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타버린 구리 맛으로 가득했다. 좁은 골목을 메운 검은 연기가 폐부를 찔렀다. 바르가스의 멱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며 허공을 휘저었다. 폭주하는 증폭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동이 손목을 타고 뇌를 울렸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공허의 기운이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시우는 검지 손톱으로 제 손등을 깊게 파고들었다. 통증이 일자 간신히 흐릿해지던 정신이 돌아왔다.
바르가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비릿한 침이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내는 살려달라는 말조차 뱉지 못하고 꺽꺽거렸다. 뒤편에서 구두 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차가운 금속음이었다. 암시장 경비병들이 마력 반응을 감지하고 좁혀오는 신호였다. 시우는 시선을 낮춰 구석에 웅크린 레나를 보았다. 소녀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마력석 조각을 쥔 손을 떨고 있었다.
시우가 바르가스를 벽으로 더 세게 밀어붙였다. 벽돌 가루가 사내의 옷 위로 쏟아졌다. 사내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시우의 목소리는 지하 수로의 물소리처럼 낮고 건조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네가 아는 가장 안전한 구멍으로 안내해."
바르가스가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비대한 몸집이 시우의 손아귀에서 인형처럼 흔들렸다. 골목 입구에서 푸른빛의 마력 램프가 번뜩였다. 경비병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발밑까지 닿았다. 그들은 단순한 용병이 아니었다. 엘리시온 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흉갑이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암시장 내부까지 왕실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증거였다.
시우는 레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차가운 피부 위로 미세한 경련이 전해졌다. 레나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만 시우의 옷자락을 으스러지게 잡을 뿐이었다. 바르가스가 쿨럭이며 앞장섰다. 그는 쓰레기더미가 쌓인 막다른 길의 나무 궤짝을 밀어냈다. 그 뒤로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작은 틈새가 드러났다.
틈새 안은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비좁았다. 벽면마다 이끼가 끼어 미끄러웠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정체 모를 액체가 장화 바닥을 적셨다. 위쪽에서는 경비병들이 고함을 치며 골목을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는 호흡을 죽인 채 공허의 마력을 억눌렀다. 심장 부근에서 세계수 에르드의 파장과 공명하는 기분 나쁜 박동이 느껴졌다. 갈비뼈 안쪽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
바르가스는 연신 마력 증폭기를 만지작거렸다. 낡은 기계장치에서 금속성 마찰음이 새어 나왔다. 시우는 사내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했다.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된 자의 뒷모습이었다. 좁은 통로는 지하로 갈수록 더욱 가파르게 꺾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곰팡이 냄새는 사라졌다. 대신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와 피비린내가 공기 중에 섞여 들었다.
레나가 짧게 신음하며 무릎을 꿇었다. 마력 결핍으로 인해 그녀의 피부가 종잇장처럼 얇아져 있었다. 시우는 멈춰 서서 소녀를 안아 올렸다. 생각보다 너무나 가벼운 무게에 미간이 좁아졌다. 레나의 머리카락에서 옅은 흙냄새가 났다. 소녀는 시우의 품 안에서 작은 짐승처럼 몸을 떨었다. 바르가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비열한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이봐, 여기서부터는 정말 위험해. 내 구역이 아니라고."
시우는 대답 대신 바르가스의 가슴팍에 공허의 마력을 한 줌 흘려보냈다. 사내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에 바르가스가 바닥을 기었다. 그는 헛구역질을 하며 다시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암시장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차갑고 기계적인 장소였다.
천장에는 거대한 마력 배관들이 혈관처럼 얽혀 있었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액체 마나가 맥동하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시우는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철혈 제국의 상징인 검은 독수리 문장이 보였다. 왕국과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대립 관계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두 세력의 흔적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거대한 유리 수조들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그 안에는 녹색 액체에 잠긴 인간들이 떠 있었다. 그들의 등에는 굵은 전선들이 박혀 있었다. 수조 옆에 설치된 기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아가며 마력을 추출했다. 액체 속에 잠긴 이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들은 죽지 못한 채 영원히 마력을 빼앗기는 산 제물들이었다.
시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수조에 붙은 명찰들에는 이방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지구에서 끌려온 빙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세계를 구원할 영웅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저 고지대 귀족들의 수명을 연장할 연료로 소모될 뿐이었다. 한시우의 가슴 안쪽에서 서늘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지독한 혐오에 가까웠다.
바르가스가 안내한 통로 끝에 거대한 철문이 앞을 막아섰다. 문 위에는 7인 평의회의 인장과 제국의 문장이 나란히 각인되어 있었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집단의 결탁이 그곳에 있었다. 문 너머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라고 믿기 힘든, 영혼이 깎여 나가는 듯한 고통이 담긴 소리였다.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탈출구야. 이 문만 넘으면 지상으로 연결되는 화물 승강기가 있어."
바르가스가 땀을 닦으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이 없었다. 시우는 레나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철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문틈 사이로 마력 추출 장치가 내뱉는 둔탁한 기계음이 새어 나왔다. 위이잉 하는 고주파음이 고막을 긁었다.
시우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묵직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은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했다. 빛에 적응한 시우의 시야에 수많은 모니터와 정교한 마법 진들이 들어왔다. 그 중심에 놓인 거대한 기계 장치에는 한 명의 빙의자가 매달려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공허의 마력이 정제되고 있었다.
기계 옆에 서 있던 연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허리춤에는 제국의 군용 대검을 차고 있었다. 한 연구원이 손에 들고 있던 기록 장치를 떨어뜨렸다. 장치가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시우는 그들의 눈 너머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데이터를 보았다. 거기에는 자신의 이름과 현재 마력 파장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실험체 402호, 자진해서 돌아왔나?"
연구원 중 한 명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시우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억눌러왔던 살의가 공허의 마력과 결합하여 폭발하기 직전의 전조였다. 레나가 시우의 등 뒤에서 옷자락을 꽉 쥐었다. 바르가스는 이미 구석으로 도망쳐 몸을 숨긴 뒤였다.
철문이 등 뒤에서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기계음만이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시우는 천천히 공허의 기운을 손끝으로 모았다. 검은 안개가 그의 발치에서부터 피어올라 연구실 바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비명이 다시 한번 복도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시우는 정면의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카시안 폰 엘리시온의 집무실로 추정되는 방의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영상의 배경 속 책상 위에는 한시우의 영혼 파장을 완벽하게 분석한 차트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인장이 찍힌 체포 영장이 놓여 있었다. 연구원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버튼 하나를 눌렀다. 천장에서 수십 개의 마력 억제용 사슬이 뱀처럼 쏟아져 내렸다.
"안내해 줘서 고맙군, 바르가스."
연구원의 말에 구석에 숨어 있던 바르가스가 비굴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사내의 손에는 이미 두툼한 마력석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시우는 바르가스를 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가슴 위에 손바닥을 얹었을 뿐이다. 심장 안쪽에서 공허의 박동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곳은 탈출구가 아니었다. 사냥꾼들이 미리 쳐놓은 거대한 덫이었다. 연구실 구석구석에 매달린 수조 속 동족들이 눈을 떴다. 초점 없는 그들의 눈동자가 시우를 향했다. 그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유리벽을 긁어댔다. 기계 장치가 가동되는 소리가 천장을 울렸다. 억제용 사슬이 허공을 가르며 시우의 어깨를 겨냥했다.
시우는 몸을 낮추며 레나를 자신의 뒤로 거칠게 밀쳤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불꽃이 일었다. 공허의 마력이 혈관을 태우며 폭발적인 힘을 내뿜었다. 사슬이 바닥에 박히며 돌가루가 튀었다. 연구원들이 검을 뽑아 들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 따위는 없었다. 오직 귀중한 자원을 회수하려는 탐욕만이 번들거렸다.
"레나, 눈 감아."
시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발밑에서부터 검은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 파동에 닿은 기계 장치들이 불꽃을 튀기며 멈춰 섰다. 연구원들의 비명이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정면의 거대한 스크린 속 카시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영상 너머에서 시우와 눈을 맞추며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카시안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시우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끝이다. 그와 동시에 연구실 바닥 전체가 거대한 마법 진으로 변하며 붉은빛을 내뿜었다. 시우의 발목을 수십 개의 마력 사슬이 동시에 휘감았다. 뼛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압박감이 전신을 덮쳤다.
시우는 비명을 삼키며 공허의 칼날을 형상화했다. 자신의 생명력을 제물로 바치는 금지된 술법이었다. 피부가 갈라지며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연구원의 가슴에 손바닥을 박아 넣었다. 공허의 기운이 사내의 체내 마력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스라졌다.
"이 괴물 같은 놈이!"
바르가스가 겁에 질려 마력석 주머니를 떨어뜨렸다. 시우는 피로 물든 눈으로 바르가스를 응시했다. 시야가 붉게 변하며 의식이 멀어졌다. 하지만 심장 속 공허의 박동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세계를 향한 증오이자, 자신을 버린 신들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시우는 사슬을 움켜쥔 채 카시안의 영상이 있는 스크린을 향해 돌진했다.
벽면에 설치된 마력 추출용 침들이 시우의 등 뒤로 쏟아졌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레나의 울먹이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시우는 마지막 남은 마력을 손끝에 집중했다. 스크린이 깨지며 카시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파편들 사이로 진짜 카시안의 목소리가 연구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반가워, 나의 402번째 제물."
연구실의 천장이 무너지며 거대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엘리시온 왕국의 기사단이 천장을 뚫고 강하했다. 수십 자루의 마력 검이 시우의 심장을 겨냥한 채 허공을 메웠다. 시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손끝의 검은 불꽃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불꽃은 더욱 크게 번져나가며 주변의 모든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전부 삼켜주지."
시우가 피 섞인 가래를 내뱉으며 바닥을 짚었다. 그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기사들의 발등을 덮쳤다. 연구실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며 유리 수조들이 하나둘 금 가기 시작했다. 녹색 액체가 바닥을 적시고, 해방된 이방인들의 시신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수라장 속에서 시우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응시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시안 폰 엘리시온의 실체였다. 카시안은 눈앞의 참상을 보면서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검을 뽑아 시우의 목에 겨누었다. 시우는 입술을 뒤틀며 웃었다. 손등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가 바닥의 마법 진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계약은 끝이다."
시우는 자신의 가슴속에 박힌 공허의 핵을 강제로 터뜨렸다. 암전과 같은 어둠이 연구실을 집어삼켰다. 비명과 기계음이 뒤섞여 거대한 폭발음으로 변했다. 시우는 마지막 순간, 레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따뜻한 소녀의 손이 아니었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 카시안의 검신이었다.
"아직 일러."
카시안의 낮은 목소리가 폭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시우의 의식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주변을 감싸던 공허의 기운이 한순간에 수축하며 시우의 심장 속으로 다시 숨어들었다. 폭진이 걷힌 자리에는 오직 카시안과 쓰러진 시우, 그리고 공포에 질린 레나만이 남았다.
카시안은 쓰러진 시우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 올렸다. 시우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카시안은 그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너는 죽어서도 아르카디아의 연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