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셋째의 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붕 위에서 낙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했다. 뚝, 뚝, 뚝. 사이사이에 바람이 기와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달리기를 쉬는 날이었다. 비가 오면 뛰지 않는다. 7세의 몸이 비를 맞으면 다시 앓는다. 전생에서는 폭우 속을 행군해도 열이 나지 않았는데, 이 몸은 그 정도의 사치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침에 운이 찾아와 달리기를 쉬라고 했다.
"비 오는 날은 정좌호흡을 더 깊이 하는 게 좋습니다. 습기가 기를 무겁게 하니까, 무거운 기를 다루는 연습이 됩니다."
"습기가 기에 영향을 줍니까?"
"만물이 기에 영향을 줍니다. 날씨도, 음식도, 사람의 마음도."
운의 해설은 둘째와 달랐다. 둘째는 비유로 압축하고, 운은 사실로 나열한다.
침상에서 정좌호흡을 하고 있었다. 누운 자세가 아니라, 이불 위에 다리를 접고 앉은 자세. 기초편이 말하는 정좌의 자세다. 허리를 세우고, 턱을 당기고, 눈을 감는다.
기감이 잡혔다. 스무 번째 호흡쯤. 여전히 희미하지만, 잡히기까지의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어젯밤은 서른 번이었는데 오늘은 스물. 진전이다. 느리지만 존재하는 진전.
기감을 유지한 채 호흡을 이어갔다. 안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기초편이 말하는 '고르게 쉬되 잊어라'를 몸에 새기는 중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정좌호흡을 더 오래 한다. 달리기를 쉬는 대신 정(靜)을 깊이 하는 것이다. 두 방식이 합쳐지면 이해가 입체가 된다.
그때,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걸음이 아니었다. 무거운 걸음도 아니었다. 익숙한 걸음이었다. 밤마다 뒷마당으로 향하던 발소리.
셋째.
정좌를 풀지 않았다. 눈도 뜨지 않았다. 발소리만 따라갔다. 셋째의 걸음이 복도를 지나 뒷마당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밤 수련을 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걸음이 달랐다. 평소보다 느렸다. 무거웠다. 발바닥이 마루를 미는 시간이 길다. 전생의 궁에서, 판결을 내리러 가는 관리들의 걸음이 이랬다. 마음이 무거우면 발이 먼저 늦어진다.
눈을 떴다. 창문 틈새로 내다봤다.
셋째가 뒷마당 연무장에 서 있었다. 비를 맞고 있었다. 목검을 들지 않았다. 검가(劍架)에 걸린 목검을 한 번 보고, 다시 앞을 보았다. 그냥 서 있었다.
비가 머리카락을 적시고 어깨를 타고 흘렀다. 셋째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연무장의 허수아비를 봤다. 큰형이 아침에 벤 자리가 선명했다.
셋째의 주먹이 올라갔다. 담 하나를 향해 — 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들렸다. 주먹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쳤다. 또 한 번. 담의 회칠이 갈라지고 주먹에서 피가 번졌다.
셋째가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빗소리에 섞여 들렸다.
"……매번 뒤야. 매번."
창문에서 물러났다.
맏형의 검은 곧다. 태어날 때부터 곧았을 것이다. 둘째는 서고에서 비전을 읽으며 체계를 쌓고 있다. 나는 7세면서 기감이 열리고 있다. 그 사이에서 셋째는 — 매번 뒤에 선다.
전생에서 이방간(李芳幹)을 떠올렸다. 넷째 형. 야심이 있었다. 하지만 야심만큼의 재능은 없었다. 형제들 사이에서 늘 비교당했고, 결국 칼을 들었다. 내가 그 칼을 꺾었다. 왕자의 난. 둘째.
방간 형은 내 칼에 꺾이기 전에, 이미 꺾여 있었다. 형제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자각이 칼을 뽑게 한 것이다. 칼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셋째의 주먹이 담을 치는 소리가 또 들렸다. 세 번째. 네 번째.
야심이 처음으로 '분노'가 아니라 '고통'으로 보였다. 큰형에게도, 둘째에게도, 이제 막내에게조차 뒤처지고 있다는 자각. 그 자각이 저 주먹에 담겨 있다.
전생이라면, 나는 저 순간을 이용했을 것이다. 약점을 잡고, 감정을 조종하고, 필요할 때 끌어쓰고, 필요 없어지면 쳐낸다. 이방간에게 했던 것처럼. 처남들에게 했던 것처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창문을 닫았다.
셋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직은. 7세 막내가 형의 야심을 위로할 수도 없고, 형의 열등감을 치료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 형제의 야심을 꺾는 것은 쉽다. 전생에서 증명했다. 하지만 형제의 야심을 '살려두는 것'은,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 해볼 수 있을까.
비가 그쳤다.
셋째가 뒷마당에서 돌아간 뒤, 나는 다시 정좌호흡을 시도했다. 아까 셋째의 발소리에 끊긴 호흡을 다시 잡아야 했다.
눈을 감았다. 숨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런데 이번에는 호흡이 이상하게 빨리 안정되었다. 열다섯 번째 호흡에서 기감이 잡혔다. 어제보다 다섯 호흡이 빨랐다.
잡념이 줄어 있었다. 셋째를 보기 전보다 오히려 마음이 고요했다. 담장 너머의 감지자도, 곽현의 의심도, 둘째의 붉은 실도 — 지금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지. 왜 이렇게 고요하지.
그때 아이의 기억이 올라왔다. 올라왔다고 하기보다, 스며들었다. 마치 비가 땅에 스미듯 천천히.
자장가.
어머니가 부르던 자장가. 이 아이가 간직하고 있던 유일한 기억이었다. 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멜로디도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 그 노래를 들을 때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따뜻하고, 안전하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감각.
이 아이의 어머니는 이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자장가를 부를 시간이 있었을까. 아마 짧았을 것이다. 하지만 짧아도 남는 것이 있다.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 것.
기감이 안정되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3호흡. 하지만 그 3호흡 동안 기감이 흔들리지 않았다. 안개가 걷히지는 않았지만,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눈을 떴다. 코끝이 따뜻했다.
전생의 피 냄새가 올라오려 할 때, 이 아이의 어머니가 내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기감이 감정에 반응한다. 전생의 죄책감이 기를 흔들고, 현생의 온기가 기를 잡아준다.
서두르지 않는다. 3호흡이면 3호흡만큼만.
이불을 덮고 누웠다. 비가 그치고 기와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남았다.
누웠다. 천장을 보며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셋째의 주먹. 어머니의 자장가. 기감의 3호흡.
전생에서는 매일 밤 하루의 득실을 계산했다.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장부처럼 정리했다. 하지만 오늘은 계산이 아니라 감각만 남았다. 빗소리와 주먹 소리와 자장가. 숫자가 아니라 온도로 남는 하루.
이런 날이 있는 것이다. 왕이었을 때는 몰랐다. 셋째의 피 묻은 주먹이 떠올랐다가, 어머니의 자장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서 셋째와 마주쳤다.
셋째의 오른손에 천이 감겨 있었다. 어젯밤 담을 친 손이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셋째가 재빨리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셋째형."
"뭐."
"손 다치셨어요?"
셋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넘어졌다."
"비 오는 날 조심하셔야지요."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형한테 약이라도 갖다드릴까요? 의방에 지혈에 좋은——"
"됐다."
셋째가 돌아섰다. 두 걸음을 갔다가 멈추었다.
"……막내."
"예."
"네가 기감이 열리고 있다는 거, 안다. 둘째가 떠들고 다니는 건 아니고, 네 호흡이 달라졌으니까 느끼는 거다."
등이 서늘해졌다.
"축하한다."
그 한 마디가, 담을 치던 주먹보다 더 아팠다. 진심이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형."
셋째가 걸어갔다. 기와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