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내벽이 떨렸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귀 안쪽의 압력이 높아지고, 형광등이 한 박자씩 깜빡였다. 서하은은 주머니 속 외장 하드의 모서리를 엄지로 눌렀다. 세진이 목숨값으로 건넨 물건. 금속 테두리의 차가움이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 기어올랐다.
47층. 48층. 49층.
오민준이 엘리베이터 조작 패널 앞에 서서 카드키를 두 번 연속으로 찍었다. 잠금이 풀리며 최상층 버튼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영혼의 뜰까지 직통이다."
하은이 고개를 돌렸다. 오민준의 왼쪽 관자놀이에서 핏줄기가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3층 로비에서 요원 셋을 제압할 때 받은 상처. 그는 닦지 않았다.
"왜 나를 돕는 거야."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오민준은 패널에서 손을 떼고 뒷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펼치지 않은 채 하은의 손에 쥐여줬다.
"타워 내부 배선도. 백도어 단말기 위치가 표시돼 있어."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잖아."
오민준의 시선이 엘리베이터 천장으로 향했다. 층수 표시가 58을 지나는 동안 그의 입술이 한 번 벌어졌다가 닫혔다.
"영혼관리국에서 7년을 일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진동하듯 갈라졌다. "내가 처리한 케이스만 서른두 건. 전부 실종 처리됐고, 전부 누군가의 가족이었어." 그가 핏줄기를 손등으로 한 번 훔치더니 다시 내렸다. "열일곱 번째 건이 아이였어. 열네 살짜리. 그 애 엄마가 관리국 앞에서 사흘을 서 있었는데, 나는 창문 너머로 보고만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기 전, 하은은 접힌 종이를 펼쳤다. 배선도 위에 빨간 펜으로 X 표시가 두 군데. 하나는 '영혼의 뜰' 중앙 제어실, 다른 하나는 비상 탈출구.
65층. 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아니었다. 습기도 아니었다. 공기 자체가 달랐다. 피부 위로 얇은 정전기가 쉬지 않고 흘렀고, 혀끝에 금속 맛이 번졌다. 하은의 귀 뒤 타투가 미세하게 열을 품기 시작했다.
영혼의 뜰은 이름과 달랐다.
천장이 없었다. 서울의 밤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것처럼, 유리 돔 너머로 구름 사이 달빛이 쏟아졌다. 바닥은 투명한 강화유리. 그 아래로 수천 개의 파란 빛줄기가 수직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혼 데이터 전송관. 하은의 눈에는 그것이 빛줄기가 아니라 비명으로 보였다. 파장 하나하나가 뒤틀리고, 찢기고, 울부짖는 색깔이었다.
중앙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이 있었다.
유리 바닥 한가운데, 케이블 수십 줄에 연결된 채 웅크린 형체. 왼쪽 팔은 팔꿈치까지 검은 금속으로 뒤덮여 있고, 오른쪽 눈은 핏줄이 터져 붉은 막으로 덮여 있었다. 등에서 척추를 따라 돋아난 배선관이 천장까지 뻗어 올라가 있었다. 그것이 숨을 쉴 때마다 유리 바닥 아래의 파란 빛줄기가 한 박자 늦게 맥동했다.
하은의 발이 멈췄다.
"아버지."
형체가 고개를 들었다. 한쪽 눈동자만 남은 시선이 하은을 찾았다. 입술이 갈라진 채 벌어졌다.
"하은아."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의 음성이 겹쳐진 잡음이었다. "오면 안 됐어."
하은의 손톱이 외장 하드 모서리에 파고들었다. 아팠다. 통증이 오히려 다리를 앞으로 밀었다.
"백도어를 가동해야 해요."
형체가 웃었다. 웃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시스템의 중추가 뭔지 아느냐." 검은 금속으로 덮인 왼팔이 바닥을 짚었다.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 "내 영혼이다. 내가 이 건물의 서버야."
오민준이 하은의 옆으로 한 걸음 나섰다.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지만 총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했다.
"서 기자, 단말기는 저 뒤쪽 제어실이야.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잠깐." 하은이 오민준의 팔을 잡았다. "아버지한테 총을 쏘겠다는 거야?"
"저건 이미 사람이 아니야."
형체가 일어섰다. 케이블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유리 바닥 전체가 진동했다. 파란 빛줄기들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변했다. 하은의 타투가 뜨거워졌다. 화상을 입는 것 같았다.
"내 딸에게 손대지 마라." 여러 겹의 목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원래 음색이 한순간 튀어나왔다. "하은아, 백도어를 쓰면 이 시스템에 연결된 모든 영혼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나도 포함해서."
"그러면 아버지는."
"소멸이지. 이미 돌아갈 몸이 없으니까."
하은의 무릎에 힘이 빠졌다. 주머니 속 외장 하드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세진이 건넨 이 데이터 안에 아버지가 남긴 백도어 코드가 있었다. 그걸 입력하면 수천 명의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재하의 몸에 깃든 강준혁의 영혼도 밀려나고, 재하가 돌아올 수 있다. 대신 아버지는 사라진다.
형체의 눈동자에서 핏빛이 번졌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왼팔의 검은 금속이 칼날처럼 변형되었다.
"시간이 없어." 형체의 목소리에서 아버지의 음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스템이 육체를 다시 장악한 것이다. "침입자 제거. 프로토콜 가동."
금속 팔이 휘둘러졌다. 오민준이 하은의 허리를 잡아 옆으로 끌어당겼다. 바닥을 굴렀다. 유리 파편이 튀었다. 하은의 볼에 얇은 상처가 그어졌다.
오민준이 몸을 일으키며 두 발을 쐈다. 탄환이 형체의 어깨에 박혔지만 피가 나오지 않았다. 검은 금속이 탄환을 삼켜버렸다.
"총은 안 먹혀."
"알아." 오민준이 빈 탄창을 빼고 새것을 끼우며 말했다. "근데 2초는 벌어줬잖아."
하은이 바닥에서 일어나 뛰었다. 배선도에 표시된 제어실 방향. 유리 바닥이 갈라진 틈 사이로 발이 빠질 뻔했다. 다시 딛고. 다시 뛰고.
등 뒤에서 오민준의 총성이 세 번 더 울렸다. 형체가 포효했다. 여러 사람의 비명이 섞인 소리.
제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하은의 손이 떨렸다. 외장 하드를 꺼내 단말기 슬롯에 밀어넣었다. 화면이 켜졌다. 코드 입력창이 떴다.
뒤를 돌아봤다.
오민준이 형체의 금속 팔에 왼팔이 꺾인 채로도 매달려 있었다. 오른손으로 형체의 목에 감긴 케이블 하나를 잡아 비틀고 있었다. 형체가 비틀거렸다.
"코드 쳐!"
하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쪽 눈만 남은 그 시선. 하은아, 오면 안 됐어. 그 목소리 사이에 끼어 있던 진짜 아버지의 음색.
"영혼은 거래하는 물건이 아니야."
입에서 나온 말인지 속에서 나온 말인지 몰랐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눌렀다. 한 글자. 두 글자.
"그건 누군가의 삶이고, 사랑이고, 전부란 말이야."
열두 자리 코드의 절반을 입력했을 때, 형체가 오민준을 내동댕이치고 하은을 향해 돌진했다. 유리 바닥이 연쇄적으로 갈라지며 파란 빛줄기가 분수처럼 솟았다.
오민준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왼팔이 꺾여 늘어진 채. 그가 달렸다. 형체의 등 뒤에서 한 팔과 부러진 한 팔로 형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오 요원!"
"코드 끝까지 쳐." 오민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그가 형체를 안은 채 유리가 깨진 가장자리를 향해 발을 끌었다. "내가 안고 내려갈 테니까."
하은이 키보드에서 손을 뗄 뻔했다. 오민준이 웃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이상하게 편안한 표정이었다.
"서른두 명한테 빚진 거, 이걸로 좀 갚아지려나."
형체가 발버둥쳤다. 금속 팔이 오민준의 옆구리를 찔렀다.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지만 팔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조였다.
"쳐."
하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일곱 번째 글자. 여덟 번째. 눈가가 뜨거웠지만 시야는 흐려지지 않았다. 아홉 번째. 열 번째.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멈출 것 같았다.
열한 번째.
바람이 불었다. 65층 높이의 바람. 유리 돔의 한쪽이 깨지며 밤공기가 쏟아져 들어왔고, 그 바람 속에 오민준의 마지막 숨소리가 섞여 있었는지 없었는지, 하은은 알 수 없었다.
열두 번째 글자를 눌렀다.
엔터.
화면이 하얗게 변했다. 유리 바닥 아래의 수천 줄 빛이 일제히 멈추었다가, 한꺼번에 방향을 바꿔 위로 솟구쳤다. 하은의 타투가 차갑게 식었다. 처음으로.
온몸의 힘이 빠졌다.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키보드 위에 놓인 손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외장 하드의 표시등이 초록에서 빨강으로, 다시 초록으로 깜빡였다.
바닥의 빛줄기들이 하나씩 꺼져갔다. 꺼질 때마다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사람의 숨결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감각이 아니라 하은의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파장들이 비명을 멈추고 제 색깔을 되찾았다. 각자의 자리를 향해 흩어졌다.
오민준이 서 있던 자리에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유리 가장자리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야경이 65층 아래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반짝였다.
하은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내쉬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숨을 내쉴 때, 단말기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 리셋 완료 시 서버 내 모든 잔류 영혼 데이터는 비가역적으로 소거됩니다]
하은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 멈췄다. 비가역적 소거. 재하의 몸에서 강준혁의 영혼이 밀려나면 재하가 돌아온다. 서버에 남아 있는 다른 영혼들은, 아버지를 포함해서, 전부.
손등으로 볼의 상처를 훔쳤다. 피가 아니라 눈물이 묻어 있었다. 언제 흘렸는지 몰랐다.
외장 하드의 표시등이 다시 깜빡였다. 초록. 빨강. 초록. 그 사이사이, 세진이 마지막으로 남긴 음성 파일의 제목이 화면 구석에 떠 있었다. 'backup_soul_list_final.enc'. 하은이 열어본 적 없는 파일.
손가락이 터치패드 위로 갔다.
파일을 열자 목록이 쏟아졌다. 수천 개의 이름. 수천 개의 생년월일. 그리고 맨 마지막 줄.
[서하은 — 영혼 파장 등급: S — 상태: 수확 대기]
외장 하드를 쥔 손에서 감각이 사라졌다.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종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