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쓸모없는 사람
문서고의 등불이 흔들렸다.
지하의 바람이었다. 환기구를 타고 들어온 차가운 공기가 양피지 냄새와 섞였고, 나무 선반에 꽂힌 수천 권의 기록이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엘리제는 소매 안에 손을 넣어 양피지의 질감을 확인했다. 간밤에 발견한 투문. 왕실 직할 제지소의 양 머리와 별 세 개. 이 서신을 보낸 사람은 레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지금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아르민은 차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탁자 위에 문서 세 장을 올려놓았다. 황후청 인장이 찍힌 봉토 심문 기록 사본이었다. 인장의 밀랍이 등불 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읽으셨군요.」 엘리제가 말했다.
「추밀원은 제국의 모든 공식 기록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아르민이 문서 위에 손을 올렸다. 잉크 자국 묻은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맞추었다. 습관적 동작이었다. 「황후 폐하의 심문 기록은 법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봉토령 9조를 정확히 인용하셨고, 형사 기소가 아닌 1차 심문 기록으로 한정하셨습니다. 제국 사법부가 반려할 근거가 없습니다.」
칭찬이었다. 하지만 칭찬만을 위해 서명 없는 서신을 보내고 지하 2층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본론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르민이 안경을 고쳐 썼다. 안경테가 얼굴에 비해 조금 컸다. 흘러내리는 것을 고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 보였다.
「추밀원 안에 황후 폐하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몇 명입니까.」
「그것을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솔직한 거절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나았다. 엘리제는 질문을 바꾸었다.
「추밀원은 황제의 기관입니다. 왜 황후에게 접근하십니까.」
아르민의 시선이 선반 쪽으로 향했다. 양피지 묶음이 끝없이 이어진 벽. 470년의 기록이었다. 이 남자는 이 기록들 사이에서 살아온 사람이었고, 제국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읽어온 사람이었다.
「추밀원은 황제의 것입니다. 동시에 제국의 것이기도 합니다. 황제와 제국이 같은 방향일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가 엘리제를 보았다. 등불이 안경에 반사되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를 때가 문제입니다.」
엘리제는 그 말의 무게를 재었다. 이 남자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에 충성하고 있었다. 황제가 제국을 위해 존재하는 한 따르되, 황제가 제국과 어긋나는 순간 다른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제국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의도적으로.
「아르민씨. 쓸모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르민이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등불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에서 흔들렸다.
「저는 문서 정리관입니다, 폐하. 추밀원에서 가장 낮은 직위입니다. 정식 위원이 아닙니다. 아무도 저에게 보고하지 않고, 아무도 저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지만 발언권은 없습니다.」
그가 엘리제를 보았다.
「쓸모없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 모든 것을 봅니다.」
엘리제의 손이 탁자 위에서 멈추었다. 이 남자는 의도적으로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도 경계하지 않는 위치에서 추밀원의 모든 문서를 보고, 읽고, 기억하고 있었다. 승진하지 않는 것이 무기였다.
황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쓸모없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전생에서 황후라는 자리에 취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엘리제와 정반대였다.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세요.」
아르민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선반 사이를 걸어가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수천 권의 기록 속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 걸음이 세 번이었고, 손이 멈추지 않았다. 이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이 남자의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오래된 양피지였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봉인의 밀랍이 바래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추밀원 서약 절차에 관한 선례 보고서입니다. 건국 312년, 황후 카타리나 3세가 추밀원 위원 세 명에게 직접 서약을 받은 기록입니다.」
엘리제의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박동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장갑 안에서 손가락이 움찔했다.
추밀원 서약권. 황후가 추밀원 위원에게 직접 서약을 받을 수 있는 권한. 엘리제가 이번 생에서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것이었다. 그 권리의 선례가 이 지하 문서고의 선반 속에 잠들어 있었다.
「이것을 왜 저에게 보여주십니까.」
아르민이 문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었다. 하지만 이 한 장 안에 제국의 판을 뒤집을 열쇠가 잠들어 있었다.
「제국에는 법이 있고, 법 위에 선례가 있습니다. 선례가 있으면 길이 있습니다.」 아르민이 등불 아래에서 엘리제를 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이 처음으로 또렷하게 보였다. 차분하고 깊은 눈이었다. 「폐하께서 그 길을 걸으실 의향이 있다면 --- 저는 쓸모없는 자리에서 문을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엘리제는 문서를 들었다. 양피지의 무게가 손에 전해졌다.
「아르민씨. 왜 저를 돕습니까.」
아르민이 등불을 바라보았다. 작은 불꽃이 두 개의 렌즈 안에서 타고 있었다.
「저는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황제가 제국을 위해 존재하는 한 황제를 따르겠지만 --- 황제가 제국을 위협하는 날이 온다면, 제국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잠시 멈추었다.
「그 사람이 황후 폐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모릅니다. 그래서 --- 보고 있는 것입니다.」
충성 맹세가 아니었다. 관찰 선언이었다. 맹세는 깨질 수 있지만, 관찰하는 사람은 깨질 이유가 없었다.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니까. 그 솔직함이 맹세보다 신뢰할 수 있었다.
엘리제는 문서를 소매 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르민의 손등을 한 번 더 보았다. 잉크 자국이 여러 겹 묻어 있었다. 이 손이 왕실 직할 양피지에 서신을 쓴 손이었다. 레온의 송금 기록과 같은 투문이 찍힌 종이 위에.
물어볼 수 있었다. 투문에 대해. 레온에 대해.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 남자가 먼저 꺼내도록 두는 것이 맞았다. 묻는 순간, 엘리제가 투문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알고 있다는 것을 감추는 것이 ---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보다 항상 유리했다.
「읽어보겠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 제가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아르민이 허리를 숙였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정확한 각도.
* * *
계단을 오르자 황궁의 회랑이 펼쳐졌다. 지하의 차가운 공기가 지상의 따뜻한 공기와 부딪혔다. 엘리제는 숨을 깊이 마셨다.
황후궁으로 돌아오는 회랑에서 세라핀과 마주쳤다.
세라핀은 부채를 접고 있었다. 각도가 0이었다. 부채를 펼치지 않은 채 손에 들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부채를 무기로 쓰지 않는 세라핀은 무장을 해제한 세라핀이었다.
「추밀원 쪽에서 오시는군요, 폐하.」
「산책이었습니다.」
세라핀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추밀원 별관 쪽으로 산책을. 건강에 좋은 코스는 아닌 것 같은데요.」
엘리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라핀이 보폭을 맞추어 옆에 섰다. 진홍빛 머리카락이 회랑의 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이 아이는 존재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숨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숨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다음 다회 초대장 받으셨습니까.」
「받았습니다.」 세라핀이 부채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돌렸다. 「가겠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무게가 있었다. 발레리우스 대공의 딸이 황후의 다회에 공식 참석한다는 것은 궁정 전체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 선언의 대가를 이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공녀.」
세라핀이 걸음을 멈추었다. 엘리제는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등 뒤에서 세라핀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의 오만함이 걷혀 있는, 낮고 진지한 목소리.
「폐하. 아버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엘리제는 멈추지 않았다. 고개만 살짝 돌렸다.
「알고 있습니다.」
* * *
황후궁에 돌아와 소매에서 선례 보고서를 꺼내 서랍에 넣었다. 추밀원 서신과 나란히 놓았다. 두 장의 양피지. 면담 요청과 선례 보고서. 두 장이 합쳐지면 길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길을 걷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다. 광산이었다. 광산을 확보해야 자금이 생기고, 자금이 있어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뿌리부터 세워야 나무가 선다.
그리고 아르민의 손등에 묻은 잉크 자국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남자는 레온을 알고 있었다. 엘리제보다 먼저. 그러면서도 꺼내지 않았다. 선례 보고서를 건넸지만 레온은 언급하지 않았다.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을 관찰하는 것인가. 엘리제가 레온을 찾을 수 있는지를. 찾은 뒤에 어떻게 쓰는지를.
쓸모없는 사람이 건네준 것은 선례 보고서만이 아니었다. 시험이었다. 엘리제가 이 시험을 통과하면 --- 아르민은 레온에 대해 말할 것이다. 통과하지 못하면, 이 남자는 다시 쓸모없는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솔라리스의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을 먹고 흐르고 있었다.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