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사라진 이름
추밀원의 서신을 받은 다음 날, 엘리제는 다른 것을 먼저 찾았다.
아침 햇살이 서재 유리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왔다. 먼지 입자가 빛 속에서 느리게 떠다녔다. 엘리제는 이미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었다. 추밀원 서신 때문이 아니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에델슈타인의 갱도가 떠올랐다. 파란 빛. 마정석이 벽면에서 발하던 차가운 광채. 그 빛이 손끝에 닿았을 때의 열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손을 폈다 쥐었다. 열기는 없었다. 기억이 감각을 속이고 있었다.
루카스가 문을 두드렸다. 손에 재무성 기록 사본 한 묶음을 들고 있었다.
「리나 진술서 후속 조사 자료입니다. 황후청 열람 허가서로 재무성 기록에 접근했습니다.」
「어디까지 볼 수 있었습니까.」
「내탕금 출납 기록까지입니다. 그 이상은 추밀원 승인이 필요합니다.」 루카스가 탁자에 기록을 펼쳤다. 「폐하, 리나의 자금 경로를 추적하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래된 양피지였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잉크가 바래서 갈색에 가까웠지만, 숫자만은 또렷했다. 숫자는 잉크가 바래도 의미가 바래지 않았다.
루카스의 손가락이 한 줄을 짚었다.
「황실 내탕금에서 15년간 정기 송금이 있었습니다. 수령인 이름이 '레온'입니다. 금화 120냥씩, 매 분기. 15년 전에 시작되어 8년 전에 중단되었습니다.」
「레온.」
엘리제는 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렸다. 두 음절이었다. 황실 족보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카일루스에게 형제가 있다는 공식 기록은 없었다. 전생의 10년 동안, 수백 번의 연회와 수십 번의 공식 행사에서 이 이름은 한 번도 불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생의 감옥에서 들은 말이 있었다.
처형 전날 밤이었다. 감옥의 돌벽이 차가웠다. 쇠창살 너머 복도에서 간수의 발소리가 들렸다. 비틀거리는 발소리. 싸구려 포도주 냄새가 쇠창살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제2황자가 살아 있었다면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어둠 속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누구에게 한 말인지도 모를 혼잣말이었다.
그때는 죽기 직전이었다. 쇠사슬이 손목을 물어뜯고 있었고, 내일 아침이면 화형대에 올라야 했다. 술에 취한 하급 병사의 헛소리라 생각했다. 기억의 구석에 밀어 넣고 잊었다. 이번 생에서는 달랐다. 잊었던 것을 다시 꺼낼 수 있었고, 그것이 잊혀서는 안 될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송금 중단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루카스가 양피지를 넘겼다. 오래된 종이 특유의 건조한 소리. 시간이 말라붙은 소리였다.
「8년 전은 현 황제 카일루스 폐하의 즉위 직전입니다. 선대 황제 붕어 시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선대 황제가 죽었고, 송금이 멈추었고, 카일루스가 왕좌에 앉았고, '레온'이라는 이름이 기록에서 사라졌다.」 엘리제가 손가락으로 줄을 짚었다. 「네 가지가 같은 해에 일어났습니다.」
「우연이겠습니까.」
「우연이라 하기에는 겹치는 것이 너무 정확합니다.」
엘리제는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 너머로 황궁의 첨탑이 보였다. 아침 햇살이 첨탑의 금박을 비추고 있었다. 저 첨탑 아래 어딘가에 카일루스가 있었다. 이 남자가 왕좌에 앉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왕좌에 앉기 위해 무엇을 치웠는가.
연대기의 눈을 발동시켰다. 홍채 위로 금빛 문양이 피어올랐다. 세밀한 톱니바퀴와 시계 눈금이 청금색 눈동자 위에 겹쳐졌다. 엘리제는 '레온'이라는 이름에 집중했다.
【레온 --- 해당 인물 생사 판정: 불가. 데이터 불충분】
카일루스에 이어 두 번째였다. 연대기의 눈이 판독하지 못하는 존재가 둘이 되었다. 이미 죽어서 시간선에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무언가에 의해 보호받고 있거나. 후자라면 --- 이 제국 안에 연대기의 눈조차 뚫지 못하는 보호막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문양이 사라지며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무언가가 빠져나간 느낌이 왔다. 텅 빈 곳이 생겼다. 한 박자 늦게 그 빈 곳을 찾으려 했다.
루벤 공작령의 --- 뭐였지.
방금 떠올리려 한 것이 있었는데. 공작령의 어딘가에서 했던 것. 누군가와 함께. 아버지? 아니, 아버지는 서재에 있었다. 그러면 누구와? 혼자였나?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 누군가의 윤곽이 흐릿해지다가 사라졌다. 얼굴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기억에서 빠져나간 것이었다.
빈 곳을 확인하려면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하는데, 원래 있던 것 자체가 사라지면 빈 곳도 보이지 않았다. 기억의 가장 잔인한 점은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엘리제의 손이 유리창에 닿았다. 차가운 표면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이를 악물었다.
「폐하.」 루카스가 조용히 불렀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엘리제가 손을 내렸다. 유리 위에 손바닥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이 기록을 별도로 보관하세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세요.」
「예, 폐하.」
루카스가 기록을 접어 소매 안에 넣었다. 잠시 멈추었다가 물었다. 「레온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모릅니다.」 엘리제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황실 내탕금에서 15년간 돈을 보낼 만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황제의 자녀이거나, 황제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거나.」
「황제의 자녀라면 --- 카일루스 폐하에게 형제가 있었다는 뜻입니까.」
「공식 기록에는 없습니다.」
「공식 기록에 없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요.」
이 청년의 좋은 점은 대답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혹, 정확히 필요한 말을 짧게 던질 줄 알았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다.
* * *
이틀이 지났다. 추밀원 면담일이었다.
마르타만 데리고 황궁 동쪽 회랑을 지났다. 오후의 햇살이 열주 사이로 비스듬히 떨어졌고, 대리석 바닥에 기둥의 그림자가 규칙적으로 줄지어 있었다.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밟으며 걸었다. 마르타의 빠르고 조용한 발소리와, 엘리제의 일정하고 또렷한 발소리가 겹쳤다. 황후의 걸음은 들려야 했다. 조용히 걷는 것은 숨는 것이었다.
「폐하.」 마르타가 앞을 보며 말했다. 「추밀원 별관에 사전 방문 기록을 남기겠습니까.」
「남기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문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추밀원 별관은 황궁 본관에서 떨어진 회색 건물이었다. 장식이 없었다. 금박도 조각도 샹들리에도 없었다. 대신 벽이 두꺼웠다. 소리가 새지 않도록. 문서를 다루는 곳은 화려할 필요가 없었다. 비밀을 다루는 곳은 두꺼워야 했다.
돌계단이 지하로 이어졌다. 벽에 등불이 간격을 두고 걸려 있었다.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잉크 냄새가 진해졌고, 오래된 양피지의 눅눅한 냄새와 밀랍 봉인의 달콤한 냄새가 겹쳤다.
지하 2층. 문서고. 나무 선반이 벽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양피지 묶음이 빈틈없이 꽂혀 있었다. 470년의 기록이 이 선반들 안에 잠들어 있었다.
선반 사이 통로 끝에 탁자가 하나 있었다.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 빛의 원 안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40대 초반. 마른 체격. 안경 너머로 예리한 눈. 손등에 잉크 자국이 여러 겹 묻어 있었다. 오래된 자국과 새 자국이 겹쳐 있었다. 추밀원 서기관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제복이 이 사람에게 맞는다기보다 이 사람이 제복 뒤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남자가 일어섰다. 허리를 숙였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정확한 각도.
「황후 폐하. 짐의 이름은 아르민입니다. 추밀원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지요.」
목소리가 낮았다. 문서고의 고요함에 맞춰진 음량이었다.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 자리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목소리.
엘리제는 그를 보았다. 연대기의 눈을 쓰지 않았다. 이 사람은 수치가 아니라 시간으로 읽어야 했다.
「쓸모없는 사람이 황후에게 서신을 보내는 이유가 있겠지요.」
아르민의 입가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눈은 웃지 않았다. 입만 웃는 사람은 온 얼굴로 웃는 사람보다 덜 속였다.
「앉으시지요, 폐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 * *
마르타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제가 문서고 문을 열자, 시녀장의 시선이 먼저 왔다. 황후가 혼자 지하에 다녀온 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엘리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돌아갑니다.」
「면담이 잘 되셨습니까.」
「아직 모릅니다. 잘 되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마르타가 고개를 숙이고 앞서 걸었다. 아르민의 이름도, 추밀원 서약권의 선례도, 레온이라는 이름도 --- 지금은 마르타에게도 말할 때가 아니었다. 충실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면 충실함이 무거워진다. 무거운 충성은 깨지기 쉬웠다.
황후궁으로 돌아와 침전 서랍을 열었다. 추밀원 서신을 다시 꺼냈다. 필체의 기울기, 잉크의 농도, 단어의 선택. 만나고 나니 확실했다. 이 절제된 필체는 아르민의 것이었다.
서신을 접으려다 손이 멈추었다.
양피지의 질감이었다. 손끝에 미세한 요철이 잡혔다. 양피지를 등불 앞에 비추었다. 빛이 투과하면서, 희미한 투문이 떠올랐다. 추밀원 공용 양피지에는 없는 문양. 양 머리에 별 세 개. 왕실 직할 제지소의 특수 투문이었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서랍 안쪽에서 다른 양피지를 꺼냈다. 루카스가 소매에 넣어두었다가 사본을 떠서 남겨둔 레온 송금 기록.
등불 앞에 나란히 비추었다.
같은 투문이었다.
아르민의 서신과 레온 송금 기록이 같은 종이 위에 적혀 있었다. 왕실 직할 제지소에서만 생산하는, 일반 유통이 불가능한 양피지. 이 종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추밀원 고위 관리이거나, 왕실 재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자뿐이었다.
아르민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추밀원에서 가장 낮은 자리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왕실 직할 양피지를 개인 서신에 사용했다.
이 남자는 레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엘리제가 찾기 전부터.
서신을 보낸 것은 정보 제공이 아니었다. 시험이었다. 엘리제가 레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한.
등불이 흔들렸다. 양피지 두 장이 나란히 빛을 투과하고 있었다. 같은 양 머리. 같은 별 세 개.
사라진 이름을 아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