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이 안쪽으로 꺾이며 경첩째 뜯겨 나갔다.
하은의 등이 복도 벽에 부딪혔다. 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사이로 검은 양복의 사내 넷이 일렬로 밀고 들어왔다. 선두에 선 남자가 신발 밑의 나무 파편을 밟으며 천천히 실내를 훑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왼쪽 귀에 꽂힌 투명한 이어피스.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반쯤 보이는 검은 가죽 수첩.
오민준이었다.
"서하은 씨."
그가 하은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병원 접수대 직원과 닮아 있었다. 정확하고, 예의 바르고,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동행 요청드립니다."
뒤에 선 요원 하나가 손에 검은 결속 밴드를 들고 있었다. 플라스틱 표면에 소울코인 인증 칩이 매립된, 영혼관리국 표준 구속 장비. 하은은 그것을 취재 자료에서 본 적이 있다. 실종자 유족들이 증거로 제출했던 사진 속 그것.
"요청이라고 했나."
준혁이 침실 문 앞에서 나왔다. 잠옷 위에 걸친 카디건 소매가 한쪽만 팔꿈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목덜미에 레테 주사 자국이 아직 붉게 남아 있었고, 눈 밑에는 어젯밤 발작의 흔적인 자줏빛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오민준의 시선이 준혁에게로 옮겨갔다. 0.5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민준의 검지가 수첩 위를 한 번 두드렸다.
"강준혁 씨. 본인의 적응 기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준혁이 하은 쪽으로 두 걸음 움직였다. 하은과 오민준 사이에 자신의 몸을 끼워 넣듯. 카디건 주머니 안에서 왼손이 주먹을 쥐는 것이 보였다.
"이사회 긴급 결의안 제47조에 의거해 비인가 접촉자에 대한 즉시 격리가 승인되었습니다."
오민준이 수첩을 펼쳤다. 손가락 끝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동작이 느리고 정밀했다. 연습된 동작. 수백 번은 반복한 절차.
"서하은 씨는 전이 대상자의 이전 신원 관계자로, 각인 기간 중 접촉 금지 목록에 해당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위반이에요."
"그래서 문을 부쉈어?"
"협조가 없을 경우를 대비한 겁니다."
하은은 준혁의 등 뒤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잠금 해제, 녹음 앱. 손가락 세 개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취재 현장에서 수없이 해온.
"강준혁 씨, 그 몸은 당신 것이 아니라 이사회의 자산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준혁의 어깨가 굳었다. 등줄기를 따라 미세한 경련이 흘렀다. 하은은 그것을 봤다. 카디건 위로 전해지는 떨림. 재하의 몸이 떨고 있었다.
재하의 어깨. 재하의 등. 재하가 추운 날이면 으쓱거리던 그 어깨뼈의 윤곽.
"비키세요. 마지막 통보입니다."
오민준이 왼손을 들었다. 뒤에 선 요원들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포위 대형을 잡았다. 하은이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준혁의 팔이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여기 있어."
낮은 목소리. 재하의 성대에서 나오는 재하의 음색. 하지만 억양이 달랐다. 재하는 '여기 있어'라고 말할 때 끝을 올렸다. 준혁은 내렸다.
하은의 손목을 잡은 손이 뜨거웠다. 열이 나고 있었다. 레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
준혁이 먼저 움직였다.
가장 가까운 요원의 손목을 비틀어 결속 밴드를 빼앗았다. 팔꿈치로 명치를 찍고 무릎을 걸어 넘어뜨렸다. 두 번째 요원이 테이저를 꺼내 들었지만 준혁은 이미 그의 사각에 들어가 있었고, 테이저건을 든 팔을 안쪽으로 꺾어 본인 허벅지에 방전시켰다. 요원이 비명을 삼키며 쓰러졌다.
세 번째 요원의 주먹이 준혁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둔탁한 소리. 살이 꺼지는 소리. 준혁이 반 박자 늦게 몸을 틀었지만 이미 갈비뼈 아래에 타격이 들어간 뒤였다.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은은 움직일 수 없었다.
준혁의 등이 보였다. 카디건이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있었고, 잠옷 위로 어젯밤 발작 때 긁힌 자국이 붉게 드러나 있었다. 재하의 몸이었다. 재하의 피부, 재하의 뼈, 재하의 근육. 요원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재하의 몸이 흔들렸다. 찢어지고, 멍들고, 부서지는 것이 재하였다.
비명을 지르려 했다. 목이 열리지 않았다.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폐에서 공기가 올라오다 성대 앞에서 막혔다. 냄새가 났다. 피 냄새인지 땀 냄새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짠 것이 코끝을 찔렀다. 눈이 뜨거워졌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고, 그 통증만이 유일하게 자기가 아직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준혁의 등이 흔들릴 때마다 하은의 시야가 좁아졌다. 주변 소리가 멀어지고, 요원들의 구두 소리와 가구가 쓰러지는 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둔해졌다. 오직 하나만 선명했다. 준혁이 숨을 들이쉴 때 재하의 가슴이 들썩이는 그 움직임. 그것만이 세계의 전부였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하은은 그것을 움켜쥐었다. 녹음 버튼은 이미 눌려 있었다. 언제 눌렀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다.
준혁이 세 번째 요원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돌아섰을 때, 오민준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이어피스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고 건조한 남자 목소리. 하은의 귀에는 단어 몇 개만 닿았다.
"…처리 단계를… 승인…"
오민준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 올라왔다. 느리게. 명령을 씹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명령을 삼키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강준혁 씨."
오민준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바닥 위에 은색 원통형 장치가 놓여 있었다. 엄지손가락 두 마디 크기. 표면에 푸른 다이오드가 점멸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자산 반환에 동의하십니까."
"자산이라고 했어?"
준혁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간, 소리 없는 웃음. 재하는 절대 짓지 않던 표정이었다.
"이 몸이 이사회 거라면, 내가 이 몸으로 느끼는 것도 이사회 거야?"
오민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 몸이 누굴 지키고 싶어 하는 것도?"
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준혁의 옆얼굴이 보였다. 턱선에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재하의 턱. 재하의 피.
하지만 눈빛은 달랐다. 재하는 부드러웠다. 강물 같았다. 준혁의 눈은 달랐다. 불이 아니라 쇠. 달궈진 쇠가 식기 직전의, 검붉은 빛.
"동의하지 않는 걸로 간주하겠습니다."
오민준의 엄지가 은색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충격파는 소리보다 빨랐다. 공기가 찢어지는 감각이 먼저 왔고, 뒤이어 하은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등이 벽을 치는 둔탁한 충격.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시야가 기울었고, 바닥의 나무결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하은의 핸드폰이 바닥을 구르며 미끄러졌다. 화면에 녹음 시간이 찍혀 있었다. 04:37. 빨간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쓰러진 하은을 봤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져 있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옆으로 쓰러진 채 한 손은 여전히 핸드폰을 향해 뻗어 있었다. 검지 끝이 바닥을 긁고 있었다.
준혁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레테가 억누르고 있던 것. 매일 목덜미에 바늘을 꽂아 가라앉히던 것. 강준혁의 것인지 윤재하의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이름 없는 감정의 잔해들이 한꺼번에 밀려올라왔다.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레테 주사 자국이 부풀어 오르더니 실핏줄이 터지듯 자줏빛 선이 목 옆을 타고 올라갔다. 관자놀이를 지나 눈 아래까지. 동공이 수축했다가 팽창했다.
오민준이 한 발 물러섰다. 처음이었다.
거실의 조명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형광등이 터졌다. 유리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고, 벽에 걸린 시계가 바늘을 미친 듯이 돌리다 멈췄다. 테이블 위의 노트북 화면에 흰 노이즈가 가득 찼다. 오민준의 이어피스에서 날카로운 피드백 소음이 터져 나왔고, 그가 손을 올려 귀를 감쌌다.
준혁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이 금색이었다. 홍채 전체가 녹아내린 듯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재하의 얼굴 위에 재하의 것이 아닌 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오민준의 손에서 은색 장치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중앙, 응답하라."
이어피스를 누르는 오민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응답은 없었다. 모든 통신이 끊겨 있었다.
준혁이 한 발을 내디뎠다. 그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나무 바닥 아래 깔린 전선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