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프라이빗 클리닉. 지하 3층부터 5층까지가 핵심이에요."
하은이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명동성당 지하 카타콤의 습기 찬 공기가 종이 가장자리를 말리고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도면 위로 불안정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외부는 요양 병원으로 위장돼 있고, 1층과 2층은 실제 환자들이 입원해 있어요. 문제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세 곳인데, 전부 생체 인증이에요."
준혁이 도면 위로 몸을 기울였다. 윤재하의 얼굴. 윤재하의 손. 하은은 그 손등에 시선이 머무는 걸 느끼고 즉시 도면의 다른 지점을 짚었다.
"세진 씨가 만든 해킹 칩이면 생체 인증은 우회할 수 있어요."
하은의 시선이 테이블 구석에 놓인 검은 만년필로 향했다. 재하의 유품. 몽블랑 149. 뚜껑 안쪽에 세진이 제작한 초소형 해킹 칩이 숨겨져 있었다. 하은이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무게가 평소보다 미세하게 달랐다. 칩의 무게. 0.3그램도 안 되는 것이 손바닥 위에서 묵직하게 느껴졌다.
세진이 노트북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클리닉의 내부 네트워크 구조가 파란 선으로 엉켜 있었다.
"생체 인증 우회는 제가 원격으로 처리할 수 있어요. 다만 지하 3층 이하로 내려가면 외부 통신이 차단돼요. 자기장 교란 장치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세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했다. 찰나였다. 하은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세진의 검지가 엔터 키 위에서 한 번 떨린 뒤 무릎 위로 내려갔다.
"통신이 끊기면 안에서는 혼자라는 뜻이잖아요."
준혁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윤재하의 것이면서 윤재하의 것이 아니었다. 성대의 울림은 같았지만 억양이 달랐다. 하은은 그 차이에 이미 익숙해진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들어가요."
하은이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딸깍.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카타콤의 돌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혼자요?"
"준혁 씨는 들어갈 수 없어요. 클리닉 내부에 영혼관리국 요원이 상주하고 있어요. 재하 씨의 얼굴이 인식되는 순간 끝이에요."
준혁의 턱이 굳었다. 하은은 그 표정 변화를 보지 않으려 도면 위의 환기구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하은 씨."
세진이 노트북을 닫았다. 덮개가 맞닿는 소리가 유난히 건조하게 울렸다.
"솔직하게 물을게요. 이 작전, 성공 확률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요?"
"충분해요."
"숫자로요."
하은이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치아가 아랫입술의 마른 피부를 긁어내는 감촉이 혀끝에 닿았다.
"15퍼센트."
카타콤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다. 세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15퍼센트면 열 번 중 여덟 번은 죽는다는 거잖아요."
"실패하면 우리 셋 다 영혼이 지워져요. 하지만 재하 씨를 저 차가운 지하에 둘 순 없어요."
하은의 목소리가 돌벽 사이를 타고 흘렀다. 낮고 단단한 음이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것처럼 들렸지만, 만년필을 쥔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세진이 시선을 천장에서 하은에게로 옮겼다. 입을 열려다 닫았다. 대신 노트북을 다시 열고 화면에 새로운 창을 띄웠다.
"영종도 물류 창고에 관리국 비품이 반입되는 시간이 매주 수요일 새벽 3시예요. 경비가 교대하는 15분 동안 보안 카드를 복제할 수 있어요."
세진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훑었다. 물류 일지, 배송 차량 번호, 경비 교대 시간표. 데이터가 정확했다. 너무 정확했다. 하은은 그 정밀함에 의문을 품을 여유가 없었다.
"보안 카드만 있으면 지하 2층까지는 갈 수 있어요. 거기서부터 해킹 칩을 쓰면 돼요."
준혁이 도면 위에 손을 올렸다.
"물류 창고 잠입은 내가 하겠소."
"위험해요."
"이 얼굴이 위험한 건 클리닉 안에서지. 밖에서는 오히려 유리하오. 윤재하의 신분증은 아직 살아 있으니까."
하은이 준혁을 보았다. 재하의 눈동자가 카타콤의 탁한 빛을 받아 어두운 갈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안에 재하는 없었다. 하은은 그 사실을 매번 확인하면서도 매번 한순간 잊었다.
"좋아요. 수요일 새벽, 준혁 씨가 보안 카드를 확보하고. 세진 씨가 원격으로 1층과 2층의 보안 시스템을 교란해요. 저는 환기구를 통해 지하 3층으로 직접 진입해요."
하은이 도면 위에 볼펜으로 동선을 그렸다. 선이 또렷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환기구 내부 폭이 60센티미터예요. 통과 가능하지만 돌아올 때도 같은 경로를 써야 해요. 레테 보관실은 지하 4층이고, 영혼 추출 장비는 5층."
"목표가 뭐예요?"
세진이 물었다.
"레테 투여 기록과 영혼 각인 데이터. 그게 있으면 준혁 씨의 영혼을 원래 몸으로 되돌릴 수 있어요. 그리고 재하 씨의 몸에서 원수의 영혼을 분리할 증거가 돼요."
하은이 만년필을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금속 클립이 가슴팍에 닿는 차가운 감촉. 재하의 체온이 옮겨 있던 적 있는 물건이었다. 지금은 냉기만 남아 있었다.
세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낭에서 소형 장비를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어피스 두 개. 소형 손전등. 절연 장갑. 그리고 검은색 USB 드라이브.
"이 USB에 클리닉 내부 서버의 백도어 코드가 담겨 있어요. 지하에서 통신이 안 되니까, 직접 서버에 꽂아서 데이터를 빼와야 해요. 전송 시간 90초."
세진이 USB를 하은에게 건넸다. 손끝이 스쳤다. 세진의 손가락이 차가웠다. 평소보다 차가웠다. 하은은 그것을 카타콤의 온도 탓으로 돌렸다.
준혁이 장비를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어피스의 배터리를 확인하고, 손전등을 켜고 껐다. 절연 장갑을 양손에 끼어보며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그의 움직임은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재하의 몸이지만 재하에게는 없던 습관이었다.
"하은 씨."
세진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노트북을 배낭에 넣으며, 하은을 향해 반쯤 돌아선 자세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요. 이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카타콤도 안전하지 않아요."
"알아요."
"그러니까, 꼭 돌아와요."
세진의 목소리에 갈라진 틈이 있었다. 하은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재킷 지퍼를 올렸다. 지퍼가 턱 아래까지 올라가는 소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세진이 배낭을 메고 카타콤의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돌바닥에 부딪혀 점점 작아졌다. 하은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테이블로 돌렸다.
도면 위에 볼펜 선이 남아 있었다. 하은이 그린 동선. 시작점에서 목표 지점까지, 되돌아오는 길까지. 깔끔한 선이었다.
준혁이 장비 점검을 마치고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하은을 바라보았다.
"떨리시오?"
"아니요."
거짓말이었다. 오른손 엄지가 왼손 손목 안쪽을 반복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준혁은 그것을 보았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은의 옆으로 왔다. 재하의 손이 하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하은의 근육이 움찔 경직되었다. 재하의 손의 크기, 손바닥의 넓이, 손가락이 어깨뼈를 감싸는 각도. 전부 기억하는 감촉이었다.
하은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그러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은 그 진동을 고스란히 전달받았다.
"괜찮소."
준혁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왔다. 재하의 성대에서 나오는 음이 카타콤의 축축한 공기를 타고 하은의 귓전에 닿았다. 촛불 하나가 통로 끝에서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 위로 길게 늘였다.
하은은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 위의 도면이 흐릿해졌다. 시야가 번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재하를 되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재하를 되찾기 위해 세진을 위험에 밀어넣고, 준혁을 전선에 세우고, 자신은 성공 확률 15퍼센트짜리 작전을 설계하고 있었다.
집착이었다. 집착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신의 죄책감이 복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주변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하은은 이 순간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했다.
카타콤의 공기가 폐 안쪽까지 차갑게 스며들었다. 돌벽에서 올라오는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하은의 등이 미세하게 굽었다가, 다시 펴졌다.
준혁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기 전에, 하은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절연 장갑을 집어 들었다. 이어피스를 귀에 끼웠다. USB 드라이브를 재킷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만년필이 들어 있는 주머니 바로 옆.
하은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습기가 걷힌 뒤의 돌바닥처럼 건조하고 단단한 눈이었다.
"출발해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를 챙겨 배낭에 넣고, 카타콤의 출구 쪽으로 먼저 걸었다. 하은이 뒤따랐다. 테이블 위에 도면만 남았다. 형광등이 한 번 더 깜빡이고, 이내 안정되었다.
카타콤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명동 뒷골목으로 올라왔을 때,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3월의 서울. 아직 겨울이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이 콘크리트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하은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세진에게 최종 확인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화면을 켜는 순간, 이어피스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짧고 반복적인 고주파 비프음. 세진이 설치해둔 위치 추적 경보 시스템이었다.
하은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어피스에서 세진의 목소리가 끊겨 들렸다. 숨이 거칠었다. 뛰고 있었다.
"하은 씨, 내 노트북에—전송 기록이—듣고 있어요? 제 위치가 노출—"
통신이 끊겼다.
하은이 골목 끝을 향해 뛰었다. 준혁이 먼저 모퉁이를 돌아 넓은 도로 쪽으로 나섰다. 하은이 그 뒤를 따라 모퉁이를 꺾는 순간, 100미터 전방의 가로등 아래 세진이 보였다. 양팔을 두 명의 검은 코트 차림 남자에게 붙잡힌 채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세진의 배낭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뒤집혀 있었다. 노트북이 반쯤 빠져나와 화면에 파란 전송 진행 바가 깜빡이고 있었다.
세진의 얼굴이 차 안으로 사라지기 직전, 하은과 눈이 마주쳤다. 세진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세단의 문이 닫혔다. 엔진 소리가 새벽 거리를 찢으며 차가 급출발했다.
하은이 아스팔트 위에 뒹구는 노트북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