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이 먼저였다.
손등을 타고 오르는 서늘한 기운이 손목 안쪽 핏줄 위에서 잠깐 머물렀다. 병 안의 푸른 안개가 세라의 체온을 감지한 것처럼 소용돌이치며 형태를 잡으려 했다. 빛이 닿으면 잠깐 윤곽이 생겼다가, 다시 흩어졌다.
꿈의 정수. 아르테미스 상단에서 사들인 것 중 가장 값비싼 물건이었다.
셀레스티아 구역 끝자락, 테라스 난간에 기댄 세라는 수도의 불빛이 부유섬 아래로 점점이 흘러내리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병을 구입한 건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영혼 잠식이 시작되면 꿈의 연결이 끊어지고, 연결이 끊어지면 약속의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단도 사라진다. 그전에 꿈속에서 킬리안과 나눈 약속들을 정리해두어야 했다. 어떤 것을 먼저 이행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이미 기한을 넘겼는지.
세라는 병을 가운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유리가 가슴팍에 닿자 차가운 기운이 얇은 천을 뚫고 피부에 스몄다.
복도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무거웠다. 하인의 걸음이 아니었다.
세라가 몸을 돌리기 전에 테라스 문이 열렸다.
"이 시각에 여기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킬리안이었다. 외투 없이 나온 탓에 흰 셔츠 깃이 밤바람에 살짝 밀렸다.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그가 굳이 이 테라스를 통과할 이유도, 이 쪽 복도를 지날 이유도 없었다.
세라는 손을 가운 안으로 집어넣어 유리병을 쥐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킬리안은 그렇게 내뱉으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라에게서 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류를 든 손이 난간 위에 가볍게 얹혔다.
도시의 불빛이 그의 옆얼굴에 반사되었다. 세라는 그 각도를 알고 있었다. 꿈속에서 수없이 보았던 측면이었다. 눈썹 끝이 미세하게 내려앉는 방식,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볼 때 눈꺼풀이 반쯤 내려오는 버릇. 그것이 현실의 킬리안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공작님은 이 시각에 서류를 보십니까."
"결재가 밀렸습니다."
"여기서요?"
킬리안의 시선이 아래에서 세라 쪽으로 옮겨왔다. 직접적이지도 않고 회피하지도 않는,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당신 손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라의 손가락이 가운 안에서 유리병을 더 단단히 감쌌다. 병 표면의 온도가 이제는 손바닥과 같아져 있었다.
"개인 소지품입니다."
"아르테미스 상단의 봉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까 복도에서."
세라는 그가 서류를 들고 이쪽 복도를 지나는 것을 우연으로 여겼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꿈의 정수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면 목소리가 낮아지고, 낮아지는 순간 이 사람은 알아챌 것 같다는 직감이었다.
킬리안은 잠깐 침묵했다. 서류를 난간 위에 내려놓았다.
"어디에 쓸 것입니까."
"기억 보조에 씁니다. 꿈속의 것을 정리하는 데."
"꿈을 수집합니까."
"꿈을 잃기 전에 기록하는 겁니다."
그 말이 공중에 잠깐 떠 있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킬리안의 셔츠 깃이 다시 움직였고, 그는 그것을 손으로 눌러 잡았다.
"영혼 잠식."
단언이었다. 의문형이 아니었다.
세라의 손끝이 차갑게 굳었다.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있습니까."
"사소한 것들이 있습니다."
킬리안이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펴지는 않았다. 손 안에 말아 쥔 채 아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델마르크 영지에 세 번째 서클 이상의 치유 마법사가 두 명 있습니다. 노스페라 고원의 기후가 마력 회복에 유리하다는 보고가 있었고."
세라는 그 말의 방향을 잡지 못했다.
"공작님."
"결정이 아닙니다. 정보입니다."
킬리안이 세라를 보았다. 이번에는 정면이었다. 불빛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작고 날카롭게 빛났다.
"당신이 이 저택에서 잠식이 진행된다면, 황실에 보고 의무가 생깁니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효율. 세라는 그 단어를 혀 위에서 잠깐 굴렸다. 꿈속에서 그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지 않았다. 그때의 그는 다른 식으로 말했다. 더 느리게, 더 많은 것을 우회해서. 그러나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라는 유리병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병 안의 안개가 체온을 감지한 것처럼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윤곽이 생겼다가 또 흩어졌다.
킬리안의 시선이 병으로 내려갔다.
그가 손을 뻗었다.
세라가 반응하기 전에 그의 손가락이 세라의 손목을 가볍게 감쌌다. 차가웠다. 킬리안의 손끝이 맥박이 뛰는 자리에 닿은 채 잠깐 정지했다. 안개가 다시 소용돌이쳤다. 병 안에서 푸른빛이 선명해졌다가 가라앉았다. 결계의 공명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세라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킬리안이 손을 놓았다.
"꿈속에서 무엇을 기록합니까."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병을 다시 가운 안쪽으로 넣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킬리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 다가오지도 않았다. 두 걸음의 거리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밤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도시의 소음이 아래에서 희미하게 올라왔다. 마력 전송망이 가동될 때 나는 낮은 진동음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내일 북부 사절단 보고가 있습니다."
킬리안이 화제를 바꾸었다.
"결계 점검 일정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이 동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마력 결속 계약 조항에 따라서입니까."
"그렇습니다."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일이었다. 황실이 마력 결속 계약을 이용해 그를 묶어두는 방식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준비하겠습니다."
킬리안이 서류를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실제로 읽는 것처럼 시선을 내렸다. 페이지를 넘기지는 않았다.
"잠식 증상이 심해지면 알리십시오."
세라는 그 문장을 다시 들었다. 한 번 더.
명령도 아니고 부탁도 아니었다. 어떤 분류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말이었다.
"왜입니까."
"당신이 쓰러지면 내 일정이 틀어집니다."
킬리안은 그렇게 말하고 서류를 접어 겨드랑이에 끼웠다. 테라스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라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외투 없이 나온 어깨, 바람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 꿈속에서 그가 떠날 때도 저렇게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러나 반드시 약속한 것은 이행하면서.
문이 닫히기 직전, 킬리안이 멈추었다.
"아이젠."
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꿈에서 기록하는 것이 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는 고개를 끝까지 돌리지 않았다. 문손잡이를 쥔 채로, 옆모습의 절반만 보이는 각도에서 말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당신만 기억한다는 사실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문이 닫혔다.
세라는 난간을 손으로 짚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을 눌렀다. 도시의 불빛이 아직도 아래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운 안에서 유리병이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잠깐 형태를 잡았다. 이번에는 흩어지지 않았다. 남자의 옆모습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병 안에 고여 있었다.
발소리가 복도 안쪽에서 다시 들렸다. 두 번째 인물의 것이었다. 킬리안의 것보다 가볍고 빠른 걸음.
문이 열리기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아이젠 부인, 황실 밀사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즉시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시녀 리나의 얼굴이 창백했다. 손에는 봉인된 서신이 들려 있었다. 황실 봉납청의 붉은 인장이었는데, 그 위에 두 번째 인장이 덧찍혀 있었다.
세라는 그 인장을 알아보았다.
오각형 의회의 직인이었다. 대공 네 명 전원의 서명이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