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로 스며드는 공기는 차갑고 축축한 이끼 냄새를 머금었다. 발밑으로 흐르는 오수는 발목을 붙잡으며 질척거렸다. 성소의 지하수로는 거대한 괴물의 식도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에테르 파장이 피부를 찌르는 송곳처럼 따가웠다. 한시우는 벽을 짚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가슴 밑바닥에서 공허 마력이 요동쳤다. 성소 내부의 고농도 마력과 충돌하며 혈관이 터져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 손등의 문양이 검게 타오르며 맥동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기대며 그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비릿한 혈향이 입안을 채웠다. 통증이 선명해질수록 흐릿하던 정신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부족원들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았다. 화살비 속에서 방패가 되어주던 그들의 젖은 눈빛이 잔상처럼 남았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감각은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그는 검지 손톱으로 손등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낙수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며 식었다. 차가운 감각이 번지는 순간 머리 위에서 웅웅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거대한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듯한 낮은 소음이었다. 성소의 중심부가 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한시우는 젖은 옷가지를 추스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녹슨 철창 너머로 희미한 빛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에 공허의 기운을 모았다. 검은 안개가 이음새를 소리 없이 녹여냈다. 금속이 부식되며 내뱉는 고약한 연기가 코끝을 스쳤다. 구멍 난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오자 광활한 석조 홀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기하학적 문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공기 중에는 타버린 향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여 감돌았다. 홀의 중앙에는 거대한 세계수 에르드의 뿌리가 기둥처럼 솟아 있었다. 그 주위를 일곱 명의 노인이 둘러싸고 있었다. 하얀 사제복을 입은 그들의 손에는 성물이 들려 있었다.
올해의 정수는 유독 맑군.
낮게 깔린 목소리가 홀 안에 긴장감을 더했다. 의장석에 앉은 노인이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빛의 마력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마력은 세계수의 뿌리로 스며들었다. 뿌리 끝에 매달린 투명한 수조 안에는 붉은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제물들의 피였다. 한시우의 시선이 의장 곁에 선 사내에게 고정되었다. 화려한 금실로 장식된 로브를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시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자신을 뒤에서 밀쳤던 손이었다.
차원 균열 속으로 떨어지기 직전 보았던 그 차가운 미소였다. 자신을 이 생지옥으로 소환한 장본인이 바로 저곳에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한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품 안의 단검 손잡이를 으스러질 듯 쥐었다.
저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방인이 소모되었을까. 레나의 눈물을 보고도 그들은 구원을 운운했을 것이다. 방랑자 부족의 소박한 꿈을 짓밟으면서도 신성을 찬미했을 게 분명했다. 의식의 마무리를 서두르게. 아스라의 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의장의 재촉에 제단 위의 수조가 기울어졌다.
검붉은 피가 에르드의 뿌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무가 갈증을 느끼듯 피를 빨아들였다. 성소 전체가 황금빛으로 번뜩였다. 저지대의 고통을 먹고 자란 인위적인 풍요였다. 한시우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장화가 대리석 바닥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의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침입자에게 쏠렸다. 누구냐! 수호 기사들이 검을 뽑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한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바닥의 문양이 검게 타들어 갔다. 공허의 마력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그의 전신을 감쌌다.
당신들이 바친 제물이 지옥에서 돌아왔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서늘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한시우의 눈동자가 검은 심연으로 물들었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공허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성소의 기둥들이 진동하며 미세한 균열이 갔다. 의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을 소환했던 사내가 뒷걸음질을 쳤다.
이방인? 분명히 처단했을 텐데! 사내의 비명이 홀을 울렸다. 처단? 아니, 나는 먹어치우러 왔다. 당신들의 그 가증스러운 질서를. 한시우가 손을 뻗었다. 검은 실들이 허공을 가르며 기사들의 갑옷을 종이처럼 찢어발겼다. 비명 소리가 홀을 가득 메웠다. 공허의 힘은 성소의 에테르를 집어삼켰다.
의원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일곱 개의 마법 진이 허공에 전개되었다. 눈부신 빛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시우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빛의 장벽에 손을 대자 유리창이 깨지듯 파편이 튀어 올랐다. 폭풍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성소의 천장까지 닿을 듯한 공허의 파도가 의원들을 덮치려 했다.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콰앙! 그때였다. 홀 정면의 거대한 청동 문이 폭발하듯 열렸다. 엄청난 압력의 백색 마력이 공허의 폭풍을 정면에서 들이받았다.
두 힘이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파가 성소 내부를 뒤흔들었다. 먼지 구름 너머로 갑옷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카시안? 한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나타난 이는 분명 엘리시온의 제1왕자, 카시안 폰 엘리시온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기계적으로 일정했다. 늘 당당하게 펴져 있던 어깨는 기묘한 각도로 굳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이 이상했다. 자애로운 갈색을 띠던 눈동자는 간데없었다. 카시안의 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빛 한 점 통하지 않는 심연의 빛깔이었다. 그 눈동자 안에서 미세한 보랏빛 실선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한시우를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감각이 거세된 인형처럼 보였다. 카시안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마력은 이전의 신성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소의 뿌리에서 흐르는 혈향 짙은 마력과 닮아 있었다. 카시안의 목덜미에 새겨진 낯선 문양이 붉게 점멸했다. 평의회 의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명령했다. 처리해라, 충직한 사냥개여.
카시안이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의 검 끝이 한시우의 목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왔다. 검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의지도 담겨 있지 않았다. 카시안은 무감각한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다. 제거한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한시우의 쇄골을 파고들었다.
검은 피가 바닥에 튀었다. 한시우는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카시안의 움직임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공중에서 신체를 비튼 그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한시우의 팔뚝에 깊은 자상이 생겼다. 공허의 마력이 상처 부위에서 맥동하며 저항했다.
카시안은 멈추지 않고 연속적인 참격을 쏟아냈다. 검기가 바닥을 가르고 기둥을 부쉈다. 한시우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검술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오직 목표를 파괴하겠다는 효율적인 움직임뿐이었다.
한시우는 왼손을 뻗어 카시안의 검신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베여 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공허의 힘을 검 안으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가 백색의 마력을 잠식해 들어갔다. 카시안의 표정은 여전히 무기력했다. 그는 검을 놓는 대신 한시우의 가슴에 주먹을 내질렀다.
명치를 강타당한 한시우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석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눈앞이 번쩍거렸다. 폐부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카시안은 다시 검을 고쳐 쥐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발소리가 죽음의 초침처럼 일정하게 울렸다.
한시우는 입가에 고인 피를 닦아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열기가 솟구쳤다. 그것은 공허의 박동이었다. 세계수 에르드의 파장과 공명하며 온몸의 신경을 자극했다.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훑었다.
카시안의 검이 한시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한시우는 몸을 옆으로 굴려 간신히 피했다. 검이 박힌 대리석 바닥이 산산조각 났다. 파편이 뺨을 스치며 길게 상처를 냈다. 한시우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단검을 투척했다.
카시안은 고개를 미세하게 움직여 단검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의 손이 한시우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강력한 악력이 기도를 압박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카시안의 검은 눈동자가 지척에서 한시우를 응시했다.
그 안에는 비어 있는 영혼의 잔해만이 가득했다. 한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카시안의 손목을 잡았다. 공허의 기운이 카시안의 팔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그의 소매가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카시안은 손을 놓지 않았다.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한시우는 시야가 붉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남은 마력을 쥐어짜 내어 카시안의 복부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검은 폭발이 두 사람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충격으로 인해 카시안의 구속이 풀렸다. 한시우는 바닥을 구르며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쏟아졌다. 카시안은 멀리 튕겨 나갔음에도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의 옷은 찢어지고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처럼 다시 검을 들었다. 평의회 의원들은 그 광경을 보며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에게 카시안은 더 이상 왕자가 아니었다. 그저 쓰다 버릴 도구에 불과했다.
한시우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손가락 끝이 감각을 잃고 차갑게 식어갔다. 공허의 마력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세계수의 뿌리가 붉은 빛을 내뿜으며 전율했다. 성소의 모든 에너지가 카시안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카시안의 검신이 두 배로 길어졌다. 응축된 마력이 파란 불꽃을 일으키며 실내의 산소를 태웠다. 그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듯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한시우는 자신의 심장 박동에 집중했다. 공허의 박동이 세계수의 리듬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카시안이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그의 검이 한시우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한시우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을 활짝 펴고 공허의 문을 열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어둠이 성소를 가득 메웠다. 카시안의 백색 마력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 끝이 한시우의 가슴팍에 닿으려던 찰나였다. 카시안의 움직임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췄다.
그의 눈동자에서 보랏빛 실선들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벌어졌다. 한시우는 그의 눈에서 아주 짧은 순간 본래의 갈색 빛을 보았다. 그것은 구조를 요청하는 비명이자 절망의 외침이었다.
카시안의 검이 한시우의 옷깃만을 찢은 채 멈춰 섰다. 그의 전신이 경련하며 뒤로 꺾였다. 평의회 의장이 당황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무슨 짓이냐! 어서 죽여라! 명령이 떨어지자 카시안의 목덜미에 새겨진 문양이 핏빛으로 타올랐다.
카시안은 고통스러운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그는 다시 검을 쥐고 휘둘렀지만 목표는 한시우가 아니었다. 자신의 왼쪽 어깨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는 스스로의 팔을 무력화시키며 제어권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눈물 대신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카시안이 쉰 목소리로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여 줘.
한시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타인의 호의조차 부담스러워하던 그였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내뱉은 간절한 요청은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카시안의 검이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한시우는 손을 뻗어 카시안의 검을 쳐냈다. 금속음이 성소에 날카롭게 울렸다. 그는 카시안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의장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
당신들이 만든 질서의 끝이 이거였나.
의원은 대답 대신 지팡이를 땅에 박았다. 성소 바닥에서 거대한 가시들이 솟아올랐다. 한시우는 카시안을 품에 안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가시가 그의 허벅지를 긁고 지나갔다. 뜨거운 감각이 다리를 타고 번졌다.
한시우는 카시안의 상처 입은 어깨를 지혈하며 일어섰다. 공허의 마력이 주변의 마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성소의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평의회 의원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한시우는 카시안을 부축하며 출구를 향해 뛰었다. 뒤편에서 세계수 에르드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뿌리가 뒤틀리며 성소의 근간을 파괴하고 있었다.
중앙 홀의 문이 무너진 잔해에 막히기 직전이었다. 한시우는 전력을 다해 틈새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먼지 구름이 몰려왔다. 그는 카시안과 함께 어두운 복도를 굴렀다.
한참을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었다. 천장의 균열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한시우는 고개를 돌려 곁에 누운 카시안을 보았다. 그의 눈은 다시 본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초점은 흐릿했다.
카시안은 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하늘을 응시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한시우의 소매를 붙잡았다.
늦었어.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날릴 듯 가벼웠다. 한시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상처를 살폈다.
말하지 마. 여기서 나가야 해.
카시안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마력 회로가 붉게 변하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자폭의 징조였다. 평의회가 심어둔 마지막 안전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시안이 한시우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그의 입술이 한시우의 귀에 닿았다.
레나를... 데리고 가... 아스라 밑에...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카시안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시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엄청난 압력이 그를 덮쳤고 의식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정적에 잠겨 있었다. 성소는 폐허가 되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한시우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 어디에도 카시안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그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부서진 검 조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시우는 검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손등의 문양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성소의 잔해를 뒤로한 채 저지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멀리 침식의 늪에서 레나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절벽 끝에 선 한시우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안개 너머로 수천 개의 횃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추적자들의 군대였다. 그들의 선두에는 죽은 줄 알았던 평의회 의장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노인은 한시우를 발견하고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옆에 서 있는 소녀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레나였다.
"내려와라, 이방인."
의장의 목소리가 확성 마법을 타고 협곡에 울려 퍼졌다. 한시우의 손등에서 다시 한번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단검을 거꾸로 쥐고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