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의 경보가 울린 건 새벽 세 시였다.
서하은은 접이식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멈췄다. 천장에 붙인 적외선 감지기의 적색 LED가 두 번 깜빡이고, 세 번째에서 꺼졌다. 정상적인 침입이라면 연속 점멸이어야 한다. LED가 꺼졌다는 건 내부 코드를 아는 누군가가 직접 해제했다는 뜻이었다.
아는 사람은 셋뿐이다.
하은은 베개 밑의 소형 테이저를 꺼내 안전장치를 풀었다. 맨발이 콘크리트를 디뎠고, 발바닥의 냉기가 정수리까지 타고 올라왔다. 복도 끝에서 군화 소리가 울렸다. 하나가 아니라 넷, 다섯. 일정한 간격으로 찍히는 발소리 사이에 한 쌍만 리듬이 달랐다. 끌리듯 느린 보폭.
철제 방화문이 안쪽으로 밀렸다.
검은 전술 조끼를 입은 무장 대원 네 명이 양옆으로 갈라서고, 그 가운데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정세진이었다. 깎다 만 듯 들쭉날쭉한 앞머리, 왼쪽 관자놀이의 오래된 흉터. 얼굴은 맞았다. 카타콤 지하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손에 감싼 채 웃던 그 얼굴이었다. 모니터 불빛 아래서 "이거 보면 놀랄걸" 하며 눈을 반달로 구기던 세진. 지금 하은 앞에 선 사람의 눈에는 그 온기가 없었다. 초점이 풀린 동공이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데, 고개만 정확히 하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세진의 오른손에 들린 장비가 시선을 끌었다. 손바닥 크기의 금속 장치. 표면에 파란 맥박처럼 빛이 돌고 있었다. 장치 끝에서 가느다란 주파수음이 새어 나왔고, 하은의 귀 뒤 타투가 그 진동에 반응하듯 따끔거렸다.
"세진아."
반응이 없었다. 세진은 입술 한번 움직이지 않고 장치를 들어 올렸다. 푸른 빛줄기가 부채꼴로 은신처를 훑기 시작했다.
영혼 추적기였다. 하은은 단번에 알아봤다. 세진이 직접 설명해준 적이 있었으니까. 카타콤에서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밤새 떠들던 그날, 관리국이 개발 중이라던 차세대 추적 장비. 시제품 단계라 실전 배치는 먼 이야기라고 세진은 말했었다.
"이쪽이야."
하은이 한 발 옆으로 움직이자 빛줄기가 고스란히 따라왔다. 타투의 따끔거림이 화끈거림으로 번졌다. 대원 하나가 벽 쪽으로 돌아 측면을 잡았고, 다른 하나가 출입구를 틀어막았다. 퇴로가 없었다.
"세진아, 나야. 하은이야."
세진의 왼손이 허벅지 옆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뿐이었다. 다른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은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모래를 삼킨 것처럼 거칠었다.
"확보해."
대원 중 하나가 짧게 지시를 내렸다. 세진이 아니라 뒤쪽의 대원이었다. 세진은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장치를 든 팔을 뻗은 채 하은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왔다.
하은은 테이저를 들었다. 조준점이 세진의 가슴 한가운데를 겨냥했다.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올라갔으나 당길 수가 없었다. 저 눈동자 뒤에 세진이 있을까. 이미 텅 비어버린 껍데기인 걸까.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손끝에서 힘을 빼앗았다.
세진이 하은의 손목을 잡아챘다. 빠르고 정확했다. 카타콤에서 같이 밤을 새던 해커의 손이 아니라 관절 꺾기를 훈련받은 요원의 손이었다. 테이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속음이 울렸다.
하은은 세진의 손목을 반대로 비틀며 몸을 낮췄다. 세진의 팔꿈치 관절이 꺾이는 각도에서 장치가 흔들렸고, 하은은 그 틈에 옆구리를 밀어 거리를 벌렸다. 세진이 균형을 잃고 한 발 물러섰다.
"세진아, 제발 정신 차려!"
목소리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울렸다. 하은의 손이 세진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흔들었다. 세진의 고개가 앞뒤로 꺾이는 동안에도 동공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네가 우리에게 알려준 데이터들이 다 가짜였던 거야?"
세진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무언가를 되뇌는 것처럼.
대원 하나가 뒤에서 하은의 팔을 잡아 뒤로 젖혔다. 어깨 관절에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하은은 이를 악물며 뒤꿈치로 대원의 정강이를 찍었다. 대원이 움찔한 사이 빠져나왔으나 또 다른 대원이 앞을 막아섰다.
세진이 다시 걸어왔다. 추적기를 하은의 관자놀이 쪽으로 가져다 대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은은 고개를 숙여 피하면서 세진의 턱 아래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의 몸이 엉켰다.
그때 하은의 손끝이 세진의 목덜미에 닿았다.
피부 아래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쌀알보다 조금 큰 크기. 목뼈 경추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 정확히 박혀 있었다. 손가락 끝이 둥근 금속의 가장자리를 더듬었고, 손톱에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살아 있는 것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칩이었다.
하은은 세진을 안은 자세 그대로 굳었다. 대원들이 다가오는 군화 소리가 귓전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의 패턴이 하은의 타투 맥동과 같은 주기를 갖고 있었다.
"잡아."
대원의 목소리에 세진이 하은의 목을 향해 손을 올렸다. 하은은 세진의 손목을 간신히 붙잡으며 칩이 박힌 부위를 다시 눌렀다. 세진의 몸이 한 차례 크게 경련했다.
세진의 입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나왔다. 신음이 아니었다. 끊어진 라디오 주파수처럼 갈라진 음절들.
"……하……은……"
찰나였다. 그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칩의 진동이 빨라졌고, 세진의 눈이 다시 초점을 잃었다.
대원 하나가 등 뒤에서 전기 봉을 꺼냈다. 하은은 세진을 밀치고 옆으로 굴렀다. 전기 봉이 빈 공기를 갈랐다. 바닥을 구르는 동안 손바닥에 테이저의 차가운 표면이 잡혔다. 주워 들고 가장 가까운 대원의 허벅지에 갖다 댔다. 방전음이 딱 하고 울렸고, 대원이 무릎을 꿇었다.
나머지 대원들이 진형을 좁혔다. 하은은 뒤로 물러서며 벽에 등을 붙였다.
세진이 다시 다가왔다. 추적기를 든 오른손이 떨리고 있었다. 장치의 푸른빛이 불안정하게 명멸했고, 세진의 왼손은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고 있었다. 세뇌 아래에서 무언가가 저항하는 것처럼.
하은은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맥박이 귀 안쪽에서 울렸다. 아까 손끝에 닿았던 칩의 감촉을 떠올렸다. 진동의 패턴. 타투와의 동기화. 칩이 맥동한다는 건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는 뜻이다.
재하의 연구 노트. 하은은 배낭 끈을 고쳐 멜 때 등에 눌리는 외장 하드의 딱딱한 모서리를 느꼈다. 세진이 건넨 그 하드. 손에 쥐어주며 "이거면 충분할 거야" 하던 세진의 목소리가 손끝의 감촉과 함께 떠올랐다. 하드 안에 기록된 프로젝트 코드명 하나. '정수(Essence)'. 인간의 감정 반응에서 추출한 에너지를 정제하여 관리국의 장비를 구동하는 자원 체계. 세진은 그때 아직 이론 단계라고 했다. 실용화는 불가능하다고.
하은의 시선이 세진의 목덜미로 향했다. 피부 아래 박힌 칩의 윤곽이 형광등 빛 아래서 희미하게 비쳤다. 맥동하는 푸른빛의 파장. 관리국은 이미 그것을 완성했다.
세진이 넘겨준 데이터는 진실과 거짓을 섞어 놓은 것이었다. 세진의 의지였는지 칩의 명령이었는지, 그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갈비뼈 안쪽을 짓눌렀다.
대원 하나가 무전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대상 확인. 타투 반응 양성. 회수 진행."
회수. 하은은 그 단어를 씹었다. 자신도 세진처럼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세진이 마지막 한 걸음을 떼었다. 추적기가 하은의 이마에 거의 닿을 거리였다. 장치의 빛이 하은의 타투와 공명하듯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세진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소리가 있었다.
"도……망……쳐."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세진의 오른손이 추적기를 자신의 목덜미에 갖다 댔다. 장치와 칩이 접촉하는 순간 파란 불꽃이 세진의 목과 손 사이에서 튀었다. 세진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대원들의 시선이 세진에게 쏠린 찰나, 하은은 벽을 짚고 몸을 돌려 배관 틈 사이의 비상 통로를 향해 뛰었다. 좁은 통로에 몸을 밀어 넣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세진이 바닥에 엎어진 채 경련하고 있었다. 목덜미에서 칩의 푸른빛이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대원 하나가 세진의 몸을 뒤집어 칩 상태를 확인하다 고개를 저었다.
"정수 공급 차단됐다. 칩 오버로드야."
하은의 발이 멈췄다. 비상 통로 안, 녹슨 배관 사이에 웅크린 채 숨을 참았다. 정수 공급. 차단. 오버로드. 대원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퍼즐처럼 맞물렸다. 칩은 정수로 구동된다. 정수는 감정에서 추출한다. 세진의 감정을 연료 삼아 세진의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손에 쥔 테이저 위로 세진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은은 그 온기를 느끼며 배낭 끈을 어깨에 걸었다. 외장 하드의 모서리가 등뼈를 눌렀다.
통로 저편에서 군화 소리가 쫓아왔다. 하은은 몸을 낮추고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뒤에서 대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타투 반응 추적 가능. 정수 수확 대상으로 재분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