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안의 서재는 밤이 되면 온도가 달라졌다.
낮 동안 햇빛이 들지 않는 북향 창 때문인지, 아니면 이 방에 오래 머문 사람의 체온이 스며든 탓인지. 세라는 벽난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펼쳐진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결계 유지 기록. 매달 소비되는 몽정석의 수량, 교체 주기, 마력 잔량 수치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녀가 이 서재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은 사흘 전이었다. 킬리안이 직접 허락한 것도 아니었다. 서재 담당 집사인 로한이 서류 정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고, 세라는 그 요청을 들어주었다. 목적이 없는 호의처럼 보였지만, 로한이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세라는 이미 알아챘다.
창밖으로 노스페라 고원의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지평선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은 결계의 마력 잔광이었다. 저것이 사라지면 이 북쪽 땅이 어떻게 되는지, 서류가 숫자로 설명하고 있었다.
손끝이 찼다. 벽난로의 열기가 닿지 않는 각도였다.
세라는 서류를 덮고 품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꺼냈다. 꿈 여행을 시작하던 첫날 밤, 무의식 중에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을 아침에야 알았다. 주머니 안에는 작고 매끄러운 몽정석 파편이 하나 들어 있었다. 날카롭지 않게 마모된 것으로 보아 오래된 물건이었다. 꿈속에서 킬리안이 손에 쥐어준 것이었는데, 어떤 경로로 현실로 건너왔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파편을 엄지로 문질렀다. 돌의 표면이 미세하게 따뜻했다. 마력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손온도가 전달되는 것인지. 두 가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세라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걸 어디서 구했습니까."
목소리가 등 뒤에서 왔다.
세라는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자연스러운 속도로.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았다.
킬리안이 서재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녀도 몰랐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가 걸음 소리를 지운 것인지, 아니면 세라가 서류에 집중한 나머지 놓친 것인지.
"오래된 것입니다."
그녀는 돌아보며 대답했다. 킬리안은 서재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여행용 외투를 아직 벗지 않은 상태였다. 어깨에 고원의 냉기가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차가워 보였다.
그의 시선이 세라의 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델마르크 가문의 몽정석입니다. 표면 마모 방식이 독특해서 다른 채굴지 것과 구별됩니다."
세라는 손안의 파편을 한 번 더 보았다. 그런 사실은 몰랐다. 꿈속에서 건네받은 것이라 출처를 물을 수 없었다.
"물려받은 것입니다."
거짓말이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내려앉는 것을 세라는 느꼈다. 킬리안이 그것을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로한이 당신을 여기 들였군요."
"저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서류 정리가요."
평서문이었다. 의심도 아니고 확인도 아닌, 그냥 받아들이는 어조였다. 킬리안은 책상 앞으로 걸어가 그 위에 놓인 또 다른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읽는지 안 읽는지 모를 속도로 넘겼다.
"3번 결계 지점의 마석 교체 주기가 틀렸습니다."
세라가 무릎 위의 서류를 다시 펼쳤다. 킬리안이 말한 지점을 찾는 데 잠깐 걸렸다.
"이십칠 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십이 일입니다. 지난 달부터 마력 흡수 속도가 빨라졌어요."
세라는 해당 항목에 선을 긋고 수치를 고쳐 적었다. 킬리안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보고서를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창 너머의 결계 잔광을 바라보는 자세가 거의 매일 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의 것이었다.
"왜 빨라졌습니까?"
세라가 물었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류를 보면 볼수록 수치의 변화가 단순한 마석 노화로 설명되지 않았다.
킬리안이 창가에서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공허의 지대 경계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허의 지대. 세라는 그 이름을 지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진입 자체가 금기인 무마력 구역. 그곳의 경계가 움직인다는 말의 무게를 잠시 가늠했다.
"결계가 버팁니까?"
"지금은."
지금은, 이라는 두 글자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세라는 한 번에 알아들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킬리안은 창가에 서서 고원의 어둠을 보고 있었고, 세라는 서류를 무릎 위에 놓은 채 그 뒷모습을 보았다.
이상한 장면이었다. 꿈속에서도 그는 이런 자세로 서 있던 적이 있었다. 밤의 가장자리를 보는 것처럼,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을 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킬리안 공작."
그녀는 불렀다. 호칭이 입에서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이제는 짧아졌다.
그가 돌아보았다.
"꿈을 꾸십니까?"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물었다. 목 안쪽이 조여들었다. 그 감각을 들키지 않으려고 세라는 시선을 서류 위로 내렸다.
킬리안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가에서 책상 쪽으로 돌아선 발소리가 들렸다. 멈추었다.
"꾸지 않습니다."
낮고 평평한 대답이었다.
"어릴 때부터입니까?"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었다. 왜 묻느냐는 것이었다. 세라는 손안의 몽정석 파편을 다시 쥐었다. 돌의 온도가 손바닥에 고였다.
"저는 꿈을 꿉니다. 오래전부터."
킬리안이 대답하지 않았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것이 이상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세라는 거기서 멈추었다. 더 이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꿈속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혼자 소유하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킬리안이 책상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 소리가 세라에게는 이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나도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세라의 손이 멈추었다.
킬리안은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시선이 종이 위로 향해 있었다. 말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을 본인이 더 의아하게 여기는 것 같은, 그런 침묵이 그 뒤를 따랐다.
세라는 무릎 위의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이 조금 느렸다. 서두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느린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로한이 서재 문을 두드린 것은 그 직후였다. 문이 열리기 전에 집사의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공작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루시드 성에서 황실 전령이 왔는데, 황제 폐하의 직인이 찍힌 서신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킬리안이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세라는 그의 손이 잠깐 멈추는 것을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들여라."
그 한 마디와 함께 서재 안으로 들어선 것은 로한이 아니었다. 전령복을 입은 남자였는데, 황실 직인이 찍힌 봉인 서신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그 뒤로 또 한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
세라는 그 얼굴을 알아보는 데 두 박자가 걸렸다.
황실 직속 감찰관. 진실의 거울을 관리하는 오각형 의회 소속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감찰관의 시선이 킬리안을 지나쳐 세라에게로 곧장 내려꽂혔다.
"아이젠 공녀. 황제 폐하께서 소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내일 새벽 루시드 성으로 출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