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의 바람은 냄새부터 달랐다.
루시드 성의 공기가 몽정석 특유의 단 향기를 머금고 있다면, 노스페라 고원에서 내려오는 바람에는 아무것도 섞여 있지 않았다. 정제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는 것, 그 냄새 없음이 오히려 코 안쪽을 건조하게 긁었다.
세라 아이젠은 창가에 서서 그 바람을 맞고 있었다.
델마르크 공작령의 손님 처소는 루시드 성 귀족 저택과 비교하면 과하다 싶을 만큼 절제되어 있었다. 커튼 대신 두꺼운 양모 휘장, 카펫 대신 돌 위에 깔린 수피 깔개. 장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장식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 공간이었다. 모든 물건이 기능을 위해 존재했다.
세라는 그 방이 주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즉시 그 생각을 접었다.
탁자 위에 작은 유리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반투명한 연청색 액체가 담긴 병으로, 표면에 아르테미스 상단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세라가 루시드 성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구해둔 것이었다. 꿈의 정수 중에서도 가장 낮은 등급, 그러나 현재 그녀의 재정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종류.
세라는 병을 들어 빛에 비추어 보았다. 액체가 흔들렸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누군가의 꿈이라는 사실이, 지금은 무겁게 느껴졌다.
영혼 잠식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진다고 했다. 세라는 오른손 검지를 병 표면에 가볍게 눌렀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괜찮았다.
아직은.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을 때, 세라는 병을 탁자에 내려놓고 등을 돌렸다.
노크 없이 문이 열렸다.
킬리안 폰 델마르크가 서 있었다. 외출복 차림이었는데, 북부 귀족답게 외투 안에 검을 패용하고 있었다. 그의 뒤로 부관 한 명이 서류 묶음을 든 채 두 발짝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다리게 했군요."
킬리안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사과가 아니었다. 단순한 사실 확인이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세라가 대답했다. 목소리를 고르는 데 의도적으로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냥 말했다. 거짓말을 하면 목소리가 낮아지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기다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킬리안은 탁자 쪽에 눈길을 주었다. 유리병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쪽을 한 번 보고 나서 세라 쪽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북방 결계 점검 일정이 이틀 앞당겨졌습니다. 내일 오전 출발입니다."
부관이 서류 묶음에서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점검 경로가 표시된 지도였다. 세라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혹한의 결계를 유지하는 몽정석 거점들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경로는 고원의 북쪽 끝까지 이어졌다.
"저도 동행합니까?"
"계약 조건에 포함된 사항입니다."
킬리안의 대답은 짧았다. 마력 결속 계약 조항 어딘가에 그 내용이 있다는 뜻이었다. 세라는 계약서를 다시 떠올렸다. 이십 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낭독 형식으로 진행되는 서약식에서 전부 외웠다. 거기에는 분명히 있었다. 공작령의 주요 공무에 배우자가 배석한다는 항목이.
"준비하겠습니다."
세라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킬리안은 잠시 멈추었다. 그 멈춤이 세라의 뒷덜미에 닿았다. 그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 예상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기다렸는지. 세라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부관이 지도를 두고 따라나갔다.
이튿날 새벽, 공작령 마구간 앞에 말 여섯 필과 호위 기사 넷이 대기하고 있었다.
세라가 도착했을 때 킬리안은 이미 안장에 올라 있었다. 그의 말은 북부 품종으로, 일반 기마보다 어깨선이 높고 다리가 굵었다. 검은 털 위로 새벽 안개가 엷게 내려앉아 있었다.
호위 기사 중 한 명이 세라에게 다가왔다. 에를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사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고, 짧은 갈색 머리에 북부 기사단 문양이 새겨진 외투를 입고 있었다.
"아이젠 공작부인, 이쪽 말이 부인께 배정되었습니다."
에를렌이 안내한 말은 회백색 암말이었다. 세라가 가까이 다가가자 말이 콧김을 내뿜었다. 세라는 손을 내밀어 말의 코 쪽에 갖다 댔다. 말이 냄새를 맡고 나서 고개를 조금 숙였다.
"온순한 편입니까?"
"북부 길에 익숙합니다. 얼어붙은 바위 길도 잘 다닙니다."
에를렌이 대답하면서 등자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세라가 안장에 오르기 전에 무릎을 꿇어 발판을 만들었다. 세라는 잠깐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발을 올렸다.
일행이 출발했다. 공작령의 성문을 지나자 즉시 길이 달라졌다. 포장된 돌길은 두 번째 언덕을 넘기 전에 끝났고, 이후로는 단단하게 얼어붙은 흙길이었다. 말발굽이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킬리안은 선두에서 말을 몰았다. 세라와의 거리는 두 말 길이, 호위 기사보다는 조금 앞이었다. 그는 주위를 살피는 방식이 독특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의 움직임만으로 좌우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세라는 안장에 앉아 지형을 살폈다. 결계 점검 거점 중 첫 번째 지점은 고원 중턱, 얼음 골짜기 입구에 있었다. 거기서 몽정석의 마력 잔량을 확인하고, 소모량이 허용치를 초과했을 경우 교체 작업을 진행한다고 부관이 어젯밤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외투 안쪽, 세라의 왼쪽 가슴 주머니에 유리병이 들어 있었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병이 흔들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오늘 밤도 꿈을 꾸어야 했다. 꿈 안에서 그와 나누었던 약속 중 아직 이행하지 못한 것이 세 가지 남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고원의 끝에서 하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세라는 고원 끝을 향해 뻗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가 꿈속에서 한 약속을 현실에서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세라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충분해야 했다.
첫 번째 거점 도착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얼음 골짜기 입구는 양쪽 절벽이 좁아지는 지형이었다. 바람이 지형을 타고 집중되는 구간이라 체감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세라는 외투 깃을 세웠다. 말도 발걸음을 늦추었다.
거점에는 작은 석조 구조물이 있었다. 지표면에 박힌 몽정석 기둥 주위에 마력 측정 장치들이 설치된 구조였다. 에를렌이 먼저 말에서 내려 구조물 쪽으로 걸어갔다. 장치를 살피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공작님, 잔량 수치가 예상보다 빠릅니다."
킬리안이 말에서 내려 다가갔다. 에를렌이 측정 장치의 눈금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세라도 말에서 내려 가까이 갔다.
몽정석 기둥은 세라의 키보다 약간 낮은 높이였다. 표면이 반투명하게 빛나야 정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안쪽 빛이 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교체 주기가 두 달 당겨진 겁니까?"
킬리안이 에를렌에게 말했다.
"적어도 그렇습니다. 이 구간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음 거점 수치를 봐야 알겠지만."
에를렌이 측정 장치 옆 작은 잠금함을 열었다. 예비 몽정석이 들어 있어야 할 공간이 비어 있었다.
에를렌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잠금함의 안쪽 벽면을 손으로 훑었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멈추었다.
"공작님."
그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잠금 마법이 외부에서 해제된 흔적이 있습니다."
킬리안이 에를렌 옆으로 가서 잠금함 내부를 직접 확인했다. 세라도 각도를 바꾸어 들여다보았다. 잠금함 안쪽 벽에 가느다란 긁힘이 있었다. 마력 흔적을 지우려 한 것 같았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었다.
바람이 골짜기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몽정석 기둥의 빛이 바람과 함께 한 번 더 흔들렸다.
세라는 외투 안쪽을 손으로 눌렀다. 유리병의 둥근 형태가 손바닥에 닿았다.
"언제부터입니까?"
킬리안이 에를렌에게 물었다. 에를렌은 잠금함의 경첩 부분을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최근 열흘 이내입니다. 경첩의 마력 잔류가 이 이상 오래된 건 아닙니다."
킬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한 번 천천히 둘러보았다. 절벽, 지형, 바람의 방향. 세라는 그 시선이 무엇을 계산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이미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은 느꼈다.
"나머지 거점을 전부 확인합니다."
"지금 당장요?"
에를렌이 되물었다. 킬리안이 그를 보았다.
"예비석이 없는 거점이 이것 하나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에를렌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른 호위 기사들에게 빠르게 신호를 보냈다. 기사들이 말을 이끌어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세라는 몽정석 기둥을 다시 보았다. 흐릿하게 깜빡이는 빛이 불규칙했다. 결계를 유지하는 힘이 소진되어 가는 것이었다. 이 결계가 무너지면 북부 마수들이 제국 내부로 유입된다고 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를 세라는 루시드 성에서 문서로만 읽었다.
지금은 그 문서가 아닌 흐릿한 빛 하나가 그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일행이 다시 출발하려는 순간, 에를렌이 갑자기 말을 세웠다.
그는 골짜기 위쪽 절벽 선을 보고 있었다. 세라도 시선을 올렸다. 절벽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누군가였다.
인영이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외투를 입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몽정석 기둥이었다. 거점 잠금함에서 빠져나간 것과 같은 규격이었다.
킬리안이 인영을 향해 한 손을 들어올렸다. 마력이 손끝에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절벽 위의 인영이 먼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