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대공의 손
카일루스의 답신은 왔다. '직접 오시오.' 한 줄이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기 전에, 조회장에서 발레리우스가 먼저 움직였다.
오전 조회. 대리석 기둥 사이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었다.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빛 속에서 느리게 흩어졌다. 관료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엘리제는 배석 인원을 확인했다. 어제와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중립파 관료 세 명의 자리가 발레리우스 측 좌석 가까이로 이동해 있었다.
좌석 위치는 발언 없는 발언이었다. 이 조회장에서 의자 한 뼘의 차이가 정치적 입장을 말했다. 세 명이 동시에 움직였다는 것은 발레리우스가 이틀 안에 설득을 끝냈다는 뜻이었다. 빠르고, 조용했다.
발레리우스가 발언권을 요청했다. 카일루스가 허가했다. 황좌 위에서 내려다보는 황제의 표정은 읽히지 않았다. 팔걸이 위의 손가락만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발레리우스가 일어섰다. 70대의 허리가 곧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조회장의 빛을 받아 빛났다. 이 남자가 일어서면 공간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폐하. 황후 봉토 심문 기록의 적법성에 관해 재검토를 요청합니다.」
온화한 목소리였다. 거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로의 걱정, 제국의 안정을 위한 충언. 단어 하나하나가 무해했다.
「봉토령 9조에 따른 1차 심문권은 민사 피해와 자산 횡령에 한정됩니다. 그러나 황후 폐하의 심문 기록에는 선제후 연합에 관한 정치적 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레리우스가 조회장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중립파 세 명 위에 잠시 머물렀다. 「이것은 심문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며, 기록 자체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칼날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고 있었다. 심문 기록이라는 그릇을 깨서 안의 내용물을 쏟아내는 수였다.
엘리제가 발언권을 청했다. 카일루스의 시선이 내려왔다.
「발레리우스 대공의 우려를 이해합니다. 심문 기록의 범위에 관한 논의는 제국 사법부가 판단할 사안입니다. 황후청은 기록을 제출했을 뿐,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발레리우스의 미소가 온화했다. 「다만 --- 제국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해당 기록이 공개 열람 상태로 전환된 것은 절차적으로 적절했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역공이었다. 엘리제가 직접 공개 열람으로 전환한 것을 공격하고 있었다. 위조 주장이 공개를 유도했는데, 이제는 공개 자체를 문제 삼았다. 칼의 방향을 바꾸는 솜씨가 매끄러웠다.
중립파 관료들의 시선이 엘리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법이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었다. 분위기의 문제였다.
엘리제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이 자리에서 법을 더 인용해봐야 여론은 돌아오지 않았다. 발레리우스는 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기로 싸우고 있었다. 조회장은 법정이 아니었다. 극장이었다.
「대공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엘리제가 앉았다. 패배가 아니라 후퇴였다. 하지만 이 조회장에 앉은 사람들에게 둘의 차이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 *
회랑을 걸었다. 발소리가 일정했다. 표면은 일정했다. 가슴 안쪽은 타올랐다. 법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발레리우스는 70년을 이 극장에서 연기해온 사람이었다.
열주 사이를 지나는 순간,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관료는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빵을 따릅니다.」
아르민이었다. 서기관 제복을 입고 문서 묶음을 안은 채 스쳐 지나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서기관이 문서를 들고 복도를 걷는 것은 일상이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황후궁으로 돌아왔다. 서재에 루카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중립파 세 명이 움직였습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조회 참관 보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엘리제가 양피지를 꺼냈다. 세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재무성 차관 베르너. 법무성 참사관 크라우스. 통상국 국장 브란트. 「검은 거미 보고서에서 이 세 사람의 정보를 뽑아주세요.」
루카스가 서랍에서 문서를 꺼냈다. 「이미 정리해 두었습니다.」
엘리제는 루카스를 보았다. 이 청년은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능력이 있었다.
「읽어주세요.」
「베르너 --- 아내 병상 2년, 치료비 부족, 미신고 채무 180냥. 크라우스 --- 자녀 둘, 국립 학당 입학 희망, 추천서 없음. 브란트 --- 사업 실패 채무, 상환 기한 3개월.」
세 사람의 약점이 아니라 필요였다. 약점은 위협의 도구이고, 필요는 거래의 도구였다. 위협은 한 번 쓰면 끝이지만, 거래는 관계가 된다.
「내일 아침, 베르너에게 비공식 초대장을 보내세요. 황후궁 정원. 차와 함께.」
「크라우스와 브란트는요.」
「순서대로. 한꺼번에 부르면 모의가 됩니다. 한 명씩 부르면 관심이 됩니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 다른 빵을 줄 겁니다.」 엘리제가 펜을 내려놓았다. 「베르너에게는 치료비를. 크라우스에게는 자녀 교육 기회를. 브란트에게는 채무 재조정을. 겉이 달라야 속이 같다는 것을 모릅니다.」
* * *
그날 밤, 연대기의 눈이 깜빡였다.
발동시킨 것이 아니었다. 불수의적 반응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눈이 스스로 켜지는 것은 연대기의 눈이 엘리제의 도구가 아니라, 엘리제가 연대기의 눈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발레리우스 폰 발레리우스 --- 다음 수 예측: 데이터 수집 중】
데이터 수집 중. 답이 아니라 과정이 표시된 것도 처음이었다. 연대기의 눈이 성장하고 있었다. 아니면 --- 침식하고 있었다.
문양이 꺼지며 귀 뒤쪽이 뜨거워졌다. 루벤 공작령 담장의 색이 사라졌다. 담장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붉은색이었는지 회색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윤곽만 남고 색이 빠진 그림처럼.
잃은 것을 세었다. 다섯 개. 열흘 만에. 이 속도라면 3년은 없었다.
창밖의 달이 기울었다. 내일은 빵을 나누는 날이었다. 가장 조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발레리우스가 이틀 만에 세 명을 돌린 방법을 알아야 했다. 어떤 빵을 주었는지, 어떤 위협을 했는지. 적의 방법을 알면 방어할 수 있었다. 검은 거미에게 새 임무를 내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