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벽이 좁아지고 있었다.
가변형 벽체 시스템이 작동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서도윤은 느꼈다. 공간이 조금씩 압축되는 감각. 로열 보드 세 명이 나란히 앉은 테이블 맞은편, 천장 가까이까지 뻗은 유리벽 너머로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회의실 안의 공기는 건조했다. 형광등 아래 모든 것이 선명하게, 그러나 납처럼 무겁게 놓여 있었다.
발표가 시작되었다.
강이준은 서도윤의 파트를 건너뛰었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두 팀의 공동 기획안 중 기획 2팀의 섹션은 화면에 단 한 번도 띄워지지 않았다. 강이준이 리모컨을 쥔 손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단독 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노바 일렉트로닉스의 이번 캠페인 핵심 타깃은 3049 남성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낮고 단단한 음색이었다.
"기존 데이터가 놓친 세그먼트, 4060 여성 구매 결정권자입니다. 저희 기획 1팀은 이 방향으로 전체 크리에이티브를 재설계했습니다."
서도윤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로열 보드 중 가장 오른쪽에 앉은 전무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닿는 순간, 서도윤의 무릎이 다시 의자 쪽으로 꺾였다. 완전히 서지 못했다. 강이준의 서늘한 눈이 먼저였다.
강이준은 발표를 멈추지 않았다. 슬라이드를 넘기며 시선을 보드 쪽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찰나, 0.5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그의 눈이 서도윤에게 닿았다. 앉아 있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전달되었다.
서도윤은 앉았다.
손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에는 두 팀이 밤새 조율한 공동 기획안이 열려 있었다. 서도윤이 작성한 섹션, 인사이트 리딩을 바탕으로 4주에 걸쳐 구성한 소비자 심리 분석 파트가 거기 있었다. 화면 위로 형광등 빛이 반사되었다. 서도윤은 태블릿을 덮었다.
강이준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로열 보드 전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마다, 서도윤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눌렀다. 끝마디에서 힘을 주고, 풀고, 다시 쥐는 것을 반복했다. 발표 자료 속 소비자 분석 수치들이 귀에 들어왔다. 숫자는 낯설지 않았다. 서도윤이 뽑아낸 데이터였다. 방향만 바뀌어 있었다. 각도가 달라졌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전용된 것이었다.
발표가 끝났다. 박수는 없었다.
로열 보드 전무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기획 2팀 의견은 없습니까."
서도윤이 일어섰다. 이번에는 강이준이 막지 않았다.
"있습니다."
목소리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서도윤은 한 번 숨을 고르고 보드를 향해 정면으로 섰다.
"방금 보신 기획안의 소비자 분석 데이터는 기획 2팀이 산출한 수치입니다. 4주간의 데이터 다이브를 통해 도출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공동안 검토 절차 없이 단독 발표로 제출되었습니다."
전무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서도윤은 마이크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발표대 앞에 강이준이 여전히 서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 발자국 줄었다.
"잠깐."
로열 보드 중앙에 앉은 이사가 손을 들었다. 짧고 단호한 제스처였다.
"두 팀 팀장, 모두 앉으십시오. 중간 보고 형식에 대한 이의는 보고 종료 후 서면으로 제출하십시오."
서도윤의 손이 마이크 스탠드에 닿기 직전이었다. 손끝이 금속 표면에서 1센티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멈췄다. 차가운 공기가 손등 위로 흘렀다. 서도윤은 손을 내렸다.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강이준은 발표대 옆으로 비켜섰다. 서도윤이 걸어오는 방향을 바라보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테헤란로 위로 흰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보고는 십 분 후 종료되었다. 로열 보드가 자리를 떴다. 회의실 문이 닫혔다.
서도윤은 일어서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잠금 화면이 켜진 채였다. 화면 속에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서도윤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반사된 얼굴은 표정이 없었다. 어떤 감정을 꺼내야 하는지 잠시 알 수 없었다.
그가 일어선 것은 그로부터 30초쯤 후였다.
강이준은 여전히 회의실 안에 있었다.
서도윤은 그를 보지 않고 문을 향해 걸었다. 발소리가 없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힘이 빠져 있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강이준이 뒤따라 나왔다.
"서도윤."
복도는 길었다. 양쪽 통유리로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아무도 없었다. 점심 이후 한산한 시간대였다. 두 사람만 남은 복도는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
서도윤이 멈춘 것은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복도 끝이었다.
강이준이 다가왔다. 서도윤은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 공조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소음만 있었다. 형광등이 윙 하는 소리. 멀리서 전화 울리는 소리가 한 번 들렸다가 끊겼다.
서도윤의 어깨가 한 번 오르내렸다.
강이준은 말하지 않았다. 서도윤도 말하지 않았다. 분노라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쏟아지지 않았다. 몸 어딘가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빈 곳으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다.
서도윤은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누르지 않았다. 손가락이 차가운 금속 버튼 위에 얹힌 채로 멈추었다. 처음엔 차가움이 퍼지다가, 이내 체온이 금속 온도를 조금씩 밀어냈다.
강이준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서도윤은 그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한참이었다.
"이게 강 팀장이 말하던 공정한 경쟁입니까."
목소리가 조용했다. 화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비겁하게 뒤통수치는 거?"
강이준은 답하지 않았다.
서도윤이 돌아섰다. 강이준을 보았다. 처음으로 정면에서 보았다. 강이준의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 흔들리지 않음이 오히려 이상했다. 사람은 저렇게 고요할 수 없다. 무언가를 눌러두고 있을 때 저렇게 고요해진다.
서도윤은 그것을 알아챘다.
알아채는 것이 더 나빴다.
"말을 해요."
서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강이준의 입술이 열렸다. 그리고 닫혔다. 두 번.
"공동 책임 연대제를 아시죠."
강이준이 말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이번 보고에서 두 팀의 방향이 충돌하면 보드가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팀장 모두 감봉에 직위 해제입니다. 당신 팀도."
서도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이유입니까."
"결과론적으로는 최선이었습니다."
"당신 팀의 최선이요."
"프로젝트의 최선입니다."
서도윤은 한 발 앞으로 움직였다. 강이준과의 거리가 좁아졌다. 강이준이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로열 보드가 당신한테 뭔가 시켰군요."
물음이 아니었다.
강이준의 눈 아래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찰나였다. 0.3초. 서도윤의 인사이트 리딩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강이준은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답이었다.
서도윤의 오른손이 들렸다. 강이준의 뺨을 향해 올라갔다. 손바닥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멈췄다. 손끝이 강이준의 뺨에서 두 뼘쯤 떨어진 공중에서 떨었다. 서도윤은 손을 내리지 않은 채로 강이준을 보았다. 강이준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서도윤의 손이 방향을 바꿨다.
주먹이 강이준의 가슴을 밀쳤다. 강하지 않았다. 밀어내는 힘이었다. 그러나 손이 가슴에 닿는 순간, 서도윤의 손목이 멈추었다. 옷감 너머로 체온이 전해졌다. 예상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빨랐다. 강이준의 심장이 서도윤의 손바닥 안에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저렇게 고요한 얼굴 아래에서, 이렇게 빠르게. 서도윤은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잠깐 그대로 있었다. 강이준도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이었다.
"당신이 무슨 압박을 받든."
목이 잠긴 듯한 목소리였다.
"나를 이용하지 마세요."
서도윤이 손을 거두고 돌아서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 두 사람을 보았다. 권 부사장이었다. 그의 시선이 서도윤의 손에서, 강이준의 가슴 쪽으로,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거리로 천천히 이동했다.
"마침 잘 됐군요."
권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불길했다.
"두 분 다 찾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