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아카이브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지하 1층 끝, 서버실 옆 복도를 따라 걸으면 나오는 그 방은 아르케 타워에서 유일하게 자연광이 닿지 않는 공간이었다. 형광등 두 개 중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강이준은 그 불안한 빛 아래 서서 파일 캐비닛을 열었다.
복도에서의 일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서도윤이 떠났다. 말 한마디 없이. 강이준이 먼저 돌아섰으니 순서야 맞았지만, 그 침묵의 무게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느끼지 않으려 이 방으로 내려왔다. 손을 쓰면 머리가 비워지는 편이었다.
아카이브실 안쪽 벽면 전체가 서류함이었다. 오르트 광고 기획이 알파 크리에이티브와 오메가 애드를 흡수 합병하기 전까지의 기록물이 물리 파일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디지털화 작업이 예산 부족으로 중단된 채 10년째 방치된 공간이었다. 먼지가 손등에 쌓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2014년 하반기' 레이블이 붙은 구간을 찾았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제니스의 전례를 찾으려 했다. 이전에 유사한 공동 기획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 실패의 패턴이 지금과 겹치는 지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순수하게 전략적인 이유였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파일 더미를 꺼내 바닥에 쌓았다. 손가락이 서류 모서리에 쓸렸다. 형광등 깜빡임이 주기를 좁혀가고 있었다. 강이준은 무릎을 꿇고 앉아 파일을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 11월. 12월.
'구조조정 관련 내부 공문'이라는 레이블이 붙은 파일이 나왔다. 두껍고 낡았다. 클립이 녹슬어 있었다.
그는 그걸 열지 않으려 했다.
한 박자 지나고 나서 손이 먼저 움직였다.
클립을 풀었다. 첫 장은 인사위원회 회의록이었다. 강이준의 눈이 날짜를 짚었다.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피의 월요일이라고 업계에서 불리는 그날의 공식 기록이 거기 있었다.
그는 다음 장을 넘겼다. 알파 크리에이티브 측 인사위원장의 서명이 들어간 정리해고 통보서 목록이 나왔다. 이름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오메가 애드 출신이었다. 강이준의 눈은 자동으로 이름을 훑었다. 훑었다. 또 훑었다.
멈췄다.
서도윤 대신 다른 이름이 거기 있었다. 서정민. 오메가 애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위 해제 및 권고사직.
손가락이 그 이름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강이준은 다음 장을 넘겼다. 넘기고 싶지 않았지만 넘겼다. 정리해고 결재 라인이 기재된 페이지였다. 인사위원장. 기획 총괄. 대표이사 직무대리.
대표이사 직무대리 옆 서명란에 이름이 찍혀 있었다.
강태성이었다. 강이준의 아버지였다.
그 순간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묵직하고 규칙적인 보폭이었다. 순찰이었다. 강이준은 반사적으로 파일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기고 몸을 낮췄다. 형광등이 하필 그 타이밍에 완전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깜빡이는 빛이 서류함 그림자를 짧게 늘였다 줄였다 반복했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숨을 참았다.
방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소리의 주인이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몇 초가 이상하게 길게 늘어졌다. 강이준은 바닥에 흩어진 서류들을 발로 살짝 밀어 서류함 그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종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너무 작아서 복도까지 닿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아마도.
발소리가 다시 움직였다. 멀어졌다.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강이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서류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잡으려 했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장들이 흩어지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소리가 작았다. 너무 작아서 방 안에 가득 찬 것은 소리가 아니라 그것의 부재였다.
강이준은 무릎 꿇은 채 그 이름을 내려다봤다.
강태성. 아버지의 필체로 쓰인 서명이었다. 업무용으로 쓰는 도장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쓴 사인이었다. 긁히는 듯한 필압이 서류 뒷면까지 눌려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서류를 뒤집어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방이 좁게 느껴졌다. 공기가 건조하고 묵은 냄새가 났다. 오래된 종이와 먼지와 녹슨 금속의 냄새. 숨을 들이쉬면 그것이 폐 안쪽까지 들어왔다.
서도윤의 아버지가 이 방의 서류 한 장으로 직위를 잃었다.
강이준의 아버지가 그 서류에 서명했다.
서도윤이 오르트에 입사한 것이 4년 전이었다. 기획 2팀장이 된 것이 2년 전. 강이준과 처음 회의실에서 마주한 것이 그보다 조금 전. 그 모든 시간 동안 서도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강이준은 알 수 없었다. 알면서 매일 같은 건물을 오갔다면, 그 사람이 무엇으로 버텼는지 강이준은 상상할 수 없었다.
흩어진 서류들을 다시 모았다. 손이 여전히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모서리를 맞추는 게 어려웠다. 강이준은 그것을 의지의 문제로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서류를 모아 클립을 다시 끼웠다. 클립이 삐걱거렸다. 파일을 품에 안았다. 그 상태로 잠시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놓지 않고 가슴 앞에 끌어안은 채로.
형광등이 한 번 더 깜빡였다.
강이준은 일어섰다.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알았다. 로비 통유리 너머로 빗줄기가 보였다. 테헤란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하늘이 이미 어두웠다.
그는 로비에서 걸음을 멈췄다.
서도윤이 보였다.
아르케 타워 정문 밖, 회전문 너머로 서도윤이 서 있었다. 외투 깃을 세우고 있었지만 우산이 없었다. 택시를 잡으려는 건지 그냥 서 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 자세였다. 빗속에서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강이준은 유리문 안쪽에 멈춘 채 그 등을 봤다.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우산을 가져다주거나, 이름을 부르거나, 최소한 문밖으로 나가는 행동이라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품 안의 서류가 묵직했다. 안쪽 주머니에 넣기엔 너무 두꺼웠다. 강이준은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겉장 위로 엄지가 닿았다. 손등의 흉터가 서류 모서리에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까.
어느 쪽이든 강이준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변명과 사과와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순간 입 밖으로 나오면 거짓말이 될 것 같았다. 아버지의 서명이 들어간 서류를 품에 안고 건네는 말이 어떻게 진심일 수 있었다.
빗소리가 유리 너머에서 들려왔다. 낮고 고른 소리였다. 테헤란로의 차 소리가 그 아래 깔려 있었다. 로비 안쪽은 조용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엘리베이터 벨 소리뿐이었다.
서도윤의 등이 작아졌다.
걸어가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택시를 잡지도 않고, 빗속으로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빗줄기가 외투 어깨를 적시는 것이 유리 너머로 보였다. 발걸음이 느리지 않았다. 멈추지 않았다.
강이준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서도윤이라는 이름이 혀 위에서 무게를 가졌다가 사라졌다.
그 등이 빗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데 오십 보도 걸리지 않았다. 강이준은 그 자리에 선 채 유리문을 바라봤다. 빗방울이 유리를 타고 내려갔다. 흘러내린 자국이 빛을 굴절시키며 번졌다.
우리는 처음부터 시작될 수 없는 사이였어.
소리 내서 말하지 않았다. 말할 이유도 없었다. 서도윤은 이미 없었고 강이준은 아직 여기 있었다. 그 거리가 오십 보가 아니라 10년이라는 것을 그는 방금 알았다.
품 안의 서류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로비 조명이 서도윤이 사라진 방향의 유리 위로 강이준의 얼굴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는 그 얼굴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문 쪽을 봤다.
없었다.
강이준은 문을 밀었다.
찬 빗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쳤다. 서류가 빗속에 젖지 않도록 외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걸었다. 서도윤이 사라진 방향이 아닌 쪽으로.
열 걸음쯤 걷다가 멈췄다.
서류 안쪽 어딘가에 끼어 있던 종이 한 장이 생각났다. 인사위원회 결재 라인 페이지 뒤에 붙어 있던 것. 넘기다 보고도 넘어간 것.
골든 티켓 발행 요청서. 2014년 12월 8일 날짜. 오메가 애드 대표 직인이 찍혀 있었다.
기각. 붉은 도장으로.
강이준은 빗속에서 그 자리에 섰다. 외투 안쪽에서 서류의 무게가 갈비뼈를 눌렀다. 그는 천천히 외투 단추를 풀고 파일을 꺼냈다. 빗물이 겉장 위로 번졌다. 골든 티켓 발행 요청서. 기각 도장. 그 아래 작은 글씨로 기재된 요청인 이름.
서정민.
강이준은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빗물에 잉크가 번지기 직전이었다. 그는 파일을 다시 외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단추를 잠갔다.
서도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도 같은 건물에서 일했다. 알고도 같은 회의실에 앉았다. 알고도 강이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무게를 어디에 쌓아두고 있었는지, 강이준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빗소리가 커졌다.
강이준은 걷기 시작했다. 방향은 없었다. 그냥 걸었다. 아르케 타워의 불빛이 등 뒤에서 멀어졌다. 빗속에 젖어가는 외투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 무게가 서류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그는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이 세 번. 멈췄다. 다시 세 번.
강이준은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봤다. 발신인 표시가 없었다. 번호도 없었다. 화면에 뜬 것은 숫자 대신 짧은 문자열이었다.
중앙 감의 시스템 — 열람 이력 확인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