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안의 적
약재 상인의 수레가 세가 정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달리기 중에 봤다.
분기마다 찾아오는 정기 거래다. 아이의 기억에 따르면 이 상인은 오래전부터 세가에 출입해왔다. 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저 상인은 오래 왔습니까?"
"15년 됩니다. 사공자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15년이면 세가 식구나 다름없겠네요."
"그렇지요. 가주님도 신뢰하시는 상인입니다."
15년의 신뢰. 그 신뢰가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그 신뢰가 진짜인지는 아직 모른다.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달리기 루트가 정문 앞을 스치는 구간이었다. 눈만 움직였다.
수레 위 상자들. 대부분은 천룡세가의 문양이 찍힌 주문품이었다. 그런데 한 상자만 달랐다. 왼쪽 하단, 나무 상자의 모서리에 작은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동그란 원 안에 점 하나. 검은 바탕에 검은 선이라 눈에 띄지 않지만, 전생에서 군수품 상자의 산지 표식을 수만 번 확인한 눈에는 잡혔다.
흑점(黑點) 표식.
9화에서 둘째가 말했다. '서고 비전이 흑점으로 흘러갔다는 소문이 있다.' 흑점은 무림의 암시장이다. 도난품과 금제품이 거래되는 곳.
정기 약재 상인의 수레에 흑점 표식이 찍힌 상자가 섞여 있다. 우연일 수 있다. 상인이 여러 곳에서 물건을 조달하니까, 흑점에서 온 약재가 섞일 수 있다. 하지만 우연은 한 번만 믿는다.
달리기를 마치고 물을 마시며 상인의 동선을 지켜봤다. 상인이 수레에서 상자를 내리고, 세가의 약방 관리에게 인수하는 과정. 경비 교대 시간과 겹쳤다. 야간 경비에서 주간 경비로 바뀌는 사이의 공백. 15분 남짓한 틈.
그 틈에 곽현이 보였다.
경비 교대를 마치고 숙소로 가야 할 시간인데, 곽현은 숙소 방향이 아니라 상인의 수레 뒤편으로 갔다. 경비 동선에서 벗어난 움직임이다. 자연스러운 척 수레 옆을 지나가면서 — 상인과 무언가를 주고받았다.
작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것. 죽통(竹筒).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끝났다. 곽현의 소매 속으로 죽통이 사라졌고, 곽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숙소 방향으로 걸어갔다.
찻잔을 집으려 했다.
비유가 아니다. 진짜로. 직접 뛰어가서 곽현의 소매를 잡고 죽통을 꺼내고 싶었다. 전생이라면 그렇게 했다. 정몽주의 밀서를 잡았을 때도, 이방석의 연통을 가로챘을 때도. 직접. 즉각. 결정적으로.
찻잔은 한 번만 깨져야 한다.
7화에서 아버지에게 한 말이 발목을 잡았다. 두 번 깨지면 소리가 아니라 소란이 된다. 7세 막내가 경비 가신의 밀거래를 직접 적발하면, 그건 찻잔이 아니라 항아리를 깨는 것이다.
둘째에게 갔다.
"이형. 오늘 약재 상인이 왔는데, 수레 위의 상자 하나에 이상한 표식이 있었습니다."
사실만 전달했다. 흑점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7세가 흑점을 알면 안 된다.
"이상한 표식?"
"동그란 원에 점 하나요. 다른 상자에는 없었는데 하나만 그랬습니다."
둘째의 눈이 좁아졌다. 이 형은 흑점 표식을 안다. 9화에서 흑점을 먼저 언급한 것이 둘째였으니까.
"그리고 이형. 하나 더 있습니다."
"뭐지."
"교대 시간에 곽현이 숙소 방향이 아니라 수레 쪽으로 갔습니다. 상인과 뭔가를 주고받았습니다."
"……뭘 주고받았는지 봤나?"
"작은 것이었습니다. 죽통 같은."
둘째의 얼굴에서 온기가 빠졌다.
"확실하냐."
"제 눈으로 봤습니다."
"……좋다. 내가 확인하마. 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형. 아버지께도요?"
"내가 올린다. 너는 빠져라."
공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그날 저녁.
서재 쪽에서 기척이 달라졌다. 운이 서재 앞을 지키고 있었고,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누군가를 부른 것이다. 나는 부름받지 않았다.
방에서 정좌호흡을 하며 기다렸다.
한 시진(時辰)이 지났다.
운이 나를 데리러 왔다. "가주님께서 형제분들을 모두 부르십니다."
서재의 문이 열렸을 때, 형제 셋이 이미 앉아 있었다. 큰형은 왼쪽, 둘째는 오른쪽, 셋째는 건너편. 나는 맨 끝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에 죽통과 펼쳐진 밀서가 놓여 있었다. 곽현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구금된 것이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곽현이 자백했다."
목소리가 고요했다. 분노가 아니었다. 분노는 아까 끝났다는 뜻이다. 지금 남은 것은 분노 너머의 것이었다.
"3년이다. 3년 동안 경비 동선, 금서각의 구조, 가주의 수련 시간표를 밖으로 흘렸다."
서재가 얼어붙었다. 큰형의 주먹이 무릎 위에서 하얗게 굳었다. 셋째의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밀서의 내용이 펼쳐져 있었다. 먹으로 쓰인 글씨. 세가의 경비 교대 시간이 적혀 있었고, 금서각의 위치와 봉인 방식에 대한 대략적인 서술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 — 가주의 야간 수련 시간과 장소.
큰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죽여야 합니다."
곧았다. 큰형의 대답은 항상 직선이다.
둘째가 조용히 말했다.
"죽이기 전에, 죽통의 출처를 추적해야 합니다. 곽현은 말단입니다. 죽이면 선이 끊깁니다."
셋째가 끼어들었다.
"추적은 제가 하지요. 사람을 다루는 건 제 몫입니다."
셋째의 시선이 찰나 나를 스쳤다. 나와 곽현의 접점을 알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왔다. 무겁지 않은 시선이었다. 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반응을 보는 것이다. 7세 막내가 배신자 처분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전생이라면 즉결했을 장면이다. 간첩은 목을 베고 광화문에 걸었다. 빠르게. 확실하게. 메시지로 썼다. 하지만 7세 막내가 처분을 논할 수는 없다.
"교대 시간과 봉인 방식까지 넘겼다는 건, 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 아닙니까?"
셋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렇다."
"3년이면 충분히 준비가 끝났을 수도 있습니다. 왜 아직 안 왔습니까?"
둘째가 대답했다.
"준비가 안 끝나서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거다. 준비가 된 자가 바로 움직이지 않는 건, 더 큰 그림이 있다는 뜻이다."
서재가 무거워졌다.
곽현이 끌려나갈 때, 곽현의 눈을 봤다. 운과 다른 경비 무인이 양팔을 잡고 있었다. 곽현의 눈에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 시선의 방향이 아버지가 아니었다. 서재의 벽 너머를 보고 있었다. 밖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밖에 있는 무언가를 더 두려워하는 눈.
협박이다. 곽현은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묶인 것이다.
아버지가 형제들을 내보냈다.
"10년을 함께한 사람이다."
한 마디가 서재에 떨어졌다. 형제들이 문 앞에서 멈추었다.
"10년의 밥과 10년의 신뢰를 배신했다. 하지만 죽이는 건 내가 한다. 너희 손에는 묻히지 않겠다."
큰형이 고개를 숙였다. 둘째가 고개를 숙였다. 셋째의 턱이 굳어 있었지만, 고개를 숙였다.
나도 숙였다.
서재를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하나만 생각했다.
곽현이 끝이 아니다. 곽현이 두려워한 것, 밖에 있는 무언가. 죽통의 출처를 모른다는 것은, 역으로 상대가 곽현이 잡혀도 괜찮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곽현은 소모품이었다.
시작이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으려는데 — 기감이 반응했다.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복도의 기척이 서고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발소리 없이. 약재 냄새도 없이. 이번에는 다른 냄새가 있었다.
먹 냄새.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봤다. 비어 있었다. 하지만 먹 냄새가 서고 방향에서 흘러왔다.
서고에 누가 간다. 이 시간에. 먹을 쓰는 사람이. 밀서에 쓰인 것이 먹이었다. 곽현의 죽통 안에 먹으로 쓰인 밀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가 먹 냄새를 풍기며 서고로 향하고 있다.
연결인가, 우연인가. 우연은 한 번만 믿는다. 두 번째부터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