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공기가 폐를 채웠다.
하은은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눈을 떴다. 천장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다만 촛불의 떨림 너머로 아치형 석조 천장이 너무 높아 어둠에 삼켜져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명동성당 지하 카타콤.
세진이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기억이 파편처럼 돌아왔다. 전자기기가 폭주하던 거리, 준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르스름한 전자기파, 세진이 끌어준 손의 힘. 그 이후로 의식이 끊겼다.
몸을 일으키자 왼쪽 팔꿈치에 욱신한 통증이 밀려왔다. 탈출 과정에서 벽 모서리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하은은 소매를 걷어 확인했다. 멍이 퍼져 있었지만 출혈은 없었다.
"일어났네."
세진의 목소리가 제단 뒤쪽에서 들렸다. 낡은 나무 의자에 걸터앉은 그녀는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화면의 초록빛이 세진의 안경테 위로 번졌다.
"여기가 어디예요, 정확히."
"성당 지하 3층. 영혼관리국 추적 시스템이 닿지 않는 자기장 교란 지대." 세진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카타콤이라고 불러. 교란 장치는 내가 직접 설치한 거야."
하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벽 사이사이에 꽂힌 양초가 일렁이며 그림자를 흔들었다. 제단 옆에는 오래된 성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아래에 담요 두 장이 깔려 있었다.
담요 위에 준혁이 누워 있었다.
재하의 얼굴. 재하의 몸. 그러나 숨소리의 리듬이 달랐다. 재하는 잠들 때 코끝을 살짝 벌름거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런 습관이 없었다. 대신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린 채 주먹을 가볍게 쥐고 있었다.
하은은 무릎을 꿇고 앉아 준혁의 상태를 살폈다. 왼쪽 소매가 찢어져 있었다. 거기서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진 흉터가 촛불 아래 드러나 있었다.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니. 그것은 재하의 흉터였다. 2년 전 한강 다리 위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다 난간에 긁힌 상처. 응급실에서 열일곱 바늘을 꿰맨 자리. 하은은 그 흉터의 모양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손끝이 먼저 움직였다. 흉터의 시작점, 손목 위 세 센티미터 지점에 검지가 닿았다. 피부는 차가웠다. 재하의 체온이 아니었다. 재하는 늘 손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만지지 마."
준혁이 눈을 떴다. 재하의 눈동자 색이었지만 시선의 각도가 달랐다. 재하는 하은을 볼 때 항상 약간 고개를 기울였다. 이 사람은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은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이 흉터 어떻게 생긴 건지 알아요?"
"……알아." 준혁이 시선을 돌렸다. 촛불이 그의 턱선 아래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 몸의 기억이 가끔 흘러들어. 다리 위에서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장면."
"누군가가 아니라 나예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양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석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세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커피 사 올게. 위층 사무실에 자판기 있어." 노트북을 접지 않은 채 화면만 끄고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운동화 밑창이 돌계단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둘만 남았다.
카타콤의 공기가 달라졌다. 양초 밀랍이 녹는 냄새가 진해졌고, 석벽 사이로 스며드는 습기가 하은의 목덜미에 닿았다. 준혁이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은이 등 뒤에 접힌 담요를 밀어 넣었다.
손이 스쳤다.
준혁의 손등이었다. 재하의 손이었지만, 굳은살의 위치가 달랐다. 재하는 펜을 잡는 중지 첫째 마디에 굳은살이 있었고, 이 손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거친 피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자주 쥐어본 적 없는 손.
하은은 그 차이를 알아차렸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준혁의 눈이 하은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재하의 눈동자였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것이 재하의 것이 아니었다. 재하는 하은을 볼 때 익숙한 안도를 담았고, 준혁은 조심스러운 경계 너머에 무언가 다른 것을 깔고 있었다. 하은의 팔꿈치 멍을 훑는 시선. 목 옆 긁힌 자국을 확인하는 시선.
걱정이었다.
원수의 눈 속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을 읽는 일은, 재하의 흉터를 만지는 것보다 더 기이했다. 하은은 왼손으로 귀 뒤 타투를 문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 멈췄다.
"팔꿈치 봐야 해." 준혁이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으니까 아까부터 왼쪽으로 기울어져 앉아 있는 거지."
하은이 입술을 다물었다. 준혁이 찢어진 소매에서 긴 천 조각을 뜯어냈다. 재하의 팔에서 벗긴 천이었다. 그는 하은의 팔꿈치를 잡고 천을 감았다. 손끝이 서툴었지만 힘 조절은 정확했다.
밀랍 냄새 사이로 준혁의 체취가 섞여 들었다. 재하와는 다른 냄새. 재하는 늘 비누 냄새가 났는데, 이 사람에게서는 땀과 먼지, 그리고 미세하게 금속 같은 냄새가 났다.
"이 흉터, 당신을 구하려다 생긴 거라고 육체가 말해주더군." 준혁이 천을 묶으며 말했다. 시선은 매듭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하은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츠러들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재하의 입에서 나온 음성이었지만 억양이 달랐다. 재하는 감정적인 말을 할 때 끝을 살짝 올렸고, 준혁은 오히려 끝을 눌렀다. 무게를 실으려는 사람의 말투.
"고마워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낯설었다. 원수에게 감사를 전하는 일이, 이 좁은 카타콤의 촛불 아래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줄은 몰랐다.
준혁이 매듭을 마무리하고 손을 거두었다. 그의 손끝에 하은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하은은 이마에 맺힌 땀을 보았다. 폭주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다 멈췄다. 그건 재하가 준 손수건이었다. 이니셜 Y.J.H가 파란 실로 수놓인.
꺼냈다.
천을 준혁의 이마에 대었다. 그의 눈이 살짝 넓어졌다. 이니셜이 보였을 것이다. 하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관자놀이에서 목선으로 땀을 닦았다. 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만 조금 느려졌다.
"이건." 준혁이 손수건의 이니셜을 보며 말했다.
"재하 거예요." 하은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당신이 빼앗은 사람의 거."
준혁이 눈을 감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하은도 더 말하지 않았다. 손수건을 접어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손끝에 남은 습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제단 뒤 석벽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하은은 양초를 들어 벽면을 비췄다. 오래된 벽화였다. 두 개의 인체가 마주 누워 있고, 그 사이를 잇는 선이 흐르고 있었다. 한쪽 인체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빛의 형상.
"영혼 전이술." 준혁이 벽화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현대 기술보다 훨씬 오래된 거군."
벽화의 하단에 라틴어가 새겨져 있었지만 마모가 심해 읽을 수 없었다. 다만 두 인체 사이의 선이 양방향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영종도 클리닉의 전이술이 일방향인 것과는 달랐다.
하은은 벽화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배터리가 7퍼센트. 카타콤의 자기장 교란 때문인지 충전 속도가 느렸다.
돌계단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세진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내려왔다. 커피가 아니라 코코아였다. "자판기에 블랙커피 없었어. 이거라도 마셔."
하은은 코코아를 받아들었다. 단맛이 혀끝에 닿았지만 삼키지 않고 입안에 머금었다가 뱉을 곳을 찾다 결국 삼켰다.
세진이 노트북을 다시 펼쳤다. 화면에 초록색 커맨드 라인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정확하게 두드렸고,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뭘 하고 있어요?" 하은이 물었다.
"영혼관리국 서버에 백도어 심어놓은 거, 기억하지?" 세진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폭주 사건 때문에 관리국 내부 통신이 뒤집어졌어. 방화벽이 한시적으로 느슨해진 틈을 노리는 중이야."
준혁이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내 정보도 있을까."
"당연하지. 전이 대상자 전원의 데이터가 거기 있어."
하은은 세진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진실위원회 소속이라고 했던가. 영혼관리국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 신체를 빼앗긴 자들의 명단을 유출하는 점조직. 세진은 그 안에서 기술 담당이었다.
화면이 멈췄다. 세진의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
"찾았어."
하은이 다가갔다. 준혁도 담요를 밀어내고 벽에 기대 일어섰다. 세진의 노트북 화면에 파일 하나가 떠 있었다. '전이 대상자 #0047 — 강준혁' 이라는 제목.
세진이 파일을 열었다. 의료 기록, 뇌파 동기화 수치, 레테 투여 일지가 스크롤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항목.
'원본 육체 상태: 보존 중. 위치: 영종도 프라이빗 클리닉 B4 냉동 보관실.'
세진이 화면을 두 번 두드렸다. "준혁 씨 원래 몸이 아직 살아 있어." 그녀가 고개를 돌려 준혁을 보았다. "폐기 처분 예정일은 다음 달 15일. 그 전에 회수하면 역전이가 가능할 수도 있어."
카타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준혁이 화면을 응시했다. 재하의 얼굴 위로 읽을 수 없는 표정이 지나갔다. 촛불이 흔들렸고, 벽화 위의 양방향 선이 그림자 속에서 깜빡였다.
하은은 준혁의 옆모습을 보았다. 재하의 윤곽이었지만, 입술을 깨무는 방식이 달랐다. 재하는 아랫입술 정중앙을 물었고, 이 사람은 왼쪽 끝을 물었다.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준혁이 자기 몸으로, 재하의 육체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영종도 클리닉 B4." 준혁이 낮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그가 하은을 돌아보았다. 재하의 눈 속에 준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하은은 이름 붙일 수 없었지만, 그의 오른손이 종이컵을 쥔 채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세진이 노트북에서 USB를 뽑아 하은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기에 클리닉 지하 도면이랑 보안 스케줄 전부 담겨 있어. 다음 달 15일 전에 움직여야 해."
하은의 손가락이 USB를 감쌌다. 작고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 한가운데 눌렸다.
준혁이 벽에서 등을 떼고 한 발 다가왔다. 하은과의 거리가 반 보 남았다. 촛불 냄새와 코코아의 단내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하은 씨."
"네."
"내가 돌아가면, 이 얼굴은 다시 재하의 것이 돼."
하은의 손이 주머니 안 손수건 위에서 멈췄다.
준혁이 시선을 내렸다. 재하의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그가 하은의 손목을 잡았다. USB를 쥔 손이 아닌, 빈손 쪽을.
"B4 냉동 보관실 접근 코드가 매일 자정에 바뀌어." 세진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 자정에 새 코드가 생성되는데, 그걸 실시간으로 잡아야 해."
하은은 준혁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재하의 손. 그러나 엄지가 그녀의 맥박 위를 누르는 힘의 방향이, 재하와는 정반대였다.
세진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