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실의 좁은 틈새로 마른 먼지가 부옇게 흩날렸다.
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며 외부의 소음을 단칼에 잘라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오직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오리온의 거친 호흡이 세라핀의 귓가를 날카롭게 찔러왔다.
그가 내민 손수건 위로 검붉은 얼룩이 기괴하게 번져 있었다.
성녀의 결백을 조롱하듯 마독의 흔적이 선명한 빛을 띠었다.
오리온은 대답을 재촉하려는 듯 그녀를 벽으로 더 밀어붙였다.
낡은 나무 판자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세라핀은 눈꺼풀 안쪽을 혀끝으로 강하게 짓눌렀다.
비명을 삼키기 위해 수천 번은 반복해온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도망치는 대신 오리온의 두꺼운 손목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의 팔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세라핀은 망망대해에서 밧줄을 잡듯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자신의 가슴 위, 심장이 가장 가깝게 고동치는 곳이었다.
얇은 사제복 너머로 불규칙한 맥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오리온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다.
손바닥에 닿는 살결은 금방이라도 타버릴 듯 뜨거웠다.
낙인이 박힌 자리가 맥동할 때마다 검은 열기가 뿜어 나왔다.
오리온의 가죽 장갑 끝이 마독의 기운에 미세하게 변색되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온기는 단순한 체온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의 잔재이자 금기된 증거였다.
이것이 당신이 갈구하던 진실입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서늘하게 채웠다.
오리온은 손을 빼내려 했으나 세라핀은 더욱 힘을 주었다.
그녀의 손등에 새겨진 낡은 흉터가 하얗게 질려갔다.
나를 죽이는 것이 신의 뜻입니까, 아니면 저 노인의 욕심입니까.
오리온의 턱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창백한 입술과 젖은 눈동자에 머물렀다.
성기사로서 바쳐온 충성심이 발밑부터 무너져 내렸다.
교황 카스틸로가 하사한 성수가 독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부정하려 했던 진실이 성녀의 심장 위에서 고동치고 있었다.
구석에 놓인 촛불이 위태롭게 춤을 추며 그림자를 늘렸다.
오리온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갈등이 불꽃에 투영되었다.
그는 그녀를 밀쳐내야 했지만 손가락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열기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세라핀은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서늘한 숨결을 내뱉었다.
내가 사라지면 이 부유도가 어떻게 될지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목소리는 협박보다 처절한 애원에 가까웠다.
아르카디아를 지탱하는 결계의 열쇠는 오직 성녀의 생명이었다.
교황은 새로운 인형을 원하겠지만 그 대가는 이 땅의 추락입니다.
오리온의 눈에 서린 서슬 퍼런 결의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세라핀의 눈에서 순수함을 읽었다.
동시에 그 안에 깃든 깊은 어둠과 원망도 함께 보았다.
기사도의 명예와 교황에 대한 맹세가 날카롭게 충돌했다.
거칠게 일렁이던 촛불이 돌연 차가운 정적 속에서 꺼졌다.
오리온은 세라핀의 목으로 가져가려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뺨을 스치듯 지나간 그의 손이 벽을 강하게 짚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그는 낮은 신음과 함께 잡혔던 손을 거칠게 빼냈다.
뒤로 물러나는 발소리가 나무 바닥을 무겁게 두드렸다.
이번 한 번뿐입니다.
목소리는 쇳가루가 섞인 듯 거칠고 탁했다.
다음에 마주칠 때는 기사의 검이 당신의 심장을 겨눌 것입니다.
말과 달리 오리온의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듯 고해성사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로 쏟아진 백색 광선이 세라핀의 엉망이 된 얼굴을 비췄다.
그녀는 홀로 남겨진 공간에서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이 풀린 다리가 후들거리며 바닥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하지만 멈출 시간이 없었다.
어깨 너머로 뻗어 나가는 낙인의 통증이 한계를 알리고 있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사제복을 대충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소 바깥에서는 백야제를 준비하는 찬송가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선율이 세라핀에게는 기괴한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벽면을 따라 몸을 숨겼다.
중앙 홀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계단은 고요했다.
차가운 대리석 벽면을 짚을 때마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식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점점 축축하고 무거워졌다.
지상에서 정화되지 못한 마기가 피부를 끈적하게 파고들었다.
세라핀은 장갑 안의 흉터를 손톱으로 짓누르며 정신을 다잡았다.
지하 봉인실의 육중한 철문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의 감시도 붙지 않은 정적만이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마석 라피스를 꺼내 앞을 밝혔다.
푸르스름한 빛이 벽면의 이끼와 곰팡이를 기괴하게 비췄다.
봉인실 문 앞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문바닥에 그려져 있어야 할 성휘의 마법진이 흐릿했다.
강력한 빛을 내뿜어야 할 결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라핀은 떨리는 손으로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기름칠조차 되지 않은 문이 힘없이 안쪽으로 밀려났다.
쇠 긁는 소리가 지하 광장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봉인실 내부에는 짙은 안개 같은 마독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녀는 소매로 코와 입을 막으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중앙의 제단 위에는 끊어진 사슬만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카엘을 구속하고 있던 성스러운 문양들은 검게 타버린 상태였다.
제단 뒤편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일어났다.
생각보다 늦었군.
낮게 깔리는 중저음이 세라핀의 고막을 진동시켰다.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카엘의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사슬에 묶여 초라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죄수가 아니었다.
그는 마계의 정점에 선 군주로서 위엄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그의 가슴에는 붉은 문양이 박동했다.
세라핀은 비틀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시선은 카엘의 커다란 오른손으로 향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백색 광채를 내뿜는 돌이 들려 있었다.
아르카디아 전체의 생명줄이자 성국의 근간인 결계석이었다.
성녀의 기도 없이는 누구도 만질 수 없는 성물이 마왕에게 있었다.
카엘은 전리품을 감상하듯 결계석을 가볍게 위로 던졌다 받았다.
돌이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맑은 파동이 지하실 전체를 울렸다.
그 무구한 빛이 카엘의 서늘한 미소와 대조를 이루었다.
세라핀은 목 안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그녀의 목소리가 떨림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졌다.
카엘은 대답 대신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바닥의 대리석이 검게 부식되었다.
세라핀은 벽에 등이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 쳤다.
시야 끝에서 결계석의 빛이 붉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카엘은 그녀의 턱을 잡아 강제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제 이 세계의 운명은 내가 쥐고 있다.
카엘은 결계석을 그녀의 눈앞으로 들이밀며 속삭였다.
세라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에 새겨진 성결의 낙인이 요동치며 비명을 질렀다.
마왕의 손가락이 닿은 피부가 타버릴 듯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카엘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독이 그녀의 성휘와 충돌했다.
두 힘이 부딪치는 경계에서 푸른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것은 성국에서 가르친 어떤 법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빛이었다.
결계석의 백색 광채가 점차 보랏빛으로 소용돌이치며 변했다.
세라핀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녀의 손등에 있던 흉터가 기괴하게 뒤틀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카엘의 눈동자에 서린 서늘한 증오가 찰나의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신의 마력이 성녀의 신성력과 섞이는 감각을 느꼈다.
서로를 파괴해야 할 두 기운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봉인실 바닥의 대리석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진동했다.
아르카디아를 지탱하던 거대한 축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세라핀은 공포보다 앞서는 기묘한 해방감에 몸을 떨었다.
자신을 평생 옥죄어온 낙인이 아주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카엘의 낮은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것이 네가 그토록 지키려던 신의 질서인가.
그는 결계석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으드득 소리를 냈다.
세라핀은 대답 대신 그의 가슴팍을 세게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등 뒤의 벽면에서 냉기가 올라와 척추를 타고 번졌다.
머리 위쪽에서 성소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비상 종소리가 터졌다.
교황청의 성기사들이 이 지하로 들이닥치기까지는 시간이 없었다.
세라핀은 자신의 뺨을 감싼 카엘의 차가운 손등에 손을 얹었다.
나를 이용해 이 세계를 무너뜨릴 생각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을 멈추고 서늘한 고요를 되찾았다.
카엘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자신의 눈을 마주하게 했다.
검은 눈동자 속에 비친 세라핀의 얼굴은 절망에 젖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처럼 선명한 생동감을 띠고 있었다.
카엘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며 잔인한 호선을 그렸다.
그는 결계석을 세라핀의 장갑 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성스러운 돌이 그녀의 손에 닿는 순간 보랏빛 섬광이 폭발했다.
지하 봉인실의 천장이 무너지며 먼지 구름이 쏟아져 내렸다.
무장한 성기사들의 함성 소리가 계단 위에서 가깝게 들려왔다.
세라핀은 결계석을 움켜쥐고 카엘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힘은 이제 성휘도 마독도 아니었다.
세계를 파괴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금기된 공허의 불꽃이었다.
카엘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다가대고 낮게 읊조렸다.
무너뜨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의 그 가증스러운 신념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인실의 철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성기사단장 오리온이 검을 뽑아 든 채 선두로 달려 들어왔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마왕의 품에 안긴 채 보랏빛 결계석을 든 성녀였다.
오리온의 안색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리며 검끝이 흔들렸다.
세라핀은 자신을 겨누는 수십 자루의 검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성녀의 자비로운 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깊은 심연처럼 어두운 공허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세라핀은 입가에 미세한 미소를 띄우며 결계석을 바닥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