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분위기가 달랐다.
비서가 두 팀에 동시에 메시지를 보낸 건 오전 열 시 사십 분이었다. 강이준은 프라임 존에서 노바 일렉트로닉스 소비자 분석 데이터를 펼쳐놓고 있다가 진동을 느꼈다. 화면을 확인한 뒤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18층 대회의실, 즉시 집합. 발신인은 비서실이 아니었다. 로열 보드 직속 라인이었다.
강이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동안, 맞은편 복도 너머 서브 존에서 서도윤이 먼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건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서도윤은 아무 말 없이 버튼을 눌렀다. 강이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18층 대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테이블 상석에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오십 대 초반. 짙은 네이비 수트. 소매 단추가 금색이었다. 명함도, 자기소개도 없었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봉투에 노바 일렉트로닉스 로고가 선명했다. 남자는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 무게감이 공기를 눌렀다.
로열 보드 소속 임원 한 명이 옆에 서 있다가 짧게 소개했다.
"노바 일렉트로닉스 전략기획 부문 이사 차성민 씨입니다."
차성민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봉투를 열었다. 두 팀의 중간 기획안을 꺼내 나란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훑어보는 데 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가 서류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죠."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두 팀이 합쳐졌다는 게 이 기획안에서 보이질 않습니다. 방향이 다른 두 개의 안이 나란히 붙어 있을 뿐이에요. 노바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닙니다."
강이준은 손등 위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손가락 마디가 테이블 모서리를 스쳤다. 오래된 흉터 위로 차가운 나무 질감이 전해졌다.
"중간 보고일을 앞당기겠습니다. 이틀 뒤로."
서도윤이 미세하게 굳었다. 강이준은 차성민의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유요?" 차성민이 입꼬리를 올렸다. 미소라고 부르기엔 온기가 없었다. "우리 측 내부 일정이 변경됐습니다. 그 이상은 설명 드릴 이유가 없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로열 보드 임원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말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차성민은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으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그가 회의실을 나간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로열 보드 임원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두 분도 아시겠지만 공동 책임 연대제 조항은 살아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문이 닫혔다.
강이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틀이면 수면 조사부터 소비자 패널 인터뷰, 크리에이티브 방향 재설정까지 전부 다시 해야 한다는 얘기야."
서도윤은 대답 대신 창밖을 봤다. 테헤란로 위로 오후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그 빛이 유리에 반사되어 서도윤의 옆얼굴 위를 지나갔다.
"알고 있어."
"아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움직여야지."
두 사람은 회의실을 나와 유니온 라운지로 향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공조 시스템이 1팀 선호 온도로 맞춰진 이 공간에서, 서도윤은 코트를 벗지 않았다.
라운지 테이블 위에 두 팀의 자료가 다시 펼쳐졌다. 강이준 쪽은 데이터 중심의 소비자 군집 분석이었다. 서도윤 쪽은 감성 내러티브 기반의 캠페인 스토리보드였다. 나란히 놓인 두 더미는 처음부터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서도윤이 자신의 스토리보드 첫 장을 펼쳤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행동 패턴이야. 노바가 원하는 건 브랜드 감정이고. 우리 안이 더 상위 목표에 맞아."
"소비자 행동 근거 없이 감성 카피 들고 들어가면 차성민이 그냥 웃고 끝낼 거야."
"근거를 붙이면 되지."
"이틀 안에?"
서도윤이 펜을 들었다. 스토리보드 여백에 빠르게 뭔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이준은 그 움직임을 지켜봤다. 서도윤의 글씨는 작고 빽빽했다. 생각이 손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필체였다.
"2팀 안에 1팀 데이터를 이식하는 구조로 가면 돼. 뼈대는 내 거, 살은 네 거."
강이준이 서도윤의 스토리보드를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두 번째 장, 세 번째 장. 멈췄다.
카피 한 줄이 여백에 적혀 있었다. 글씨가 작아서 처음엔 지나쳤던 부분이었다. 강이준이 그것을 읽는 동안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 안쪽 어딘가가 조여드는 것 같았다.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이게 네 카피야?"
서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초안이야."
"초안이라고?"
강이준은 서류를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손에 쥔 채 다시 읽었다. 서도윤은 그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공조 시스템에서 바람 소리가 낮게 났다. 형광등 하나가 미세하게 깜빡였다.
강이준이 서류를 내려놨다.
"방향은 네 안으로 간다. 데이터 구조는 내가 붙인다. 오늘 밤까지 각자 파트 초안 완성하고 내일 새벽에 합친다."
"동의."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한 건 오후 두 시였다. 라운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유리 너머로 도시가 천천히 어두워지는 걸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강이준이 소비자 패널 데이터를 다시 펼쳤다. 열두 개의 군집. 구매 전환 트리거. 브랜드 연상 지수. 숫자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손가락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잠깐 멈췄다. 흉터 위로 화면의 빛이 흘렀다. 이틀. 머릿속으로 일정을 계산했다. 오늘 밤 데이터 재분류, 내일 오전 크리에이티브 통합, 내일 오후 리허설.
불가능한 일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서도윤의 스토리보드가 실제로 이 데이터와 맞아떨어져야 했다.
맞아떨어지면.
강이준은 그 생각을 끝까지 가져가지 않았다.
서도윤은 라운지 반대편 끝에 앉아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노바 일렉트로닉스의 최근 5년 브랜드 리포트가 펼쳐져 있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가끔 멈추고, 가끔 돌아갔다. 눈이 특정 문장 위에서 오래 머물렀다.
서도윤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차성민 이사. 로열 보드랑 아는 사이야?"
강이준이 화면에서 눈을 들었다.
"왜?"
"오늘 회의에서 임원이 한 마디도 안 했어. 차성민이 말하는 동안 시선을 피했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아니." 서도윤이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게 아니었어. 피한 게 아니라 기다렸어. 차성민이 말을 끝낼 때마다 임원 쪽에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거든. 누가 시킨 것처럼."
강이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사전에 조율된 거라는 얘기야?"
"가능성이 있어."
"그게 사실이면 이틀 단축은 우리 작업 능력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는 거잖아."
서도윤이 강이준을 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도윤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대신 다시 태블릿을 들었다. 화면에서 브랜드 리포트를 닫고 다른 파일을 열었다. 차성민 이사의 이름이 검색창에 들어갔다.
강이준은 그걸 보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서도윤이 혼자 움직이게 뒀다.
밤이 깊어졌다. 유리 너머 테헤란로의 불빛이 촘촘해졌다. 라운지 안에는 키보드 소리와 태블릿 넘기는 소리만 남았다. 강이준이 가져온 테이크아웃 커피는 두 잔이었다. 서도윤 쪽에 하나를 밀어놓은 건 강이준이었다.
서도윤은 고맙다는 말 없이 컵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온기가 번졌다. 종이컵 표면에 남아 있는 체온, 강이준의 손이 쥐고 있었을 그 온도가 아직 거기 있었다. 서도윤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컵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같은 밤을, 같은 압박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찰나 동안 손바닥 위에 고였다가 사라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정이 넘었을 때 서도윤이 먼저 멈췄다.
"강이준."
"응."
"2번 군집 데이터. 이십 대 후반 남성 구매 전환율이 여기서 갑자기 올라가는 지점. 이게 어떤 트리거야?"
강이준이 자신의 화면을 봤다.
"브랜드 신뢰도 관련 메시지 노출 직후야. 광고보다 후기에 반응하는 군집이야."
"그러면."
서도윤이 태블릿에 다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빠르게, 멈추지 않고. 강이준은 그 속도를 지켜봤다. 저 사람이 뭔가를 잡았을 때 손이 저렇게 움직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새벽 한 시 이십 분. 서도윤이 태블릿을 강이준 쪽으로 밀었다.
강이준이 화면을 봤다. 읽었다. 다시 읽었다.
스토리보드가 바뀌어 있었다. 감성 내러티브 뼈대는 그대로였지만, 군집 데이터를 끌어들인 방식이 달랐다. 소비자 행동 패턴이 카피의 타이밍과 맞물려 있었다. 데이터가 숫자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호흡 안에 녹아 있었다.
강이준이 화면에서 눈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이걸 혼자 한 거야."
"네가 준 데이터로 했지."
"그게 핵심이 아니잖아."
서도윤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강이준은 태블릿을 내려놨다. 그리고 자신의 기획서를 집어 들었다. 소비자 군집 분석. 구매 전환 시나리오. 미디어 믹스 설계. 이것들이 서도윤의 스토리보드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가면 완성된다.
그 사실이 목 안쪽 어딘가에서 무겁게 걸렸다. 완성되는 것이 두 사람의 것이 된다는 의미였다. 강이준이 혼자 완성하는 게 아니라.
그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3번 섹션. 미디어 믹스 비중이 틀렸어."
서도윤이 태블릿을 당겼다.
"어디?"
"여기." 강이준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유튜브 비중을 이렇게 가져가면 2번 군집 반응이 안 나와. 인스타그램 쇼츠 쪽으로 무게를 옮겨야 해."
"근거 데이터 있어?"
"당연하지."
강이준이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서도윤이 몸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서도윤에게서 커피 향과 뭔가 희미한 것, 종이와 잉크 사이 어딘가의 냄새가 났다. 강이준은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여기 보면 쇼츠 노출 후 구매 전환까지 평균 사흘이야. 유튜브는 열이틀."
"알겠어. 수정한다."
서도윤이 자리로 돌아갔다. 강이준도 화면을 제자리로 돌렸다.
새벽 두 시.
강이준이 기획서 마지막 파트를 정리하다 멈췄다. 피로보다 다른 무언가가 먼저 왔다. 차성민이 회의실에서 서류를 덮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미소. 로열 보드 임원이 고개를 끄덕이던 타이밍. 서도윤이 말한 것처럼 누가 시킨 것처럼.
이틀 단축이 능력 테스트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 생각이 손가락 위로 내려왔다. 흉터를 엄지로 눌렀다. 오래된 버릇이었다. 눌릴 때마다 감각이 선명해졌다. 지금 이 상황이 선명해졌다.
무언가 자신들이 모르는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새벽 세 시가 지났을 때 서도윤이 파일을 저장하고 태블릿을 닫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야. 내일 오전 열 시에 합치자."
강이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내 파트 한 섹션 남았어."
"새벽에 쓴 기획서는 내일 낮에 보면 절반은 틀려 있어."
강이준은 화면을 봤다. 서도윤은 이미 코트를 집어 들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거슬렸다.
그가 노트북을 닫는 동안 서도윤이 먼저 라운지를 나섰다. 강이준은 자신의 기획서를 챙기다가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서도윤의 스토리보드 출력본을 봤다. 한 페이지가 테이블 끝에서 반쯤 걸려 있었다. 집어 드니 여백에 빼곡한 글씨가 보였다. 서도윤이 낮에 적어 넣은 메모들이었다. 카피 초안, 수정안, 그 옆에 더 작은 글씨로 덧붙인 단어들.
강이준은 그 종이를 내려다봤다. 아까 읽었던 카피 한 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가져가지 않았다. 정확히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내려놨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도윤을 따라잡은 건 복도 끝이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이 다시 라운지에 마주 앉은 건 오전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강이준이 밤사이 완성한 미디어 믹스 설계를 테이블에 올렸다. 서도윤이 수정된 스토리보드를 펼쳤다. 두 파트를 합치는 작업이 시작됐다.
처음 한 시간은 순조로웠다.
1번 섹션. 2번 섹션. 브랜드 감성 내러티브와 소비자 데이터가 맞물렸다. 강이준이 제안한 미디어 배분이 서도윤의 카피 리듬과 충돌 없이 들어갔다.
3번 섹션에서 멈췄다.
서도윤이 피칭 오프닝 시퀀스를 처음부터 다시 짜겠다고 했다. 강이준이 물었다.
"왜."
"차성민이 감성 카피에 반응 안 할 것 같아서. 오프닝을 데이터 임팩트로 시작하자."
"그게 처음에 네가 반대했던 구조잖아."
"상황이 바뀌었어."
"상황이 바뀐 게 아니라 네가 불안한 거잖아."
서도윤의 손이 멈췄다.
"뭐?"
"어제 차성민 반응 보고 흔들리는 거야. 근거가 있어서 바꾸는 게 아니라."
"나는 인사이트를 조정하는 거야."
"아니." 강이준이 의자를 당겼다. "네가 어제 밤새 완성한 스토리보드를 오늘 아침에 처음부터 엎겠다는 건 인사이트 조정이 아니야. 그냥 패닉이야."
라운지가 조용해졌다. 공조 시스템 소리만 낮게 깔렸다.
서도윤이 강이준을 봤다.
"패닉."
"그래."
"내가 지금 패닉 상태로 보여?"
"보이지는 않아. 근데 구조가 패닉이야."
서도윤의 눈이 좁아졌다. 목선이 굳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이준, 너 지금 내 판단력을 의심하는 거야."
"판단력이 아니라 방향을 말하는 거야."
"같은 말이야."
"다른 말이야."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멈췄다. 테이블 위에 두 사람의 자료가 뒤섞여 있었다. 강이준의 데이터 시트 위로 서도윤의 스토리보드 한 장이 걸쳐져 있었다. 경계가 없었다. 그게 문제였는지도 몰랐다.
서도윤이 자신의 스토리보드를 집어 들었다.
"내가 수정하겠다는 게 그렇게 문제야? 이건 내 안이야."
"이건 이미 우리 안이야."
"네가 그렇게 결정할 수 있어?"
"어제 합치기로 했잖아."
"합치는 거랑 내가 내 구조를 못 바꾼다는 건 다른 얘기야."
강이준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서도윤."
"왜."
"이틀이야. 우리한테 남은 시간이 이틀이야. 지금 오프닝 시퀀스를 처음부터 다시 짜면 나머지 섹션 통합할 시간이 없어. 이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일정이야. 근데 우리가 그 안에서 서로 구조 갖고 싸우면."
서도윤이 말을 자르지 않았다. 강이준이 계속했다.
"이틀? 이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어."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 왜."
"강이준." 서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도 알아. 근데 차성민이 처음부터 이 안을 뒤집으러 온 거라면, 우리가 지금 짜고 있는 구조가 맞다는 보장이 없잖아."
강이준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서도윤의 스토리보드가 흔들렸다.
"그래서 지금 엎자는 거야?"
"수정이야."
"새벽까지 완성한 거잖아."
"완성이 목표가 아니잖아. 통과가 목표지."
강이준의 눈이 좁아졌다. 손바닥이 테이블에서 떨어졌다. 그러더니 서도윤의 스토리보드를 집어 들었다. 서도윤이 그를 봤다.
강이준이 스토리보드를 바닥으로 밀쳐냈다. 종이들이 흩어졌다.
"이틀 안에 이걸 다시 짤 시간은 없어."
서도윤은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흩어진 종이들을 내려다봤다. 라운지가 조용했다. 공조 시스템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강이준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었다. 서도윤 자신의 숨도 얕았다. 두 사람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아래 종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서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테이블을 돌아 강이준의 앞으로 걸어왔다. 강이준이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서도윤의 손이 올라와 강이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서도윤의 눈에 있는 것이 분노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강이준은 이 거리에서도 읽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