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에덴의 외벽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하은의 왼손이 재킷 안주머니로 갔다. 파란 봉투. 세 번째 서랍에서 꺼낸 그것을 여전히 품에 지니고 있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모서리가 습기에 눅눅했다.
"저거야."
재하의 목소리였다. 재하의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음색 안에는 강준혁의 잔향이 섞여 있었고, 하은은 그것을 귀가 아니라 뒷덜미로 감지했다. 목 뒤의 잔털이 일제히 곤두서는 감각. 귀로 듣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종류의 소리였다.
헬기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정세진이 조종석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왼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가 주먹을 쥐었다. 착륙까지 5분.
하은은 옆자리의 남자를 보았다.
윤재하의 얼굴. 윤재하의 손. 목덜미에는 레테 주사 자국이 점처럼 박혀 있었다. 그 눈동자 속의 파장은 두 겹이었다. 푸른 물결 위에 붉은 실이 엉켜 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
융합. 세진이 그렇게 불렀다. 재하의 잔류 사념과 준혁의 영혼이 100일의 각인 기간을 넘기며 하나의 자아로 수렴한 상태.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고, 어느 쪽도 소멸하지 않은 채.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
그가 말했다. 재하의 말투였다. 문장 끝을 살짝 올리는 버릇, 모음을 늘이는 습관. 하은의 손가락 끝이 떨렸다.
"너도 달라졌으니까."
그 대답을 내뱉는 동안 목구멍 안쪽이 타들어갔다. 예전의 재하는 왼쪽 눈꼬리가 먼저 웃었다. 지금 이 남자는 오른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간다. 같은 얼굴 위의 다른 지도.
"알아. 나도 안다."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손. 재하는 오른손잡이였고, 준혁은 왼손잡이였다. 지금 그는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있었다. 어느 쪽 손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거울을 볼 때마다 두 명이 겹쳐 보여."
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재킷 안의 파란 봉투를 꺼냈다. 접힌 모서리를 펴고, 안에 든 얇은 종이를 무릎 위에 올렸다. 재하의 필체로 적힌 주파수 좌표. 내부 고발자가 남긴 암호와 정확히 일치하는 숫자열이 봉투 안쪽에 연필로 적혀 있었다는 것을, 하은은 어젯밤에야 발견했다.
"이 숫자를 알아?"
그의 시선이 종이 위에 머물렀다.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재하의 기억이 반응하는 것인지, 준혁의 계산이 작동하는 것인지.
"38.7도. 영혼 각인이 해제되는 뇌파 주파수야."
하은의 손이 멈췄다. 봉투 안의 숫자가 단순한 좌표가 아니었다. 열쇠였다. 영혼 전이를 되돌릴 수 있는 주파수.
"재하가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둘 다."
짧은 침묵이 헬기의 엔진 소리를 더 크게 만들었다. 세진이 조종석에서 계기판을 두드렸다. 세 번. 신호였다.
"외벽 방어 시스템 무력화 확인. 진입 경로 열렸어."
세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달렸다. 소울코인 거래 내역 하드에서 추출한 뉴 에덴의 보안 프로토콜이 화면에 펼쳐졌고, 하나씩 빨간 잠금 표시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해킹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세진만이 할 수 있는 정밀한 절개.
헬기가 요새의 착륙 데크로 내려앉았다. 충격이 좌석을 흔들었다. 하은은 파란 봉투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종이의 무게가 달라진 것 같았다. 의미가 무거워졌으므로.
데크 위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해발 3천 미터. 뉴 에덴은 하늘 위에 떠 있는 감옥이었다.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구름이 울타리였고, 탈출구는 추락뿐이었다.
"이쪽이야."
그가 앞장섰다. 재하의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준혁의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보폭이 합쳐진 새로운 리듬. 하은은 그 등을 따라가며 왼손으로 귀 뒤의 타투를 문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타투가 미열을 내고 있었다. 뉴 에덴 안에서는 영혼 파장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벽 뒤에서 수십 개의 파장이 겹쳐 울렸다. 갇힌 영혼들. 전이 대기자들. 상품으로 진열된 사람들의 사념이 하은의 시야를 푸른 안개로 채웠다.
"멈춰."
하은이 말했다. 그가 돌아보았다.
"벽 뒤에 최소 서른 명이 있어. 의식이 없는 상태야. 파장이 거의 평탄해."
그의 턱이 굳었다. 재하의 표정이었다. 환자를 앞에 두고 진단을 내릴 때의, 감정을 뼈 안쪽으로 밀어 넣는 얼굴.
"나중에 데리고 나간다."
"약속해."
"했어."
그 한마디가 복도에 울렸다. 하은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걸었다. 세진이 뒤에서 태블릿을 들어 올려 복도의 감시 카메라를 하나씩 꺼뜨렸다. 렌즈의 빨간 불빛이 차례로 사라졌다. 어둠이 발걸음을 삼켰다.
중앙 통제실까지 세 개의 구역을 지나야 했다.
첫 번째 구역에서 경비 드론 두 대가 천장에서 내려왔다. 그가 오른손을 뻗었다. 드론의 회로가 멈추고 바닥에 떨어졌다. 뇌파 간섭. 재하의 신경외과 지식과 준혁이 클리닉에서 익힌 전이 기술이 합쳐진 능력이었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렸다. 그의 코에서 피가 한 줄기 흘렀다. 하은이 소매로 그의 얼굴을 닦았다. 재하의 피부 온도. 뜨거웠다. 열이 나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무리 안 하면 여기서 못 나가."
그가 피를 훔치며 웃었다. 재하의 웃음이 아니었다. 준혁의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처음 보는 표정.
두 번째 구역의 문 앞에서 세진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벽면 패널을 뜯었다. 맨손으로 회로를 잡아당기고, 두 가닥의 전선을 이빨로 벗겨 연결했다. 잠금 해제음. 강철 문이 열렸다.
"영혼관리국 보안 체계랑 같은 설계야."
세진이 손등의 감전 자국을 바지에 문지르며 말했다.
"명동성당 카타콤에서 백 번은 뜯어본 구조지."
세 번째 구역은 비어 있었다. 너무 비어 있었다. 하은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파장이 읽히지 않았다. 이 구역만 자기장이 교란되어 있었다. 카타콤처럼.
"함정일 수도 있어."
세진이 태블릿 화면을 확인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구역만 차폐한 거야. 내부에서."
통제실 문 앞에 도착했다. 하은은 안주머니의 파란 봉투를 다시 만졌다. 종이 모서리가 손가락 끝을 베었다. 가는 통증이 신경을 깨웠다.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하은을 보는 눈동자 속에서 붉은 실이 잠시 사라지고, 순수한 파란 파장만 남았다. 재하.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하은은 보았다.
"당신이 누구든, 지금 내 손을 잡은 건 당신이야."
하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시선은 갈라지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하은이 잡았다. 재하의 손 크기. 준혁의 체온. 그 모순 속에서 하은의 타투가 다시 미열을 냈다. 푸른빛이 두 사람의 맞잡은 손 사이로 번졌다.
세진이 문을 열었다.
통제실은 반원형이었다. 수백 개의 모니터가 벽면을 채우고 있었고, 모니터마다 영혼 파장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흘렀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푸른 조명이 바닥의 금속 타일을 거울처럼 만들었다.
중앙에 의자가 하나 있었다. 등받이가 높은, 의료용 리클라이너처럼 생긴 의자. 거기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하은의 걸음이 멈췄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조명 아래로 드러난 얼굴. 하은은 자신의 손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그 얼굴을 보았다. 같은 턱선. 같은 이마. 같은 귀 뒤의 위치에, 같은 문양의 타투.
"오래 걸렸네."
그 사람이 말했다. 하은의 목소리였다. 하은의 입술 모양으로, 하은의 억양으로. 눈가에 잔주름이 있었고, 머리카락 사이에 은빛 가닥이 섞여 있었다. 십 년. 아니, 그 이상.
세진의 태블릿이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에 금이 갔다.
"위원장이…"
세진이 하은과 의자 위의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의자에서 일어선 여자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파란 봉투. 하은의 것과 같은 크기, 같은 색, 같은 습기 자국.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수십 년은 된 것처럼.
"네가 지금 들고 있는 그 봉투."
여자가 말했다. 하은을 똑바로 보며.
"나도 스물여덟에 처음 열었어."
하은의 손이 안주머니 안에서 봉투를 움켜쥐었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고요한 통제실에 울렸다. 옆에 선 그가 하은의 팔을 잡았다. 재하의 손. 떨리고 있었다.
여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바닥의 금속 타일에 두 개의 같은 얼굴이 비쳤다.
"앉아. 설명할 게 많아."
여자의 왼손이 올라가 귀 뒤의 타투를 문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은의 왼손도 같은 순간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