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캐했다. 분진과 연기가 뒤섞인 냄새가 옷깃까지 스며들었고, 하은은 룸미러로 뒷좌석의 남자를 확인했다. 세진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한강을 건너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재하의 얼굴. 재하의 숨결. 그러나 아까 그 입에서 흘러나온 문장은 재하의 것이 아니었고, 강준혁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세 번째 서랍, 파란 봉투.
하은의 왼손이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손톱이 가죽 시트 위에 반달 모양 자국을 남겼다.
"여기서 좌회전."
세진이 네비게이션을 끄고 골목 사이로 차를 밀어 넣었다. 헤드라이트마저 껐다. 성수동 외곽, 재개발이 중단된 구역의 폐공장 사이에 숨겨진 컨테이너 하우스 두 동이 세진의 은신처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세진은 외장 하드가 든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컨테이너 입구의 전자 잠금장치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지문 인식이 아니라 피부 온도와 맥박 패턴을 읽는 방식이었다.
잠금이 풀렸다.
"들어와."
세진이 문을 열고 안쪽을 먼저 훑었다. 적외선 센서 배치를 확인하고, 벽면의 소형 모니터 네 대에 주변 CCTV 피드가 정상 송출되는지 점검한 뒤에야 하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은 남자의 팔을 잡아 차에서 내렸다. 재하의 체온이 손바닥 위로 번졌고, 그 온기가 너무 익숙해서 손가락 끝이 저렸다.
컨테이너 내부는 좁았지만 정돈되어 있었다. 접이식 침대 하나, 작업용 모니터 세 대, 냉장고 하나. 세진이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남자 앞에 놓았다.
남자가 눈을 떴다.
재하의 눈이었다. 같은 홍채, 같은 속눈썹 길이. 그런데 시선의 결이 달랐다. 재하는 하은을 볼 때 눈꺼풀이 먼저 부드러워졌다. 이 남자는 하은의 양쪽 눈을 번갈아 훑으며 무언가를 측정하듯 관찰했다.
"그 문장." 하은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갈라졌다. "어디서 알았어."
남자가 생수를 집어 한 모금 마셨다. 재하의 목젖이 오르내리는 것을 하은은 외면하지 못했다.
"네 아버지한테 들었다."
공기가 굳었다. 세진이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렸다. 하은은 의자 등받이를 잡았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아버지는 8년 전에 실종됐어."
"알고 있어." 남자가 생수병을 내려놓았다. 페트병 바닥이 철제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울렸다. "실종이 아니라 은폐야. 서정환 박사는 프로젝트 라자루스의 초기 설계자였고, 내가 그 뒤를 이었다."
"뭐라고?"
"나는 윤재하도 아니고 강준혁도 아니야." 남자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재하의 어깨가 펴지는 각도, 재하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 놓이는 방식. 전부 익숙한 몸짓인데 그 안에 담긴 의지가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코드네임은 필요 없겠지. 네 아버지가 설계하고 내가 완성한 기술이 이 육체 안에서 작동하고 있으니까."
하은이 한 발 물러섰다. 등이 컨테이너 벽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증명해." 목소리가 반음 올라간 것을 스스로 느꼈지만 통제할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를 안다는 걸."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재하가 진료 기록을 읽을 때 하던 버릇과 똑같은 각도였고, 그래서 더 낯설었다.
"서정환 박사의 개인 보안 코드. 7-나비-새벽-4. 이건 연구소 공식 기록에도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도 없어. 그가 직접 나한테만 구두로 전달한 거야."
하은의 왼손이 귀 뒤로 올라갔다. 타투를 세 번 문질렀다. 손끝에 미세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아까 푸르게 빛나던 잔열.
그 코드를 아는 사람은 아버지와 하은뿐이었다.
"하은 씨."
세진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세진은 외장 하드를 노트북에 연결한 채 화면을 하은 쪽으로 틀었다. 디렉토리 구조가 펼쳐져 있었고, 세진의 손가락이 특정 폴더를 가리켰다.
"영종도 클리닉에서 가져온 데이터야. 'LAZARUS_ORIGIN'이라는 폴더가 있는데 생성 날짜가 2014년이야. 서정환이라는 이름이 초기 연구진 명단에 있어."
파일 하나가 열렸다. 세진이 스크롤을 내리며 특정 구간에 형광 마커를 씌웠다. 하은은 화면 속 아버지의 이름 세 글자를 읽었다. 익숙한 서체가 아니라 연구 코드번호 옆에 찍힌 사무적인 활자체였는데도 글자가 번져 보였다. 눈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시선을 거뒀다.
"그래서 뭘 원하는 건데." 목소리를 낮췄다. 감정이 섞이면 진다. "아버지 이름 팔아서 내 도움을 받으려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하보다 반 뼘 작았던 강준혁의 자세도, 재하 특유의 구부정한 어깨도 아닌 제삼의 사람이 재하의 뼈와 근육을 빌려 서 있었다.
"내 눈을 봐, 하은아."
이름을 불렀다. '하은 씨'가 아니라 '하은아'. 재하의 성대가 만들어낸 그 호칭에 귀 뒤의 타투가 다시 미약하게 열을 냈다.
"이 육체는 껍데기일 뿐이야. 네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아?"
죽었다. 실종이 아니라 죽었다고 말했다. 하은의 손가락이 주먹 안에서 접혔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팠고 반달 모양의 통증이 올라왔다.
"하은 씨, 잠깐." 세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하은과 남자 사이에 섰다. "이 사람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돼. 데이터 교차검증이 먼저야."
세진이 노트북을 들고 남자 앞에 화면을 들이밀었다. "당신이 진짜 설계자라면 이 파일의 암호화 키를 알겠네. 지금 풀어봐."
남자가 세진을 바라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재하의 길고 마른 손가락이 열여섯 자리의 영문과 숫자 조합을 막힘 없이 입력했다. 잠금이 해제되며 수천 줄의 실험 로그가 쏟아졌다.
세진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데이터를 읽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30초쯤 지나 세진이 입술을 다물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이게 사실이면…."
"사실이야." 남자가 끊었다. "그림자 이사회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기업 카르텔이 아니야."
하은이 팔짱을 풀었다. 남자의 시선이 하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영혼관리국. 그림자 이사회. 청와대 특수비서실. 다 이름이 다를 뿐이야." 남자가 한 발 다가왔다. 재하의 체취가 공기 중에 번졌다. 소독약과 면 셔츠 냄새. 하은이 수백 번 얼굴을 묻었던 냄새. "목적은 하나야. 국가 권력의 핵심 인사들이 죽지 않는 것. 대통령이, 국정원장이, 대법원장이 육체만 바꿔가며 수십 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
컨테이너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냉장고 압축기 소리만 낮게 돌았다.
"불멸의 정치 체제." 세진이 중얼거렸다.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민주주의 자체가 위장인 거잖아."
"8년 전에 네 아버지가 그걸 알아냈어." 남자가 하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정환 박사는 자기가 만든 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 깨달은 뒤 이사회를 배신하려 했고, 그 대가로."
말이 끊겼다. 의도적인 침묵이었다.
하은의 턱이 굳었다. 이를 악물고 있다는 걸 관자놀이의 근육이 알려주었다.
"끝까지 말해."
"지금은 아니야." 남자가 뒤로 물러섰다. "네가 준비되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은이 남자의 셔츠 깃을 움켜쥐었다. 재하의 옷. 재하의 쇄골.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는 면의 질감이 선명했다. "이 얼굴 뒤에 숨어서 정보를 흘리면 내가 고분고분 따라올 줄 알아?"
남자가 하은의 손목을 잡지 않았다. 저항도 않았다. 재하의 눈으로 하은을 내려다보며 재하와는 전혀 다른 무표정을 유지했다.
세진이 노트북을 낚아채듯 들어올리며 하은의 앞을 가로막았다.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세진의 어깨가 하은과 남자 사이의 시선을 정확히 차단했다.
"떨어져, 하은 씨." 세진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이 사람이 뭘 숨기든 지금 여기서 밀어붙이면 우리가 잃을 게 더 많아."
하은의 손이 풀렸다. 셔츠 깃에 구김이 남았다.
세진이 남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당신 말이 맞다면 증거가 이 하드 안에 있겠네. 내가 전부 해독할 때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동의해?"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이 다시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며 파일 구조가 해체되었다. 하은은 세진의 등 뒤에 서서 화면을 읽었다. 실험체 번호, 전이 일자, 대상자 코드명. 숫자와 기호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그중 하나에 눈이 멈췄다.
대상자 코드 S-001. 최초 전이 실험. 날짜는 2015년 3월 12일.
아버지가 실종된 날로부터 정확히 사흘 뒤였다.
하은의 시선이 코드 옆 비고란으로 옮겨졌다. '설계자 자발적 전이 — 성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글자가 희미하지 않았다. 선명했다.
등 뒤에서 남자의 숨소리가 가까워지려는 찰나, 세진의 노트북 화면이 돌연 핏빛으로 점멸하며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뱉었다.
"젠장, 트랩이야!" 세진이 다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파일을 열자마자 위치 추적 비콘이 활성화됐어!"
화면에는 '접속 승인: 그림자 이사회 타격대'라는 문구만 차갑게 떠 있었다.
재하의 몸을 빌린 남자가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사회는 자신들의 '신'이 도망치는 걸 허락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 위로 컨테이너 외부를 포위하는 육중한 타이어 마찰음과 군화 소리가 겹쳐 들렸다. "하은아, 네 아버지가 남긴 건 데이터뿐만이 아니었거든."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컨테이너의 철제 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떨어져 나갔다. 자욱한 연기 너머로 검은 전술복 차림의 자들이 들이닥쳤고, 수십 개의 붉은 레이저 조준선이 하은의 가슴팍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