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창에서 바람이 밀려들었다.
세라 아이젠은 공작 집무실의 창가에 서서 루시드 성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부유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로등 빛이 띠처럼 이어졌고,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허공. 구름조차 닿지 않는 깊이.
어젯밤 꿈속에서 그는 세라의 손을 잡은 채 이 같은 풍경을 함께 보았다.
현실의 킬리안 폰 델마르크는 세라를 보지 않았다.
서류더미를 훑는 그의 시선은 정확하고 빠르고 무감했다. 펜이 양피지 위를 긁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집무실을 채웠다. 세라가 도착한 지 거의 한 각이 지났지만, 그는 앉으라는 말도 나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일하고 있었다.
세라는 등 뒤로 두 손을 모으고 창가에 선 채로 기다렸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계약서. 마력 결속 계약의 세칙 조항 중 세 번째 항목이 델마르크 측 법무관의 해석과 충돌하고 있었고, 세라 쪽 가문 대리인이 판단을 공작 본인에게 받으라 했다. 감정 따위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창유리 너머로 밤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세 번째 항목."
킬리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펜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마력 결속 계약서 세칙 삼조, '양 당사자의 합의 없이 결속 해제 불가' 조항을 문제 삼는 거요?"
세라가 돌아섰다. 킬리안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고, 서류 위에 두 손을 펼쳐 놓은 채 세라를 보고 있었다. 직접적인 시선이었다. 피하지 않는 눈.
꿈속의 그와 같은 눈이었다. 색깔도, 각도도.
세라는 숨을 가볍게 고르고 계약서 사본을 꺼냈다.
"삼조가 아닙니다. 삼조의 단서 조항, '불가항력에 의한 당사자 소멸 시 자동 해제' 부분입니다. 델마르크 측 법무관은 소멸을 물리적 사망으로만 해석했고, 저는 법인격 소멸, 즉 가문 폐가도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그 해석의 실익이 뭐요."
"델마르크 가문이 황실 명령으로 강제 해산될 경우, 결속 계약의 의무가 저에게만 남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짧은 침묵이었다.
킬리안의 손가락이 책상 위를 한 번 두드렸다. 세라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 않도록 천천히, 의식적으로.
"델마르크 가문이 황실 명령으로 해산된다는 전제 자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요?"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이 계약의 역할입니다."
킬리안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단서 조항 쪽을 펼쳐 읽는 동안 집무실은 조용해졌다. 세라는 그 시간에 그의 옆 서가를 눈으로 훑었다. 북방 기상 기록지. 마수 출현 지도. 결계 유지 비용 계산서. 가지런히 꽂혀 있었지만 표지마다 손때가 배어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한 번도 서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세라가 알고 있는 그의 습관이 이 방 어딘가에 실재하는지, 아니면 꿈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그것이 궁금한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세라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외투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자 작은 유리병이 손끝에 닿았다. 꿈의 정수를 담아두는 작은 용기. 비어 있는 채로 들고 다닌 지 오래되었다. 채울 꿈이 없어서가 아니라, 채우면 무언가를 확정 짓는 것 같아서.
"받아들이겠소."
킬리안이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법인격 소멸을 포함한 해석으로 단서 조항을 수정하겠소. 법무관에게 내일 전달하면 되오."
예상보다 빠른 결정이었다. 세라는 계약서를 회수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필요 없소."
의자에서 일어서며 킬리안이 창가로 걸어왔다. 세라가 서 있던 자리였다. 그는 잠시 루시드 성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젠 영애."
"네."
"당신은 처음 만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소."
세라의 손가락이 계약서 끝을 쥔 채 멈추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처음 이 집무실에 들어왔을 때, 창가로 먼저 갔소. 낯선 공간에 처음 온 사람은 보통 그러지 않소. 의자나 문 쪽을 먼저 보지."
세라는 대답을 고르는 데 한 박자가 걸렸다.
"야경이 아름다워서입니다."
킬리안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세라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렇소."
그는 그것으로 끝냈다. 더 파고들지 않았다. 세라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계약서를 외투 안쪽에 접어 넣었다. 유리병이 손등에 닿았다. 차가웠다.
킬리안이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펜을 들었다.
세라가 집무실을 나가려고 돌아섰을 때였다.
"꿈을 자주 꾸시오?"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왔다.
세라는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멈추었다. 창밖의 바람이 창틀을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니오."
거짓말을 하면 목소리가 낮아진다는 것을 세라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가 반 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거의 꾸지 않습니다."
"그렇군."
킬리안은 더 말하지 않았다. 펜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세라는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다. 가로등 빛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 위에 기다란 사각형을 만들었다. 세라는 그 위를 밟지 않고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신발 끝이 석재 바닥을 짚는 감각이 선명했다.
꿈을 자주 꾸느냐고 물었다.
그가 왜 그것을 물었는지, 세라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하면 의미가 생기고, 의미가 생기면 기대가 생기고, 기대는 이미 충분히 위험했다.
외투 안쪽의 유리병이 걸음마다 옆구리를 건드렸다.
계단 어귀에서 델마르크 가의 시녀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를 위해 배치된 인물이었는데, 세라가 예상보다 일찍 나온 것인지 미처 자리를 정비하지 못한 채 들고 있던 서류를 서둘러 접었다. 서류 위에는 달필로 적힌 숫자들이 빼곡했다. 결계 유지 비용 계산서와 같은 서식이었다.
"나가는 길은 알고 있습니다."
세라가 먼저 말하자, 시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영애님."
시녀의 목소리가 낮았다. 안내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늘 밤 루시드 성 하층부에서 몽환 이상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테라 구역 북단입니다."
세라의 걸음이 멎었다.
"몽환 이상 반응이라면."
"마수 침입이 아닙니다."
시녀가 접어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쳐 세라에게 내밀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꿈이 현실에 누출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테라 북단 거주민 다수가 같은 꿈을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각자의 집에서, 동시에."
세라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보고서였다. 델마르크 가 정보망이 수집한 초기 보고, 작성 시각이 한 시간 전이었다.
"공작께 보고했습니까."
"방금 전 공작님 집무실로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시녀가 잠시 멈추었다.
"보고서 내용 중 하나가, 영애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라는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시녀의 표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테라 북단 주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꿈의 내용이—"
목소리가 한 번 끊겼다 이어졌다.
"모두 같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저희 쪽 몽환 분석관이 그 얼굴을 특정했고요."
바람이 계단 위로 올라왔다.
"영애님 얼굴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