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는 편지를 세 번 읽었다.
첫 번째는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두 번째는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세 번째는 자신이 잘못 읽었기를 바라며.
델마르크 공작이 직접 서명한 초청장이었다. 오늘 오후, 공작가 북관 서재. 시각은 두 시간 뒤.
접힌 종이 한쪽 귀퉁이에 작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공작가의 문장인 은빛 눈송이가 아니라, 세라가 아는 다른 것이었다. 꿈속에서 킬리안이 언제나 소매 안쪽에 달고 다니던 작은 문양. 비어 있는 원 안에 직선 하나. 그 자신도 의미를 모른다고 했던, 그러면서도 버리지 않던 표식.
세라는 손가락 끝으로 인장을 눌렀다. 차가운 밀랍의 감촉이 손끝에서 손목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가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처음 만난 날, 공작의 눈빛은 낯선 사람을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인장은.
서랍을 열었다. 안쪽 깊숙이 접어 넣어 둔 손수건을 꺼냈다. 꿈속에서 킬리안이 세라의 손에 쥐어 준 것, 잠에서 깨면 언제나 손에 쥐어져 있던 물건. 현실에서 물질로 존재할 수 없는 꿈의 잔해가 어떻게 손에 남았는지 세라는 설명할 수 없었다. 마력 전문가를 찾아갔을 때도 고개를 저었다. 자연발생 몽정석 파편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 뒤에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손수건 가장자리에는 같은 문양이 수놓여 있었다. 비어 있는 원 안의 직선.
세라는 천천히 손수건을 다시 접었다.
북관으로 가는 복도는 예상보다 길었다. 공작가의 건물은 외부에서 보면 단정하고 차갑지만, 내부는 미로에 가까웠다. 창문마다 서리가 끼어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노스페라 고원의 바람이 유리 너머로 소리를 냈다. 낮고 일정한 울림이었다.
안내를 맡은 시종은 젊은 남자였다. 걸음이 빠르고 말이 없었다. 복도를 두 번 꺾고 계단을 한 번 내려갔을 때 세라는 멈춰 섰다.
"이 길이 맞습니까."
시종이 뒤를 돌아봤다.
"북관 서재로 가는 최단 경로입니다, 아이젠 공."
"최단 경로는 저쪽입니다."
세라는 왼쪽 복도를 턱으로 가리켰다. 공작가 도면은 사흘 전 황실 기록실에서 열람했다. 비공개 구역이었지만 황실 외교관 자격으로 접근 권한이 있었다.
시종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수리 중인 구역이 있어서 우회 중입니다."
"그렇다면 따라가겠습니다."
세라가 다시 걸음을 떼었다. 시종은 한 박자 늦게 돌아섰다.
서재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킬리안은 이미 안에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오후의 빛이 역광으로 들어와 그의 얼굴 윤곽만 선명했다. 세라는 그 윤곽을 십 년 동안 알고 있었다.
"앉으시오."
의례적인 말이었다. 세라는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킬리안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섰다.
"초청에 응해 주어 감사합니다, 공작님."
"형식적인 인사는 필요 없소."
그가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세라는 내용을 확인했다. 황실에서 발행한 마력 결속 계약 조항 일부였다. 세라와 킬리안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계약서는 이미 검토했습니다."
"이 조항은 검토하지 않았을 것이오."
킬리안이 손가락으로 특정 항목을 짚었다. 세라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읽었다. 마력 결속 기간 중 일방이 '꿈의 경로'를 통해 상대방의 마력을 무단 취득할 경우, 계약은 자동 파기되며 취득한 마력과 함께 영혼 일부가 회수된다는 내용이었다.
세라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꿈의 경로."
"그렇소."
킬리안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어떤 색도 없는 말투였다.
"당신이 매일 밤 접속한다는 보고를 받았소."
"누구에게서요."
"중요하지 않소."
"저는 중요합니다."
킬리안이 세라를 봤다. 짧은 침묵이었다.
"마력 감찰관 보고서요. 당신의 꿈 진입 기록이 지난 열흘간 감시망에 잡혔소."
세라는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꿈속에서 킬리안을 만났다고 하면,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십 년의 시간이 일방적인 몽환 서약의 증거로 쓰일 수 있었다.
"공작님은 꿈을 꾸십니까."
킬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뜬금없는 질문이오."
"관련이 있는 질문입니다."
"꿈의 경로 침범 혐의를 받는 당신이 내게 꿈을 묻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오?"
"공작님이 꿈을 꾸지 않는다면, 저는 침범할 경로 자체가 없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창 너머 바람 소리만 낮게 흘렀다.
킬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세라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꿈속의 킬리안은 언제나 먼저 와 있었다.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처럼. 현실의 킬리안이 꿈을 꾸지 못한다고 믿는다면, 그 시간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세라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작님."
킬리안의 시선이 돌아왔다.
"계약 파기를 원하신다면 황실을 통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파기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하고 싶습니다."
세라는 손수건을 꺼냈다. 접힌 채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문양을 아십니까."
킬리안은 손수건을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라는 보았다. 그가 책상 위에 놓인 손을 한 번 쥐었다가 펴는 것을.
"어디서 났소."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평탄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눌러 담은 낮음이었다.
"꿈에서 받았습니다."
킬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세라를 봤다. 처음 만난 날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낯선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의 눈이었다.
세라는 그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공작님의 꿈에서요."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시종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공작님, 마력 감찰관이 북관에 들어왔습니다. 영장을 지참했습니다."
킬리안은 세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젠 공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황실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