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른 뼈가 바스러졌다.
사방이 온통 백색 가루로 뒤덮인 평원이다.
멀리서 보면 눈이 내린 듯 보였다.
하지만 코끝을 찌르는 건 서늘한 죽음의 악취였다.
나는 멈춰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부서진 두개골 조각이 군화 끝에 걸려 굴러갔다.
구멍 뚫린 안와가 나를 원망하듯 응시했다.
목구멍 안쪽이 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좌표가 가리킨 종착지는 거대한 협곡의 밑바닥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공허의 순례지다.
하늘은 보랏빛 안개에 잠겨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뒷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감각에 목을 움츠렸다.
뒤쪽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바르가스가 낡은 마력 증폭기를 만지작거리며 따라왔다.
기계는 불규칙하게 깜빡거리며 신경질적인 소음을 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원 중앙에는 거대한 산이 솟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의 정체가 선명해졌다.
그것은 돌이나 흙으로 쌓인 것이 아니었다.
수만 명의 유골이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이었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골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낡은 가죽 재킷이나 셔츠 잔해가 뼈 사이에 걸려 있었다.
이 대륙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형태의 직물이었다.
이곳에 버려진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었다.
대륙을 구원할 영웅이라 칭송받으며 불려 온 자들이다.
그들은 세계수 에르드의 양분이 되어 폐기되었다.
가슴팍의 문양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을 내뱉었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 턱 끝에 맺혔다.
손가락 끝이 딱딱하게 굳어 감각이 무뎌졌다.
공기가 폐부를 찌르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뼈 무덤 꼭대기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덜그럭거리는 금속음이 정적을 깨고 사방으로 퍼졌다.
갑옷을 걸친 해골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녹슨 검을 바닥에 긁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투구 너머 빈 구멍에서 증오 섞인 마력이 뿜어졌다.
망령 기사들이 내뿜는 안개가 내 발목을 휘감았다.
차가운 기운이 장화 속까지 스며들어 피부를 긁었다.
나는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공허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검은 마력이 칼날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가장 먼저 달려든 기사가 대검을 내리쳤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팔 근육이 비명에 가까운 떨림을 토해냈다.
기사의 힘은 단순한 망령의 수준이 아니었다.
한때 대륙을 호령했던 이방인 전사의 무위였다.
그 힘이 고스란히 검 끝을 타고 전해졌다.
칼날이 교차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영상이 밀려들었다.
누군가의 고향이었을 현대적인 빌딩 숲이 보였다.
사랑하는 연인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순식간에 차가운 제단 위의 감각으로 바뀌었다.
차가운 금속이 살을 찢고 마력을 강제로 추출했다.
그 고통이 전신을 난도질하는 환각을 일으켰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사의 목을 베어 넘겼다.
뼈가 부서지며 흩어졌지만 감각의 과부하는 멈추지 않았다.
쓰러진 기사의 기억이 내 영혼으로 스며들었다.
비명과 통곡이 뇌 안쪽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눈앞의 풍경이 뒤틀리며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무릎이 꺾이려 할 때마다 혀를 깨물며 버텼다.
망령 기사들은 죽음을 거부하며 다시 일어섰다.
그들은 입 없는 두개골을 벌려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공허의 폭풍을 방출했다.
검은 소용돌이가 뼈 무덤의 일부분을 집어삼켰다.
기억의 파편들은 폭풍조차 뚫고 들어왔다.
나의 의식을 헤집어 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도구가 아니었다는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수천 명의 원혼이 내뱉는 중얼거림이 고막을 찢었다.
우리는 그저 소모되는 연료였을 뿐이라는 탄식이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을 굴렀다.
혈관이 터질 듯 팽창하며 안구가 뜨거워졌다.
망령들의 기억 속에서 평의회 의원들의 비웃음이 들렸다.
그들은 이방인을 정수 덩어리라고 불렀다.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일회용품 취급이었다.
공포가 척추를 타고 올라와 전신을 마비시켰다.
나 또한 저렇게 끝날 것이라는 예감이 목을 조였다.
바르가스는 저 멀리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려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마지막 남은 기사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기사의 갑옷이 바스러지며 거대한 기억이 나를 덮쳤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이미지였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소환 의식 장면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거대하고 정교한 마법진이 바닥에 있었다.
마법진 주위에는 단 한 명의 수행자가 서 있었다.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제물을 바치며 주문을 읊조렸다.
나는 그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고정했다.
주문을 외우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억 속의 그는 지금보다 훨씬 젊고 생기가 넘쳤다.
매끄러운 피부와 야망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빛났다.
하지만 그 이목구비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형태였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기억 속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것은 평의회 의원도, 제국의 황제도 아니었다.
지금 내 뒤에서 비굴하게 몸을 웅크린 사내였다.
젊은 시절의 바르가스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차원 너머의 무언가를 강제로 불러내고 있었다.
바르가스의 손에 들린 증폭기가 붉은 빛을 내뿜었다.
이방인의 영혼을 낚아채는 잔인한 빛이었다.
기억 속의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주문을 완성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위 뒤의 바르가스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비밀이 들통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바르가스는 여전히 마력석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낡은 증폭기에서 새어 나오는 파장이 선명했다.
기억 속의 그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진동이었다.
손등에 돋은 핏줄이 경련하듯 꿈틀거렸다.
“바르가스.”
낮게 깔린 목소리에 바르가스가 어깨를 움찔했다.
그가 고개를 들자 비굴함 뒤로 서늘함이 스쳤다.
나는 검 끝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발밑의 뼈 가루가 거센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바르가스는 뒷걸음질 치다 바위에 막혀 멈춰 섰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단검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나는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 박힌 탐욕을 보았다.
수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의 태연함이었다.
“너, 정체가 뭐야?”
내 질문에 바르가스의 얼굴에서 비굴함이 씻겨 내려갔다.
그는 대신 입꼬리를 기괴하게 끌어 올리며 웃었다.
증폭기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안개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가 품 안에서 낡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알아서 좋을 것 없었을 텐데.”
바르가스의 목소리가 수십 명의 목소리로 겹쳐 들렸다.
그가 양피지를 찢자 협곡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뼈 무덤이 무너지며 거대한 손 형상이 솟아올랐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며 검을 고쳐 쥐었다.
“네 영혼은 역대 최고로 비싸게 팔리겠어.”
바르가스가 손을 뻗자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나를 덮쳤다.
공허의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는 증폭기가 내 마력 회로를 강제로 잠재웠다.
나는 바닥을 구르며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뼈의 손가락들이 내 주변의 지면을 으스러뜨렸다.
바르가스는 공중에 떠오른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닌 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단숨에 내 목을 낚아채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제 제단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방인.”
바르가스의 손에 쥐어진 증폭기가 내 가슴에 닿았다.
심장이 멈출 듯한 충격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공허의 마력이 그의 팔을 타고 검게 번져 나갔다.
바르가스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려갔다.
그는 당황한 듯 나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증폭기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바르가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나는 대답 대신 검은 불꽃을 칼날에 휘감았다.
그의 뒤편으로 거대한 차원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촉수가 바르가스를 옭아맸다.
“아니, 아직 계약이 남았다!”
그는 허공을 향해 절규하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문 너머의 존재는 가차 없이 그를 끌어당겼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차갑게 검을 내려놓았다.
바르가스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협곡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무너진 뼈 무덤 사이로 보랏빛 안개가 가득 찼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그의 증폭기를 집어 들었다.
기계 안쪽에는 내 이름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증폭기를 악력으로 으스러뜨려 바닥에 던졌다.
이곳에 잠든 이방인들의 흐느낌이 바람을 타고 들렸다.
그들은 이제야 안식을 찾은 듯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협곡 입구로 향했다.
멀리서 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카시안 폰 엘리시온이 이끄는 추적대였다.
나는 몸을 숨기지 않고 그들이 오는 길목에 섰다.
손바닥에 묻은 뼈 가루를 털어내며 정면을 응시했다.
카시안이 말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서린 당혹감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검을 치켜들었다.
차가운 금속음이 다시 한번 적막을 갈랐다.
“다음은 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