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소음은 옥상 문을 넘지 못했다.
에덴 스카이의 밤은 낮과 달랐다. 낮에는 기획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태블릿을 펼치고 커피 잔을 기울이는 공간이었지만, 밤 열한 시의 이 정원은 다른 행성처럼 고요했다. 조릿대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만 있었다. 강이준은 벤치 모서리에 걸터앉아 오른손 손등을 왼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손등이 쓰라렸다. 오늘 회의실에서 자료철 모서리에 긁힌 자리였다. 길지 않은 상처였는데, 하필이면 오래된 흉터 바로 위를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났다. 흉터는 손목 아래쪽에서 검지 관절 근처까지 사선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얕지 않은 선이었다. 오래된 것이라 하얗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새 상처가 그 위에 얹히자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기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살아났다. 벌레가 흉터 선을 따라 기어가는 것처럼, 오래 묻어두었던 것이 표면으로 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밴드 포장지를 뜯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손만으로는 자꾸 미끄러졌다. 이준은 입술을 꾹 다물고 다시 시도했다. 포장지가 비닐 특유의 마찰음을 냈다. 밴드가 반쯤 뜯겼다가 끈적한 면이 서로 붙어버렸다.
세 번째 밴드를 꺼냈다.
바람이 조금 더 강하게 불어왔다. 조릿대 잎이 서로 부딪혔다. 이준은 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밴드 끝을 잡아당겼다. 이번엔 잘 뜯겼다. 하지만 손등에 갖다 대는 순간 왼손 검지가 미세하게 떨렸고, 밴드가 비스듬하게 붙었다. 흉터의 절반도 가리지 못한 채.
이준은 그 상태로 멈췄다. 뜯어낼 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어중간한 상태로.
비상계단에서 올라오던 발소리를 그는 듣지 못했다.
서도윤은 옥상 문을 열었을 때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발이 먼저 멈췄다. 어깨 너비 하나만큼 열린 문 사이로 찬 공기가 들어오고, 벤치에 앉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이 테헤란로 쪽에서 비스듬하게 올라오는 탓에, 이준의 손등만 희미하게 밝혀져 있었다.
도윤의 시선이 그 손에 고정됐다.
밴드가 엇나간 채 붙어 있었다. 그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난 선, 오래된 흉터. 도윤은 1화 회의실에서 잠깐 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준이 반사적으로 소매를 내린 탓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지금은 달랐다. 이준이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도윤은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았다.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략적으로 생각한 게 아니었다. 다음 수를 계산하는 특유의 빠른 사고가 이번만큼은 작동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옥상 바닥은 타일이었고, 구두 굽이 작게 소리를 냈다.
이준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준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재킷 안쪽으로 당겼다. 도윤은 그 동작을 보았다.
"야간 출입은 기획 1팀도 쓰는 건지 몰랐네요."
도윤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 온도였다. 이준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일부러 만들어낸 것임을 도윤은 알았다. 가볍게 받아치려는 것, 이미 본 것을 없던 것으로 만들려는 것.
"옥상이 서브 존 전용이라는 규정은 못 봤는데."
이준이 일어서려 했다. 도윤이 그보다 빠르게 벤치 가까이 걸어왔다. 이준의 움직임이 멈췄다. 도윤이 재킷 안쪽에서 밴드 두 개를 꺼냈다. 편의점 봉투를 들고 올라온 것을 이준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거, 그렇게 붙이면 금방 떨어져요. 이리 줘 봐요."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기다렸다.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이준의 손과 같은 높이에서 손을 내밀었다. 명령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요청하는 자세도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는 것이었다.
이준이 손을 빼려 했다.
도윤이 그를 보았다. 분석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를 계산하거나 기록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준을 보는 눈이었다. 회의실에서 수백 번 마주쳤던 그 날카로운 시선이 아니었다. 도윤의 눈이 이렇게 생겼나, 이준은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생각이 먼저 들어왔다.
이준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아주 천천히, 오른손이 도윤 쪽으로 이동했다.
도윤은 잡지 않았다. 이준이 내민 손을 받쳐드는 방식으로 손바닥을 아래에 깔았다. 손등이 위로 오도록. 도윤의 손이 차가웠다. 옥상에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체온이 낮은 사람이었다. 그 차가움이 손등의 쓰라림 위로 얹혔을 때, 이준은 숨을 참았다.
도윤이 엇나간 밴드를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찍찍 소리가 났다. 이준이 미세하게 턱을 당겼다. 도윤은 새 밴드 포장지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뜯었다. 그러고는 밴드를 붙이기 전에 잠깐, 손등의 흉터 선을 눈으로 따라갔다.
이준은 그걸 보았다. 도윤이 흉터를 보는 것을.
피하려는 충동이 왔다. 하지만 도윤의 손바닥이 이준의 손목 아래에 있었고, 도윤이 그것을 잡고 있지 않음에도 이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움직이지 않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했다. 테헤란로 쪽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불빛이 도윤의 손 위에 걸려 있었다. 바람이 다시 불었고, 도윤의 셔츠 깃이 조금 펄럭였다. 커피와 종이 냄새가 섞인 것이 이준의 코끝을 지나갔다.
도윤이 밴드를 정확하게 붙였다. 흉터를 완전히 덮는 방향으로, 새 상처도 함께 가려지도록. 엄지로 양쪽 끝을 꾹 눌렀다. 벗겨지지 않도록 한 번, 두 번.
이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도윤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밴드를 다 붙이고 나서도, 엄지가 이준의 손등 위에 그대로 머물렀다. 밴드 가장자리를 한 번 더 짚었다. 벗겨질 틈이 없는지 확인하듯, 그러나 그것만이 목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손길이었다. 이준은 숨을 내쉬지 못했다. 도윤의 엄지가 밴드 끝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 흉터 주변의 피부 위를 스쳤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접촉이었다. 찰나였지만 이준의 손목 아래에서 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도윤도 느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도윤의 손이 마침내 천천히 물러났다. 서두르지 않았다. 손끝이 이준의 손등을 마지막으로 스치고 나서야, 공기가 그 사이로 들어왔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옥상의 밤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통과했다. 조릿대가 낮게 흔들렸다.
"오래된 거네요."
도윤이 먼저 말했다. 흉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준이 그쪽을 보았다. 도윤은 이준의 손을 보고 있었다. 밴드가 붙은 자리를.
"그냥."
도윤이 말을 멈췄다. 이준은 기다렸다. 바람 소리가 그 사이를 채웠다.
"오래됐으면, 이미 아프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이준과 눈이 마주쳤다.
"꼭 그렇진 않잖아요."
이준은 그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반박할 논리가 없는 게 아니었다. 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말이 어딘가에 정확하게 닿아버렸고, 닿은 자리가 쓰려서 이준은 입을 열지 않았다.
"피의 월요일."
이준이 작게 말했다.
도윤의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반응을 숨기려 했지만 숨기지 못한 것이었다. 이준은 그것을 보았다.
"그 단어는 아는군요."
"모르는 사람이 이 업계에 있나요."
"알면서 묻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죠."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윤이 벤치 반대편 끝에 앉았다.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옥상에 올라왔을 때보다는 가까웠다. 도윤은 테헤란로 쪽을 바라보았다. 빌딩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은 곳이 여럿 있었다.
"내일 로열 보드 수정안 제출 마감이에요."
이준은 그 말이 화제를 돌리는 것인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하는 게 귀찮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판단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알고 있어요."
"두 팀 안이 상충하는 지점, 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내일 유니온 라운지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 하면 더 빠르죠."
이준이 도윤을 보았다. 도윤은 여전히 테헤란로 쪽을 보고 있었다. 옆모습이었다. 회의실에서 자신과 마주 보며 논리를 가다듬던 얼굴이 아니었다. 밤 공기 속에서 가로등 빛을 받은 도윤의 윤곽은 낮보다 조금 달랐다. 이준은 그 얼굴을 오래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태블릿으로 내렸다.
화면을 켰다. 기획안 파일이 열렸다. 지난 로열 보드가 전면 수정을 지시한 항목들이 붉은 메모로 남아 있었다. 이준은 그 메모 중 하나에 시선을 멈췄다. 소비자 인사이트 방향성 충돌. 두 팀이 같은 데이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읽고 있다는 것.
"소비자 연령대 해석 말하는 거면."
이준이 먼저 꺼냈다. 도윤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내가 틀렸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준이 말을 이었다.
"당신 데이터 해석에 내가 빠뜨린 게 있더군요."
도윤이 이준을 보았다. 이준은 태블릿 화면을 도윤 쪽으로 기울였다. 화면에는 도윤 팀의 분석 로직이 펼쳐져 있었다. 이준이 언제 그걸 들여다봤는지, 도윤은 몰랐다.
"인정하는 건가요."
"교환이에요. 나도 당신이 빠뜨린 거 있으니까."
도윤의 입 끝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은 게 아니었다. 웃음 직전의 어딘가였다.
바람이 다시 조릿대를 건드렸다. 두 사람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었다. 어깨가 닿을 만한 거리였다. 닿지는 않았다. 이준의 손등에 붙은 밴드가 바람에 들뜨지 않았다. 도윤이 꾹 눌러둔 덕분이었다.
그 순간, 옥상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