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로비의 유리문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터지며 파편이 비명처럼 쏟아졌다.
유리 조각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보다 먼저,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건물 틈새를 비집고 하늘로 솟았다. 한 줄기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빛이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다는 걸 알아채기까지 서하은에게는 세 번의 호흡이 필요했다.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온 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이 있었다. 눈, 코, 입. 윤곽이 흐릿하게 번지며 투명한 빛 속에 녹아들었다. 영혼관리국 서버에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가 물리적 형태를 갖추고 현실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았다. 돌연변이로서 익숙하게 봐온 영혼 파장의 색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하은만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도화선이 되어 사방에서 울음과 고함이 터졌다. 택시 한 대가 급정거하면서 뒤차를 들이받았고, 유모차를 끌던 남자가 아이를 안고 골목 안쪽으로 뛰었다. 거리 전체가 경련하듯 흔들렸다.
"하은 씨."
정세진의 목소리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흘러왔다. 숨이 가빴다.
"관리국 중앙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어. 준혁이 설계자한테 자폭 공격 건 여파가 백엔드 전체를 날렸나 봐."
하은은 주머니 속 외장 하드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세진이 목숨 걸고 확보한 소울코인 거래 내역. 금속 케이스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피부 아래로 스며들었다.
"시민들 눈에도 보여?"
"당연하지. 데이터가 물질화한 거야. 에너지 밀도가 가시광선 영역을 넘어섰어."
세진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바빴다.
"지금 서울 전역에 약 이만 삼천 개체가 퍼지고 있어. 전부 관리국이 추출해서 보관 중이던 영혼이야."
이만 삼천. 하은의 입술이 바짝 갈라졌다. 추출당한 영혼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연인이었다. 그 숫자만큼의 삶이 상품 목록에 올라 소울코인으로 환산되었다는 뜻이었다.
거리 위의 영혼들은 방향 없이 떠다녔다. 어떤 것은 건물 벽을 뚫고 지나갔고, 어떤 것은 도로 한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차량에 손을 뻗었다. 닿지 않는 손. 잡히지 않는 형체. 하은의 시야에는 각각의 영혼이 품고 있는 파장의 색이 겹쳐 보였다. 대부분이 탁한 회청색이었다. 오래 갇혀 있던 영혼일수록 색이 짙게 탁해진다는 걸 하은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나갔다. 유리 파편이 운동화 밑창에서 갈리는 소리가 났다.
가장 가까운 영혼이 하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없어야 할 빛덩어리에, 분명히 눈동자가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하은은 읽을 수 있었다.
도와줘.
귀 뒤의 타투가 미세하게 열을 내기 시작했다.
"세진 씨, 이 영혼들을 성불시킬 방법이 있어?"
"이론적으로는." 세진이 잠시 말을 끊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영혼 데이터의 자아 코드를 해제하면 물질화 에너지가 소실돼. 자연 소멸이지. 근데 하은 씨, 그러려면 관리국 메인프레임에 직접 접속해야 해."
"관리국이 무너졌다며."
"건물이 아니라 시스템이 무너진 거야. 하드웨어는 살아 있어. 명동 카타콤에서 원격 접속 시도해볼게. 시간이 좀 걸려."
하은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시선을 멈췄다. 세 블록 너머, 광화문 교차로 방향에서 검은색 차량 세 대가 일렬로 접근하고 있었다. 앞유리에 반사되는 영혼들의 빛이 차체를 기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량 문이 열렸다.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내렸다. 그 뒤에서 최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백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긴 노인은 거리의 아비규환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하은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참담함도, 경악도 없는 얼굴. 이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한 여유가 입꼬리에 서려 있었다.
"수거해."
짧은 명령이었다. 양복 차림의 요원들이 가방에서 소형 장비를 꺼냈다. 안테나처럼 생긴 막대 끝에서 자기장이 형성되며 가장 가까운 영혼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은의 발이 그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였다. 저 영혼들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사람이다.
최 의원이 하은을 발견했다. 미소가 한 톤 깊어졌다.
"서 기자. 마침 잘 됐군."
"저 사람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유출된 자산을 회수하는 중이지." 최 의원이 양복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 "불안정한 상태로 떠다니는 영혼은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빨리 포집해야 해."
하은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자산. 에너지원. 가치. 저 노인의 어휘 목록에 '사람'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쌓아올린 바벨탑이 무너지고 있어." 최 의원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줄기들 사이로 드론 한 대가 지나갔다. "이건 진보가 아니라 재앙이야. 서 기자, 당신도 알잖아. 저 영혼들이 불안정한 채로 방치되면 이 도시 전체가 에너지 폭주로 날아가."
"그러니까 다시 가둬놓겠다는 겁니까. 상품으로."
최 의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안경 너머 눈동자에 영혼들의 빛이 비쳤다.
"성불시키겠다고? 어떻게? 당신에겐 기술도 장비도 없어."
"방법을 찾겠습니다."
"찾는 동안 저 영혼들이 폭주하면?" 최 의원이 한 발 다가왔다. 구두 밑에서 유리가 갈렸다. "일반 시민 피해는 당신이 감당할 건가."
하은의 입이 닫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영혼의 물질화 에너지가 불안정해지면 주변에 물리적 충격파가 발생한다. 호텔 로비 유리가 그렇게 날아간 거였다.
세진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끼어들었다.
"하은 씨, 시간 좀만 벌어줘. 카타콤 장비로 메인프레임 경로 하나 찾았어. 삼십 분이면 자아 코드 해제 프로토콜 돌릴 수 있어."
삼십 분. 하은은 최 의원의 얼굴과 거리 위의 영혼들을 번갈아 보았다.
"회수하지 마세요."
"뭐?"
"삼십 분만 기다려주십시오. 안전하게 성불시킬 수 있습니다."
최 의원의 미소가 걷혔다. 처음으로 감정이 읽히는 표정이었다.
"서 기자, 나는 이 기술에 반세기를 걸었어. 저 영혼들은 수조 원 규모의 국가 자산이야."
"사람입니다."
"이미 사람이 아니야."
하은은 주머니 안의 외장 하드를 꽉 쥐었다. 여기에 담긴 거래 내역이 세상에 공개되면 최 의원도 그림자 이사회도 끝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 영혼들이 다시 포집당하면 영원히 풀려나지 못한다.
최 의원이 손을 들었다. 요원들이 포집 장비의 출력을 높였다. 자기장의 범위가 넓어지며 세 개, 네 개의 영혼이 동시에 빨려 들어갔다. 영혼이 사라지는 순간마다 짧은 비명 같은 주파수가 울렸다. 하은의 귓속에서만 들리는 소리였다. 소멸하는 자아의 마지막 진동.
하은이 뛰었다.
가장 가까운 요원에게 달려들어 포집 장비의 안테나를 잡아 비틀었다. 금속이 꺾이는 감촉이 손목까지 전해졌다. 요원이 하은의 팔을 잡았지만 하은은 이미 장비를 바닥에 내리꽂고 있었다. 회로판이 드러나며 불꽃이 튀었다.
"멈춰!"
최 의원의 고함이 울렸다. 나머지 요원 둘이 달려들었다. 한 명이 하은의 어깨를 뒤에서 움켜잡았고, 다른 한 명이 손목을 비틀어 꺾었다. 관절에서 뜨거운 통증이 솟았다.
그 순간 세진의 목소리가 터졌다.
"접속 성공. 자아 코드 해제 시퀀스 시작한다."
거리 위의 영혼들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탁한 회청색이 서서히 맑아지며 하나둘 빛이 옅어졌다.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풀려나는 것이었다. 오래 묶여 있던 데이터 코드가 해제되면서 영혼의 자아가 집착을 놓고 있었다.
하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요원의 손이 풀렸다. 그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천 개의 빛이 서울 하늘 위로 천천히 흩어지며 사라져갔다. 소리 없는 장례식이었다.
최 의원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하은은 비틀린 손목을 반대 손으로 감싸 쥔 채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면의 열기가 무릎뼈를 타고 올라왔다. 숨이 거칠었다. 유리 파편에 베인 손등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빛이 사라진 거리는 고요했다. 차량 경적도 비명도 멈춰 있었다. 사람들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은은 외장 하드를 꺼냈다. 금속 케이스에 자신의 피가 묻어 있었다. 엄지로 표면을 훑었다. 이 안에 이만 삼천 명의 거래 내역이 들어 있다.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도.
세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달랐다. 떨고 있었다.
"하은 씨, 메인프레임에 접속하면서 이상한 걸 발견했어."
"뭔데."
"영혼 데이터 아카이브에 별도 격리 섹터가 있어. 다른 데이터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암호화 등급이 최상위야. 일반 추출 영혼이 아니야."
하은이 천천히 일어섰다. 손목의 통증이 맥박과 함께 욱신거렸다.
"누구 거야."
세진의 키보드 소리가 멈췄다. 짧은 정적.
"파일명이 '서진우'야."
공기가 목구멍에서 멈췄다. 서진우.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이건 추출된 영혼이 아니야, 하은 씨." 세진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데이터 구조가 달라. 외부에서 추출한 게 아니라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업로드한 형태야. 마치 스스로 시스템 안에 들어간 것처럼."
하은의 시선이 최 의원에게 향했다. 노인은 이미 차량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최 의원."
걸음이 멈췄다. 노인이 반쯤 고개를 돌렸다.
"우리 아버지가 저항하다 죽은 게 아니죠."
대답은 없었다. 최 의원이 차 안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히기 직전, 하은은 보았다. 노인의 왼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진이 말을 이었다.
"격리 섹터에 백도어 흔적이 있어. 누군가 외부 접속 경로를 의도적으로 남겨놨어. 하은 씨, 이거 설계한 사람이 나중에 누군가 찾아올 걸 알고 만들어둔 것 같아."
하은은 귀 뒤의 타투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미열이 여전했다. 아버지가 새겨준 이 표식. 추적 비콘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이것이 혹시 접속 키는 아닌지.
외장 하드의 모서리를 다시 짚었다. 거래 내역 파일 사이에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암호화 폴더가 하나 있었다. 파일명은 숫자와 기호의 나열. 그 패턴이 세진이 말한 백도어 경로의 주소와 겹치는 것은 아닐까.
하은은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세진 씨, 외장 하드에 있는 미확인 폴더 하나 보내줄게. 백도어 경로랑 대조해봐."
파일 전송 버튼을 누르는 하은의 손등 위로, 마르지 않은 피가 화면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