 비추면서 눈 아래 그림자가 깊어졌다.
"죽음은 진화의 발목을 잡는 족쇄일 뿐이다. 하은아, 넌 그 족쇄를 풀 도구야."
도구.
그 단어가 귀를 통과해 가슴팍 어딘가에 박혔다. 하은은 한 발 물러섰다. 등이 유리벽에 닿았고, 차가운 감촉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도구라고요?"
"네 눈은 영혼 파장을 시각화한다. 그건 1차 기능에 불과해."
K가 계단을 내려갔다. 하은을 아래층으로, 제단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화강암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표면에 무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갑골문과 회로도가 뒤섞인 듯한 형태.
"2차 기능은 영혼 직조다. 분리된 영혼을 특정 패턴으로 엮어 새로운 구조체를 만드는 것."
하은의 귀 뒤 타투가 미세하게 열을 내기 시작했다. 아직 빛나지는 않았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간지러움이 번졌다.
"아빠."
하은이 그를 불렀다. 처음으로. 입 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아빠가 만든 게 그림자 이사회잖아요. 이 기술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어요. 재하도—"
"재하의 일은 내 의도가 아니었다."
K의 목소리에 균열이 갔다. 찰나였다. 그가 돌아서서 제단 옆 벽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숨겨진 통로가 열렸다. 더 깊은 지하로.
"따라와. 보여줄 게 있다."
하은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서 USB의 모서리가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세진이 빼낸 데이터 안에는 영혼 거래 내역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하은이 아직 확인하지 못한 폴더가 하나 있었다. 'SD_ORIGIN'이라는 이름. 아버지의 이니셜.
"보여주기 전에 하나만."
하은이 USB를 꺼내 들었다. K의 시선이 그 위에 멈췄다.
"이 안에 아빠 이름으로 된 폴더가 있어요. 뭐가 들어 있는 거예요."
K의 표정이 변했다. 미세하게. 눈꺼풀이 한 번 떨렸고, 입술 양쪽 끝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삼 초도 안 되는 변화.
"그건 나중에."
"지금이요."
하은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K가 한 발 다가왔다. 아버지의 체취가 났다. 면도 후에 바르던 애프터쉐이브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십오 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제품을 쓴다는 건 이 사람이 진짜 아버지라는 증거인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가 준비되면 설명하마."
"준비라는 말 그만해요."
하은이 USB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지퍼를 올리는 손끝이 떨렸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따라갈게요. 대신 거기서 다 말해요."
K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로 안으로 먼저 들어섰다. 하은이 뒤따랐다. 통로는 나선형으로 내려갔고, 벽면의 청색 LED가 점점 짙은 남색으로 변해갔다. 공기가 습해졌다. 귀에 압력이 걸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깊은 지하였다.
K가 걸음을 멈춘 곳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높거나, 아예 없거나. 공간의 중앙에 직경 십여 미터의 원통형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투명한 재질의 벽면 안에서 수천 갈래의 빛줄기가 서로 엮이고 풀리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직조기.
그 단어가 떠올랐다. 빛의 가닥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며 패턴을 만들어냈다. 패턴은 쉬지 않고 변했다. 어떤 가닥은 밝게 빛나다가 사그라들었고, 다른 가닥은 새로 생겨나 기존의 직물에 스스로를 엮어 넣었다.
소리가 들렸다. 수천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어느 하나도 또렷하지 않은 웅성거림.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 소리 같기도 했다.
하은의 귀 뒤 타투가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금색이었다. 타투에서 퍼져 나온 빛이 관자놀이를 타고 눈 아래까지 번졌다.
그제야 보였다.
빛줄기 하나하나가 영혼이었다. 사람의 형상이 아닌, 파장으로 환원된 영혼. 그것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거대한 연산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데이터가 흐르고, 처리되고, 출력되는. 살아있는 컴퓨터.
"레테 2.0."
K가 말했다.
"기억 억제제의 다음 단계다. 영혼을 연산 유닛으로 전환해 인공지능을 구축하는 시스템."
하은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원통 안의 빛 가닥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유독 밝게 떨렸다. 금색 빛을 통해 보이는 그 파장의 색은—
재하의 것과 같았다.
하은의 손이 유리벽을 향해 뻗었다. 손바닥이 투명한 표면에 닿는 순간 원통 안의 빛줄기 전체가 일제히 멈췄다. 웅성거림이 끊겼다. 수천 개의 영혼이 동시에 하은을 향해 돌아본 것처럼, 모든 빛이 그녀가 손을 댄 지점으로 쏠렸다.
K가 하은의 팔을 잡아 뒤로 끌었다.
"아직 접촉하면 안 된다."
하은이 팔을 뿌리쳤다. K의 손이 허공을 잡았다.
"저 안에 재하가 있어요."
"재하의 잔여 파장이다. 영혼 전체가 아니야."
"잔여 파장이든 뭐든." 하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림을 감추지 않았다. "사람이에요. 저 안에 있는 거 전부."
K가 입을 다물었다. 원통 안의 빛줄기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달랐다. 하은이 손을 댄 지점을 중심으로 빛의 흐름이 소용돌이쳤다. 금색 타투의 빛이 점점 강해졌고, 하은의 시야에 원통 안의 영혼들이 하나씩 윤곽을 드러냈다.
노인. 소녀. 군인. 간호사. 이름 모를 수천의 얼굴들이 빛 속에서 겹쳐지고 사라졌다.
그 순간 원통 하단의 콘솔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K가 재빠르게 몸을 돌려 콘솔을 확인했다. 화면에 뜬 문구를 하은은 어깨 너머로 읽었다.
'직조 패턴 이탈 — 노드 #0001 각성 감지'
K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노드 #0001. 이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등록된 영혼.
하은이 콘솔 화면을 들여다봤다. 노드 #0001의 프로필이 펼쳐졌다. 이름 란에 적힌 글자.
서정환.
하은의 시선이 K에게로 갔다. K의 얼굴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콘솔 화면은 아버지의 영혼이 원통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
하은의 목소리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사라졌다.
"아버지의 몸을 쓰고 있는 건 누구예요."
K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아버지의 얼굴로, 아버지가 절대 짓지 않았을 종류의 미소를.
"똑똑한 아이야."
원통 안에서 노드 #0001의 빛이 미친 듯이 명멸하기 시작했고, 하은의 귀 뒤 타투가 그 진동에 맞춰 뜨겁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