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쏟아졌다.
세라핀은 그 빛을 등으로 받았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두 손이 가슴 앞에 모아졌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엘의 손이 목에서 거두어졌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었다. 세라핀은 그냥 거기 있었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입술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기도하는 성녀의 뒷모습이었다.
발소리가 멈췄다.
세라핀은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이 떨리지 않도록 서로 맞잡았다. 장갑 안쪽에서 손등의 흉터가 천천히 덥혀졌다. 그 감각에 집중했다.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일정하게. 마치 정말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처럼.
등 뒤로 차가운 시선이 내려꽂혔다.
"성녀님."
오리온 크레스트의 목소리였다. 낮고, 부드럽고, 조각처럼 정제된 목소리. 그 안에 감추어진 날이 얼마나 예리한지를 세라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서두르지 않았다. 기도를 끊긴 했지만, 그것이 이 장소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그 때문이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해야 했다.
"기사단장."
목소리는 고요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오리온은 봉인실 입구에 서 있었다. 성기사단의 은빛 갑주가 지하 횃불 아래서 낮게 빛났다. 그의 눈은 세라핀을 훑었다. 얼굴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제단으로, 그리고 다시 세라핀의 얼굴로. 그 시선이 지나간 자리마다 무언가 새겨지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혼자 지하에 내려오셨군요."
"신께서 부르셨습니다."
세라핀은 천천히 일어섰다. 무릎의 감각이 되돌아오는 데 한 박자가 걸렸다. 차가운 바닥에 너무 오래 꿇고 있었다. 아니, 꿇고 있었던 건 아직 채 일 분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몸이 얼마나 긴장해 있는지를 증명했다.
오리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콧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세라핀은 그것을 보았다.
공기였다.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것. 카엘이 몸을 숨긴 어둠 저편에서 아직 흩어지지 않은 마독의 기운이 봉인실 전체에 얇게 퍼져 있었다. 성수 냄새와 석조 벽의 곰팡이 냄새가 그것을 덮어주기를 바랐지만, 오리온 크레스트는 4등급 성기사였다. 그의 감각기관이 보통 인간의 것과 같을 리 없었다.
세라핀은 먼저 걸음을 뗐다.
"늦은 시각에 이곳까지 수고가 많습니다."
"성녀님을 찾아 두 시간을 돌았습니다."
"제 거처까지 보내드렸을 텐데요."
"시종이 성녀님의 방이 비어 있다고 전했습니다."
잠깐의 침묵. 세라핀은 그 공백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새벽 기도 전에 마음을 모으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이곳은 새벽 기도 장소가 아닙니다."
"기도에 장소를 가리는 것은 성기사단장의 직무가 아닐 텐데요."
오리온의 눈이 잠깐 가늘어졌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재조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세라핀은 그의 옆을 지나치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뻗어 나왔다. 장갑을 낀 손가락이 세라핀의 소매 끝을 잡아챘다. 딱딱하고, 주저함이 없는 힘이었다.
세라핀은 멈췄다.
침묵이 떨어졌다. 횃불 한 자루가 바람도 없는 지하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낮추어 자신의 소매를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올려다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손을 놓으십시오, 기사단장."
"성녀님께서 저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
"이유."
세라핀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낮아졌다. 정확하게 한 단계.
"성녀가 신께 기도를 드리는 데 성기사단장에게 이유를 고해야 합니까."
"지하 봉인실은 성녀님의 기도 장소가 아닙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성소 어디에도 신의 목소리를 막는 벽은 없습니다."
"하지만 봉인된 것들은 있지요."
오리온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소맷자락을 쥐고 있었다. 거칠지는 않았으나 놓을 생각도 없는 악력. 세라핀은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내리는 순간 그것은 인정이 된다. 잡혀 있다는 사실의, 그리고 잡힌 것이 불편하다는 사실의.
"성녀님께서는 이곳의 어둠이 그분의 순결을 더럽힐까 두렵지도 않으신 모양입니다."
오리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지하 통로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보다도 더 낮게, 더 촘촘하게 그녀의 윤곽을 감싸 들어왔다. 세라핀은 알고 있었다―진짜 칼날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뼈를 가르는 검은 오히려 조용하고, 살갗 위를 스치는 것은 그 이후의 바람이다. 오리온 크레스트라는 남자는 지금 정확히 그 종류의 부드러움을 구사하고 있었다.
세라핀은 입을 열지 않았다.
손목 안쪽의 맥박이 그 접촉점을 통해 새어나가고 있을 것이라는 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대신 그녀는 계산했다. 이 침묵이 허용하는 짧은 어둠 속에서―오리온이 의심하는 것의 윤곽을, 그 의심이 누군가의 귀에 닿기까지 남은 거리를, 그리고 확신으로 굳어지기 전에 자신이 먼저 부서뜨려야 할 것들의 무게를.
촛불 하나 없는 지하였다.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서 희미하게 명멸하는 신성력의 잔광만이 둘 사이의 유일한 빛이었고, 그 빛 아래서 오리온의 눈동자는 차갑기보다는 깊었다. 의심과 경계 사이 어딘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정이 수면 바로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세라핀은 그것을 읽었고, 읽었다는 사실을 얼굴에 올리지 않았다.
그녀가 마침내 입술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성녀의 것이었다. 지하의 냉기도, 그의 손아귀도, 심장 깊은 곳에서 가늘게 떨리는 불안의 실도―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한 것처럼, 고요하고 투명한.
"두렵습니다."
오리온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어둠이 두렵습니다. 봉인된 것들도, 이곳의 냄새도. 하지만."
세라핀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매를 잡고 있는 오리온의 손과 정면으로 마주 섰다.
"그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기도를 멈추는 성녀는 신께 쓸모가 없습니다."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안에 무게가 있었다. 세라핀은 그 무게를 스스로 믿어야 했다. 믿지 않으면 오리온이 알아챌 것이었다.
그가 손을 놓았다.
천천히,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이.
세라핀은 그의 눈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납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오리온 크레스트는 납득하더라도 납득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를 더 다루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녀는 먼저 계단을 향해 걸었다.
발소리가 돌계단에 울렸다. 세라핀은 두 발자국마다 숨을 한 번씩 내쉬었다. 등 뒤로 오리온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 발소리의 간격이 일정했다. 너무 일정해서 기이했다.
―――
지상으로 올라오자 밤공기가 얼굴을 쳤다. 성소의 회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이그드라실의 잔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창백하고 투명한 빛이었다.
세라핀은 복도 끝에서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오리온은 세 걸음 뒤에 서 있었다.
"한 가지 더."
그녀가 먼저 말했다. 오리온이 무언가를 꺼내기 전에.
"저는 내일 새벽 기도를 마치는 즉시 신탁 준비에 들어갈 것입니다. 신성력 소모가 커질 예정이니 기사단은 성소 외부 경계를 평소보다 강화해 주십시오. 제가 내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리온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신성력 소모가 커진다 하셨습니까."
"의식 준비입니다.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례적이지 않다 하시더라도, 교황 성하께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기사단장의 몫이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리온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미동도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성녀님."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이 말하는 것은 달랐다.
세라핀은 몸을 돌렸다. 더 말을 섞지 않았다. 회랑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망토 자락이 대리석 바닥을 쓸었다.
발소리가 등 뒤에서 멈추는 것을 들었다.
오리온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녀는 속도를 바꾸지 않았다.
―――
성소 동쪽 탑의 계단을 오를 때야 비로소 세라핀은 한 손을 벽에 짚었다. 차가운 석재의 감촉이 손바닥으로 번졌다. 오른손이었다. 장갑 안쪽에서 흉터가 스물스물 아팠다. 아까부터 아팠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신성력을 과소모하는 연기는 진짜 소모를 동반해야 했다. 낙인이 있는 몸으로 그 연기를 믿음직하게 만들려면, 실제로 성휘를 조금씩 끌어내야 했다. 낙인이 번져 있는 상태에서 성휘를 강제로 끌어내면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세라핀은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론이 현실이 되는 속도가 문제였다.
방 앞에 도착했다. 시종은 없었다. 늦은 시각을 감안해 쉬게 보내놓은 터였다. 세라핀은 직접 문을 열었다.
실내는 어두웠다.
창가의 촛대만 남겨두었고, 그 하나가 작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렌지색 불꽃이 바람 없이 가늘게 섰다.
세라핀은 망토를 벗으며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장갑을 먼저 벗었다. 손등의 흉터가 드러났다. 오래된 흉터였다. 어렸을 때 루인스의 돌담에서 넘어지며 생긴 것이었다. 교회는 그것을 은총의 표식이라 불렀다. 세라핀은 그 말을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다음으로 목깃을 풀었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창백했다. 눈 아래 그림자가 짙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금 세라핀이 찾는 것이 아니었다.
손을 쇄골로 가져갔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손이 멈추었다.
낙인이었다.
쇄골에서 시작하여 어깨 위로 기어 올라간 검은 선들. 그것은 어제까지 쇄골 아래에만 머물러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그 선들이 어깨 뼈를 넘어 등 쪽으로 뻗어 나가 있었다.
세라핀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울에 등이 비치도록 목을 꺾었다.
어깨 너머까지 번져 있었다.
가장 바깥쪽 선 하나가 어깨뼈 끝을 넘어 척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화 의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낙인을 억제하려고 카엘에게 간 것인데, 카엘의 마독이 오히려 낙인의 속도를 가속시킨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것이 낙인의 속도였는데 자신이 알지 못한 것인지.
손이 떨렸다.
한 번. 또 한 번.
손가락이 벌어졌다가 모아졌다. 흉터 위로 손끝이 내려앉았다. 그것을 더듬는 동안 손이 멈추지 않았다.
낙인의 속도라면. 이것이 3단계를 넘어선 속도라면.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교황이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짧았다.
정화 의식은 고통이었다. 그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거울 속 낙인의 형태가 말하는 것은 더 단순하고, 그래서 더 무거운 것이었다.
정화 의식이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촛불이 흔들렸다.
방 안에 바람이 없었는데도.
세라핀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쇄골에서 어깨를 넘어 등으로 뻗어 나간 낙인이, 촛불 아래에서 기름처럼 번들거렸다.
그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늦은 밤, 시종도 쉬게 보낸 이 시각에. 노크 소리는 세 번이었다. 짧고, 고르고, 주저함이 없었다.
세라핀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누구입니까."
대답이 없었다.
다만 문 아래 틈새로, 봉인실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은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성수도 아니고, 곰팡이도 아닌. 마독의 냄새가.
세라핀의 손이 천천히, 목깃 쪽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