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백기사〉
기사 한 줄은 지분 1%보다 싸고, 상처는 훨씬 비쌌다.
아침 여섯 시 사십 분.
설희는 모니터를 켠 채로 서 있었다. 앉지 않았다. 앉으면 그 기사들을 읽는 게 된다. 서 있으면 훑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다.
훑었다.
포털 메인에 세 개. 경제지 두 개. 유튜브 썸네일 하나.
'무능한 딸, 가문을 팔아 연명'
'백설희, 경영 능력 없는 상속녀—서윤에 기댄 합병의 실체'
'합병 뒤에 결혼, 결혼 뒤에 계약—미래리테일은 어디로'
기사 출처는 달랐다. 코멘트 방향은 같았다. 익명의 '내부 관계자'가 세 군데에 다 있었다.
설희는 커피잔을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미끄러졌다.
미끄러진 걸 알았다. 내려놨다. 소리 나지 않게.
장미라가 들어왔다.
"이사회 찬성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두 명. 재검토 의사 표시요."
설희가 돌아봤다.
"누구죠."
"김 상무와 박 이사입니다."
예상한 이름이었다. 예상했다고 해서 덜 차가운 건 아니었다.
"언제까지요."
"오늘 오전 중으로 입장 정리해달라고 했습니다."
오전. 세 시간이 있었다.
*
아르테미스 더 아크. 서윤의 오피스.
서윤이 기사를 읽은 건 오전 다섯 시였다. 경보 알림이 뜬 순간. 읽고 나서 세 가지를 했다.
첫째, 오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론 배후 파악. 출처 동일 여부 확인.'
둘째, 법무팀에 연락했다. '명예훼손 검토. 단, 지금 당장 소송 안 함.'
셋째,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 나왔다.
PH129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여섯 시 오십 분이었다.
설희가 문을 열었다. 서윤을 봤다.
"왜 왔습니까."
"같이 사는데요."
서윤이 들어왔다. 외투를 걸었다. 주방으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설희가 그 동작을 봤다.
"기사 봤죠."
"봤습니다."
"대응 방향은요."
서윤이 잔을 들었다.
"오전에 잡힌 일정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나갑시다."
*
기자 브리핑은 예정에 없었다.
서윤이 만든 자리였다. 오전 여덟 시. 더 아크 로비. 기자 여섯 명. 카메라 두 대.
설희는 그 장면을 로비에 들어서면서 봤다. 당황했다.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서윤이 설희 옆에 섰다. 마이크가 없었다. 목소리만으로 했다.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조용해졌다.
"백설희 대표는 미래리테일의 지분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산 겁니다. 저는 그 방향을 같이 가겠다고 선택했습니다."
20초였다.
카메라가 두 사람의 얼굴을 담았다.
서윤이 설희 쪽을 보지 않았다. 카메라를 봤다. 그게 더 강했다. 설희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설희를 믿는다는 시선이었다.
질문이 나오기 전에 서윤이 돌아섰다.
"이상입니다."
로비를 나왔다.
*
차 안.
설희가 앞을 봤다. 창밖이 흘러갔다.
"합의하지 않은 발언이었습니다."
서윤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했습니다."
"왜요."
서윤이 잠깐 멈췄다.
"계약이니까요."
짧게 답했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설희가 그 옆얼굴을 봤다. 답하려다 멈춘 사람의 옆얼굴이었다. 계약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0.5초였다. 서윤이 결단 전에 3초를 멈추는 사람이라는 걸 설희는 알고 있었다.
0.5초는, 그 절반도 안 됐다.
"감사합니다."
설희가 말했다.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까지 하죠."
설희가 물었다. 계약이라는 답을 이미 들었지만 다시 물었다.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틀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0.5초가 계속 귓가에 있었다.
서윤이 설희를 봤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차 안에 고여 있었다.
*
그날 밤. PH129 거실.
설희는 서재에 불을 켜놓고 보고서를 읽었다. 서윤은 소파에서 노트북을 열어두고 있었다.
열한 시가 지났다.
서윤의 노트북 화면이 꺼졌다. 잠든 것이었다.
설희가 그 모습을 봤다.
소파에서 잠든 사람의 모습이었다. 외투도 안 벗고. 잔도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고.
보호받는 순간, 더 크게 노출됐다.
설희는 그 생각을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PH129 보안 패널에 불빛 하나가 들어왔다. 주황색. 보안 로그 접속 알림. 시각: 오후 열한 시 삼 분. 접속 계정: 미확인.
누군가가 지금, 이 집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